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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는 지난 97년 대선 당시 불법 정치자금 제공과 관련된 대화내용을 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의 전신)가 불법으로 도청한 녹음테이프에 등장하는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현 주미대사)에 대해 이렇다할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21일 <조선일보>가 김영삼 정부 시절 안기부의 현장도청 전담팀인 ‘미림’팀의 존재와 함께 안기부 도청테이프 내용을 공개한 데 이어, 이날 밤 9시 뉴스에서도 KBS와 MBC가 그 내용을 상세히 보도했지만 청와대는 이에 대한 공식 반응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은 어제까지 안기부 도청 건에 대해 “지난 정부 일이라서 청와대 현안점검회의에서 논의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청와대 관계자들은 어제 저녁에도 녹음테이프 대화내용의 공개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사태추이를 민감하게 지켜보는 표정이었다.

또 노무현 대통령도 어제 저녁에 텔리비전 방송 채널을 번갈아 보며 보도 내용에 관심을 보였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방송을 보고 이렇다할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인호 부대변인은 22일 청와대 반응을 묻자 “오늘 아침 현안점검회의에서도 국정원의 자체 조사 내용을 지켜본 뒤에 청와대 입장을 밝히게 될 것”이라며 “이 사건에 대한 언론 보도 내용을 보고한 것 외에 참석자들의 특별한 반응은 없었다”고 밝혔다.

이번 ‘안기부 불법도청 X-파일’ 사건이 지난 정부에서 이뤄진 일임에도 청와대가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이유는 지난해 12월 참여정부가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을 미합중국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전권 특명대사(주미대사)로 임용해 국민을 깜짝 놀라게 한 ‘빅카드’가 이번 사건으로 ‘진퇴양난’에 처했기 때문이다.

우선 청와대가 홍 회장을 주미대사로 임용하는 인사검증과정에서 그가 97년 불법 대선자금 전달과정에 개입한 흔적을 인지하고 있었다면 정부의 도덕성 시비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또 그런 사실을 몰랐다면 청와대의 인사검증 시스템의 부실함이 다시 한번 도마 위에 오를 수밖에 없다.

그 때문인지 청와대의 반응은 대체로 ‘후자’ 쪽이다. 오늘 아침 현안점검회의에 참석한 최인호 부대변인도 “청와대가 (불법 대선자금 제공 의혹을) 알면서도 주미대사에 임용했겠냐”고 반문했다. 검증과정에서 의혹을 인지했다면 당연히 임명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문제의 ‘미림’팀이 98년 2월 김대중 정부가 공식 출범하기 직전에 해체된 점을 감안하면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는 홍 회장이 불법 대선자금 전달에 개입한 의혹을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청와대는 일단 국정원의 자체 조사 결과를 지켜본 뒤에 인사검증 문제에 대해 입장을 표명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녹음테이프 대화내용이 육성 그대로 공개될 경우 홍석현 주미대사가 먼저 거취 문제를 포함한 입장을 표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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