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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

세월이 정녕 유수같이 흘러서 벌써 8년 전 일이 되었다. 2004년 3월 5일 나는 <오마이뉴스> '사는 이야기' 면에 <티베트 버섯을 아십니까?>라는 글을 썼다. 또 같은 해 4월 24일에는 <티베트 버섯 분양을 마치고>라는 글을 썼다.

두 개 모두 '키피어(Kefir)', 일명 '티베트 버섯'에 관한 글이었다. 첫 번째 글은 내가 키피어라는 신기한 사물을 처음 접하게 된 동기와 키피어의 효능, 배양 방법과 음용 방법, 주의 사항 등을 자세히 소개하는 글이었다. 십이지장 쪽에 제대로 자리 잡았던 궤양이 자연 치유된 것이라는 달 표면의 분화구 같은 위내시경 사진을 보고 의사에게 "면역력이 약한 당뇨 환자인 내게도 자연 치유라는 게 가능한 겁니까?"라고 물으며 그 순간 '키피어'를 떠올렸던 일화도 첫 번 글에 소개되어 있다. 

유리병 안의 키피어 유리병 속에 들어 있는 ‘키피어’가 우유를 먹으며 한창 분비물을 내고 증식 분열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 유리병 안의 키피어 유리병 속에 들어 있는 ‘키피어’가 우유를 먹으며 한창 분비물을 내고 증식 분열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 지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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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티베트 버섯을 아십니까?>라는 글을 쓴 목적은 키피어를 좀 더 많은 이들에게 분양해주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이미 키피어를 알고 배양과 음용을 하며 사는 이들도 많겠지만 아직 키피어를 모르는 이들, 키피어 음용이 꼭 필요한 이들은 많으리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마침 또 한 해 '사순절'을 맞이한 때였다. 천주교 신자로서 2004년의 사순절을 좀 더 뜻 있게 지내기 위해, 즉 키피어를 널리 알리고 많은 이들에게 분양을 해주는 것도 좋은 '나눔의 실천'이 되리라는 생각으로 그 글을 썼던 것이다.

두 번째 글은 첫 번째 글을 읽고 키피어 분양을 요청해 오신 전국 각지의 열두 분에게 사순절 동안 택배 분양을 해드리고 나서 쓴 글이었다. 키피어에 대한 좀 더 자세하고도 광범위한 정보들을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그 글을 쓰게 된 것은 캐나다에서 사시는 석천(石泉) 이상묵 시인께서 보내주신 키피어에 대한 정보 때문이기도 했다.

키피어 거르기 우유가 잘 걸러지도록 유리병 안의 키피어를 나무젓가락으로 미리 젓고 있다. 쇠붙이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
▲ 키피어 거르기 우유가 잘 걸러지도록 유리병 안의 키피어를 나무젓가락으로 미리 젓고 있다. 쇠붙이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
ⓒ 지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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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묵 시인은 최근 <오마이뉴스> '민족국제' 면에  <박용만과 그의 시대>라는 이름으로 항일 독립운동가인 박용만 선생에 대한 '평전'을 연재하셨던 분이다. 서울공대 출신 시인으로 캐나다 토론토에서 사시면서 활발하게 문필 활동을 해 오신 분이신데, 일찍이 <토론토한국일보>에 연재하셨던 키피어에 관한 글을 복사하여 내게 보내주신 연유로 나는 키피어에 관해 또 한 번, 좀 더 내용 있는 글을 <오마이뉴스>에 쓸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8년 전인 2004년 봄 <오마이뉴스> 지면에 올렸던 키피어에 관한 두 번의 글을 즐겁게 기억한다. 그 해 사순절과 사순절 이후에도 도합 열두 분에게 내 시간과 수고와 비용을 들여 키피어를 택배로 분양해 드렸던 일을 즐겁게 기억하면서, 그분들 모두에게 키피어의 효능이 잘 작용했기를, 그리고 지금에도 음용과 효능이 잘 유지되고 있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2>

나는 2004년 이후에도 꾸준히 키피어를 배양하고 음용해왔다. 그러다가 2006년 초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로 이사를 하면서 그만 키피어를 망실하고 말았다. 노친과 집사람은 키피어의 신맛에 적응을 못하여 나 혼자 음용을 해왔는데, 이사를 하는 과정에서 어찌어찌하다가 그만 키피어를 모두 죽이게 되었고, 나중에 다시 구하기로 했던 그 '생각'마저도 덧없는 시간 속에서 유실되고 만 것이다.

그 후 내게 많은 세파들이 있었다. 2005년 말 가운데 제수씨가 서른아홉 나이로 세상을 뜬 이후 어린 조카들을 데리고 사는 데서 오는 좀 더 바빠진 일상들, 2007년 말 태안 앞바다 원유유출 사고와 관련하는 과로와 세균감염으로 인한 병고, 2009년 6월 폐암말기 진단을 받은 노친에 대한 간병과 갖가지 대체의학 시행 등등으로 참으로 바쁘게 산 나날이었다.

키피어 거르기 아내에게 시간 맞춰 매일 바이오 기공수와 홍삼제품과 홍경천차 등을 공급하는 것은 내 몫이고, 내게 하루 한 번씩 밤에 키피어를 걸러서 공급하는 것은 아내 몫이다.
▲ 키피어 거르기 아내에게 시간 맞춰 매일 바이오 기공수와 홍삼제품과 홍경천차 등을 공급하는 것은 내 몫이고, 내게 하루 한 번씩 밤에 키피어를 걸러서 공급하는 것은 아내 몫이다.
ⓒ 지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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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가지 무수한 일들을 치르고 겪으며 살아야 하는 인생사 속에서 그만 키피어를 까맣게 잊고 말았다. 내 머리 속에는 아예 키피어에 대한 기억도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 가운데 수년 세월이 덧없이 흘렀다.

그러던 2011년 9월 내게 키피어 분양을 부탁하는 뜻밖의 메일 한 통을 받게 되었다. '부산에서 사는 주부'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분이었다. 아토피를 앓는데다가 장이 약해 소화 장애를 겪는 중2 아들 얘기를 하면서 내게 간곡하게 키피어 분양을 부탁하는데, 그분은 '티벳버섯'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었다.

당시 나는 키피어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키피어를 잊고 살아온 세월을 헤아려보니 어느새 5년이었다. 나는 부산에서 사시는 그분이 어떤 연유로 내게 키피어 분양을 부탁하게 됐는지 궁금했다. 일단 보름 후에 분양을 해주기로 약속하고, 나를 알게 된 연유를 물어보았다.

그분은 <오마이뉴스>에서 키피어에 관한 내 글을 읽었다고 했다. 7년 전의 글을 찾아 읽고 내게 메일을 보냈다는 것이었다. 인터넷 매체에 올린 7년 전의 글이 오늘 이 시간에도 현재진행형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나는 경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키피어 거르기 플라스틱 조리에 쏟아 담은 키피어를 나무젓가락으로 휘저어 대접에다 발효된 우유를 내리고 있다.
▲ 키피어 거르기 플라스틱 조리에 쏟아 담은 키피어를 나무젓가락으로 휘저어 대접에다 발효된 우유를 내리고 있다.
ⓒ 지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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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이 <오마이뉴스>에서 키피어에 관한 내 글을 찾아 읽었다면, 키피어의 효능이며 배양 방법과 음용 방법 등을 다시 설명하지 않아도 될 터였다. 그저 키피어만 택배로 보내주면 될 일이었다. 나는 그분으로 인해 키피어를 다시 내 인식 속에 담아놓게 된 사실이 반갑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

내가 보름 후에 분양을 해주겠다고 자신 있게 말한 것은 키피어를 쉽게 구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태안성당 수녀원에도 키피어가 있다는 말을 들은 까닭이었다. 이 기회에 나도 5년 만에 다시금 키피어를 배양하고 음용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설레기까지 했다.

왜 내가 지난 5년 동안 키피어를 잊고 살았는지 아리송하기도 했다. 그 5년의 단절이 야속해지는 마음이었다. 5년 동안 단절을 하지 않고 계속 음용을 하고 살았다면 내가 2008년의 큰 병고도 모면하지 않았을까? 신맛에 적응하지 못하여 거부하시는 노친을 잘 설득하여 노친께도 꾸준히 키피어 음용을 시켜드렸더라면 노친도 병고를 모면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들이 바늘 끝처럼 날카롭게 왕왕 내 뇌리에 날아드는 것이었다.

<3>

키피어는 생각처럼 쉽게 구해지지 않았다. 성당 수녀원에서 받아온 우유를 조리에 부어 물로 씻고 보니 남는 게 없었다. 과거 내가 키피어를 분양해 주었던 집들, 또 수녀원에서 분양받은 집들을 수소문해서 일일이 전화를 걸었는데, 키피어를 죽이지 않고 계속 배양하는 집은 한 집도 없었다.

과거 태안성당에 계셨던 수녀님들 중에 현재는 서울 명동 본원에 계시는 조 요셉피나 수녀님이 키피어를 가지고 있다는 정보를 듣게 되었다. 조 수녀님과 통화를 한 다음 태안성당 분원장 수녀님이 서울 본원에 가시는 기회에 조 수녀님에게서 키피어를 받아 가지고 오시도록 부탁을 드렸다.

키피어 그릇 씻기 다시 키피어를 배양하려면 용기로 사용하는 유리병 안을 깨끗이 닦아야 한다.
▲ 키피어 그릇 씻기 다시 키피어를 배양하려면 용기로 사용하는 유리병 안을 깨끗이 닦아야 한다.
ⓒ 지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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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태안성당 분원장 수녀님이 서울 본원의 조 수녀님에게서 키피어를 받기는 했는데, 친정엘 들렀다가 그만 키피어를 깜빡 잊고 놓고 오셨다는 것이었다. 벌써 여러 날이 경과해서 키피어가 모두 죽었을 거라고 했고….

서울의 대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딸아이를 명동 본원의 조 수녀님께 보내기도 했는데, 그때는 분양 시기가 아니라고 했다. 20일 정도 기다려야 분양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였다.

그러는 가운데 시간이 하염없이 흘러서 나는 10월 24일 부산의 그분께 사과 메일을 보내야 했다. 키피어를 가지고 있지도 않으면서(5년 동안 잊고 살아왔으면서) 현재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름 후의 분양을 약속했었다는 실토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키피어를 구하기 위해 애를 쓴 과정, 실망 속에서 덧없이 시간이 흐른 사실을 설명하고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했다. 어찌 보면 본의 아니게 부산의 그분으로 하여금 미안한 마음을 더욱 크게 가지도록 만드는 일이었다. 물론 내 쪽에서도 더럭 미안한 노릇이었다.

키피어 씻기 발효된 우유를 내리고 조리 안에 남은 키피어를 흐르는 물로 깨끗이 목욕시켜 준다.
▲ 키피어 씻기 발효된 우유를 내리고 조리 안에 남은 키피어를 흐르는 물로 깨끗이 목욕시켜 준다.
ⓒ 지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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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11월초 태안성당 분원장 수녀님이 또 한 번 서울 본원을 가시는 기회에 조 수녀님에게서 키피어를 받아 가지고 오셨다. 전화를 받고 나는 뛸 듯이 기뻐하며 즉시 성당으로 달려갔다. 실로 5년 만에 다시 보는 키피어였다. 그 박테리아와 효모의 결합체, 작은 덩어리들의 집합체가 담긴 우유 상자를 소중하게 들고 집으로 왔다.

키피어를 흐르는 물에 목욕을 시키고 새 우유를 부어주고 하룻밤 재운 다음 다시 목욕을 시키고는 공기가 통하는 작은 플라스틱 그릇에 담아 포장을 해서 우체국 택배로 보내면서 나는 더없이 가볍고 홀가분한 마음이었다. 그렇게 키피어를 보내준 다음 나는 부산의 그분께 키피어 분양을 요청하는 메일을 보냈다.

목욕 후의 키피어 목욕을 하고 다시 유리병 속에 담겨진 키피어의 모습은 꽃처럼 예쁘다. 박테리아와 효모의 결합체, 분열을 거듭하여 크게 군집이 된 모습이다. 반을 갈라 분양을 할 때가 되었다.
▲ 목욕 후의 키피어 목욕을 하고 다시 유리병 속에 담겨진 키피어의 모습은 꽃처럼 예쁘다. 박테리아와 효모의 결합체, 분열을 거듭하여 크게 군집이 된 모습이다. 반을 갈라 분양을 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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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올해 1월 중순경 부산의 그분에게서 키피어를 분양받았다. 부산의 그분은 주변의 더 급한 분들께 먼저 분양을 해주느라고 내게는 늦게 보낸 것 같았다. 아무튼 나는 키피어를 분양받아 다시 배양과 음용을 시작했다. 실로 6년만의 재회인 셈이었다.

나는 당뇨·고혈압·통풍 등 '성인병백화점' 신세다. 2003년에 베트남전쟁 고엽제 후유증 판정을 받았는데, 상이등급이 처음엔 7급이었으나 신장 수치 때문에 2년 전에 6급으로 상향 조정되었다. 다시 말해 신장이 위험한 상태인 것이다.

그런 연유로 칼륨이 들어 있는 음식들을 철저히 제한하거나 금기하며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신장을 잃지 않기 위해 애를 쓰는 나로서는 키피어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다. 키피어의 효능에 부쩍 기대를 걸게 된다.

2004년 봄 <오마이뉴스> '사는 이야기' 면에 올린 키피어 관련 두 개의 글을 다시 한 번 읽어보니, 여러 가지 효능 중에 '혈압을 조절해준다'와 '신장병을 고쳐준다'라는 말이 있어서 키피어 우유를 열심히 복용하리라 다짐한다.

내가 가진 성인병들, 당뇨와 고혈압과 통풍은 모두 신장을 압박하는 병이다. 특히 고혈압과 신장은 관련이 깊다. 혈압이 높으면 직접적으로 신장에 영향을 주게 되고, 신장이 나빠지면 곧바로 혈압에 영향을 준다고 한다. 그러므로 혈압과 신장을 함께 건사하기 위해서는 키피어 음용도 내게는 꼭 필요한 일일 터이다.

키피어에 우유 주기 깨끗이 씻어 다시 유리병 안에 넣은 키피어에 새로 우유를 부어 준다. 매일 밤 10시쯤에 하는 일이다.
▲ 키피어에 우유 주기 깨끗이 씻어 다시 유리병 안에 넣은 키피어에 새로 우유를 부어 준다. 매일 밤 10시쯤에 하는 일이다.
ⓒ 지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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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6년 만에 재회한 키피어를 매일 밤 복용한다. 나는 암을 앓았던 노친께 하루 두 번씩 회전전자파광합성녹말 물을 드리는 외로도 매일 여러 번씩 시간을 맞춰 노친과 아내에게 홍삼이며 홍경천차며 나한과차와 흑마늘 등을 공급하고 나도 복용을 하는데, 나 혼자만 음용하는 키피어 배양과 공급은 아내 몫이다. 아내는 매일 밤 11시 전후에 키피어를 거른 우유를 내게 주고, 키피어를 씻은 다음 새 우유를 부어지는 일을 한다. 미안하고 고맙다.

현재는 나 혼자 키피어를 복용하지만 불원간 노친과 아내에게도 복용토록 할 생각이다. 그리고 키피어 분양을 재개할 작정이다. 이 글을 읽으신 분들이 요청해오면 시간과 수고와 비용을 들여 모든 분께 차례로 택배 분양을 해드리려고 한다. 이것 역시 의미 있는 '나눔'일 터이므로….


#키피어#티베트 버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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