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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만원 가지고 한 달 어떻게 살아요?"

지난 2월 15일 월급날 아내의 푸념 어린 한마디였습니다. 미안한 마음뿐 아무 대꾸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1월 일한 내역을 가지고 2월 15일 월급을 줍니다. 지난해 말부터 나돌던 이야기들이 올 초부터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듯합니다.

출근해 보니 동료들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승용차 생산라인.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승용차 생산라인.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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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부터 회사 어려워진대…."
"특근 없어진대."
"잔업도 없어진다고 하네."

1월 1일을 지나 출근해 보니, 보이지 않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모두 작년 말일부로 잘렸다고 했습니다. 정규직들이 저에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한마디씩 거들었습니다. 지금 붙어 있는 것만으로도 어디냐고 합니다. 이번엔 신정과 설이 1월에 다 포함돼 있어 쉬는 날이 많은 탓도 있겠지만 당장에 잔업이 사라지고 특근이 없어졌습니다. 어느 주일은 아침이 아니라 새벽 4시에 일을 마치고 퇴근하기도 했습니다.

정규직은 채워진 시간을 다 달리지만 비정규직은 5~6시간만 달립니다. 제 지난 2월 급여가 모두 150여만원이었습니다. 120만원 급여에, 30여만원은 작년 월차를 쓰지 않아 나온 돈입니다. 한 해 지나면 그렇게 돈으로 환산되어 나온다는 사실을 알기에 되도록 월차를 쓰지 않고 모아둡니다. 그래야 한푼이라도 더 받을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150여만원 받았지만 실제 생활비로 가져다 준 돈은 고작 80만원이었습니다. 1월에 카드로 빌려 쓴 돈이 70여만원이나 빠져 나갔습니다. 올해 중학교에 들어가는 큰딸이 있는데 교복비가 무려 23만원이나 했습니다. 돈이 없으니 그런 생활비용을 모두 카드로 긁으며 사용하고 다음달 급여에서 빠져나가게 합니다.

2월 15일부터 3월 15일까지 80만원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 네 식구 알뜰히 살더라도 200만원이 기본으로 들더군요. 요즘은 물가가 치솟아서 더 많이 들지도 모릅니다. 또 돈이 없으니 카드로 긁으며 한 달간 살아갑니다. 그렇게 순환하며 버티고 있습니다.

과장급 이상에게 전달된 노란 봉투

"지금 전 공장 가동률이 어때?" 엊저녁 출근시간에 친하게 지내는 정규직 노동자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울산엔 5공장까지 있잖아. 지금 3공장 빼고는 모두 힘들어."

정규직 노동자는 이런 이야기도 했습니다. "올초에 과장급 이상 노란 봉투 날렸다잖아. 100여 명이 아직 그냥 출근 중이래."

경기침체 여파가 일상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사진은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생산된 수출용 승용차들.
 경기침체 여파가 일상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사진은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생산된 수출용 승용차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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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하청 노동자라 정규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지만 그는 어느 정도 회사 돌아가는 상황을 잘 알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아직 현장 노동자에겐 노란 봉투가 날아들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미 올 초에 과장급 이상 관리직엔 노란 봉투가 전해졌고 대부분 자진 퇴사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100여 명의 관리직이 못 나가겠다고 버티고 있다는 것입니다. 참 슬픈 현실입니다.

어느 날, 새벽 1시 30분경 밥 먹으러 가는데 어둠 속에서 누군가 불렀습니다.

"형, 나 다시 우리 조로 왔어요."

몇 개월 전 반대조로 간 비정규직 노동자였습니다. 그는 짐보따리를 싸들고 퇴근하는 중이었습니다.

"왜 짐 싸들고 그래?"
"여긴 4시간 일하고 퇴근하잖아요. 일거리가 없어서요."

왜 왔냐고 하니까 그 이유가 참 가관이더군요.

"원청 정말 밥맛이에요. 내 자리가 일거리가 많으니까 일거리 없는 곳으로 날 보내고 자기들이 내가 일하던 자리를 차지했어요"

전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그냥 어둠 속으로 그가 사라지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나도 언제 그리 될지 모르는 상황이니까요. 원청은 자신들 하기 싫을 땐 비정규직에게 넘겼다가 자신들 자리가 휘청거리니까 다시 빼앗아 버립니다. 그것이 현대차 사내 현장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이고 현실입니다.

그나마 내 일터는 잔업이 얼마 전부터 생겼습니다. 옆 라인은 오후 6시 되면 불이 꺼지는데 우린 라인을 돌립니다. 저녁 8시에 일 마치고 퇴근하면 공장 가동률이 얼마나 낮은지 알 수 있습니다. 작년 회사가 괜찮을 땐 저녁 8시 야간 마치고 퇴근하면 거리엔 회사원들로 북적거렸고 버스도 만원이라 몇 대는 그냥 지나치게 하고 나서야 탈 수 있었는데, 요즘은 8시에 퇴근하면 거리가 다 썰렁합니다. 또한 버스는 앉을 자리가 텅 비어 있을 정도로 한산합니다.

회장님의 전용기, 비정규직은 죽을 맛

'회사가 어렵다면서 900억짜리 전용기라니….'

위 내용은 요즘 정규직 노조나, 정규직 노조가 활동하는 현장조직에서 내보내는 소식지에 자주 나오는 제목입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참 맥빠지는 현실입니다. 그 제목은 원청 노동자도, 하청 노동자도 화나게 만드는 내용이었습니다. 현대차 정몽구 회장이 얼마 전 900억짜리 전용기를 구입했다는 내용의 보도였습니다.

회사는 유인물을 통해 매번 세계 경제 한파로 현대차도 어렵다고 늘 떠들어댔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어디서 돈이 나서 900억이나 들여서 전용 비행기를 구입했을까요? 어렵다는 말, 괜한 말처럼 들립니다. 이래저래 비정규직 노동자만 죽을 맛입니다.


태그:#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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