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5.10 13:36최종 업데이트 24.05.10 13:36
  • 본문듣기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열린 '윤석열정부 2년 국민보고 및 기자회견'에 입장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 세상 위에 내가 있고 / 나를 사랑해 주는 나의 사람들과 / 나의 길을 가고 싶어 가고 싶어 / 많이 힘들고 외로웠지 / 그건 연습일 뿐야 / 넘어지진 않을 거야 / 나는 문제 없어" - 황규영, '나는 문제 없어'

취임 2주년을 맞는 윤석열 대통령의 '국민 보고'를 요약하라면 1993년에 발표된 황규영의 노래 '나는 문제 없어'로 대신할 만하다. 총선 대패 이후 나온 대통령의 반응, 즉 자신은 문제가 없는데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 오해를 사고 있다는 인식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1부 격인 국민 보고에서 윤 대통령은 민간 주도 성장, 국가채무 관리, 규제 혁파, 일자리 창출, 부동산 시장 정상화, 세일즈 외교, 원전·방산·K-콘텐츠 수출을 위한 자신의 노력을 나열한 뒤, 핵 기반 안보동맹, 한·미 첨단기술동맹, 사회적 약자 보호, 서비스 복지 확대, 청년 지원, 국가균형발전, 노사 법치주의 확립, 퍼블릭 케어, 첨단산업 기반 강화, 원전 생태계 복원, 의료 개혁 추진 등 셀 수 없는 성과를 자찬했다.

전부 사실이라면 정말 2년 동안 한 일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멋진 성과이며 이미 '위대한 대통령' 반열에 오를 만하다. 게다가 겸손하기까지 하다. 2년 동안 대통령과 정부는 시급한 민생정책에 힘을 쏟고 우리 사회 개혁에 매진했지만, 힘과 노력이 부족했다고 평가한다. 그리고 곳곳에서 우리 경제 회복의 청신호가 들려오고 있다고 환호한 뒤, 저출생대응기획부 신설, 서민과 중산층 중심 시대의 비전을 제시했다.

이렇듯 '국민 보고'는 대통령이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들과 자신의 길을 가고 싶다는 의지로 점철됐다. 물론 그동안 많이 힘들고 외로웠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 결심한다. 넘어지진 않겠다고. 자신은 문제가 없으니까.

소통 강조하면서 의혹 핵심은 회피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윤석열정부 2년 국민보고 및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국민 보고에서 이어진 기자회견에서도 달리 특별한 이야기는 없었다. 일부 언론은 김건희 여사에 대한 첫 사과에 의미를 부여하는 모양이지만, 이것도 해석하기 나름이다. '현명하지 못한 처신'이라는 표현에는 무엇이 현명하지 못한 처신인지가 빠져 있다. 어쨌든 국민이 걱정했으니 사과한다는 것인지, 아내의 분명한 잘못에 대해 사과한다는 것인지 여전히 모호하다.

김건희 여사에 대해서는 물론 채 상병에 대한 특검까지 거부권 행사 입장을 밝히면서도, 막상 대통령이 답할 수 있는 문제는 회피했다. 민정수석을 임명하며 "내 사법 리스크가 있다면 내가 설명하고 풀어야" 한다고 말했던 윤 대통령이라면, 특검이 제기되고 있는 의혹에 대해 정확한 사실관계를 밝혔어야 했다.

더구나 의혹의 핵심에 대통령 자신이 있지 않은가?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사실을 인지했는지, 국방부 장관에게 했다는 그 '격노'에 수사 지시가 포함되어 있었는지를 '설명하고 풀면' 될 일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자신의 언급이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수사 결과를 지켜보자'고 얼렁뚱땅 넘어갔다. 마치 남일 말하듯 유체 이탈 화법을 구사한 것이다. 자신이 위법적 수사 지시를 한 적이 없는데도, 검찰과 공수처가 위법적으로 수사를 지시했다고 결론 내리면 수용이라도 하겠다는 것인가? 의혹 당사자가 침묵하는데, '결과를 지켜보자'는 말에 신뢰를 보낼 국민이 몇이나 되겠는가?

정치, 외교·안보, 경제, 사회 분야로 나눠 진행된 기자회견의 20개의 문답 역시, 대부분 두루뭉술하거나 하나 마나 한 이야기로 가득 찼다. 그나마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충분히 신뢰"하고 양국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한 "마음의 자세가 충분히 있다는 것을 서로 잘 알고 있는" 사이라고 확신 있게 답해, 둘 사이의 애틋한 우정을 확인할 수 있었을 뿐이다.

답답한 건 국민이다
 

서울 용산역 로비에 마련된 텔레비전에 '윤석열정부 2년 국민보고 및 기자회견'이 생중계되고 있다. ⓒ 이정민

 
총선 이후 국정 변화의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던 국민 보고와 기자회견은 변화를 감지하거나 새로운 메시지를 느끼기엔 역부족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민심을 돌리려는 화끈한 결단이나 승부수도 없었다.

외려 총선 패배의 원인을 소통 문제에서 찾는 모습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언론에 대한 검찰 수사와 방송통신위원회·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를 통한 언론 장악이 더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더 커졌을 뿐이다. 윤 대통령은 총선 패배의 원인을 묻는 질문에 답하며 "정부 정책과 이런 것을 국민에게 설명해 드리고 소통하는 것이 많이 부족했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라고 밝혔다.

이런 인식에 보조를 같이 하듯, 방심위는 정부 비판 언론에 중징계를 남발하고 있다. 방심위 산하 선거방송심의위원회는 이번 총선에서 역대 가장 숫자가 많고 가장 수위가 높은 법정 제재를 가했다. 국정운영 기조가 아니라 언론을 통제해 민심을 바꾸는 것이 빠르고 편하다는 계산이라는 의구심이 드는 것은 과민한 반응인가?

또한 지금 정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영수 회담 비선 논란에 대해서는 대통령의 언급도 기자의 질문도 없었다. 다만, 총선 직후 총리·비서실장 인선 논란이나 최근의 비선 논란에서 나오는 여러 메시지를 볼 때, 협치에 대한 의지는 확실히 있어 보인다. 자신의 업적을 만들어 줄 저출생 대책, 연금 개혁, 의료 개혁은 야당의 협조 없이는 성과를 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을 향한 특검법을 요구하는 야권에 거부권으로 맞서면서 원활한 협치가 진행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여권에서 급격히 친윤과 반윤으로 재편될 징후를 보이고 있다. 대통령이 여당에 힘을 실어주는 대신, 자신의 업적을 위해 야당과의 협치에 매달릴 수 있다는 가능성이 계속 커진다면, 여권 내 반윤 세력의 목소리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대통령은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 대한 질문에 원론적인 답변만 내놓았지만, 뉘앙스를 보면 여전히 갈등이 진행 중인 것으로 보인다. 당장 당내 반윤 핵심인 유승민 전 의원도 이번 기자회견을 "갑갑하고 답답했다"고 총평했다. 물론 성공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야당과의 협치 의지가 커질수록 여당 내 반윤 세력의 입지가 커지며 여권이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어쨌거나 답답한 건 국민이다. 2년의 국정운영을 총선으로 심판했건만, 문제는 답안지를 이해 못 한 채점자의 이해력이라는 주장 앞에 재시험이라도 쳐야 하는가? 아니면 '나는 문제 없어'를 노래처럼 반복하는 상황에서, 김건모의 '핑계'라도 불러줘야 하는가?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그 얘기로 / 넌 핑계를 대고 있어 / 내게 그런 핑계를 대지마 / 입장 바꿔 생각을 해봐 / 니가 지금 나라면 넌 웃을 수 있니" - 김건모, '핑계'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