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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성태 상지대 교수.
ⓒ 오마이뉴스 이종호
진보논쟁이 무뎌지고 있다. 말은 많았지만 결국 결론 없이 막을 내리게 되는 건가. 한 시민운동가는 국민스포츠가 된 '노무현 욕하기'는 이제 그만 두란다. 진보논쟁에서 말이다. 향후 5년을 결정짓는 대선 앞에서 도저히 식상해서 못 봐주겠다고 성토했다. 언제까지 '가버린 사람'을 탓할 것이냐는 비판이다.

홍성태 상지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도 마찬가지다. 홍 교수는 24일 <오마이뉴스>와 전화인터뷰를 통해 "나는 이 논의가 얼마나 힘을 가질지 회의적"이라며 "민주주의 심화를 위해서는 총론적인 의미보다 구체적인 과제 중심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진보논쟁에서 FTA만 갖고 단선적으로 논쟁할 수 없다"며 "강력하게 개발주의와 토건국가의 문제점을 제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발주의와 토건국가의 문제점은 환경문제만이 아니라 국가정상화와 관련된 문제라는 것이다.

이어 홍 교수는 "각종 개발사업으로 매년 수십조원의 예산을 낭비하고 있는 토건족들 때문에 토건업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세력이 등장했다"며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한반도 대운하가 바로 그것"이라고 비판했다.

홍 교수는 "GDP의 19%를 차지하는 토건업은 ▲정책결정과정의 불투명성 ▲예산의 낭비 이에 따른 ▲정부재정의 왜곡 등을 불러온다"며 "이명박 전 시장이 경제와 산업구조를 왜곡시키는 한반도 대운하를 들고 나선 것도 이 정책이 국민들에게 먹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전 시장은 토건업이 나라의 국운을 융성하게 하는 총체적 국책사업이라고 주장하나, 토건업은 한국사회를 반민주국가이자 부패국가로 전락하게 만들 것이라고 고발했다.

"민노당, 일반정당으로도 실패한 상태"

이명박 전 시장의 '한반도 대운하' 구상이 현실화 된다면, 한국은 토건족이 지배하는 지옥 같은 세상이 될 것이라는 홍 교수는 "개발주의 토건국가의 문제점에 초점을 맞춘 정책을 세워 대선 때 시민운동 차원의 정책제안운동을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토건국가의 문제점을 고발하는 차원에서 '건교부 폐지운동'도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최근 진보논쟁에서 제기된 여러 주장을 잘 섞어 정치적으로 이끌 수 있는 정치세력이 나타나야 한다"며 "제2의 진보정당이 출범할 수 있다면 좋을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민노당은 진보정당이라기보다 일반정당으로서도 실패한 상태"라며 "정파 알력이 너무 심해서 다음을 기약할 수 없는 수준이 됐다"고 씁쓸해 했다.

한편, 홍 교수는 "독재시대의 정부조직이 아직도 그대로"라며 "박정희가 정치독재를 하기 위해 만들었던 기구들이 사람과 간판을 바꾼다고 해서 성격이 달라졌다고 할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다음은 홍성태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진보논쟁'이 한풀 꺾이는 느낌이다. 어떻게 보나.
"나는 이 논의가 얼마나 힘을 가질지 회의적이다. 약간 과장된 것 같기도 하다. 노무현 대통령의 비합리적 대응 때문에 최장집 교수가 이 논의의 중심인양 됐는데, 문제 있는 결과랄 수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논쟁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민주주의 심화를 위해서는 총론적인 의미보다 구체적인 과제 중심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 구체적으로 무엇을 논의 테이블에 올려야 한다고 보나.
"독재시대 정부조직이 아직 그대로다. 한정된 정부재정을 불필요한 개발사업에 쏟아 붓게 되니까 당연히 복지예산을 쓸 수 없다. 정부재정의 왜곡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과거에, 정부조직의 간판을 바꾸는 일은 있었지만 실질적인 개혁 작업은 없었다.

현 정부조직 구조는 박정희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박정희가 정치독재를 하기 위해 만들었던 기구들인데, 단지 인물과 간판을 바꾼다고 해서 성격을 달리 규정할 수 있겠나? 진보의 과제가 뭔지, 구체적인 논의와 방법, 또 이를 이루기 위한 구체적 목표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 노무현정부 핵심인사들은 유연한 진보를 주장하고 있다.
"이 말은 이문열의 진보우파 주장과 비슷한 소리다. 노무현 대통령의 행보를 기억해보라. 부안 핵폐기장 건립 반대운동 하는 사람들 공권력 투입해서 거의 전쟁을 방불케 할 정도로 심하게 싸움했다. 평택 대추리에서도 민간인을 상대로 군사작전을 썼다. 이게 유연한 진보냐.

한미FTA도 350만 농어민이 쪽박 찰 게 뻔한데 이것 추진하는 게 유연한 진보라고? 진보는 시대에 따라 내용이 바뀐다. 21세기 진보의 핵심적 가치는 인권의 신장이다. 19세기에는 자본주의 발흥과정에서 노동권이 가장 중요한 진보의 가치였고, 20세기 중반 이후에는 환경권, 여성권이 강조되면서 소수자 권리가 강화되고 있다. 인권의 지평이 확산되고 있다. 하나도 부합하는 게 없는데 무슨 진보란 말인가."

"유럽 좌파가 신자유주의 인정? 무식하거나 거짓말"

▲ 홍성태 상지대 교수.
ⓒ 오마이뉴스 이종호
- 유럽 좌파들도 신자유주의정책을 받아들이고, 이 방향으로 바뀌었다고 하던데.
"진보진영에서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까닭은 신자유주의 정책이 인권에 반하는 가치를 추진하기 때문이다. 진보의 가치는 인권에 비춰 생각해야 하는데 그걸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신자유주의가 진보라고 말하는 것, 또 유럽에서는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이고 이 방향으로 바뀌었다고 말하는 것은 무식하거나 거짓말이거나 둘 중 하나다.

유럽의 진보진영도 일률적인 게 아니다. 인권의 폭이 넓어졌는데도 여전히 노동이 진보의 핵심가치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환경이나 여성, 소수자 권리 등 다른 가치들도 같이 존중하지 못하면 잘못된 진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진보 내에서도 구진보, 신진보 논쟁이 진행됐고, 이것도 수십년 진행된 논쟁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 논쟁에 참여하고 있는 진보지식인 전체를 싸잡아 마치 구진보인 양 호도하고, 본인은 유연한 진보라고 말하는 것은 말장난이다."

- 서구 진보 논쟁에서도 '유연한 진보' 주장이 있나.
"진보는 언제나 유연하다. 노무현 대통령이 예전에는 진보였겠지만 대통령이 된 이후 그의 행로는 보수주의자의 길을 걸었다. 노 대통령은 진보에서 보수로 전향한 사람이다. 자기 자신을 아직도 잘 모르는 것 같다. 자기 자신에 대해 보다 정확히 이해하고 민주적 보수주의자라고 밝히는 게 그 자체로도 중요한 정치적 과제가 될 것이다."

"정부구조와 조직문제, 각종 공사의 문제점을 지적해야"

- 정대화 교수는 진보논쟁 제2라운드가 필요한데, 핵심주제는 FTA라고 했다.
"개발주의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고 본다. FTA문제만 갖고 단선적으로 논쟁할 수 없다. 또 FTA문제를 과거 '전선 운동'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강력하게 토건국가의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기존의 정부구조와 조직문제, 토지공사-수자원공사-주택공사-농업진흥공사 등 각종 공사의 문제점을 지적해야 한다.

이들은 각종 개발사업으로 매년 수십조원의 예산을 낭비하고 있고, 전 국토를 파괴시키고 있다. 점차 비중이 늘어나는 토건업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세력이 등장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한반도 대운하가 바로 그것이다. 'FTA 올인' 운동은 그래서 굉장히 위험하다고 본다."

- 개발주의는 환경문제 아닌가?
"잘못된 인식이다. 개발주의와 토건국가의 문제점은 환경문제 이전에 국가정상화의 문제다. 토건국가는 굉장히 기형적이다. 주무부서에서 일방적으로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이걸 입증하기 위한 엉터리 보고서가 만들어져서 추진되면 그 다음에 막을 수 없는 국책사업이 된다. 나중에 온갖 문제점이 밝혀져도 철회된 사업이 없다. 한탄강댐이나 새만금 등 모두 그렇다.

토건업이 한국 GDP의 19%를 차지한다. 전 국토를 부수고 다시 건설하는데 정부예산의 20~30%를 쓴다는데, 이게 정상인가. ▲정책결정과정의 불투명성 ▲예산의 낭비 이에 따른 ▲정부재정의 왜곡 ▲불필요한 토건업의 유지 확산 등은 경제와 산업구조를 왜곡시킨다. 이명박 전 시장이 이걸 노리고 한반도 대운하를 들고 나선 것이다.

토건업, 이걸 치고 나가면 먹혀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전 시장은 토건업이 나라의 국운을 융성하게 하는 총체적 국책사업이라고 주장하는데 결국 반민주국가이자 부패국가로 전락하는 길이 될 것이다."

'반민생후보' '반민생정당' 낙인 찍는다?

- 대선이 코앞에 다가왔는데 진보진영은 잠잠하다.
"이제 인물 중심의 대응은 한계가 있다고 본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현상이 있었으나 결국 실패했다. 앞으로는 실질적인 정책중심으로 가야 한다. 시민운동은 정책제안운동을 할 것이다. 개발주의 토건국가의 문제점에 초점을 맞춘 정확한 정책을 세워야 한다. 부패의 핵심이 건설업이다. 토건업에는 눈먼 돈이 많이 들어간다. 다 국민 혈세다. 이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면, 한국은 토건족이 지배하는 지옥 같은 세상이 될 것이다."

- 정책제안운동은 어떻게 펼쳐지게 되나.
"한국사회 선진화를 위한 정책과제가 뭔지 찾아야 할 것이다. 핵심적인 5~10개 정도 뽑아서 제시하고,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추진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2000년 총선 당시 시민운동이 했던 낙선운동이나 당선운동은 곤란하다. 구체적인 정책을 걸고 요구하고 이걸 거부할 때는 공표하는 방식이 나올 것이다."

- 시민단체의 정책을 받을 건지, 말건지 후보에게 던지는 방식 말인가.
"예컨대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제도나 호주제 폐지 같은 것 걸면 입장이 뚜렷하게 달라질 것이다. 누가 되든 진보정책을 안 받으면 '반민생후보' '반민생당' 낙인이 찍히는 것이다. 토건국가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차원에서 '건교부 폐지'를 걸고 운동할 수 있다."

- 시민사회 차원의 대선 논의는 없나.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다. 민주후보라는 사람이 FTA를 강행하고 토건국가를 강행하면 어떻게 할 것인지, 또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에 대한 환멸이 일어나는 원인이 뭔지, 노무현 대통령은 왜 변절했는지, 구조적인 분석들이 우선 필요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나쁜 사람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도 억울한 게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세상이 달라졌다기보다 더 살기 나빠졌다고 느낀다니 왜 그런지 정확히 따져봐야 하지 않겠나. '민주화의 역설'적 상황인데, 여기에 정확히 대응 안하고 다시 민주주의의 위기를 외치고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잘못하면 양치기 소년의 우를 범할 수 있을 것이다."

- 민노당 밖에 제2의 진보정당 창당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던데.
"최근 제기된 여러 주장을 잘 섞어서 정치적으로 이끌 수 있는 정치세력이 나타나야 한다. 제2의 진보정당 출범이 있다면 좋은 일이다. 민노당은 솔직히 진보정당이라기보다 일반정당으로서도 실패한 상태다. 정파알력이 너무 심해서 다음을 기약할 수 없는 수준이 됐다.

여러 학자들이나 전문가들, 활동가들이 정말 진정한 진보정당 출현을 고민해볼 때라고 본다. 이것도 정파세력의 개입으로 왜곡될 가능성도 없지 않지만 말이다. 그래야 뭔가 돌파구가 열리지 않을까 싶다. 기존 정치세력과의 연대나 제휴도 필요할 테고.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지 않나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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