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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 7층 환경재단 회의실에서 열린 '주한미군 두 여중생 압살사건에 대한 의정부 지방 겸찰청 수사기록 검토 결과 발표 기자회견'에서 고영대 전 여중생사망사건 진상조사위원장이 새롭게 밝혀진 자료를 바탕으로 사건 직전 미군들이 여중생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것을 그림으로 설명하고 있다.
10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 7층 환경재단 회의실에서 열린 '주한미군 두 여중생 압살사건에 대한 의정부 지방 겸찰청 수사기록 검토 결과 발표 기자회견'에서 고영대 전 여중생사망사건 진상조사위원장이 새롭게 밝혀진 자료를 바탕으로 사건 직전 미군들이 여중생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것을 그림으로 설명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10일 오후 고 신효순, 심미선양 미군 장갑차 압살 사건에 대한 수사기록 검토 결과 발표 기자회견에 앞서 참석자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10일 오후 고 신효순, 심미선양 미군 장갑차 압살 사건에 대한 수사기록 검토 결과 발표 기자회견에 앞서 참석자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기사 보강 : 10일 오후 5시]

지난 2002년 6월 13일 경기도 양주에서 미군 장갑차에 치여 사망한 여중생 신효순, 심미선양 사건의 진상이 주한미군과 한국 검찰에 의해 은폐·왜곡 됐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두 여중생의 아버지 신현수(고 신효순 양의 부친), 심수보(고 심미선 양의 부친)씨와 홍근수(전 여중생 범대위 상임공동대표) 목사는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확보한 당시 사고 수사기록 분석 결과를 10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발표했다.

이들은 의정부 지방 검찰청 수사 기록과 미국 육군 범죄수사대(CID) 수사자료 등을 검토한 결과 "사고 장갑차 운전병은 두 여중생을 볼 수 있었으며, 운전병과 관제병 사이에 통신 장애는 없었다"고 밝혔다.

이는 지금까지 주한미군의 조사 결과(2002. 6. 19) 및 한국 검찰 수사 결과(2002. 8. 5) 발표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당시 주한미군과 한국 검찰은 "사고 장갑차 운전병의 오른쪽 시야에 사각지대가 있어 두 여중생을 볼 수 없었고, 관제병은 통신 장애로 전방에 두 여중생이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운전병에게 알리지 못해 사고가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군 장갑차 운전병 마크 워커와 관제병 페르난도 니노는 2002년 11월 미군 법정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실제로 장갑차 운전병은 사고 당시 두 여중생을 볼 수 없었을까.

"운전병은 피해 여중생을 충분히 볼 수 있었다"

"관제병은 30m 전방의 두 여중생을 볼 수 있었다.(2002. 6. 19 주한미군 조사결과)
"관제병은 두 여중생을 약 15m 전방에서 발견하여 사고 방지를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2002. 8. 5 한국 검찰 조사결과)


이처럼 한국 검찰이 파악한 여중생의 발견 지점은 미군의 조사결과보다 짧다. 이에 대해 고영대 전 여중생사망사건 진상조사 위원장은 "미군 운전병이 여중생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을 짜맞추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2002년 9월 의정부 지방 검찰청이 미 2사단에 보낸 수사결과 자료는 앞서 발표한 것과 차이가 있다. 아래는 검찰이 미군에 보낸 자료 중 일부다.

"사고 현장에서 직접 확인한 바로는 운전병이 우로굽이 도로를 돈 직후 사고 지점을 확인할 수 있었던 거리는 최소 30m에서 최대 35m이고, 운전병의 사각지대라고 할 수 있는 우측 전방 약 2.5m에서 21.6m를 벗어난 지점에서 걷고 있던 피해 여중생들을 충분히 볼 수 있었다."

"통신장비에 문제가 있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사고 장갑차가 사고 장소로 출발하기 30분전에 그 통신장비를 수리했고, 그 후 테스트를 해보니 정상적으로 작동됐다. (2002. 7. 27 한국 검찰에서의 통신정비병 듀란 진술)

이와 같이 미군 통신정비병은 사고 30분전에 통신 장비가 정상이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사고 장갑차의 운전병 워커와 관제병 니노는 공교롭게도 사고 순간에만 통신 장비가 고장났다고 주장했다.

사고 당시 통신 장애와 관련 한국 검찰은 2002년 8월 5일 "관제병이 여중생을 발견하고 내부 통신 마이크를 통해 좌측의 운전병에게 정지 지시를 했으나 통신 장비의 잡음 등으로 인해 운전병이 이를 듣지 못한 것이 사고의 가장 주요한 원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이에 앞선 8월 1일 노사탁 검사보는 "장갑차가 사고 전에 운행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통신장비에 문제가 있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는 내용으로 수사 보고를 했다. 검찰 내부 의견이 달랐던 것이다.

"부시 대통령과 검찰은 사과해야"

수사기록을 분석한 평통사 관계자들은 "통신 시설에 장애로 사고가 났다는 미군과 한국 검찰의 주장은 구차한 변명에 불과하다"며 "미선·효순양 사고 조사 결과는 공고한 한미공조의 좋은 예"라고 꼬집었다.

또한 고 위원장은 "한국 검찰은 미군들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해 사실을 은폐했다"며 "의정부 지검은 이러한 자료를 공개하지 않기 위해 대법원의 정보공개 판결에 불복했다"고 비판했다.

평통사와 두 여중생의 유가족 등은, 부시 미국 대통령의 사과와 한국 법무부 및 검찰 당국의 대국민 사과를 요구했다. 또한 미국 정부 및 주한미군을 상대로 미군 수사기록 정보공개를 청구해 미국에서의 사법적 대응 방안을 모색해 나갈 것이라 밝혔다.

한편 평통사 등 관련 시민단체들은 오는 13일 미선·효순 양 사망 3주기를 맞아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서 촛불대행진을 열 예정이다.

지난 2002년 6월 13일 경기도 양주에서 미군 장갑차에 치여 사망한 여중생 신효순, 심미선양 사건의 진상이 주한미군과 한국 검찰에 의해 은폐·왜곡 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사진은 지난 2002년 7월 31일 성조기와 미군 장갑차에 압사한 여중생들의 영정사진이 내걸린 한양대 정문 앞 모습.
지난 2002년 6월 13일 경기도 양주에서 미군 장갑차에 치여 사망한 여중생 신효순, 심미선양 사건의 진상이 주한미군과 한국 검찰에 의해 은폐·왜곡 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사진은 지난 2002년 7월 31일 성조기와 미군 장갑차에 압사한 여중생들의 영정사진이 내걸린 한양대 정문 앞 모습.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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