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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11일 오전 10시에 춘천 행정법원 201호 법정에서 사건번호 2009구합1172사건에 대한 선고 공판이 예정되어 있었다. 2008년 11월 5일 문제의 사건(강원도교육청 시행 초등학교 4학년 5학년 일제고사)이 발생한 후 1년 4개월이 지나 사법부의 판단을 듣게 된 것이다. 2009년 6월 12일 행정소송을 제기하였으니 1심 재판이 8개월에 걸쳐 진행된 것이다.   그동안 1월 21일의 결심공판까지 총 6차례의 공판이 있었다.

 

재판 결과는 원고 승소였다(법원 "일제고사 거부 이유로 교사 해임한 건 위법" ). 그러나 많은 보도가 판결 내용의 일부에 근거하여 판결문의 정신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최종 결과만 부각시킨 것에 서운함을 금할 수 없다. 이에 재판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취재한 기자로서 이날 송경근 부장판사, 김준혁 판사와 명선아 판사가 작성한 판결문에 담겨진 내용에 대한 분석 기사를 쓰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2월 11일 법정 풍경

 

전날부터 라디오 뉴스를 통해 2월 11일 '일제고사 해임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 대한 판결이 있다는 보도가 흘러나왔다. 강원 지역에서 이 재판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높은지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당일 아침 지역 방송 기자들이 총 출동하여 재판 시작 전부터 어수선하였다. 재판이 열리기 전 재판정을 카메라에 담은 뒤 법원의 허가를 얻어 노트북을 꺼내 놓고 판결 내용을 기록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소복하게 내리는 눈에도 불구하고 10시가 되기도 전에 재판정은 방청객으로 가득했다. 복도는 카메라 기자로 통행이 불편했다.

 

교사는 개학하여 방청할 수 없는 상황임을 고려하면 예상 밖의 방청객이었다. 방청객 중에 강원도 교육감 선거에 출마 의사를 밝힌 민병희 교육위원(한장수 교육감님, 일제고사를 왜 봐요?) 내외가 먼저 눈에 띄었다. 그 옆에 원고 남정화 선생님과 남다른 인연이 있는 이병덕 전교조 강원지부 전 지부장이 자리 했다.

 

10시가 되자 법정 안내인이 눈으로 재판에 참석하는 것이 늦어지는 분들을 위해 5분 늦게 공판이 시작된다고 안내 했다. 10시 5분부터 5건의 사건에 대한 선고가 있었다. 맨 마지막으로 본 사건에 대한 선거가 있었다.

 

시도교육감의 학업성취도 평가 실시권?

 

2009년 12월 31일 서울 일제고사 1심 판결을 통해 해임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가 승소할 것이라는 것을 다들 예상하고 있었다. 심지어 전교조 강원지부가 준비하여 기자들에게 나누어 준 문건은 승소를 전제로 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러한 판단에 대해 기자들도 다 당연하다는 태도였다.

 

마찬가지로 판결문도 승소와 직접 관련된 내용은 후반부에 간결하게 언급되었다. 송경근 부장판사가 낭독한 판결문 내용의 대부분은 시도교육감의 학업성취도 평가 실시권에 대한 법률적 판단과 관련된 것이었다. 판결문 내용 구성의 산술적 비율로 보더라도 이 문제가 핵심이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재판부가 얼마나 진지하게 이 문제에 접근했는지 그리고 이 판결이 교육계에 미칠 영향에 대해 얼마나 진지하게 고심했는지가 판결 내용의 행간에 알알이 녹아 있었다.

 

   원고 측 변호인단에서 제기한 법적 근거가 없다는 주장에 대해 재판부는 시도교육감이 표집으로 학업성취도 평가를 실시하는 것은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그 근거로 단체 협약에도 명시되어 있고, 2004년부터 실시해온 관행을 들었다. 또한 법률에 교육감이 학업성취도 평가를 실시할 수 없다고 규정하지 않고 있다고 하면서 초중등교육법 9조 1항을 시도교육감의 행정 행위를 제한하는 규정으로 보기 어렵다고 하였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피고 측 변호인단에서 제시한 법률적 근거에 입각한 행정행위라는 주장에도 동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표집으로 실시하고 비표집 학교는 자율로 실시하는 행정행위는 교육감에게 '상당한 재량권'이 주어진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 재판부의 입장이었다.  재판부는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9조, 제20조 제6호에 근거하여 피고 측이 주장한 교육감의 학업성취도 평가권이 있다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교육감에게 '상당한 재량권'이 있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특이한 대목은 재판부가 '상당한 재량권'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이는 피고가 그 동안 실시해온 관행과 단체협약 내용 그리고 몇몇 다른 시도 교육감이 실시한 관행을 사법적으로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재판부가 얼마나 진지하게 고심했는지를 드러내는 표현이다.  

 

   만약에 사법부가 교육감이 학업성취도 평가를 실시할 법적 권한이 없다고 매정하게 판단한다면 사회적으로 야기될 문제가 심각하게 된다. 그렇게 판결하면 그 동안 실시된 시험과 관련된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교육 관료가 범죄자가 되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시도교육감은 잘 헤아려야 한다.

 

   피고 측에서 법원에 제출한 자료에 명시되어 있듯이, 교육감이 지녔다는 '상당한 재량권'의 근거로 인용한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제20조 6호 교육과정 운영에 관한 사무는 교육감이 교육장과 학교장에게 조례에 근거하여 위임을 하였다. 교육감의 '상당한 재량권'의 근거로 위 법률을 원용한다 할지라도 교육감은 그러한 권한을 조례에 근거하여 교육장과 교장에게 위임을 하였기 때문에 교육감은 그러한 재량권을 행사할 수 없는 것이다. 이렇듯 법적 상식과 사회적 실익 사이에서 재판부가 얼마나 진지하게 고심했는지를 시도 교육감들은 읽어 내고 처신에 주의해야 한다.

 

   또한 교육계에 종사하는 분이면 교육과정 운영에 관한 사무교육과정 운영인 교육활동(시험)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번 재판에서 이 부분에 대한 공방은 없었다. 그래서 재판부가 '상당한 재량권'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 있었다. 

 

시도교육감의 일제고사 실시권 없다?

 

   재판부는 표집으로 실시하는 학업성취도 평가와 전집으로 실시하는 학업성취도 평가(이하 일제고사)는 별개의 문제로 봐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교육감이 일제고사를 실시하는 것을 재량권을 이탈한 권한 남용으로 볼 것인지에 대해 재판부가 진지하게 고심했음을 전했다. 교육 행정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동료 판사들과 이 문제에 대해 장시간에 걸쳐 폭넓게 의견 교환을 하였다고 하면서 의견이 분분하였지만 그렇게 판단할 소지가 충분하다고 하였다. 재판의 핵심과 관련이 없는 이 부분을 언급한 것은 시도교육감이 일제고사를 실시하는 것에 대해 앞으로도 사법부가 계속 묵인하지 않겠다는 엄중한 경고로 읽혀진다.

 

   그러한 엄중한 경고의 내용을 채우기 위해 재판부가 피고(강원도교육감)가 실시한 일제고사의 성격에 대해 확정한 판단을 상세하게 언급하였다.

 

   먼저 전교조 강원지부와 맺은 단체협약에는 교육감이 그 내용을 성실히 이행하도록 규정되어 있음을 지적했다. 표집으로 실시한다고 약속했으면 이를 준수하기 위해 교육감도 노력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라는 것이다. 이는 완곡하게 일제고사를 더 이상 실시하지 말라고 교육감에게 주문한 것에 다름 아니다.

 

   또한 재판부는 일제고사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고, 그로 인한 교육적 폐해가 현실로 나타났다고 하였다.("일제고사 성적 우수한 교사들에게 팔라우 여행") 이는 계속해서 일제고사를 실시하는 것이 사회적 실익, 교육적 실익에 해당되지 않는 것임을 재판부가 시도교육감에게 엄중하게 경고하는 것으로 읽혀진다.

 

   마찬가지로 교육감은 교육과정이 파행적으로 운영되지 않도록 지도 감독해야 할 위치에 있음을 상기시켰다.(일제고사 쓰나미에 무너진 2009 초등 교육) 교육과정이 학교에서 정상적으로 운영되도록 지도 감독해야 할 교육감이 교육과정을 파행적으로 운영하게 만드는 일제고사를 실시하는 것이 말이 되냐는 질타로 들렸다.(강원도 신종플루 확산에도 4일 일제고사 강행)

  

게다가 유엔 사회권 위원회의 권고 내용도 인용하였다. 재판부는 유엔이 대한민국 정부에 일제고사(Iljegosa)를 중단하라고 권고한 것은 공지의 사실이라고 했다. 교과부 장관이 실시하는 일제고사에 대해서도 유엔이 중단하도록 권고했으니, 시도교육감도 이러한 취지에 따라 더 이상 일제고사를 실시해서는 안 된다는 재판부의 판단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마지막으로 재판부는 원고들의 행위를 개인적 일탈 행위로 볼 수 없다고 하면서 그들의 행위는 일제고사로 인한 폐해를 방지하고자 (헌법적 근거에 의거하여) "교육자의 소신과 양심에 따라 일제고사를 거부한 것"이라고 명토 박았다.

 

강원도 교육청 항소 결정

 

  이러한 판결문의 행간을 읽어보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르겠지만, 강원도 교육청은 1심 선고 당일 오후 항소를 할 것이라고 언론사에 보도 자료를 보냈다. 보도 자료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간단하다.

 

   학업성취도평가 거부 교사 해임처분취소 판결에 강원도교육청, 즉시「항소」할 것임.

 

   2010년 2월 11일. 춘천지방법원이 학업성취도 평가(2008. 11. 5.)를 거부하여 해임된 교사(4명)가 제기한 해임처분취소 소송에서 『해임처분취소』를 판결함에 따라, 강원도교육청은 이에 불복하여 즉시 항소(抗訴)할 것임을 밝혔다.


태그:#일제고사, #해임처분 취소소송, #전교조 강원지부 , #춘천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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