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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진행자 진중권씨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야당의 대통령 공격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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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불쌍하게 생각하나봐요. '가끔 챙겨드려야 하는데...' 라고 말하는 분도 있고. 한국에서 프리랜서로 사는 게 쉽지는 않지만 먹고 사는 데 지장은 없어요."

지난 14일 오후 서울 신촌의 한 카페에서 마주앉은 진중권씨의 표정은 담담했다. 중앙대 독문과 겸임교수, 문화평론가, 자유기고가, 진보논객... 수많은 수식어가 붙는 그에게 지난 5월부터 '방송인'이라는 타이틀이 하나 더 생겼다.

진씨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갖가지 정치ㆍ사회 현안들에 비판의 칼날을 전방위로 휘둘러왔다. 그런 그가 지난 5월 라디오프로그램 < SBS 전망대>의 마이크를 잡았을 때 방송에서 그의 빛깔이 드러날 지 의구심을 보이는 사람도 많았다.

- 방송 들어본 뒤 글에 비해 말은 좀 '무르다'는 평이 많은 것 같아요.
"다들 그렇게 얘기해요. 나를 굉장히 무서운 사람으로 생각하던 이들도 막상 만나서는 '애걔!' 해요. 물론, 방송이라 함부로 말하지 못하는 측면도 있고... 처음에는 많이 긴장했는데, 이젠 여유 생겨서 방송 중에 하품도 하고 다리도 떨어요."

방송은 나긋나긋하게 하되 '진중권식 글쓰기'를 방송에 접목시키려는 시도는 조금씩 반응을 얻고 있다. 전여옥 한나라당 대변인을 겨냥한 클로징멘트 2건은 인터넷에서도 적잖은 논란을 일으켰다.

"공당의 대변인 자리에는 정상적인 사람을 앉혔으면 좋겠습니다. '대변인' 됐다고 입으로 '대변' 보는 해괴한 분이 아니라..." (6월4일)

"미용의 기본은 메이크업이 아니라 구취제거입니다." (7월12일)

한나라당 지도부 회의에서 한때 '진중권 프로 보이콧' 논의

우리 사회에서 방송이 차지하는 위상을 생각하면 그의 발언은 '방송의 중립성' 논란을 일으킬 법 한데 민영방송에서 일어난 일이어서인지 '조용히' 넘어갔다. 그러나 한나라당 지도부의 비공개 회의에서 "소속 의원들을 진중권 프로그램에 출연시켜서는 안 되겠다"는 얘기가 한때 나올 정도였다니 밖에서 보는 것과 속사정은 또 다른 모양이다.

"홍준표 의원에게 출연 섭외를 하는데 홍 의원이 반(半)농담으로 '어떻게 대변인에게 입으로 대변 보냐는 얘기를 할 수 있어? 우린 안 나가기로 했어'라고 하더군요. 지난 주에 출연한 정문헌 의원도 일본 출장에서 바로 돌아온 길이라 그런 지시가 내려온 줄 모르고 (방송에) 나왔다더군요."

"노무현 대통령을 지원하기 위해 야당 대변인을 비판한 게 아니냐?"는 시각은 그를 또 다른 각도의 논란으로 밀어넣었다. 노 대통령이 이라크 파병을 결정했을 때 '노무현씨는 학살 도우미'라고 온라인에서 맹공격했던 진중권답지 않다는 비판이었다.

"야당의 대통령 공격은 잘하는 것이지만 문제는 방식이죠. 처음에는 노 대통령의 학벌, 그 다음에는 '가지지 못한 자'라고 비판하더군요. 전 대변인이 노 대통령에게 대단한 열등의식, 모종의 컴플렉스가 있어요. 오로지 그를 움직이는 것은 고등학교밖에 못 나온 사람이 대통령까지 됐다는 인식이에요.

예컨대 제가 독일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에 대해 열등의식이 있다고 얘기하면 웃겠죠? 비교할 대상이 안 되는 사람에게 열등의식이 있다고 야당 대변인이 얘기하고 다니는 것이 자기 과대망상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참으로 묘해요. 전여옥씨 머리 10개를 직렬접속해도 노 대통령을 당하지 못하는데..."

ⓒ 오마이뉴스 남소연
- 인신공격과 풍자의 경계가 모호한 것 같아요. 전 대변인은 그걸 풍자로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약자가 강자를 공격하고 사회적 상식에서 벗어나는 말을 한 사람을 아프게 찌르는 게 풍자죠. 그런데 전 대변인은 강자의 입장에서 배우지 못한 사람, 못 가진 사람들을 공격했으니 풍자가 아니죠. 전 대변인은 '강남 아줌마' 정서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너는 어렸을 때 못 살았으니 콤플렉스 있을 거야, 대학교 못 나왔으니 콤플렉스 있을 거야...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하니 망언이 되는 거죠. 전여옥의 어법은 보수정당의 대변인으로서 어울리지 않는다고 봅니다."

그는 진보성향의 논객이지만 "한나라당에도 괜찮은 의원들이 많다"고 호평했다.

"정치인들도 실제로 만나보면 너무나 정상적인 사람들이예요. 때로는 친해지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이를테면, 강재섭 원내대표의 언어구사는 비유나 어법 등에서 보수주의자의 여유와 풍류가 있더군요. 사무총장을 지낸 김형오 의원은 굉장한 엘리트이면서 농담도 던지는 등 깔끔해요. 홍준표 의원은 열정적이고 소탈하며 재미있고, 원희룡 의원도 개인적으로 좋아합니다."

"개혁 드라이브 안 거니 지지층 빠지고 집권당 자중지란"

그는 "정치인들을 공격한다고 해도 공적인 언행이 문제가 되는 것이지, 그들의 개성이나 인격을 문제 삼는 건 아니지 않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에 대해서는 실망스럽다는 표정이다.

"이기든 지든 개혁에 승부를 걸고 싸움을 해보라는 말입니다. 평소에 국보법, 사학법, 비정규직법 등에서 개혁 드라이브를 걸어야 하는데, 선거운동은 좌익으로 하고 통치는 우익으로 한단 말이에요. 그러다보니 지지층이 떨어져나가고 집권당은 자중지란에 빠지고 대통령이 이벤트를 터뜨려서 레임덕을 돌파하려고 하죠."

그렇다고 해서 민주노동당을 '운동권 동창회'라고 폄하한 노회찬 의원에 맞장구치는 그를 '정통 진보주의자'로 규정하기도 쉽지 않다. 진씨는 2002년 대선 직전에 민노당을 탈당했다.

그는 "돈 없는 당이 할 수 있는 게 네트워크를 만드는 건데, 인터넷 마인드가 없다. 당비를 내는 시민들이 정파의 들러리를 서는 상황에서 외연이 확대될 수 없다"고 민노당의 현주소에 낙담했다.

- 노 대통령을 공격하다가도 "대통령의 교육 철학은 대체적으로 옳다"고 말하고, 민노당을 비난하면서도 "선거 때가 되면 할 수 있는 만큼 돕겠다"고 했어요. 도대체 '진중권식 진보'의 기준이 뭡니까?
"나에 대해 어디로 튈 줄 모르는 럭비공이라는 얘기가 많지만, 나는 나름대로의 원칙이 있어요. 나는 진보가 좋고 보수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시민사회의 이익에 부합되는 관점이냐가 중요하죠. 그런데 아무리 옳은 지적이라도 여야 대립구도 속에 들어가면 옳다 그르다가 아니라 누구 편을 들어주냐가 문제가 돼요."

전 대변인에 대한 비난 때문에 세인들의 관심을 살짝 비껴갔지만 진씨가 12일 방송에서 노 대통령의 '서울대 콤플렉스'를 거론한 <중앙일보>, <문화일보> 기자를 실명 비판한 것도 언론계에서는 적잖은 관심을 끌었다. 4년 전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앞으로는 매체가 아닌 기자들의 이름을 불러줘야 한다. 기자 평가제를 도입해서 개개 기자들에게 창피한 줄 알게 해야 한다"고 말한 대목이 생각났다.

"대통령을 비판한다는 핑계로 기자가 가지지 못한 사람, 배우지 못한 사람을 공격했다는 점에서 나는 그것을 굉장히 중대한 사안이라고 봤어요. 서구 같았으면 이런 발언 하는 사람은 사회적으로 매장당하죠. 그런데 이런 걸 은근히 즐기는 사람들의 이름은 언급해야 해요. 기자들도 앞으로 실명 비판을 원하지 않으면 가명으로 기사를 쓰란 말이죠."

- 방송도 편파적이고 당파적이라는 비판이 있는데 본인이 진행하는 방송은 어떤가요?
"수많은 대중들을 상대하는 방송은 이런 저런 측면을 다 고려하기 때문에 당파적이기 어렵죠. 그런데 신문에 나오는 뉴스를 방송이 소개해도 '정권의 시녀' 어쩌구 하는 말이 당장 나와요. 그러나 방송이 어느 정당을 편들어준다고 보지는 않아요."

"유시민 의원, 방송에 한번 나왔으면 좋겠다"

두 달 남짓 기간동안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과 방송에서 얘기를 나눴지만 섭외가 어려워서 아직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황우석 서울대 교수와 유시민 열린우리당 의원도 여기에 포함된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 유시민과 진중권이 만나면 재미있을 것 같은데...
"그러게 말이예요. 방송에 나오면 아무래도 자기 당에 안 좋은 얘기도 해야하는 부담도 있겠지만, 한번 나왔으면 좋겠어요.

언젠가 '나는 진중권을 씹은 적이 없는데, 그 사람은 나를 신나게 씹는다'고 말했다는데, 말도 안되는 얘기죠. 선수가 반칙할 때 심판이 호루라기를 불 수 있어도 선수가 심판에게 뭐라 할 수 없는 거예요. 유 의원이 정치인이 된 후에도 아직도 논객인 것으로 착각하는 게 아닌지."

진씨 본인은 글쓰고 방송진행하는 '심판'은 봐도 절대로 '선수'로 뛸 생각은 없는 듯 했다.

"정치할 거냐는 질문 들을 때마다 짜증나 죽겠어요. 내게 정치인은 맨 밑바닥 서열로, 매력 있는 직업이 아니거든요. 어떤 이에게는 생산적인 직업일지 몰라도 내 개성과 능력에는 맞지 않아요."

- 방송하다가 정치하는 분도 있고, 정치하다가 어느 순간 방송하는 분도 있다.
"그건 자기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없는 거죠. 나는 미학 작업에 자부심이 있거든요."

진씨는 나중에 방송에 매력을 잃든 외압이 불어닥치든 일단 마음 편히 방송을 계속하겠다는 생각이다. <손석희의 시선집중>이라는 '절대강자'가 버티고 있는 라디오 시사프로그램들의 경쟁구도에서 그는 "오르면 올랐지, 더 떨어질 게 없다"는 방송사 제작진의 격려(?)를 금과옥조로 여기는 듯 했다.

그의 새로운 경험이 '하루 한 시간이라도 하고픈 얘기를 마음껏 할 수 있는' 미래의 진보매체를 운영하는 데 자양분이 될 지는 좀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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