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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일 오전 열린우리당 정세균 의장이 신임 인사차 김대중 전 대통령을 예방,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희열
동교동은 "덕담이었을 뿐"이라고 했지만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없다. '정치 9단'이 파장을 예상하지 못하고 입을 뗐다고 보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하다.

그럼 김대중 전 대통령이 던진 메시지는 뭘까? 김 전 대통령이 어제 열린우리당 지도부에게 건넨 얘기의 핵심은 두 가지다. '정치적 계승자'와 '전통적 지지층 복원'이다.

대다수 언론은 이 발언을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통합을 유도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했다. 당연하다.

김 전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에게 "나의 정치적 계승자"라고 했고, 민주당에게는 "민주당같이 훌륭한 정당이 어디 있느냐, 잘 발전시켜 달라"고 했다. 지난 2월 한화갑 민주당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건넨 말이다. 이 두 말을 종합하면 "다 내 자식들인데 왜 싸우냐"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별 이견이 없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그럼 어떻게 화해와 통합을 이룰 것인가? 관건은 방법이다.

주목할 점이 있다. 김 전 대통령은 '정치적 계승자'를 언급하면서 '나'라는 표현을 썼다. '민주세력'과 같은 일반적 표현을 놔두고 굳이 '나'라는 표현을 썼다. 열린우리당·민주당과 김 전 대통령 본인과의 밀착도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 표현이다. 왜 이런 표현을 쓴 것일까?

<조선일보>는 오늘, 김 전 대통령이 조만간 한 대표를 비공개로 만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한 대표와의 만남에서도 '전통적 지지층 복원'을 언급할 가능성은 높다. 비공개 만남이란 점에서 '전통적 지지층 복원'의 방법까지 언급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전망이 맞다면 김 전 대통령이 사실상 통합의 깃발을 드는 셈이다. 자신을 막후 구심점으로 해서 지지부진한 통합 논의에 가속도를 붙이겠다는 구상이다.

DJ, 통합의 깃발을 들다?

김 전 대통령이 막후에서 깃발을 들 경우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은 운신의 폭이 좁아진다. 마의 40% 지지율을 돌파한 한나라당의 기세 앞에서 민주세력 통합 주장이 필요성에서 절실성으로 전화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런 차에 김 전 대통령이 통합 논의의 물꼬를 트면 '전통적 지지층'의 압박이 거세질 것이다.

관건은 청와대다. <경향신문>이 전한 청와대의 분위기는 한마디로 '시큰둥'이다. 두 당의 합당을 "지역주의 정치로의 환원"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 뿐이겠는가. 통합이 이뤄지는 순간 노무현 대통령의 리더십은 약화되고 레임덕 현상이 펼쳐진다.

청와대의 반응이 이렇다면 열린우리당을 구성하고 있는 여러 계파 가운데 친노직계그룹, 그리고 청와대 정치행보와 보조를 맞춰온 개혁당파의 반발 가능성은 크다. 통합이 또 다른 분열을 낳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걸림돌은 이것만이 아니다. 한나라당이 가만있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김 전 대통령의 '역할'을 '구태 정치의 부활'로 몰아칠 여지는 충분히 있다. 지역분할구도에 입각한 3김의 거래정치가 부활했다고 몰아칠 수 있다. 정치에 개입하지 않는 퇴임 대통령들의 관례를 어겼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다.

한나라당의 이런 공세는 경우에 따라 더 날카로워질 수 있다. 민주당이 국민중심당과의 통합을 먼저 이뤄 정치적 지분을 키운 다음에 열린우리당과의 통합에 나설 경우 '3김정치의 부활'은 'DJP연합의 재현'으로 예각화할 수 있다. 국민중심당의 뒤에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가 있다는 보도가 적잖게 나온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론 변수도 예상할 수 있다. 한나라당이 '3김정치의 부활'을 여론화하면 할수록 어부지리를 얻는 쪽은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측이다. "남들 다 뛰는데 왜 내 발만 묶느냐"고 따지면 할 말이 없다.

그래서 한나라당 지도부가 통합 저지 공세를 더욱 집요하게 펼치겠지만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확실한 것은 단 하나, 정치판이 요동칠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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