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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예쁜 것만 보고 음악 듣고.. 부러워요."
"나도 이런 가게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내 마음대로 열고 내 마음대로 닫고 얼마나 좋아. 우리 딸도 회사 그만두고 이런 거나 하나 차리라고 할까?"


낮 12시. 느지막이 가게 문을 연다. 예쁜 액세서리를 비춰주는 할로겐 조명을 켜자 가게 안이 환해진다. 컴퓨터 전원을 누르고 우선 잔잔한 음악을 튼다. 그리고 커피 한 잔을 타서 책상 위에 올려 놓는다.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나의 모습이란 아마도 여기까지일 것이다. 우연한 기회에 시작하게 된 작은 액세서리 가게. 남들은 사장이라 좋겠다, 나도 창업하고 싶다고 얘기하지만 이 작은 가게 하나를 운영하는 건 생각 이상으로 쉽지 않다. 언젠가 나처럼 작은 액세서리 가게를 하나 열고 싶다던 단골 손님. 과연 이 작은 가게가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지 알게 된 후에도 그 마음이 같을 수 있을까?

오전 7시부터 밤 10시까지... 하루 15시간 근무

 작지만 소중한 우리 가게. 이 가게를 유지하기 위해 난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동동 거리며 다닌다.
작지만 소중한 우리 가게. 이 가게를 유지하기 위해 난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동동 거리며 다닌다. ⓒ 김효진
나의 12시 커피타임은 하루의 시작이 아닌 짧은 휴식 시간이다. 가게 문은 낮 12시에 열지만 사실 나의 하루는 오전 7시에 시작한다. 이른 아침 집을 나서서 동대문, 남대문 도매시장 등을 재빠르게 훑고 숨이 차게 뛰어와 겨우 문을 여는 시간이 바로 12시.

커피 한 잔을 홀짝이며 잠깐 숨을 돌리고 새로 가져온 제품들을 꺼내 가게 곳곳에 진열한다. 어제 팔린 목도리, 가방 등 때문에 비어 있는 자리를 차곡차곡 채운다. 팔린 제품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서는 거의 매일 아침 일찍 도매 시장에 나가야 한다. 한꺼번에 많은 제품을 들여 놓기보다는 그때그때 날씨, 유행 등에 따라 준비해야 하기도 하거니와 수많은 도매상점을 둘러보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때문에 제품을 사지 않더라도 도매시장에 나가 남들보다 더 많은 제품을 보기 위해 노력하는 일을 게을리 할 수 없다. 요즘은 동네에 작은 옷 가게도 새로 생기고, 골목골목에 액세서리 노점상을 하시는 분들이 자주 온다. 다른 곳에서는 찾기 어려운, 더 독특하고 더 예쁜 제품들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아침 7시에 시작하는 하루도 부족하다. 그래서 종종 밤 10시에 가게를 마친 후에 새벽시장에 또 나갈 때도 있다. 이 작은 골목길은 명동 번화가만큼이나 치열한 곳이다.

새로 사온 제품의 진열이 끝나면 내 손은 더 바빠진다. 가게의 주력 제품은 핸드메이드 헤어 액세서리인데, 거의 모든 헤어 액세서리 제품을 나와 여동생이 직접 만든다. 각종 리본, 큐빅 등의 재료를 책상 위에 늘어놓고 디자인을 고민하는 시간. 누구나 마음 먹으면 구입할 수 있는 한정된 재료로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그 이상의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제품들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 리본을 자르고 붙이고 하는 등의 끊임없는 작업. 가게를 오픈한 지 1년 6개월이 지난 지금, 내 손은 많이 거칠어졌다.

작업 사이 사이 손님들이 다녀가고, 또 다시 작업하기를 반복하다 보면 배가 고프다. 김밥 같이 간단한 걸 사 먹기도 하고, 간혹 약간의 여유가 생기면 도시락을 싸오기도 한다. 가게 안에 음식 냄새가 퍼지는 게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지만, 매번 가게 문을 닫고 밥을 먹고 올 수도 없고 굶을 수도 없다.

밥을 먹는 중에 손님이 들어오면 얼른 도시락 뚜껑을 덮어 음식을 가려 보지만 냄새까지 막기는 역부족이다. 김치를 괜히 싸왔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손님에게 음식 냄새 때문에 죄송하다고 얘기한다. 손님이 괜찮다고 하지만 계속 마음이 쓰인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죄송한 일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밥을 먹는 속도는 전보다 더 빨라졌다. 손님이 오기 전에 재빨리 먹어야 하므로. 여유롭게 회사 동료들과 밥을 먹으며 수다를 떨었던 시간이 그립다. 게다가 같은 반찬이지만 혼자 먹으면 참 맛없다.

석달 뒤에 "환불해 주세요"... 나를 슬프게 합니다

 내가 직접 만든 헤어 액세서리.
내가 직접 만든 헤어 액세서리. ⓒ 김효진

장사를 하다 보면 정말 다양한 손님을 만나게 된다. 대부분은 좋은 손님들이지만, 가끔 나를 슬프게 하는 손님들이 있다. 아이들이 물건을 다 흐트려 놓아도 내버려 두는 사람, 막무가내로 깎아 달라는 사람, 무조건 반말하는 사람, 다른 가게랑 비교하면서 제품을 하나하나 평가하고 가는 사람 등등.

"7000원에 줘, 그냥."
"만 2000원짜리를 어떻게 7000원에 드려요."
"나 여기 근처 살아. 자주 와서 단골손님할 건데... 7000원에 줘."
"그래도 5천원씩이나 깎으시면 안 되죠. 1000원 깎아 드릴게요. 그 이상은 안 돼요."
"안 되는 게 어디 있어? 그냥 이것만 받아."

어느 날, 물건 값 때문에 손님과 실랑이가 벌어졌다. 손님은 나를 향해 돈을 던지더니 가게 밖으로 나가버렸다. 쫓아가 물건을 빼앗아 오고 싶었지만 너무 황당해서 두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카운터 위에 흩어진 천원짜리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제품을 구입한 지 3개월 후에 찾아와 교환해 달라고 한 손님도 있었다. 한 계절이 바뀌고 있던 때였다. 너무 오래 되기도 했거니와 사용한 흔적이 역력했다. 교환해 주면 그 제품은 그냥 쓰레기통으로 가는 건데….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며 손님은 막무가내로 교환을 요구한다.

눈에 보이는 거짓말이지만 손님한테 대놓고 거짓말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사용을 안했다고 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3개월 동안 뭐하다가 이제서야 나타나 이 난리인가. 동네 장사를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둥, 한 번 오고 말 손님도 아닌데 교환 좀 해주면 어쩌냐는 둥 가게 안이 시끄러워진다. 다른 손님도 들어오고, 교환을 안해 주면 밤이라도 새고 갈 기세여서 어쩔 수 없이 교환해주고 만다.

손님과 차라리 싸우고 싶을 때도 있지만 싸울 수 없고 정말 화가 나도 그저 속으로 화를 삼켜야만 하는 게 장사하는 사람들의 숙명이다. 소문이 잘못 퍼져 나갈 까봐 걱정이 되기도 하거니와 일일이 다 신경을 쓰면서 장사를 하다가는 제 명까지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요즘 마음을 바꿨다. 가게 안으로 들어와주시는 모든 손님에게 감사하자.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라고 말이다. 그래도 누군가가 돈을 던지면 또 눈물이 날 것 같긴 하다.

그래도 힘든 하루를 견디게 해주는 것도 손님이다. 제품을 칭찬해 주기도 하고, 진심어린 조언도 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힘이 된다. 심혈을 기울여 디자인한 제품을 기꺼이 구입해주시는 손님들. 회사에 착용하고 갔더니 예쁘다고 동료가 빼앗아 갔다며 들뜬 기분으로 오는 손님들. 골목을 오가며 낯익은 손님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일. 어떤 때는 시장에 다녀오는 길에 들러 과일이나 붕어빵 같은 먹거리를 주고 가시는 분도 있다. 아무것도 팔지 않아도 손님들과 좋은 교감을 이룰 때는 나도 모르게 신이 난다. 그리고, 가게 문을 닫으며 계산기를 두드릴 때. 매출이 좋아 숫자가 올라가는 순간 힘들었던 일들은 모두 안녕이다.

안 해봐도 다 아는 장사? 그건 아니에요

 고된 하루를 끝낼 무렵 가게 모습. 매출이 좋을 때면 가게하는 맛이 난다.
고된 하루를 끝낼 무렵 가게 모습. 매출이 좋을 때면 가게하는 맛이 난다. ⓒ 김효진

액세서리 가게 주인인 내 모습이 누군가에는 꽤 부러운 일이다. 가끔씩 놀러 오는 내 친구들도 회사 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가게 하나 갖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일해야 하고, 주말에도 가게 문을 열어야 하고, 남들이 노는 빨간 날에도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하는 일이라는 거. 물건을 갔다 놓기만 하면 팔리는 게 아니라는 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감정 노동이라는 거. 그쯤은 안 해봐도 다 아는 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눈으로 보는 것과 체감하는 것은 정말 다르다. 나 역시 조금은 이 일에 가볍게 다가갔던 것 같다.

요즘은 불황 속에 닫힌 손님들의 지갑을 열게 해야만 하는 일이라는 게 제일 큰 걸림돌이다. 지금 당장 사지 않아도 되는 사치품을 팔고 있으니 말이다. 머리핀 하나 사는 것보다 하루의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시대에 나는 액세서리를 팔고 있다.

그래도 나 정도면 행복한 투정이다. 물건이 팔리니까 아침 저녁으로 도매시장에도 나가고, 머리핀을 만들기도 할 수 있는 거다. 일요일 하루는 꼬박꼬박 쉬고 있고, 앞으로의 미래를 걱정하기도 하지만, 배를 채우는 일 말고도 다른 즐거움을 찾아 다닐 수 있는 여유가 아직은 있으니 말이다.

1년 6개월 전으로 돌아가 다시 이 기회가 온다면 나는 어떤 결정을 내릴까? 같은 결정을 내릴 수도 있겠지만 좀 다른 마음으로 시작하지 않을까? 생각보다 녹록지 않은 하루하루가 참 길다.

덧붙이는 글 | 개인블로그(http://stern.kr)에 게재할 예정입니다.



#액세서리가게#창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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