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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 좀 굵어졌다고 유세 떠냐, 아들?
ⓒ 이동환
참 사는 게 퍽퍽하다. 백 년도 못 사는 인생, 생각할 게 왜 이리 많으며 깨달아야 할 일이 무에 그리 많다는 말인가.

“당신 학원 같은 층, ‘○○어학당’에 잉걸이 등록했어요.”
“그거 영어, 꼭 그렇게까지 원어민강사 어쩌고, 쫓아다니며 가르쳐야 하나?”

“당신, 모르는 소리 말아요. 요즘 집집마다 얼마나 난리인데.”
“당신이 영어선생이잖아.”

“그 정도로는 어림없어요. 그냥 나 하자는 대로 내버려 둬요. 알아서 할 테니까.”


그래, 그러려니 했다. 영 마뜩찮지만 시대가 그런 걸, 영어선생으로 이 지역에서 나름대로 자리 잡은 아내가 그러는 걸 말릴 재간이 없었다. 그러나 서운하게도 화요일과 목요일 저녁에 영어공부 한답시고 왔다 가는 아들 녀석을 볼 일이 전혀 없었다. 아빠 이름 떡하니 건 논술교실이 코앞이니 어학당 끝나고 잠깐 들렀다 가도 되련만 영 코빼기도 볼 수가 없었다.

잉걸이 때문에 잉걸아빠, 잠깐 삐친 사연

“끝나면 바로 내려가야 되니까 아빠 교실에 들를 시간이 없어요. 늦으면 학원차 못 타요.”

그래, 그러려니 했다. 그래도 자식새끼가 같은 층에서 공부한다는데 궁금했다. 어느 날, 또래 녀석들이 잔뜩 쏟아져 나와 복도에서 떠들기에 쉬는 시간이구나, 직감한 나는 잉걸이 녀석 학원에 잠깐 들러봤다. 쉬는 시간이라고 다른 녀석들 모두 복도로 나와 떠드는 그 시간, 잉걸이는 자기 교실 앉은 자리에서 꼼짝도 않은 채 배운 걸 되뇌고 있었다. 대견했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는데 오죽하랴.

“잉걸! 아빠다.”
“어? 아…, 빠.”


녀석 표정이 어째 시원찮았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썩 반가운 눈치가 아니었다. 그래도 그러려니 했다. 등 두드려 주고 나오는 꼭뒤가 쭈뼛했지만 그러려니 했다. 언젠가, 제 친구 아빠 중에 “아빠 연세가 제일 많아요” 하던 말이 울대뼈에 걸렸지만 까짓, 그러려니 했다.

며칠이 지났고 어느 날 저녁 밥 먹으러 내려갔다가 시계를 보니, 마침 아들 녀석 학원 끝날 시각이었다.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아이들 저만치 잉걸이 얼굴이 보였다. 마누라 몰래 만나는 여자(오해 마시라) 귀밑털이 코앞이라도 그보다 황홀하지 않으리.

어찌나 흥나게 좋던지 언저리가 떠나갈 정도로(잉걸아빠 목소리가 좀 커야지) “이잉걸!”하고 외쳐댔다. 눈이 마주치자 픽, 웃는데 어째 어색했다. 나는 억지로 녀석을 끌어안고 등을 토닥이는데 녀석 눈은 친구들을 살피고 있었다. 아차, 싶었지만 늦었다.

굼뜬 늙은이 손가락 틈으로 미꾸라지 빠지듯 잉걸이는 뒤도 안 돌아보고 학원버스에 올라탔다. 녀석 뒷모습을 맥없이 바라보며 나는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학원버스 못 타면 아빠가 택시 태워 보낼 것이고, 오랜만에 평촌에서 시간 맞았으니 아빠랑 맛있는 왕돈가스로 한 끼 오붓하게 먹을 수도 있으련만, 정 거시기하면 엄마 불러 낡은 자가용일망정 편안하게 집에 갈 수 있을 텐데, 아빠 나이 뭐가 많아 창피하다고 남녀사이 내외하더냐?

▲ 한 잔 걸친 새벽, 아들 녀석 자는 얼굴을 내려다보니 마냥 흐뭇하다. 아버지도 나처럼 아들 녀석 하나, 자는 모습만 봐도 함함하셨겠지. 그저 귀엽고 미쁘게만 보이셨겠지.
ⓒ 이동환
내리사랑 만분의 일이라도

1974년 2월. 답십리국민(초등)학교 졸업식을 앞둔 어느 날이었다. 나보다 아버지가 더 들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1919년생 실향민으로서 이미 지천명을 넘겨 육순을 바라보는 연세에, 마지막 하나 살아남은 자식 국민학교 졸업식을 앞뒀으니 기쁘기도 하셨을 터. 외출하려는 아버지 구두를 꺼내 열심히 닦던 내 등을 쓸어주시던 아버지.

“우리 아들 동환! 오늘 아바이 시내 가는데 졸업선물 미리 뭐루다 해주므 좋겠음? 말해보기요. 뭐든지 다!”

살강거리는 어린 아들이 마냥 귀여우셨던지 아버지는 연신 웃음을 보이셨다. 거기까지는 참 좋았다. 아버지 앞에 구두 대령이요, 품에 안겨 귀여운 짓이요, 잘 다녀오시라고 곰살맞은 인사요, 부자사이 톡톡한 정이 넘쳐나는 아침이었다.

“동환이 졸업식 때 입으려면 암만해도 오늘 이 아바이, 코트 하나 새걸루다 맞춰야겠음매. 이참에 염색도 하고 좀 젊어 보이는 걸루 쫙 빼야겠음둥.”
“졸업식에 오시려고요? 엄마만 오시면…, 안 돼요?”


아, 철없는 이동환. 대체 무슨 소리를 지껄였단 말인가.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저절로 튀어나온 말이었다. 내 입에서 그런 말이 불거지리라고는 나 자신도 몰랐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은연 중 내면에 깔려있던 아버지에 대한 부끄러움, 친구들이 할아버지 아니냐고 놀리던 말에 주눅 들었던 철없는 심경 드러내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대문을 막 밀던 아버지가 주춤하더니 그 자리에 멈추셨다. 한참을 그러고 계셨던 듯하다. 순간 아차 싶었지만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그때라도 왜, “아버지 죄송해요” 소리가 안 나왔는지 모르겠다. 뒤돌아보실 만도 한데 아버지는 그냥 아주 천천히, 무거운 걸음으로 대문을 밀치고 나가셨다. 나는 죄스러운 마음에 살금살금 뒤따랐다.

토끼 새끼 초승달 언저리에서 던진 절굿공이에 얻어맞았대도 그리 발걸음이 휘청거리지는 않으셨을 터. 세상 모든 짐을 다 진 듯 늘어진 어깨며 탄력 잃은 백발, 그리고 비치적대는 걸음걸이까지, 기습당한 노병의 뒷모습으로 영락없었다. 그때라도 달려가서 아버지를 뒤에서 그러안아야 했다. 아니, 길을 막고 아버지 앞에 무릎 꿇어야 했다.

그날 밤 늦게 아버지는 돌아오셨다. 약주 몇 잔으로 적당하게 취하신 듯했다. 나는 신발 걸칠 짬도 없이 바쁘게 뛰어나가 아버지 품에 말없이 달려들었다. 양손에 잔뜩 선물보따리를 들고 계시던 아버지는 마당에 보따리가 풀어져 널브러지든지 말든지, 어린 아들 작은 몸뚱이가 으스러져라 끌어안아 주셨다. 오랜 시간 부자는 그렇게 마당에서 부둥킨 채 서 있었다. 울컥하셨는지 웅얼거리는 아버지 목소리가 가늘게 떨고 있었다.

“이 아바인 거저 동환이 하나 보고 사니끼니, 우리 아들 점지해주신 삼신할마이 거저 감사할 뿐임매.”

선친 생각에 으슥한 곳 찾아 한소끔 되게 울다

무심한 게 어디 세월뿐이랴. 사랑 또한 참 야속하다. 자식을 키워봐야 부모님 그윽한 사랑, 그 아픈 속을 눈곱만큼 알 수 있으니 말이다.

“잉걸이한테 슬쩍 물어봤는데 꼭 그런 건 아니래요. 당신이 좀 오버했나봐.”
“…….”
“당신도 아버지처럼 그냥, 잉걸이 한 번 꼭 끌어안아줘요. 대화도 좀 하고.”
“아버지가…, 갑자기 보고 싶다.”
“당신…, 우는 거야 지금?”
“아니, 울긴 누가 울어?”


황급히 뒤란으로 도망간다. 새벽 찬 바람에 취기가 싹 가신다. 허파 속이 찬 공기로 가득 부풀며 울컥거린다. 나도 모르게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진다. 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다. 내방에서 공부하고 있으면 모르는 새 다가와 꼭뒤를 어루만져 주시던 그 큰 손. 평생 거친 노동으로 굳은살 박인 투박한 손바닥으로 툭툭, 등을 토닥여주시던 아버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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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커서 '얼큰샘'으로 통하는 이동환은 논술강사로, 현재 안양시 평촌 <씨알논술학당> 대표강사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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