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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등산 중봉에 핀 억새꽃입니다. 멀리 천왕봉과 서석대의 모습이 보입니다.
ⓒ 서종규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무등산 장불재에서 무등산장으로 내려가는 길목을 군인들이 통제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군부대의 막사가 중봉을 중심으로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장불재에서 내려가려던 사람들은 군막사의 초병에게 제지당하고 다시 장불재로 돌아갔고 무등산장에서 올라온 사람들은 올라온 길을 다시 내려가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1990년대부터 학계 및 시민단체, 환경단체 등이 중심이 돼 무등산 중봉을 시민의 품으로 돌려보내자는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이후 1998년 무등산 중봉에 주둔하고 있던 군대가 철수하고 식생 복원작업을 벌여 1999년부터 통행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비로소 무등산 중봉이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군부대의 철거와 함께 지형을 바로 세워 흙을 북돋우고 풀씨를 뿌리고 비탈에 구상나무를 심었습니다. 그리고 1965년부터 35년 간 군부대의 주둔으로 파괴된 무등산 중봉의 억새가 과연 되살아날 수 있을까하고 숨죽여 지켜 보았습니다.

산을 좋아하는 친구들 다섯이 무등의 억새밭을 향하여 지난 19일 오전 10시 30분에 지산유원지를 출발하였습니다. 깨재를 지나 바람재-토끼봉-동화사터에 올라 점심을 먹었습니다. 동화사터에 오르는 길목에 소나기가 쏟아졌습니다. 모두 쏟아지는 비를 맞아가며 추석 음식을 내 놓고 서로 자랑하였습니다.

▲ 무등산 중봉 군부대를 철거한 뒤 식생이 복원된 곳에 핀 억새꽃들
ⓒ 서종규
동화사터에서 능선을 타고 중봉에 오르는 길목엔 곳곳에 억새들이 피어 흔들거리고 있었습니다. 방송국 안테나가 있는 곳엔 더 많은 억새들이 물결치고 있어서 우리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였습니다. 그 동안 수없이 무등산을 올랐지만 이렇게 가슴 설레는 것은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작년에 보았던 억새의 모습이 조금은 아쉬웠는데 금년의 모습은 어떨까? 과연 얼마나 많은 억새들이 피어났을까? 지난 봄이나 여름에 수없이 중봉을 지나치면서 가을을 기대했던 보람이 이제야 현실로 이루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발길을 재촉했습니다. 다행히 능선 주변에 흔들거리는 억새의 향연이 중봉의 식생 복원지까지 이어질 것 같은 예감에 가슴이 더욱 두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 무등산 중봉 가는 길에 억새꽃이 만발해 있습니다.
ⓒ 서종규
그런데 우리 일행이 중봉으로 가는 길에 들어서자 곳곳에 억새꽃들이 흔들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군부대가 철수한 자리에 돋아난 억새들의 물결이 무등산 전체를 뒤덮고 있었습니다. 청년 시절에 무등산 중머리재에서 장불재로 올라가며 본 중봉의 비탈길엔 하얗게 흔들리는 억새가 있었습니다. 그 억새의 손짓을 보고는 한 없이 그 위에서 뒹굴고 싶었지요.

▲ 무등산 중봉 군부대를 철거한 뒤 식생이 복원된 곳에 핀 억새꽃들
ⓒ 서종규
누구의 손이라도 잡고 중봉에서부터 아래까지 마냥 굴러 내려가 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습니다. 어릴 적 엄마의 이불 위에서 뒹굴고 놀던 기억이 새록새록 솟아났습니다. 무등은 어머니의 이불이 되었습니다. 포근한 이불이 되었습니다. 그 위에서 뒹굴며 뛰놀던 소년의 꿈이 중봉에 되살아난 억새꽃의 물결 위에 영글어 있었습니다.

▲ 무등산 중봉 군부대를 철거한 뒤 식생이 복원된 곳에 핀 억새꽃들
ⓒ 서종규

▲ 무등산 중봉 군부대를 철거한 뒤 식생이 복원된 곳에 핀 억새꽃들
ⓒ 서종규
식생 복원 후 5년밖에 되지 않은 중봉이었지만 자연은 우리를 속이지 않았습니다. 군부대 막사를 철거하자마자 자라나기 시작한 억새들은 출렁출렁 물결치고 있었습니다. 아직은 하얗게 활짝 피어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억새꽃이 모두 고개를 내밀고 힘차게 흔들거리고 있었습니다. 중봉의 비탈에 심어진 구상나무도 더욱 푸르게 빛을 내고 있었습니다.

▲ 억새꽃과 바위틈에 핀 구절초
ⓒ 서종규
억새 사이로 보랏빛 얼굴을 내민 쑥부쟁이가 반가운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기린초는 여름을 보내기 싫었는지 아직도 더욱 노란빛을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하얀 구절초는 바위틈에서 탐스럽게 피어나 가을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중봉의 부활과 함께 무등산의 억새가 다시 활기를 찾고 있었습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무등산의 억새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그만큼 무등산의 억새가 줄어든 것이었겠지요. 그래서 청년 시절에 무등에 온통 하얗게 물결치던 억새의 향연이 늘 그리움의 대상이었습니다.

▲ 입석대에서 장불재 내려가는 길의 억새꽃
ⓒ 서종규
서석대를 거쳐 입석대로 내려갔습니다. 입석대에서 내려다 본 장불재에 억새꽃들이 물결치고 있었습니다. 장불재에서 안양산까지의 백마능선에도 억새들이 출렁거리고 있었습니다. 청년 시절에 보았던 그 많은 억새들이 다시 살아났나 봅니다. 이제 무등산은 다시 억새꽃이 물결치는 산으로 부활했습니다. 과거에 보았던 그 많던 억새꽃의 물결이 되살아났습니다. 중봉의 복원으로 되살아난 억새의 부활이 무등산 전체로 되살아난 것입니다.

▲ 무등산 장불재에 핀 억새꽃
ⓒ 서종규
우리들은 장불재 억새꽃 사이로 신기한 장면을 보았습니다. 하늘에 꽉 찬 구름 사이로 석양이 비췄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광주에만 햇빛이 쏟아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건물들은 모두 번쩍번쩍 빛을 발하였고, 월드컵 경기장의 천장은 무지개 모양의 띠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아마 비 온 뒤 햇빛을 받으니 반사되어 번쩍거렸던 것 같습니다.

▲ 무등산 장불재에 핀 억새꽃
ⓒ 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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