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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일본 법원은 일제 시기 피해를 보상하라는 소록도 한센인들의 소송을 기각했습니다. 보상 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이유입니다. 이에 정근식 서울대 교수가 일본 법원 판결의 문제점과 함께 이번 소송이 우리 사회에 던진 의미를 짚는 글을 보내왔습니다. <편집자주>
▲ 일제 강점기 강제 격리 · 수용되었던 소록도 한센인들이 일본정부를 상대로 청구한 피해보상소송에서 일본 법원이 원고 패소 판결한 것에 대해 27일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한센인들이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지난 10월 25일, 소록도에는 커다란 충격과 슬픔, 황당함이 함께 몰려왔다. 소록도 갱생원 입소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보상 소송에서 패소했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그와 달리 대만 낙생원 입소자들은 동일한 소송에서 승소했다는 소식도 함께 전해졌다. 두 소송은 함께 진행됐지만, 도쿄 지방재판소의 재판부들이 일본의 '한센병 보상법'의 취지를 전혀 다르게 해석하여 대만 낙생원 소송은 받아들이면서 소록도 소송은 기각한 것이다.

판결이 나고 며칠 뒤 도쿄에서 만난 일본인 대학교수들도 내게 이 결과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일본의 재판부는 왜 한국 한센인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어떻게 동일한 재판소에서 동일한 사안을 전혀 다르게 해석할 수 있었을까.

소록도도 '국립' 요양소로 취급됐다... 일본 환자 이송되기도

일본 재판부는 낙생원 소송에서는 2001년 5월의 구마모토 지방재판소 판결이 "단순한 손해배상이 아니고 정책적인 고려에 근거해서 행해지는 특별한 보상"이었으며, 따라서 현재의 국적이나 주거지와 관계없이 1945년 이전 일본의 '국립 나요양소' 입소자들은 모두 보상 대상에 해당된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소록도 소송에서는 한센병 보상법의 심의과정을 검토하면서 "외지 요양소의 입소자는 보상의 대상이 된다고 인식하지 않았거나 혹은 애초부터 보상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전제하였다"고 해석했다.

소록도가 일본의 후생노동성 고시에 규정된 '1931년 일본 나예방법'의 국립 요양소와 동일한 '국립' 요양소였다는 주장은 기각됐다.

심지어 1938년 검거된 일본의 나환자절도단 사건의 피의자 22명이 일본에서 소록도로 이송돼 수용된 사실, 소록도 갱생원 원장이 항상 일본 국립요양소 소장회의에 다른 국립요양소장들과 동일한 자격으로 참석했을 뿐 아니라 각종 인사에서 명백히 '국립' 요양소로 취급된 사실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 27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는 소록도 한센인.
ⓒ 오마이뉴스 남소연
2001년 5월의 구마모토 판결은 1953년 제정되고 1996년에야 비로소 폐지된 일본의 나예방법이 적어도 1960년 이후 개정되거나 폐지되지 않은 것은 위헌이라는 내용이었다.

이 판결에 따라 제정된 '한센병 보상법'은 그 전문에서 "이전(즉 제국주의 시기)에 시행된 한센병 환자에 대한 격리정책이 1953년 제정된 나예방법에 의해 지속됐으며, 1960년대에 이르러 한센병에 대한 인식의 오류가 명백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격리정책의 변화가 없어서 한센병 환자들에게 견디기 어려운 고통과 고난"을 주었다고 표현했다.

그 법에 근거해 마련된 일본 후생노동성 고시에 따라 '국립' 요양소 입원경력자는 입소 시기를 불문하고 보상대상이 됐으며, 1945년부터 1972년까지 미군정이 지배했던 오키나와의 나요양소 및 소규모의 여러 사립 요양소에 입소했던 사람들에게도 보상이 이뤄졌다.

이번 소록도 및 낙생원 소송은 여기에서 제외된 보상에 관한 것이다. 원고와 변호인들은 '식민지 지배에 따른 수용'이라는 점이 더해지면서 일본 본토의 요양소에서보다 피해정도가 더 심각했음을 주장했다. 실제로 1930년대 후반부터 1945년까지 소록도 갱생원에서 이뤄진 환자들의 입소·노동·저축·단종수술과 낙태 중 상당 부분은 불법이었다.

갱생원이 사법적인 판결에 따른 '범죄자'를 다루는 형무소가 아님에도 혹독한 구타와 감시 등 징벌이 이뤄진 감금실은 인권침해의 현장이었다.

1941년과 1942년 소록도에서 발생한 두 차례의 사건(1941년 사건은 한센인이 일제에 적극 협력하는 다른 조선인 한센인을, 1942년 사건은 한센인 이춘상씨가 악명높던 일본인 원장인 수호 마사토를 살해한 사건)은 단순한 살인사건이라기보다는 이런 인권침해 및 강권적 지배에 대한 저항이자 절규였다.

따라서 이번 소송은 소록도 입소자에 대한 인권침해를 사과하고 희생자들에게 보상해야 할 뿐 아니라 일본 사법부가 법적 형평성을 회복하는 방향으로 결론나야 하는 사안이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 역사에 대한 일본 사법부의 구차한 변명과 일관성 상실을 드러낸 이번 판결은 국제적 웃음거리임에 분명하다.

해방은 됐어도 차별·배제·학살은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에게 소록도 소송이 주는 역사적 의의가 일본 정부나 사법부를 향한 당위적 결론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비판적 성찰은 내부를 향할 때 더 빛난다. 이번 소송은 해방 후 우리 정부와 국민이 한센인을 차별한 데 대한 반성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

한센인은 20세기 한국 사회의 대표적인 사회적 소수자 집단의 하나 아닌가. 이들은 차별받고 배제됐으며 학살까지 당했던 사회적 타자였다. 이들에 대한 차별과 배제는 해방 후에도 끊임없이 재생산됐다.

1945년부터 1957년까지 이뤄진 각종 학살사건들, 1960년대 초반 소록도 주민들이 피와 땀으로 일궜음에도 선거정치에 말려 빼앗긴 오마도 간척지 사건, 정착 한센인들에 대한 차별, 한센인 2세들과의 공학 반대를 통해 가해진 정신적 폭력 등은 대표적인 인권침해 사례들이다. 이뿐 아니라 식민지의 유산들이 무의식적으로 답습되면서 '강송'(강제이송), 단종수술 등도 1970년대까지 지속됐다.

▲ 27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는 소록도 한센인.
ⓒ 오마이뉴스 남소연
국가권력은 이들의 인권을 침해한 당사자였고, 일반 시민들의 사회적 차별을 적극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계몽과 교육도 시행하지 않았다. 현재 시행되는 중앙등록제나 정착촌 체제도 차별적 요소를 안고 있다.

한국에서 한센인의 문제는 오랫동안 잠복돼 있었다. 이는 과거의 차별이 극복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한센인에 대한 '비가시화'라는 정부 정책이 상대적으로 성공적이었기 때문이다.

1960~70년대 군사정권은 한센인들에 대한 일제시기의 절대적 격리체제를 넘어서서 정착촌 제도라는 상대적 격리체제를 창출하였다.

정부는 이들에게 자활이라는 명분과 원조를 통한 물질적 지원을 제공했지만 그러한 지원은 충분하지 않았다. 아울러 일제시대 천황제 이데올로기가 환자 통제에 매우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듯 이미지 정치도 매우 강력하게 전개됐다.

감춰진 한센인 차별... 진상파악이 우선

한국에서 독특하게 만들어진 상대적 격리로서의 정착촌 체제는 한센인의 비가시화에 성공했다. 대중의 시선에서 사라진 한센인들의 다수는 타자화된 자아상을 내면화했고 공개적이고 적극적인 사회운동을 전개해본 경험이 별로 없다. 종교적인 요인도 사회적 비가시화에 크게 작용하였다.

그러나 이런 비가시화는 성공적인 정상화와 사회복귀로 보기 어렵다. 한국의 해방 후 한센정책은 일본보다는 상대적으로 진보된 길을 걸었으나, 오늘날의 관점에서 다시 생각해보면 '방치'나 '격리'를 중심으로 한 인권침해체제의 지속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적 유산을 정리하는 방식으로는 일본에서처럼 소송을 통한 보상운동을 상정해볼 수 있으나 이것보다는 국가가 먼저 문제점을 파악해 처리하는 특별법 제정 방식이 더 적합해 보인다. 무엇보다 과거 인권침해에 대한 정확한 진상파악이 중요하다. 또 외부로부터의 지원과 국가의 보상만으로는 한센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우리는 이번 소송을 한센인들의 주체적 각성과 자조운동의 새로운 출발을 위한 계기로 삼아야 한다.

▲ 일제 강점기 강제 격리 · 수용되었던 소록도 한센인들이 일본정부를 상대로 청구한 피해보상소송에서 일본 법원이 원고 패소 판결한 것에 대해 27일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한센인들이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덧붙이는 글 | 정근식 교수는 서울대 사회학과에 재직하고 있습니다. 근대 및 근대화 과정의 폭력성과 함께 그 이면에 감춰진 역사를 드러내는 연구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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