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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자리 폭언 사건' 보도 이후 처음으로 열린 26일 오전 법사위 국정감사에 참석해 앉아 있던 주성영 한나라당 의원이 전화를 받기위해 밖으로 나가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유난히 폭발사고가 잦은 대구. 술자리에서도 폭발이 일어난다. 폭탄주도 안 마셨고, 폭언도 안 했는데도 폭발이 일어났다니, 화학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그 자리에 있었던 당사자들의 말이 엇갈리니, 사건이 어떤 방식으로 흘러갈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고, 지금으로서는 이제까지 드러난 것만 가지고 사태를 판단할 수밖에 없다. 내가 보기에 여기에는 세 가지 문제가 서로 얽혀 있다.

첫째, 향응

첫번째 문제는 국감기간 중에 국회의원들이 피감기관으로부터 향응을 제공받았다는 것이다. 술값은 주성영 의원과 주호영 의원이 나눠 내기로 했다고 하나, 그것은 사건이 터진 이후의 사태수습책일 뿐, 원래는 동석했던 검사가 카드로 계산하려다가 술집에서 현금을 요구하는 바람에 외상이 된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향응'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여기에 대해서는 주성영 의원은 물론이고, 그 자리에 같이 있었던 여야 국회의원 모두에게 윤리적 책임이 돌아간다.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에서는 일단 당 차원에서 소속 의원들에게 징계를 내려야 하고, 나아가 국회는 윤리위원회를 열어 여야 가릴 것 없이 적절하지 못한 술자리를 가진 일곱명의 의원들에게 국회 차원의 징계를 내려야 한다.

둘째, 폭탄주

두번째 문제는 주성영 의원이 과연 폭탄주를 마셨느냐 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폭탄주 마시는 분들의 몰취향을 혐오하는 편이지만, 남이 술을 어떻게 마시느냐는 내가 왈가왈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주성영 의원의 경우는 다르다. 그는 이른바 '폭소클럽'에 가입했다. 한마디로 그는 앞으로 폭탄주를 안 마시겠다고 대국민 약속을 한 것이다.

가령 내가 폭탄주를 안 마시겠다고 선언하면, 그것은 나의 개인적 다짐의 표현일 뿐이다. 따라서 뉴스거리가 될 일도 없다. 반면 국회의원이 그런 선언을 하면, 그것은 이미 정치적으로 상징적 행동이 된다. 그래서 내 개인적 다짐과 달리, 그들의 다짐은 언론에 보도가 되는 것이고, 아울러 그 보도에 따른 이미지 상승의 정치적 이득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주성영 의원은 자신이 폭탄주를 마신 적이 없다고 발뺌을 한다. 맥주 잔 속의 양주잔을 빼고 마셨기 때문이란다. 주성영 의원의 말이 맞으려면, 그가 평소에 맥주잔 속에 든 양주잔까지 들이마시고, 뱃속에 들어간 그 양주잔이 고농도의 알콜로 변해야 한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한 마디로 "안전핀 빼고 던졌는데, 왜 수류탄이냐?"고 묻는 격이다.

세째, 욕설

세번째는 과연 주성영 의원이 폭언을 했는가 하는 것. 일단 주의원은 그저 "X팔"이라고 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X팔"은 욕이 아닌가? X8은 방정식 속의 8X와 같은 의미를 갖는 게 아니다. 상수는 앞에, 변수는 뒤에 써야 한다. 8X는 수학적 표현이나, X8은 분명히 욕설이다. 한 마디로 그 자리에서 그는 욕설을 한 바가 있다. 이 자체도 문제지만, 그가 한 욕이 어디 이것뿐인가?

그 경우 그 칵테일 바 여주인의 태도를 설명할 수가 없게 된다. 그는 "세상에 태어나서 그런 욕설은 처음 들었고 차마 말로 옮기지 못할 정도로 성적 모욕을 느꼈다, 주 의원이 퍼부은 욕설 때문에 어젯밤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을 지경이었다"고 말했다. "X팔" 한 마디에 이런 반응을 보이는가? 그 여주인이 욕설의 무균실에서 살았다고 가정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아주 오래 전에 이런 코미디가 있었다. 부부 사이인 두 남녀가 닭살 돋는 정담을 나누다가, 한쪽에서 "자기, 바보"라고 하는 거다. 순간 조명이 어두워지고, 무거운 음악이 흐르면서, 다른 한쪽이 "흑흑흑, 내가 바보라니…" 하면서 비장한 신파에 빠져든다. 술집 여주인이 정말로 "X팔"이란 한 마디에 모욕감을 느껴 잠도 제대로 못 잤다면, 그녀는 10년 전의 그 코미디 속의 닭살부부보다 더 우스운 사람이 될 것이다.

착각?

▲ 22일 밤 주성영 의원을 비롯해 동료의원과 대구지검 간부검사 등이 술을 마시고 주 의원이 여종업원에게 폭언을 퍼부은 것으로 알려진 대구 모호텔 지하 L칵테일바.
ⓒ 오마이뉴스 이승욱
주 의원만이 아니라 그의 말도 술 취한 모양이다. 자꾸 오락가락한다. 처음에 그는 "욕설이 오가는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한 마디로 그 술자리에 욕설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로 말을 바꾸었다. 성적 폭언은 존재했지만, 그것은 자신이 아니라 그 자리에 동석했던 검사 중의 하나가 했다는 것이다. 다시 묻자. 그 자리에서 성적 폭언이 오갔는가? 아니면 그런 일이 없었는가?

게다가 주성영 의원은 칵테일바 여주인이 그 검사를 자신으로 착각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 칵테일바 여주인은 마침 대구 산다. 제 지역 국회의원 얼굴 모르는 사람도 있는가? 게다가 하룻밤 술값이 140만원이 나오는 칵테일바가 세탁소 김씨 아저씨, 쌀집 박씨 아저씨 상대로 장사를 하겠는가? 검사니, 의원이니 하는 분들이 주 고객일 텐데, 술자리의 좌장 노릇하는 분의 얼굴을 착각했다는 게 말이 되는가?

음모?

주성영 의원은 이게 재보선을 겨냥한 친여시민단체의 음모라고 주장한다. 이 역시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다. 정말로 그 자리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런 주장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성적 폭언은 있었다고 자신도 인정하지 않는가? 다만 자신이 아니라 그 검사가 퍼부은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자신을 음해하려는 음모에 검사라는 사람도 가담했다는 얘기가 되는데, 이게 가당키나 한 얘긴가?

또 그 칵테일바의 여주인은 주성영 의원과 같은 당 소속인 주호영 의원과 평소 안면이 있는 관계에 있다고 한다. 이게 만약 시민단체의 음모라면, 그 음모에는 한나라당 주호영 의원의 지인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가담했다는 얘기가 되는데, 이게 말이 되는가? 시나리오를 쓰더라도 좀 말이 되게, 그럴 듯하게 써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황당한 각본, 과연 믿어줄 사람이 있겠는가?

그거 믿어줄 사람이 있다면 딱 한 사람, "술집 여주인의 주장에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고 말한 전여옥 대변인밖에 없다. 석연치 않은 부분은 주성영 의원의 주장에 있거늘, 외려 폭언을 당했다고 하소연한 술집 여주인의 말을 의심하는 거 - 이거 정상적인 두뇌구조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여성이여 테러리스트가 되라"고 선동하던 입으로 남성 테러리스트를 옹호하는 비정상적 두뇌니까 이런 생각도 할 수 있는 거다. 하지만 그런 이상두뇌가 어디 흔한가?

수정한 시나리오

주성영 의원이 엉망진창으로 망가뜨려놓은 시나리오. 최소한 말이 되게끔 다시 정리를 해보자. 사실 주성영 의원이 변명을 하느라 늘어놓은 말을 잘 들어보면, 안 봐도 비됴, 그가 지금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어떻게 움직이는지 동선이 그려진다. 그의 말에 입각하여 시나리오를 재구성해 보자. 나는 나의 것이 최소한 주성영 의원 자신이 제시한 말도 안되는 코미디 각본보다는 훨씬 개연성이 높다고 본다. 한 번 들어 보라.

사건이 터지자 주성영 의원은 제일 먼저 동료의원들의 입을 막기로 한다. 사실 그 자리에 있던 의원들, 여야를 가리지 않고 일단 피검기관의 향응을 받아챙기는 '동범'의 처지에 있지 않은가. 그 자리에 있었던 사고가 눈덩이처럼 커질수록, 받아야 할 비난의 몫도 커질 수밖에 없다. 이는 이들의 이해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따라서 그들은 주 의원의 요구대로 입을 닫아야 할 이유가 있는 셈이다.

두번째는 책임을 후배 검사에게 뒤집어씌우는 것. 그 자리에서 욕설이 없었다고 하면, 그 술집 여주인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게 된다. 그러니 성적 폭언이 있었음은 인정하되, 그 주인공을 슬쩍 바꿔놓는 것이다. 대신 그 검사가 누구인지 드러내지만 않으면 될 일이 아닌가. 검사의 입장에서 보아도 자신이 드러나지 않는 한 거룩한 희생양이 되어 함구를 하는 게 경력관리를 위해서도 유리하다.

셋째는 그 술집 여주인에게 압박을 가하는 것. 그녀는 주호영 의원과 지인관계에 있다고 하지 않은가. 게다가 어차피 그 장사, 거물들 상대로 하는 것인데, 이런 일 키워봤자 영업에 도움 될 일은 없다. 모욕은 모욕이고, 장사는 장사가 아닌가. 투철한 사명의식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대충 이쯤에서 입을 닫고 잠수를 탈 이유가 있는 셈이다. 게다가 다른 종업원들이야 주인의 길을 따를 수밖에 없지 않은가.

라쇼몽

폭언은 없었다던 주성영 의원. 이제 폭언을 한 것은 검사라고 말을 바꾸었다. 만약 검사가 폭언을 했다면, 마땅히 그 검사의 이름을 밝혀야 한다. 보도에 따르면 언론에 소개된 것은 빙산의 일각이라고 한다.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엄청난 폭언이 그 자리에서 행해졌다고 하는데, 이 가공할 성폭력의 사실을 인지했다면 당연히 고발을 해야 할 일이지, 의원의 한 사람으로서 그 범죄의 주인공을 왜 애써 감추어 두려고 하는가?

주성영 의원이 범인으로 지목한 검사. 거룩한 희생양으로 지내려다가 생각이 바뀐 모양이다. 상황이 이 지경으로 번진 마당에,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는 것은 시간문제. 더이상 주의원 선에서 진상을 덮어둘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다고 봤기 때문일까? 그 검사는 자신은 폭언을 하지 않았으며, 주성영 의원의 폭언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확인해줄 수 없다고 나섰다. 그렇다면 주성영 의원의 말은 뭐가 되고, 나아가 주성영이라는 인간은 뭐가 되는가?

주성영 의원이 자신의 억울함을 알아줄 증인으로 지목한 열린우리당 정성호 의원. 처음에 그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폭언 따위는 없었다고 밝힌 것으로 안다. 그러던 그도 슬며시 말을 바꾸었다. 그 누군가로부터 "그 자리에서 술자리 폭언이 있었다"고 들었다며 "(주 의원이) 그냥 술에 취해서 실수했다고 넘어가면 될 일을 왜 이렇게 키우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당사자들의 말이 묘하게 엇갈리는 일본 영화 <라쇼몽> 속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풀 것인가

일단 여성단체에서는 폭언을 가한 장본인으로 주성영 의원이 지목한 그 검사를 고발해야 한다. 모욕죄는 물론이고 성폭력에 해당하므로 경우에 따라서는 중형을 받을 수가 있는 사안이다. 경찰이나 검찰에 수사를 의뢰해야 한다. 마침 주성영 의원의 주장에 따르면 술집 여주인도 폭언을 한 게 그 검사라는 사실을 시인을 했다고 하니, 그 자리에서 누가 폭언을 했는지 드러내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한나라당 의원들은 입을 다물테고, 언론과 시민단체는 그 자리에 있었던 열린우리당 의원들을 압박해야 한다. 피감기관으로부터 향응을 받는 것도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제 몸 하나 보존하려고 국민의 눈을 속이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죄악이라는 것을 그들은 알아야 한다. 말은 '자성'을 한다고 하나, 뽀록나서 마지못해 하는 게 무슨 자성인가? 이들이 국민에 대한 신뢰보다 조폭의 의리를 앞세우는 것을 '자성'이라 부르는가? 그 자리에서 무슨 욕설이 퍼부어졌는지 낱낱이 다 드러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 제발 이런 인간들 좀 의원으로 뽑아주지 말자. 이런 사건의 원인은 지역대립구도 속에서 막대기만 꽂아놓으면 당선이 되는 정치문화에 있다. 도의원이나 시의원이라면 이런 사람 뽑은 피해를 자신들이 보게 되지만, 이런 짓 하는 분들을 뽑아서 국회로 보내면 그 피해는 전 국민이 입게 되기 때문이다.

도대체 우리가 무슨 죄를 졌기에 이런 피해를 입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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