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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해 대동면 한 화훼농가에 난방용으로 연탄이 수북히 쌓여 있다.
ⓒ 윤성효

꽃 농사를 짓던 부부가 극약을 마시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지난 7일 밤 10시경 경남 김해시 대동면에서 화훼농사를 짓던 A(64)씨와 부인 B(58)씨가 독극물을 마셨다. 이웃 주민이 집에서 쓰러진 이들 부부를 발견해 병원으로 옮겼지만 생명은 꽃잎 떨어지듯 졌다.

B씨는 곧바로 사망하고 A씨는 다음날 새벽 숨을 거두었다. 10일 이들 부부의 장례식이 치러졌다. 이들 부부는 왜 극약을 마셨을까? 경찰 조사에 의하면, 건강이 좋지 않았고 부부가 가끔 다투기도 했다고 한다. 사건이 일어나던 날 아들한테 전화를 걸어 '잘 있어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이들 부부가 소속되었던 대동화훼작목회(회장 김흥권) 회원들은 이같은 소식을 듣고 매우 안타까워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제2, 제3의 사건이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작목회 회원들은 이 부부가 빚에 시달려 왔다고 밝혔다.

김흥권 회장은 "화훼농사 짓는 사람들은 모두 빚을 지고 있는데, 그들 부부도 돈이 원활히 돌지 않고 생활에 짜증이 생기다보니 그런 일이 일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김해시청 관계자는 "그들 부부가 빚이 어느 정도 있었는지는 모르겠는데, 건강도 좋지 않았다고 하고 가끔 부부싸움도 있었다고 한다"면서 "여러가지 복합적인 사항으로 인해 그런 일이 벌어진 것 같다"고 밝혔다.

화훼농가들은 농사를 지을수록 적자라고 하소연한다. 인건비는 물론 난방비도 건지기 힘든 처지다. 최근 들어 엔화 가치가 계속 떨어지면서 어려움이 더하다. 김해 대동농협 경제지소 앞에서 만난 김윤식(51)씨는 "장미농사는 그만두고, 풋고추로 바꿔볼 생각이다"고 말했다.

그의 비닐하우스 앞에는 연탄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기름으로는 난방비를 감당할 수 없어 연탄으로 충당한 지 올해로 6년째란다. 그의 비닐하우스 안에는 2월 졸업철에 맞춰 출하할 요량으로 키우고 있는 장미가 꽃망울을 맺고 있었다.

김씨는 "화훼를 하다보니 우선 로열티도 지불해야지, 묘종 값도 만만찮다. 난방비도 이만저만 아니다. 고추농사를 하면 좀 나아질 것 같은데, 고민 중이다"고 말했다. 김씨처럼 김해평야의 화훼농가들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김해 대동면 일대에는 500여 농가가 꽃농사를 짓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빚에 쪼들리면서 화훼 재배 농민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 심심찮게 들리고 있다. 김창식 김해농민회 대동지회 부회장은 "희망이 안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오래 전부터 그랬지만, 지금 꽃밭에는 어두운 그림자뿐이다. 농민들은 의욕이 없다. 3년 전인가 꽃농사를 짓던 젊은 사람이 있었는데 그만두고 다른 마을에 가서 살다가 농약 먹고 죽었다. 빚내 농사지어 다시 빚 갚는, 쳇바퀴 도는 인생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 김해 대동면 한 비닐하우스 안의 장미 재배 모습.
ⓒ 윤성효

꽃값은 20년 전 그대로, 난방비 등은 100~500% 올라

김흥권(52) 대동화훼작목반 회장은 "큰일이다"는 말부터 했다. 꽃값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차이가 없는데 시설비며 난방비는 100~500%까지 올랐다는 것. 대개 12월 25일과 2월 졸업철, 5월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에 꽃 수요가 많은데, 그런 날에도 수지타산을 따지면 여느 날과 마찬가지라고.

김 회장은 27년째 장미를 재배하고 있다. 꽃값은 그 때나 지금이나 별로 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낮아졌다고. 27년 전 1단(10송이)에 2000원을 했는데 그 값은 변함이 없다는 것. 그는 "그때보다 더 낮은 가격에 팔 때도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시설비와 난방비는 천정부지로 올랐다.

가령 벙커시유의 경우 27년 전 1드럼에 2500원했는데 지금은 7만7000원(면세유)에 사온다고. 농사를 짓는데 드는 기름값은 시중가에 비해 면세 혜택을 보기는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오르고 있다는 것. 그런데 꽃값은 항상 그 자리에 머물고 있으니 빚에 쪼들릴 수밖에 없다고.

빚이 얼마냐고 물었더니 그는 "대동들녘에서 꽃농사 짓는 사람 치고 빚 없는 사람 없다"고 단정적으로 말했다. 빚 규모는 농사짓는 평수에 비례한다고. 1000평을 지으면 1억원, 2000평을 지으면 2억원, 3000평을 지으면 3억원이 빚이라는 것. 그는 "해마다 빚이 쌓여 간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화훼농가가 어려운 이유 가운데 하나가 일부 중간 상인들이 화환을 재사용하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작목회에서 화환을 재사용하는 실태를 알아봤더니 심할 경우 7번까지 사용하더라는 것.

그는 "한번 사용한 꽃은 폐기처분을 해야 하는데, 재탕하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7번까지 사용한다"면서 "꽃의 수요가 분명히 있어야 하는데 다시 사용하다 보니 수요가 떨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축하ㆍ근조화환 재사용은 일종의 '사기', 제재수단 필요

▲ 김흥권 대동화훼작목회 회장.
ⓒ 윤성효
그는 축하화환이거나 근조화환을 다시 사용하는 것은 일종의 '사기'라 보고 있다. 화환을 사는 사람들은 새로 생산된 꽃인 줄 알고 사는데, 업자들이 한번 사용했던 꽃을 다시 사용하는 것을 사람을 속이는 것이기에 사기라는 것.

"가령 상가에 가는 꽃의 경우, 망자를 위해 근조화환을 보내지 않느냐. 상주들은 화훼농가에서 바로 생산한 새 꽃을 꽂아 온 것으로 생각할 것 아니냐. 그런데 중간 업자들 때문에 한번 사용한 꽃을, 심할 경우 대여섯 번 사용한 꽃을 꽂아 오는 경우도 있다. 죽은 원혼까지 속이는 일이다. 이게 바로 사기 아니냐."

대동화훼작목회는 화환을 재사용하는 행위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기죄로도 다룰 수 있다는 것. 김흥권 회장은 "화환을 재사용하는 행위에 대해 법적으로 규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서 "이 문제에 대해 농림부뿐만 아니라 보건복지부도 나서야 할 것"이라고 강조.

조만간 전국 단위의 (사)한국화훼유통협회가 만들어진다. 이 단체를 통해 화환 재사용을 막기 위한 조직적인 활동을 전개할 방침이다.

김 회장은 꽃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 가령 스승의 날에 교사들이 학생한테 꽃을 가져오지 말라고 하는 행위는 비교육적이라는 것.

"스승의 날 폐단 때문에 그러는 것 같지만, 이해가 안 된다. 아이들에게 꽃을 가져오지 말라는 것은 교육자로서 큰 문제다. 꽃은 사람의 정서를 함양시킨다. 아마도 꽃을 가져오지 말라고 하는 나라는 우리뿐일 것이다. 베트남은 시장가면 꽃부터 산다고 하고, 러시아는 꽃을 주지 않으면 이혼사유가 된다고 한다."

그는 "꽃으로 인해 어린이들의 정서가 나아진다면 범죄도 줄어들 것"이라며 "그렇다면 국가 전체적으로 볼 때 엄청난 효과가 있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그는 "꽃을 보면 사람의 마음이 좋아지는데, 왜 교육자들이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스승의 날의 폐단은 다른 방법으로 치유책을 찾아야 할 것 아니냐"고 설명.

ⓒ 윤성효

엔화 가치 하락 치명적, 수출 꽃 내수 돌리면 다 죽어

최근 엔화 가치가 계속 떨어지면서 일본으로 수출하던 화훼농가의 타격이 심하다는 것. 그는 "대동들녘에서 일본으로 수출하는 농가는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지만, 지금은 손해를 보면서 수출하고 있다"면서 "수출농가들이 내수로 돌릴 경우 다같이 망할 수도 있기에 정말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치인과 유명인사들이 농업문제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

"로열티만 해도 그렇다. 우리 토종 씨앗을 외국이 가져가 개발해서 국내로 들어오고 있다. 우리는 과연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모르겠다. 가령 씨없는 수박을 만들었던 우장춘 박사가 조금만 더 살았더라면 하는 아쉬움 같은 게 생긴다. 고품질의 농산물을 생산해야 하는데 말이다."

그는 비닐하우스 덮으러 가기 위해 자리에 일어나면서 한 마디 했다. "이 말은 꼭 적어 달라"는 주문과 함께.

"정치인이며 저명인사들은 다들 자기들 살 생각만 하지 않느냐. 기득권 싸움만 하고 있다. 한 집안이 잘 살려면 가장이 지도를 잘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야 자식도 잘 크고 살림도 늘어날 것 아니냐. 정치인과 저명인사들이 우리 삶의 근본인 농업을 배척해서는 안 된다. 또 농민이 음독자살했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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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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