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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의 소호(뉴욕 예술의 거리)로 불리는 '798'은 당대를 살아가는 베이징인들에게도 낯선 곳이다.

'798'는 1957년을 전후로 공장이 들어서기 시작한 베이징의 군수산업기지였다. 이곳에서 중국의 첫 원자탄 주요 부품이 탄생했고, 인공위성이 연구됐던 곳이다. 하지만 베이징의 정비와 더불어 군수공장은 밖으로 이전했다. 몇 곳은 연구소로 바뀌었지만 거대한 공장은 흉물처럼 방치됐다.

▲ 여전히 증기 뿜는 공장의 중간에 서 있는 전시장의 표지판
ⓒ 조창완
그런데 이곳에 2~3년 전부터 이상한 기운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앙상한 시멘트벽을 허물어 작업실을 꾸미고, 밖에는 자기만의 벽화나 조형물을 만들기 시작한 현대 예술가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군수공장 터에 둥지 튼 예술거리

상대적으로 싼 입주비와 공항에 가까운 위치여서 호응이 좋았다. 결국 몇 사람의 노력으로 이곳은 예술 특구로 일명 '798'로 불리는 따산즈(大山子) 예술지역이 된 것이다. 이곳에서 1957년 첫 테이프 커팅을 한 원로 뽀이보(薄一波)는 상상도 하지 못한 천지개벽일 것이다.

▲ 고대 미술품속에 배치한 아이와 이동전화
ⓒ 조창완
예술 거리로 변모했지만 여전히 과거의 공장들이 증기를 뿜으면서 힘차게 돌아가기도 한 특수한 곳이기도 하다. 입구에서는 녹색의 군인이 지키고, 더러는 삼엄한 경비가 있는 곳이기에 이곳에 생뚱맞음은 더욱 신비하다.

반면에 브리지를 한 젊은 예술가들이 조용히 바에서 술을 마시고, 분위기에 빠지는 이곳은 베이징의 예술 특구라고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미 이른 외국 여행자들은 이곳에서 베이징의 복잡한 예술적 변모를 읽어낸다.

▲ 비엔날레 포스터와 공장 노동자의 조화
ⓒ 조창완
소호를 모방한 현대 예술의 산물이라지만 근원적으로 그들이 쓰는 소재는 전 세대에 모두 걸쳐 있다. 둔황이나 인도의 소조에 아이와 이동전화, PDA 등을 결합한 예술품도 있다. 자전거를 소재로 한 유명한 사진가인 왕원란(王文瀾)의 사진전이 열리기도 한다.

▲ 위에는 마오 주석 만세만만만세라는 구호가 있고 아래는 동성애를 소재로한 전시물이 있다
ⓒ 조창완
또 가난했던 붉은 시절의 흔적들은 작품으로 뿐만 아니라 그 자리의 뼈대에까지 적혀 있다. 동성애를 소재로 한 예술 작품의 위에는 '위대한 마오 만세 만만세'라는 반동적인 문구가 그대로 남아 있다.

북한의 예술(?) 엿보기

그렇지 않아도 낯선 이곳에 10월 5일 좀 엉뚱한 작품들이 찾아왔다. '위기속의 재탄생'(絶處逢生; reborn in crisis)이라는 주제가 붙은 '조선당대예술전'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11월 5일까지 전시). 그다지 넓지 않은 전시장에 들어서자 너무나 생경한 모습이 들어온다. 예술 작품의 전시장으로 생각했는데 보이는 것은 사상 선전을 위한 홍보용 포스터들로 보이는 것들 뿐이다.

▲ 북한 당대 예술전의 전시된 유화. 한국 전쟁 당시 위기에 빠진 미군을 묘사했다
ⓒ 조창완
'사회주의에 대한 훼방은 허용될 수 없다'는 책자를 든 채 우리식 사회주의라는 붉은 깃발을 든 청년을 그린 포스터에서 '여성해방만세'라는 배경으로 그린 여성 등 모두가 선전용 포스터들이다. 감자나 곡식, 채소(남새) 생산을 증대시키자는 포스터 등이 대부분이다.

▲ 감자풍년을 이루자는 포스터 형식의 미술품
ⓒ 조창완
그나마 두 개의 유화가 한쪽에 있다. 하나는 북한으로 진격했다가 오도가도 못 하고 추위에 떠는 한국 전쟁 당시 미군을 그린 그림과 북한 해군을 그린 그림은 그나마 미술품이라고 인정할 만 하다.

의문이 들어 관계자에게 누가 주최한 전시냐고 물으니 그다지 나이가 들지 않은 한 남자가 나선다. 이번 행사를 만든 오양추안(歐陽泉 40)씨다. 20대 중반부터 북한을 드나들기 시작한 그에게 도대체 이게 예술인가를 묻자 그는 단호하게 예술이라고 말한다.

"우리 중국의 문화대혁명 시기에도 이런 흐름이 있었다. 그들은 포스터의 성격이지만 그들의 문화를 선보이는 것이다."

- 그래도 창작 방식이 저 유화(미군 그림 등) 정도는 돼야 그림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 북한에서 저런 그림은 일부다. 저기 위해 감자의 증산 등을 그린 그림은 북한의 현재 모습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 이게 당신이 보여줄 전부인가.
"이건 말 그대로 당대의 현대 미술 모습이다."

"개인적으로 1920년대 북한 작가들의 그림도 많이 소장하고 있다. 그때는 남북한의 구별이 없었다. 차츰 그때의 그림들도 전시할 생각이다."

▲ 북한 당대 예술전을 연 오양추안 씨와 포스터
ⓒ 조창완
사실 오씨가 계획한 이번 전시회는 다음을 위한 준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다지 낯설지 않아졌다. 1m 80은 돼 보이는 그는 자신의 전시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치렀던 문화대혁명(1966~1976)의 향수를 북한의 당대 예술가에서 찾으려는 것이 신비했다.

798에는 한원석 등 한국 작가들도 그 공간을 마련했다. 어찌 보면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것들이 중국에서는 이뤄지고 있다. 아직은 초기 단계지만 차츰 이곳에서 미술은 물론이고 사진, 음악, 영화 등을 만들어낼 것이다. 어찌 보면 그들은 후세에 원자폭탄이나 인공위성보다 예술가들의 창작력이 더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는 것 같다.

▲ 따산즈 예술지역 표지와 관광객들
ⓒ 조창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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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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