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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10주년을 맞아 많은 책이 나왔지만, 이 책은 좀 특별하다. 세월호 유가족이나 생존자의 목소리를 담은 책은 많지만, 참사의 또 다른 당사자인 해양경찰(해경)의 목소리를 담은 책은 흔치 않다. 더구나 당시 해경의 최종 책임자로 여러 차례 재판을 받기도 했던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이 썼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그가 오랜 침묵 끝에 마침내 입을 열어서 하고 싶었던 말이 대체 무엇인지 궁금했다.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일까, 아니면 당시 잘못에 대한 반성과 향후 비슷한 사고를 막기 위한 제안일까? 유가족이나 생존자들의 목소리와는 다른, 세월호 참사를 이해하려면 알아야 할 어떤 진실의 조각이 이 책에 조금이라도 담겨 있을까? 기대와 불안이 뒤섞인 의문을 품고,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잘못은 선장에게 있고, 해경은 할 만큼 했다
  
<세월호 3488일의 기록-바다의 징비록> 표지.
 <세월호 3488일의 기록-바다의 징비록> 표지.
ⓒ 법률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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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핵심 주장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세월호 참사에서 구조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선장에게 있다. 바다라는 공간의 특성상 구조세력이 현장에 도착하기까지 오래 걸리는 데다가, 선체 상황이나 사고의 위험성 등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선장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장은 배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전적인 권한과 책임을 지고 있고, 퇴선조치를 하는 것도 선장의 의무다.

그러나 선장이 퇴선조치를 하지 않고 도주한 시점에서 구조는 사실상 실패했다. 현장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선장의 고유 권한인 퇴선조치를 해경이 하기는 어려웠고, 설령 했어도 이미 배가 많이 기울어진 시점에서 승객들이 자력으로 탈출하기는 힘들었다. 이 책은 선장과 선원이 탈출한 이후에 "내부의 승객들이 아파트 6층 높이의 선박이 60도 이상 기울어진 상태에서 미로 같은 내부를 스스로 헤쳐나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다"(39쪽)고 주장한다.

둘째, 세월호 참사는 지나치게 '정치화'됐다. 그 결과, 무리한 음모론들이 쏟아져 나왔고, 이미 잘못된 것으로 밝혀진 의혹들이 다시 제기되고 수사하는 일도 있었다. 예를 들어 세월호 CCTV 데이터 조작 및 바꿔치기 의혹은 2014년 검찰의 1차 수사에서 이미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지만, 이후에도 똑같은 의혹이 나왔다.

특히 자신과 김수현 서해지방해양경찰청장이 헬기를 사용하는 바람에 임경빈 군의 병원 이송이 늦어져 사망했다는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의 의혹 제기에 대해서는 "심지어 발견된 내용을 감추고, 관계인의 진술을 왜곡시키기까지 했다"(248쪽)라고 비판한다. 실제로 임경빈 군에게 응급조치했던 응급구조사 2명은 임경빈 군의 호흡과 맥락이 없었다고 진술했는데, 사참위는 이를 숨겼다.

이 책은 이를 두고 "마녀 사냥식 여론몰이 앞에 사고원인에 대한 과학과 객관적 사실이 부정되고, 진영에 따라 해석되며,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이용되어 왔다"(247쪽)고 지적한다.

이 두 가지를 합치면 김석균 전 청장이 하고 싶은 말은 다음과 같다. '부분적인 실수나 아쉬움은 있었지만 해경과 정부는 주어진 상황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고, 더 큰 문제는 세월호 참사가 지나치게 정치화된 것이었다.' 

김석균이 말하지 않는 것들

김석균 전 청장의 주장에는 분명 일면의 진실이 있다. 그러나 그가 말한 진실은 해경, 정부에게 불리한 사실과 맥락에 대해 침묵함으로써만 성립한다.

우선 구조 실패에서 선장의 책임이 크다는 그의 주장은 옳다. 오히려 그래서 반문해야 한다. 대체 왜 해경은 그렇게 중요한 선장을 찾지 않았을까? 사참위 종합보고서 집필진 등으로 구성된 진실의 힘 세월호 기록팀은 "세월호 참사에서 해경이 저지른 수많은 잘못 가운데 가장 결정적인 하나를 고른다면 선장과 선원을 찾지 않은 것"(<세월호, 다시 쓴 그날의 기록> 599~600쪽)이라며 이렇게 지적한다.
 
문제는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이 하늘로 솟아오르거나 바다로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따로 구명보트를 준비해 도망친 것도 아니었다. 조타실에 모여 있던 그들은 123점에 옮겨 탔다. 현장지휘함 123정, 해경의 손바닥 안에 있었다. … 해경이 끝내 그들을 방치함으로써 '도주'하게 만든 것이다. "상상을 못"한 일을 일어나게 한 게 해경이었다. 선장과 선원들의 도주보다도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어준 해경의 행태가 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_<세월호, 다시 쓴 그날의 기록> 598~599쪽
 
선장과 선원이 도주한 뒤로는 승객들이 자력으로 탈출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는 주장도 지나친 과장으로 보인다. 배가 많이 기울었기 때문에 이동이 쉽지는 않았겠지만, 자력으로 탈출한 승객도 적지 않았다. 실제로 주체적으로 탈출한 이들이 많았던 일반 승객의 생존율은 70%에 달했던 반면,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방송에 따랐던 학생들의 생존율은 23%에 불과했다. "탈출하지 못했던 승객들 대부분은 안내방송에 따라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화물차 기사 윤길옥)의 말을 뒤집으면, 탈출방송만 했어도 상당수가 생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참위는 9시 50분 이후 승객의 탈출 경로와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검토했는데, 퇴선조치가 시행됐다면 3층 선수 구역 객실, 4층 선수 구역, 4층 중간 구역, 4층 선미 객실 승객의 상당수를 구할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진실의 힘 세월호 기록팀은 "구체적으로 몇 명, 누구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아무리 보수적으로 평가해도, 더 많은 승객을 구할 수 있었다"(<세월호, 다시 쓴 그날의 기록> 777쪽)라고 지적한다.

세월호 참사의 '정치화'에 대한 평가도 지나치게 단선적이다. 비합리적인 음모론들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고, 특히 임경빈 군 사망에 대한 무리한 의혹 제기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애초에 왜 세월호 참사가 왜 이렇게까지 정치화됐는지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 책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유가족들을 만나서 진심으로 위로하고, 때론 눈물을 흘리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유가족들과 시민들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진상 규명을 막으려 했기에 '저렇게까지 감추려 하는 데는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심어줬고, 그 과정에서 세월호 참사가 '정치화'된 측면도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특히 세월호특별법 시행령 폐기를 외친 유가족과 시민들에 대한 폭력적인 진압이 중요한 계기였다.
 
방패로 길을 가로막는 방어적 자세였던 경찰은 이제 적극적으로 최루액과 물대포 같은 무기를 휘둘렀다. 세월호 집회에 최루액 스프레이에 이어 최루액을 섞은 물대포까지 등장하면서 국제앰네스티가 과도한 경찰력 사용을 비판하는 긴급 성명을 발표할 정도였다. … 2015년 4~5월에 걸친 국가의 이러한 대응은 침몰 및 구조 실패와 과도한 탄압을 하나로 연결하는 원인이 있을 것이라는 사고, 참사 이후의 대응만이 아니라 침몰과 구조 과정까지도 의도에 의한 국가 폭력일 수 있다는 사고가 싹트는 토양을 제공했다._<세월호, 우리가 묻지 못한 것> 87쪽
 
요컨대 세월호 참사가 지나치게 '정치화'됐다는 주장은 타당하지만, 어느 한쪽의 책임으로 쉽게 단정 지을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김석균이 타임 루프하지 않는 이유

무엇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실망스러웠던 점은 '어떻게 하면 구할 수 있었을까'를 절박하게 고민한다는 느낌을 별로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가령 나는 <세월호, 다시 쓴 그날의 기록>을 읽을 때는 일종의 타임 루프물을 읽는 기분이었다.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 이번에는 a라는 사건을 바꾸고, 다음에는 b라는 사건을 바꾸면서 끊임없이 다른 결과를 만들어내려고 하는 타임 루프물. 물론 이 책은 일반적인 타임 루프물과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304명이 사망한다는 결과는 물론이고,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자그마한 사건 하나도 바꿀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이 책의 저자들은 끊임없이 상상 속에서 타임 루프를 감행한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희생된 이유가 무엇인지, 어떻게 했어야 단 한 명이라도 더 살 수 있었을지를 알기 위해, 그리하여 다시는 비슷한 참사가 반복되지 않는 길을 찾기 위해 몇 번이고 과거의 그 시간 속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김석균 전 청장은 그런 타임 루프를 시행하지 않는다. 해경이 퇴선조치를 했으면 누군가는 살 수 있었을지를 고민하는 대신 해경이 퇴선조치를 했어도 승객들의 탈출은 거의 불가능했다는 식이다. 진도VTS와 세월호의 교신 내용이 해경 내부에 신속히 전파되지 못한 것은 "초동조치 과정에서 크게 아쉬운 부분의 하나"(20쪽)일 뿐, 통신체계를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찾기 힘들다. 설령 결과를 바꿀 수 없었다고 해도 그때 해경이 하지 못한 일이 무엇인지를 분석하고, 그것을 개선하려는 모색은 거의 없다.

시스템 분야의 안전 전문가인 낸시 리브슨은 "무고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사고는 비극적이다. 그러나 그것으로부터 배우지 않는 것이 더 비극적이다"라고 말했다. 세월호 이후 10년, 해경은 그 참사에서 대체 무엇을 배운 걸까. 비극에서 배우지 못한 해경이 또 다른 비극이 되풀이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 씁쓸하고도 착잡한 질문을 남기는 책이다.

세월호 3,488일의 기록 ‘바다의 징비록’

김석균 (지은이), 법률신문사(2024)


태그:#세월호, #김석균, #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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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15기 인턴기자. 2015.4~2018.9 금속노조 활동가. 2019.12~2024.3 한겨레출판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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