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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17일 낮 경북 경주에서 한미정상회담을 마친뒤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 APEC

노무현과 조지 부시. 편한 차림으로 웃었다. '한미동맹과 한반도 평화에 관한 공동선언'을 내놓았다. 두 사람은 '한미동맹의 공고함을 재확인'했다. 이른바 '북핵 문제' 해결이 한반도 평화에 필수적이라고 다짐했다.

대체로 긍정적 평가가 지배적이다. 한반도 '평화체제' 전환에 부시가 열린 자세를 보였단다. 홍석현 사주가 검찰에 불려다니는 <중앙일보>는 "현정부 들어 가장 돋보인 한·미 정상회담"(18일자 사설제목)으로 '칭찬'했다. 물론, <조선일보>처럼 중국과 더 가깝지 않느냐고 캐묻는 '사설'도 있고, "앞에서 웃고 뒤로 틈새가 벌어지는" "냉엄한 현실을 직시"하자는 <동아일보>도 있다.

하지만 공동선언에서 무엇보다 눈여겨볼 곳은 "남북관계 및 평화체제 구축" 항목이다. 공동선언은 "남북관계의 발전이 북핵문제 해결 진전과 상호 보강할 수 있도록 조화롭게 계속 추진해 나갈 것"을 합의했다.

남북관계의 발전을 북핵문제 해결과 '조화'시킨다?

보기에 따라서는 '진전'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아니다. '북핵문제' 해결에 가장 큰 변수는 누가 보더라도 미국 정책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해결'과 '상호 보강할 수 있도록 조화롭게' 남북관계가 발전해가야 한다는 공동선언의 함정이 여기에 있다. 표현의 부드러움과 정반대로 미국은 남북관계에 개입할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회담 뒤 공동기자회견에서 한 노 대통령의 발언도 그 연장선이다. 부시와 나란히 서서 노 대통령은 강조했다. "남북정상회담에만 매달리지 않겠다."

여기서 한국에 오기 직전 부시가 일본에서 한 발언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부시는 미일 정상회담 뒤 가진 연설에서 주장했다. "북한을 촬영한 위성사진에는 하나의 도시로 착각될 만큼 대규모 정치범 수용소들이 보이고, 밤이면 (전력난에) 암흑으로 뒤덮인다." 이어 단언했다. "이는 자유와 개방을 거부한 결과다."

근본주의적 신앙으로 '미국식 체제' 확산을 추진해온 제국주의 정책의 연장선에 있는 발언이다. 실제로 부시는 "우리는 고통받는 북한 주민을 잊지 않을 것이고, 21세기는 한반도 전역에 '자유의 세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부시가 한국에서 보인 '웃음'과 분명 '의미'가 다른 발언이다. 무엇이 그의 진심일까 묻지 않을 수 없다.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는 부시의 말이 미덥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분명히 말하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전력난'과 '주민 고통'이 안타깝다면, 그가 적극적 의지로 실천할 일이 있다. 조-미수교를 서둘러라.

미국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경직성'을 거론한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부시가 '암흑으로 뒤덮인다'고 발언한 날이다.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의 알렉산더 보론소프 박사는 동북아정책 강연회에서 진실을 토로했다. 보론소프는 평양에 "잘 조직된 반미주의가 있다"고 전제했다. 그러나 "지난 2000년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하고, 조명록 차수가 워싱턴을 방문하던 시기에는 반미감정이 완전히 바뀌어 미국에 친근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그런데 그 해 조지 부시 공화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모든 것이 원 위치했다"고 분석했다.

부시의 집권 뒤 풀려가던 반미주의 '원 위치'

그렇다. 부시가 '암흑의 나라'로 언죽번죽 지목한 그 나라는 지금 이 순간도 미국과 국교를 맺고 싶어한다. 경제발전을 위해 손을 내밀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부시, 바로 그가 북이 내민 손을 모르쇠하는 데 있다. '전력난'이나 '주민 고통'을 들먹이는 부시의 발언이 역겨운 위선으로 들리는 까닭이다.

그래서다. 노 정권에 명토박아 둔다. 남북관계 발전의 주체는 남과 북이다. 설령 미국의 대북정책과 '조화롭게 발전'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 하더라도, 그 주체는 우리에게 있어야 옳다. '미한 공동선언'이 유감스러운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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