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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금의 현대사를 써가는 강은일
ⓒ 김기
현재 한국에서 가장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여성 국악인 중에서도 유난히 눈에 띄는 강은일. 그에게 국악계는 디바의 명칭을 서슴없이 붙여 주었다. 입 가진 평론가들치고 강은일 한번 칭찬 안 해본 사람이 없다. 국악의 밑그림 위에 현재와 미래를 그려온 강은일은 해금이란 악기의 전령사 역할을 해오고 있다.

파바로티, 바비 맥퍼린, 요시다형제, NHK 오케스트라, 살타첼로 등 그녀는 세계적 아티스트들과의 협연을 통해 해금을 주목할 만한 세계적 악기로 인식시키고 있다. 물론 그런 힘은 국내에서의 경계 없는 폭넓은 연주활동을 통해서 나온 것이다. 솔리스트 앙상블 '상상' 동인이기도 한 강은일은 신들린 듯한 해금연주로 누구라도 한번 보면 오래 기억되는 연주자이다.

활동이 많다보니 자연 마주치는 일도 많다. 몇 년 얼굴을 익혀 제법 가벼운 농담을 주고 받을 정도로 가까워진 지금에도 강은일은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늘 음악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는다. 어떤 해답을 위해서가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와 감성을 듣는 일에 열중한다. 그렇게 해서 홀로 서는 무대이긴 하지만 그 위에서 연주하는 음악은 결코 혼자만의 것이 아닌 모두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 해금플러스 연습실 장면
ⓒ 김기
예술은 1인칭이란 말이 있다. 그러나 강은일의 1인칭은 '나'가 아니라 '우리'이다. 그래서 강은일의 머리 속에, 해금 속에는 강은일의 '우리'에 대한 뜨거운 애정과 그리움이 담겨져 있다. 그녀의 첫 번째 독집 음반인 <오래된 미래>에는 그런 강은일의 속내가 잘 담겨져 있다. 그녀가 말하는 오래된 미래란 흐르는 시간의 정거장처럼 우리들 가슴 속에 늘 아련한 기억들에 대한 감성의 대변이었다.

<오래된 미래>는 이번에 다시 <미래의 기억>으로 이어진다. 2집 음반은 내년 2월쯤에 출시될 예정인데 그 음반에 담길 음악들을 미리 만나볼 기회가 주어졌다. 12월 2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강은일의 여섯 번째 콘서트가 열리게 된 것. 어떻게 준비를 하고 있나 궁금한 마음에 양재동 그녀의 연습실을 찾아봤다.

오후 네 시. 겨울 초입의 햇살은 바리톤의 저음처럼 낮아졌으나 지하 연습실까지는 미치지 못하였다. 대부분 그렇겠지만 밴드의 연습실은 마치 전쟁통이나 다름없다. 특히 강은일의 세션밴드인 '해금 플러스'의 경우 인원수가 11명이나 되기 때문에 비좁은 연습실은 사람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음악에 터져버릴 듯하였다.

▲ 해금플러스 연습장면. 오른쪽 두 번째가 하루 전 결혼한 새신랑 곽수환씨. 어여쁜 신부 생각을 어찌 지우고 연습하는지...
ⓒ 김기
콘서트를 불과 닷새 남긴 터이니 연습실의 열기는 그 어느 때보다 뜨겁고 치열할 수밖에 없다. 그 안에는 재미있기도 하고, 어처구니 없기도 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숨겨져 있었다. '해금 플러스'에서 클래식 기타를 맡고 있는 곽수환씨는 하루 전에 결혼식을 올린 새신랑. 그러나 신혼여행의 달콤함은 콘서트 후로 미루고 연습실에 나와 있는 것이다. 그래도 괜찮냐고 묻자 간단하게 '다 그런 거죠 뭐'하고 만다.

<오래된 미래> 이어 두 번째 음반 <미래의 기억> 발표

자기 일에 열심인 것이야 누구라도 당연하겠지만, 그들이 연습 도중 주고 받는 말들을 가만히 들어보니 그들은 음악도 그렇거니와 서로에 대해 깊은 정을 가진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하기야 사람끼리 먼저 통하지 않는다면 연주는 겉돌고 말 것이고, 청중의 심금을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 '해금 플러스'가 객석을 움직이는 힘은 음악 이전에 그들이 일상에서 주고받는 사람 사이의 끈끈한 정임을 알 수 있었다.

이번 콘서트 아니 음반 작업에는 총 4명의 작곡가가 참여하고 있다. 전문작곡가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류형선을 비롯해서 퓨전그룹 '그림'의 리더 신창렬 그리고 신현정, 박경훈 등이다. 그들 중에 류형선을 제외하고는 모두 밴드에 퍼쿠션, 건반 등으로 콘서트에 직접 참여하고 있다. 이렇게 작곡가가 밴드에 직접 가담하는 것은 대단히 바람직한 현상이다.

▲ 해금플러스 단원들. 왼쪽부터 작곡과 건반악기 신현정, 대금 박경민,피리 안은경,작곡과 퍼쿠션 신창렬, 클래식 기타 곽수환, 어쿠스틱 기타 이주원, 타악 최성무, 작곡과 건반악기 박경훈
ⓒ 김기
세계적 밴드들은 모두 그 내부에서 그들의 음악을 만들었다. 새삼 거론할 필요도 없겠지만 레드 제플린의 존 폴 존스, 지미 페이지가 그렇고 비틀즈의 경우는 멤버 네 명 모두가 작곡을 하였다. 국악계도 마찬가지다. 최근 젊은 밴드들 중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팀들은 자신들의 음악을 직접 만드는 공통점들을 가지고 있다. 공명, 그림, 바이날로그 등. '해금 플러스'는 적어도 자신들의 이야기를 직접 할 수 있는 음악적 기반은 분명히 갖추고 있는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삭발한 채 나타나기도 하는 등 주변을 놀라게 하는 아주 특별한 연주자인 강은일의 1인칭이 '나'가 아니라 '우리'인 이유도 그들 '해금 플러스'가 만드는 정경들로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의 특별함 속에는 사람 사이에서 느낄 수 있는 너무도 당연한 사소함이 있었고, 그 사소한 정들이 무대 위의 힘과 매혹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이번 콘서트에 임하는 강은일의 심정을 물었더니 낙타같은 마음으로 무대에 서겠다고 한다. 사막지대의 관광 상품이 된 낙타. 결코 빠른 교통수단은 아니지만 기나긴 사막의 여정 속에서 최소한 여행자를 낙오시키지는 않는 낙타. 그 낙타가 사람을 태우기 위해서는 자신의 관절을 세 번 꺾어야 한다는 말을 한다.

음반 참여한 4명의 작곡가 모두 '해금 플러스' 참여

▲ 연습실에서의 강은일. 무대 위의 칼날같은 카리스마를 보이지만 일상에서는 아기같이 순한 표정을 보인다
ⓒ 김기
눈에 금세 눈물이 그렁그렁해지는 강은일은 그 낙타의 겸손과 인고의 마음 없이 청중을 대할 수는 없을 것 같다고 한다. 이번 콘서트에서 강은일이 원하는 낙타의 표정, 그 마음이 잘 전달될지 궁금하다. 무대 위의 강은일은 더할 나위 없이 강렬하다. 남자 여자를 떠나서 무대 위에서 강은일만큼의 에너지를 느끼게 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그런 그녀가 속으로 다짐하고 있는 것은 소위 카리스마가 아니라 자신을 한없이 낮추는 낙타의 겸손이었다.

다시 말해서 "내 음악을 들어봐"가 아니라 "당신들의 음악을 들어보세요"로 대변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음악가가 전혀 자신의 것이 아닌 이야기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청중을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자기 음악의 중심으로 두겠다는 것이니, 그 또한 강은일의 확장된 1인칭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말이 된다.

강은일의 음악을 얘기하는데 흔히 크로스 오버 혹은 퓨전이란 단어를 쓴다. 그러나 이미 강은일은 사조나 장르로 묶어 두기에는 훨씬 먼 곳에 서 있다. 강은일은 그저 강은일의 음악을 할 뿐이다. 단지, 그 안에 국악기로서 해금이 태생적으로 가진 전통이라는 정서와 현대를 사는 우리 이웃으로서 강은일이 보는 오늘 현재의 느낌이 존재할 뿐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강은일의 해금이라고 할 수는 없다.

강은일이 과거를 미래로 보고, 오늘을 미래의 과거로 보는 등 시간의 배열을 뒤죽박죽 섞어가는 일련의 작업들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이번 콘서트에서 선보일 2집 음악들은 1집과 크게 달라 보이진 않는다. 음반 타이틀도 1집과의 반어법적인 연관을 갖듯이 음악 또한 그렇다. 음반 하나로는 다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마저 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강은일이 말하고자 하는 오늘, 어제 그리고 내일의 음악 이야기들이 펼쳐질 2일 무대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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