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갤러리현대 개관 35주년 기념전 1부 2부 포스터. 왼쪽 포스터는 마르크 로스코(Mark Rothko)의 1955년 작품으로 박명자 대표가 이 그림에 반해 오래전부터 벼르다가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구입한 것이란다. 오른쪽은 이중섭의 대표작 '가족'
ⓒ 갤러리현대
한국 현대미술 35년 끌어안은 독보적 화랑

70년대 산업화가 막 시작할 무렵, 문화가 상품이라는 개념이 없었던 때 갤러리현대 박명자 대표는 '예술을 파는' 큰 모험을 시도하였다. 이런 위험한 벤처 사업은 예상 밖으로 여러 난관을 뚫고 오늘날까지 내려왔고 한국 현대미술 35년을 이끌었다.

그동안 300여회 전시회를 마련했는데 그냥 전시회가 아니었다. 변관식전(74년), 이응노전(75년), 김창열전(76년), 장욱진전(79년), 백남준전(88년), 박수근전(95년), 이중섭전(99년) 등 대가들의 굵직굵직한 전람회가 이곳에서 열렸다. 최근엔 외국 유명작가를 포함하여 고은님, 이영희, 박생광 전시회도 성황리에 끝났다.

이 갤러리는 지금 개관 35주년 기념전을 열고 있다. 1부, 2부로 나눠서 전시하고 있는데 외국작가와 해외에서 주로 활동한 작가들 중심으로 꾸몄던 1부(4월6일~24일)는 이미 끝났고, 지금은 2부(4월26일~5월10일)가 전시되고 있다. 그간 이 갤러리와 인연을 맺었던 한국 대가들 중심으로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입장료도 3000원이고 대가들의 아트포스터도 세일하고 있어 관람을 권하고 싶다. 우리에게 낯익은 박수근, 이중섭, 장욱진, 김기창, 최영림, 박고석, 변종하, 임직순, 이대원, 김흥수, 권옥연, 문학진, 천경자, 서세옥, 김창열, 박서보, 정상화, 이우환, 김종학, 도상봉 등의 원작을 볼 수 있다.

▲ 박수근 작품 '젖먹이는 아내' 1960년대 캔버스에 유화 45.5×38cm. 모성을 따뜻하고 정겹게 그리고 있다
ⓒ 갤러리현대
박수근의 아낙과 고목 예찬, 그 속에 담긴 놀라운 힘

화강암에 새겨놓은 조각품 같은 박수근 그림은 어디서나 눈에 띈다. 그는 왜 '아낙과 고목'을 즐겨 그렸을까 그 이유가 궁금해진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살림'의 상징인 아낙이나, '신목(神木)'이라 불리기도 하는 고목이나 다 일상에 시달리는 이웃들에게 위로와 휴식을 주는 수호신령이 아닌가.

2층 전시실에 전시된 박수근의 '젖먹이는 아내'도 그런 풍의 그림이다. 고단하고 누추한 일상 속에서도 온몸을 내어주며 아이를 키우는 아낙의 위대한 힘을 보여준다. 50~60년대 가난하지만 따뜻한 인정이 흘러 넘쳤던 그 시대 서민들 그 모습 그대로를 엿볼 수 있다.

이런 풍경은 거꾸로 신자유주의니 무한 경쟁이니, 양극화 시대니 하는 요즘에 놀라운 위력을 발휘한다. 경제적인 것 밖에 보상 받을 수 없는 현대인에게 이런 그림은 큰 위로와 용기를 주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그의 그림 값은 경제적으로나 미술적으로나 높아질 수밖에 없다.

▲ 갤러리현대 3층 전시실. 단순하고 절제된 그림 배치로 고급스러운 분위기와 품격을 보인다. 조명도 자제하여 그림 감상하는 데만 집중하도록 배려하였다
ⓒ 갤러리현대
한국 화단의 인고 시절, 묵묵히 지켜온 문화 사업가

미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갤러리현대의 박명자 대표를 익히 알 것이다. 20대 반도호텔 화랑과 인연을 맺은 후, 일반 사업보다 몇 곱절 어려울 수 있는 미술계에 뛰어들어 안착하였다. 그녀는 사업성공 이상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그림에 대한 좋은 추억을 가진 사람은 천년을 사는 것보다 더 오래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갤러리에 서 있으면 구석구석에서 박명자 대표만의 독특한 체취와 취향이 느낄 수 있다. 전시장도 그렇고 아트숍도 그렇지만 이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숭고한 단순미라 할 수 있다. 거기다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더한다. 조명도 최대로 절제하고 그림을 감상하는데만 집중하도록 배려한다.

▲ 아트 쇼핑센터. 주로 그림과 관련된 문화 상품을 판다. 이런 즐거움을 가벼운 마음으로 돈을 주고 사 볼 일이다
ⓒ 갤러리현대
아늑한 아트 가게 배치도 예사롭지 않다. 김창열의 '물방울'이나 이만익의 한국적 이미지와 설화 원형을 담은 그림도 그것이 복제품일진대 원그림이 가지고 있는 힘은 고스란히 관람객에게 전달되게 한다.

▲ 장욱진의 작품을 복제한 아트 포스터가 즐비하다. 전시장 입구에는 이런 한국 대가들의 포스터가 할인 판매되고 있다
ⓒ 갤러리현대
평화로운 세상을 담은 복제품이 갤러리 입구에 그득하고

장욱진의 평화로운 세상을 담은 복제품이 갤러리 입구에 그득하고, 주머니 사정에 따라서 미술을 즐기게 하기 위해서 관람객들에게 아트포스터도 1~2만원에 팔고 있다. 집집마다 이런 그림 한 점을 거실에 하나씩 걸어놓으면 집 분위기가 확 달라질 것이다.

사진에서 보듯 한 여자가 이중섭의 1950년 대표작 '가족'에 심취하여 바라보고 있다. 마치 그림에게 말을 걸며 대화를 청하는 듯 말이다. 그림이 마치 연인이라도 되는 듯 그렇게 거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 이중섭의 1950년 작 '가족'에 심취하여 여성 관람객. 그림에게 말을 걸며 그림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는 것 같다. 왼쪽에 보이는 그림은 역시 이중섭의 1953년 작품 '길'
ⓒ 갤러리현대
그림은 보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그녀는 지금 그림에서 달콤한 속삭임 같은 것을 듣고 있는지 모른다. 작가가 그림을 그릴 때 떠오르는 그 영감과 그때 맛보는 뿌듯한 감동을 이 여자도 소통하며 공유하고 있는지 모른다.

하긴 이런 취향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으리다. 마치 기관차가 움직이기 위해서는 이에 따르는 부수적 많은 여건이 구비되어야 하듯 미술 감상도 다리품을 많이 팔아야 하고 미적 감각과 안목을 키워야 하며 다양한 교양과 체험도 쌓아야 한다. 그러나 일반 어느 단계에 오르면 평생 삶과 예술을 감상할 줄 아는 행복한 사람이 된다.

▲ 천경자의 '꽃을 든 여인' 1981 종이에 페인팅 47×43cm. 여성적인 것을 아끼고 사랑한 천경자라 그런지 여성만이 연출할 수 있는 환상적 색감과 풍경을 잘 묘사하고 있다. 노란색 바탕에 빨간색 꽃이 잘 어울린다
ⓒ 갤러리현대
'꽃을 든 여인'의 정령과 환상에 빠지다

천경자의 '꽃을 든 여인'은 70년대 대표작 '길례언니' 보다 왠지 성숙하고 충일해 보인다. 천경자는 강한 자의식과 여성애에 집착하며 도발적인 색감을 드러내고 있다. 라캉이 말하는 대쾌(大快, 주이상스)의 경지, 욕망의 변증법을 이미 터득한 선각적인 면모를 보인다. 환상적 파란과 색채의 착란을 일으키며 사람들을 끊임없이 유혹한다.

거의 30년 이상 물방울을 그려온 김창열 그림을 아래층 전시장에 만난다. 그는 동양적 세계관을 그림에 심고 있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물의 이미지를 최상의 선으로 비유해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김창열 화백은 변함없이 물을 최고의 미적 대상으로 삼고 있다.

▲ 김창열의 '물방울' 2003 삼(hemp) 캔버스에 유화 162.2×103.3cm 최고선을 상징하는 물방울을 그림 문자 속에 담으려 하나보다
ⓒ 갤러리현대
김창열은 1988년 동경화랑 개인전 도록에 이렇게 적고 있다.

"물방울을 그리는 행위는 모든 것을 물방울 속에 용해시키고 투명하게 '무(無)'로 되돌려 보내기 위한 행위다. 분노도 불안도 공포도 모든 것을 '허(虛)'로 돌릴 때 우리들은 평안과 평화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의 그림 앞에 서면 왠지 숙연해진다. 물을 매개로 삶과 인간에 대해 깊이 성찰하게 된다. 천상병은 "푸른 것은 푸른 것만이 아니다"라고 했지만 물방울은 단지 물방울만이 아니라 그 속에는 생명과 우주만물의 온갖 원리가 포함되어 있는 듯하다.

자유가 없다고 수없이 외치다 보면 물방울이 바위를 뚫듯

아래층에는 또한 박서보의 낙서 같은 추상화가 걸려있다. 작품은 상당히 큰데 '필적(Écriture)'이라는 작품은 인생의 많은 흔적들이 옮겨놓은 것 같다.

▲ 박서보의 '에크리튀르(필적)' 삼(hemp) 옷감에 필적 227×181cm 그림 앞에서 한참 그림을 소재로 이야기꽃을 피우는 부부의 모습도 정겹고 아름답다
ⓒ 갤러리현대
그는 이런 무상의 필적을 반복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나는 끝없는 행위의 반복 속에서 나의 해체를 단행한다. 살을 여미는 듯한 아픔, 그것은 극기의 시련이다. 행위는 반복구조를 타고 때로는 호흡을 죽이며 절제된 혹은 금욕적인 세계를, 때로는 자유분방한 세계를 노닌다."


박서보는 우직한 반복 속에서 기적의 순간을 포착하려 하고 있다. 마치 김수영이 자유가 없다고 수없이 외치다 보면 물방울이 바위를 뚫듯 자유의 기적처럼 온다고 하는 것처럼 그는 1~2년이 아니라 10년 아니 20년 혹은 그 이상 긴 세월 동안 필적이 그림이 될 때까지 계속 반복한다.

이 그림도 아름답지만 위의 사진에서 보듯 노부부가 이런 난해한 작품을 앞에 두고 이야기꽃을 피우며 부부의 연을 맺고 있으니 이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 그림인가. 그림을 매개로 부부가 상통을 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통하지 않겠는가!

▲ 갤러리현대'를 건너편에 찍은 사진. 다양한 직사각형의 변조는 선과 면으로 그린 몬드리안의 추상화를 연상시킨다
ⓒ 김형순
슬라이드 라이브러리로 고품격 미술 감상을

홈페이지의 미덕이 많지만 갤러리현대만 할까! 참으로 유익한 명화 감상 슬라이드 라이브러리(Slide Library)가 있어 좋다. 한국 근현대작가 50여명의 작품 1000점을 감상할 수 있다. 아직도 미술 감상 접근에 공포를 가진 사람이라도 여기와 와서 한국명화를 즐겨볼 일이다. 이런 것이 인터넷 시대의 커다란 문화 혜택 아닌가.

'갤러리현대' 건물을 얼핏 보면 평범해 보여도 조금 떨어져 거리를 두고 보면 이 건물에 담긴 미적 미덕을 발견할 수 있다. 선과 면으로 된 몬드리안 그림을 연상케 한다. 여러 형태의 사각형들, 가운데 구멍이 난 사각형, 구멍이 없는 사각형 그리고 아예 아래까지 펑 뚫린 사각형 등이 어울려내는 멋진 합주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갤러리 현대 슬라이드 라이브러리http://www.galleryhyundai.com/korean_1/sub_slide/main.htm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