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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병춘
7월 5일 오후 6시 대전시교육청 대강당. 전교조 대전지부가 주관한 직무연수에 대전지역 교사 300여명이 참석, '한국 근현대사에 있어서 종교들의 왜곡과 굴절 문제'를 논한 박노자 교수의 강연에 열중했다.

이 날 강의에 나선 박노자 교수는 "지금부터 약 14년 전인 1991년에 한국에 입국, 고려대학교에 다닐 때부터 '한국에는 왜 그렇게 십자가가 많을까?, 그렇다면 한국의 기독교란 무엇일까?' 심각한 의문에 빠졌다"며, "그때부터 한국의 종교에 관해 문제의식을 갖기 시작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박 교수는 "노르웨이에 5년 동안 살면서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며 "서구에 비해 강력한 한국인의 종교적 심성에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한국 종교의 문제점은?

"신앙이 개별화되고 혼합화되는 경향 속에서 성경과 불경 가운데 좋은 것을 취하는 것이 종교라는 신념을 갖고 있다"는 박 교수는 조선 전기, 후기를 아우르는 한국인의 종교에 관해 심도 있는 발언을 이어갔다.

특히 나이 드신 분들에게 '어떻게 교회에 오게 되었는가?' 물었을 때,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하는 기독교를 사회 정의가 강처럼 흘러넘치는 종교라기보다는 선진국에 대한 동경심에서 출발한 것이라는 느낌을 가졌고, 종교의 매력은 신앙 자체가 아니라 선진국의 힘에 의존하려는 듯한 충격적인 부분이 있었다"고 말을 이었다.

결국 한국 사람은 종교를 믿으며 개개인이 무엇을 얻고자 하고, 축복 받는 삶을 추구하고, 남부럽지 않게 부자로 사는 것을 갈망하고, 물질적인 풍요와 정신적인 안정을 누리고 싶은 욕망이 종교로 이어진 것으로 박 교수는 보았다.

특히 S교회에서 설교를 들었을 때, "돈 많이 벌고, 부자 되고, 강력한 사람이 되는 것을 원하고, 개인이 얻고자 하는 것도 하나님에 의해서 선택받은 힘을 구하고, 결국 부유하고 안락한 생활을 강조하는 것을 보며, 어디까지가 자본주의이고 교회인지 불분명했다"고 술회했다.

이어 박 교수는 "힘을 얻기 위해서 종교 생활을 하는 것은 비단 기독교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불교에도 존재한다"고 말하고, 그 단적인 사례로서 "자녀의 대학입학을 위해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믿어지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종교가 마치 이 사회를 지배하는 자본주의형 인간이 되는 것을 승리자처럼 인식하고, 약육강식 원리를 적용하여 한국 자본주의의 통과의례가 되고 인간성을 파괴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박 교수는 "불교는 철저하게 과학적이고 합리적 가르침과 인과응보가 기본인데, 무엇을 위해 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불교사찰이 기도의 전설을 만들고 돈벌이를 한다는 것은 원시적인 방법으로 불교 사찰이라는 곳에서 개인이 자본주의적 힘을 가지려 한다는 것은 거의 충격적이었다"고 술회했다.

박 교수는 한국 교회 첨탑의 높이에 놀랐고, '아시아에서 가장 큰 무엇'을 추구하는 등 사찰이나 교회가 대형화하는 것도 의아스러웠으며, 교회를 보아도 중압감을 주는 듯한 규모와 십자가 등을 보며 "한국 사회에서 종교의 기본은 힘으로 죽고 사는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 담론이 종교에 접목돼 변질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박 교수는 "기독교가 세계 체제에 대한 지배 이데올로기, 힘의 상징 미국과 동일시되고, 미국의 입장이 기독교에 의해 합리화되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박 교수는 70년대 민중신학을 높이 평가했는데, "'낮은 데로 임하소서'를 표방한 민중신학은 미국의 종교, 힘센 나라의 종교, 우등 나라 우등 종교로부터 낮은 데로 임하며 고생하는 민중의 모습을 추구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민중신학의 정신이 대형교회에서 상당한 배척을 받고 있지만 기독교를 좀 다르게 만들 수 있다"고 내다봤다.

▲ 강연을 마치고 독자와의 만남
ⓒ 박병춘

박노자 교수가 말하는 교회와 사찰의 진정한 역할

▲ 박노자 교수
ⓒ박병춘 기자
"교회는 강자가 아닌 약자를 위한 교회로 거듭나야 한다. 획일적인 힘의 세계나 위계질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교회의 민주적인 운영도 매우 중요하다. 교회가 한 목사의 소유물처럼 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아무리 교회가 소유물이라 하더라도 교인들의 공동체에 의해서 민주적 합리적으로 투명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교회는 교회 다니는 모든 사람의 교회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사찰도 마찬가지이다. 사찰의 주지는 민주적으로 선임되어야 한다. 사찰 운영이 기업처럼 변질되고, 사찰 싸움은 일제의 잔재라고도 할 수 있다. 주지와 권력자의 유착은 일제로부터 고스란히 전승된 것이다. 민중적 민주적인 운영이 필요하다.

한국 종교가 발전하려면 왜곡과 굴절을 막는 종교 공동체로 나아가는 길이 필요하다. 내가 아는 미얀마에 사는 승려가 대형차를 몰고 다니는 한국 승려를 보고 크게 놀라는 모습을 보았다. 스님은 절대 돈을 만질 수 없다. 스님은 어디까지나 수행에 전념해야 한다. 사회의 목탁이 되어야 한다.

종교의 왜곡이나 변질을 말할 때 종교인의 기초 생활부터 반성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특히 불교의 경우 왜곡과 변질의 시작은 인도 불교가 국가 권력과 유착된 것부터 비롯된다. 근현대의 문제도 있지만 훨씬 더 깊이 파고 들어갈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 형식의 차원에서 불교든 기독교든 신앙 자체의 민주적인 운영, 세속인의 적극적인 참여, 성직자와 세속 인간의 맹종적인 관계가 해결되어야 한다." / 박노자 교수

덧붙이는 글 | 박노자 교수는?

1973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생
1993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 동방학부 한국사학과 졸업
1996년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러시아 국립 인문대학교 강사 역임
현재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 한국학 교수, <아웃사이더>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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