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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23일),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로 들어서는데 한 후배교사가 몹시 화가 난 얼굴로 출석부를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애들이 세 명이나 수업에 안 들어왔어요. 두 명은 늦게라도 들어와서 정정을 해주려고 하는데 나머지는 그냥 무단 결과처리 하겠습니다."

출석부에 표시된 이름을 살펴보니 수업을 빼먹을 만한 아이들이 아니었습니다.

"이상하네. 그럴 녀석들이 아닌데. 두 명은 왜 늦게 들어왔다고 하던가요?"
"개를 찾으러 산에 갔었다고 하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

아주 드문 일이긴 하지만 학교에 애완견을 데려오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학교가 산에 인접해 있어서 누군가 집에서 애완견을 데려 왔다가 그런 해프닝이 벌어진 것이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사정을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아이들을 찾으러 밖으로 나왔다가 마침  셋 중 한 아이가 눈에 띄어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개가 새끼를 밴 것 같아요. 양수가 터졌는지 물을 뚝뚝 흘리고 다녀요. 그런데 남자 애들이 침을 뱉고 발로 차고 그랬어요."
"개라니? 집에서 개를 데려 온 거야?"
"아니오. 모르는 개예요. 그런데 곧 개가 죽을 것만 같아서 그냥 두고 갈 수가 없었어요. 뱃속에 새끼들도 있잖아요."

"그렇다고 수업을 빼먹으면 어떡해?"
"수업보다도 생명이 더 중요하잖아요. 선생님도 생명의 중요성을 늘 강조하셨잖아요."
"그럼 나한데 연락을 했어야지. 두 사람은 지키고 한 사람은 나한테 오면 되잖아."
"잘못했어요. 근데요. 정말 개가 불쌍해서 그랬어요."

저는 일단 마음이 놓였습니다. 아이의 표정으로 보아 개를 핑계로 수업을 빼먹은 것 같지도 않았지만 혹시라도 셋 중 한 녀석쯤 그런 잔꾀를 썼다고 해도 크게 나무라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아이들이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들의 입에서 생명이란 단어가 두 번씩이나 발음되다니요.    

저는 아이를 데리고 개가 있는 곳으로 가보았습니다. 개는 다리를 저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 느낌이 들 만큼 지쳐보였습니다. 외관상 임신 여부를 판단할 수는 없었지만 한 눈에 보아도 젖은 많이 불어 있었습니다. 그런 몸으로 어쩌자고 높고 가파른 산자락에 자리한 우리 학교까지 올라온 것인지 그 사연이 자못 궁금했습니다.     
   
잠시 후 수업종이 울려 저는 아이들을 교실로 올려 보냈습니다. 다행히 개가 어슬렁거리며 학교 뒤편 어딘가로 사라진 뒤였습니다. 아이들은 개를 그대로 두면 죽을지도 모른다고 어떤 조치를 해줄 것을 당부했지만 이미 눈 앞에서 사라진 개를 어찌할 수 없었고, 저도 바쁜 업무처리를 하기 위해 서둘러 교무실로 향했습니다.

눈앞에서 사라진 개가 다시 제 앞에서 나타난 것은 40여 분이 지난 뒤였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개의 행방이 궁금해서 일을 마치기가 무섭게 행정실 직원과 함께 개를 찾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개는 2층 여학생 교실 복도를 어슬렁거리고 있었고, 수업이 끝나자 교실에서 막 나온 여학생들에게 둘러싸인 채 눈을 껌벅거리며 누워 있다가 이내 잠이 들었는지 죽어가고 있는지 미동조차 없었습니다.  

학교에서 119에 전화를 한 것은 그로부터 5분쯤이 지난 뒤였습니다. 그런데 그 뒤로 약 30분이 더 지났는데도 아무런 소식이 없자 한 아이가 교실에서 자신의 체육복을 가져와 바닥에 깔고 그 위에 개를 눕혔습니다. 다른 한 아이는 교실에서 두루마리 화장지를 가져와 개의 몸을 감싸주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아이들이 개를 안기도 하고 쓰다듬기도 했는데, 혹시라도 아이들에게 나쁜 병균이 옮아붙지나 않을까 염려되어 주의를 주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런 아이들의 헌신적인 행동에 비하면 제가 한 일은 참으로 보잘 것이 없었습니다. 

잠시 후, 두 명의 남자가 학교에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119와 순천시청의 협조요청을 받아 민간단체인 전남동부지역사회연구소 야생동물 구조팀에서 온 믿을 만한 분들이었지만 아이들은 선뜻 믿으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명함을 보여주며 자세히 설명을 해주자 그제야 안심을 한 듯 그들이 개의 상태를 진단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었습니다.

일이 일단락된 듯하자, 먼저 후배교사를 찾아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애들이 잘못했더구먼. 그런데 새끼를 밴 개가 학교에 들어온 모양입니다. 애들 말로는 양수가 터진 것 같다는데 그런 개를 그냥 두고 올 수가 없었나 봅니다. 물론 수업을 빼먹은 건 잘못한 거지. 그래도 오늘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철이 하나도 없는 줄만 알았는데…."

그 말에 후배교사도 환히 웃으며 이렇게 말을 받았습니다.   
"참 엉뚱한 녀석들이네요. 잘 알겠습니다. 아이들 제게 보내주십시오." 

그날 종례시간이었습니다. 저는 35명의 예비 모성 앞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은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한 수 배웠습니다. 여러분이 자랑스럽습니다." 

정말이었습니다. 병약한 한 마리 짐승 앞에 쪼그려 앉아 온전한 마음을 준 아이들을 통해  생명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한 수 배운 기분입니다. 그런 어린 스승들을 몰라보고 늘 혼내기만 했으니 참 부끄러운 일입니다. 배움의 길은 끝이 없나 봅니다.


#순천효산고#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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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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