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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벚꽃이 활짝 피었다. 다른 꽃들도 제각기 꽃잎을 연다. 걷다 모퉁이의 꽃을 보고 잠시 멈추고, 다시 걷다 담벼락 구석에 핀 꽃을 보고는 한참을 쪼그려 앉아 들여다본다. 온통 꽃잎으로 뒤덮인 꽃나무 앞에서는 저절로 발길이 멎는다. 한참을 서서 이리저리 훑어본다.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풍경이다. 휴대폰을 꺼내 가지마다에 송이송이 매달린 꽃잎들에 포커스를 맞춘다.
 
공원길을 걷다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벚꽃나무.
▲ 부천 중앙공원 벚꽃 공원길을 걷다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벚꽃나무.
ⓒ 장순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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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하늘을 배경 삼아 찍고 다른 나무들과 어울리도록 찍기도 한다. 때마침 바람에 날리는 하얀 꽃잎이 눈부시다. 바닥도 살핀다. 지난 저녁 비바람에 떨어진 꽃잎들이 점점이 무늬를 만들어 놓았다. 그것도 카메라에 담는다. 이끼와 이름 모르는 풀, 흙을 뚫고 올라온 나무 뿌리와의 조화가 멋들어진 신기한 풍경이다. 

한참을 찍고 일어서서 방향을 잡으면 그제야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모두들 내가 서 있던 방향에서 같은 나무와 같은 꽃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꽃을 보고 그대로 지나치지 못하는 것은 나뿐이 아니다. 꽃을 담는 것인지 추억으로 남을 오늘을 담는 것인지, 모두들 꽃을 향하고 집중한다. 저마다의 이야기는 모두 다르겠지만 예쁜 것을 외면하지 못하는 것은 다르지 않은 듯하다.

문득 노래 제목이 떠올랐다. '엄마의 프로필 사진은 왜 꽃밭일까', 처음 그 제목을 듣자마자 사진 앨범을 열어 보았고 아연했다. 의식하지 못한 사이 나의 사진은 어느새 온통 꽃밭이었다. 그즈음 나의 행동, 길을 가다 멈추고 꽃을 찍고, 가다 멈추고 꽃을 찍는 행동을 반복했던 모습들이 떠올랐다. 모든 꽃들이 유난히 예뻐 보였고 그때마다 찍었는데, 노래 제목을 듣고 사진 앨범까지 확인한 후의 마음은 애매하게 불편했다. 

"여보, 엄마의 프로필 사진은 왜 꽃밭일까? 왜 엄마들은 꽃을 보면 지나치지 못하는 걸까?"
"젊은 시절엔 자신이 꽃이라고 생각하니 꽃의 아름다움이 보이지 않는 거지. 나이 들어 뒤늦게 꽃이 예쁘다는 걸 알게 되는 거야. 그래서 꽃을 찍고 꽃과 함께 찍는 거지. 예쁜 건 옆에 두고 싶으니까."


점잖게 말했지만 나이 들어서 더는 예쁘지 않다는 말이다. 남편의 말이 황당했지만, 또 딱히 부정할 수도 없었다. 이 사람은 진작부터 꽃이 아니었던, 착각 속에 살고 있던 나를 어떻게 대한 것일까 잠시 의문이 들었지만 상처받을까 싶어 묻지는 않았다. 
 
서울식물원 산책로에 수선화길이 조성되어 있다.
▲ 서울식물원 수선화길 서울식물원 산책로에 수선화길이 조성되어 있다.
ⓒ 장순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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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앞에서 발길을 멈추게 된 것이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오래전에도 매일 변하는 나무의 색은 신비로웠지만, 그도 카메라에 담지는 않았었다. 바쁘게 지나는 길에서 키 작은 꽃 하나가 덩그러니 피어있는 것이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시간이 많아졌고 산책 길이 여유로웠고 바쁠 일이 없으니 주변을 살피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작은 꽃에 눈길을 주게 되었던 것 같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의 모습도 자주 포착했다. 주로 나와 같은 연배의 엄마들. 내가 꽃 앞에 서면 그들도 꽃 앞에 섰고, 내가 카메라를 꺼내면 그들도 카메라를 꺼냈다. 그렇게 하나둘씩 사진 앨범에는 이름도 모르는 꽃 사진이 늘어갔고, 사진을 찍는 나를, 서로를 한 앵글에 함께 담아주곤 했던 것이다. 나의 프로필 사진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꽃과 함께인 내 모습은 너무 민낯이었다. 가족들만 볼 수 있게 잠깐 올렸다가는 바로 내리는 것을 반복했다.

우연히 꽃밭에도 다녀왔다. 서울식물원 옆의 산책길이었다. 튤립과 수선화 여러 종이 산책로 곳곳에 심어져 있었고 근처의 주민들과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이나 휴식시간을 이용해 봄꽃을 만끽하고 있었다. 우리도 점심 식사를 마친 후라 그 대열에 합류했다. 

여유를 만끽하려고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었다. '엄마의 프로필 사진은 왜 꽃밭일까', 궁금했던 그 노래를 틀었다. 잔잔하고 서정적인 가사에 담담하게 읊조리듯 노래하는 목소리. 노래를 들으며 꽃밭에 둘러 쌓인 프로필 사진 속 엄마가 되기도 했고, 나의 엄마가 떠오르기도 했다. 마음에 묵직한 것이 올라왔다. 엄마라는 이름의 인생, 가족을 향해 거친 길을 걸어온 그 수고, 사연 많고 다난한 인생의 여정을 노래로 위로하는 듯했다. 
 
심곡천 산책로에 꽃길이 조성되어 있다.
▲ 부천 심곡천 심곡천 산책로에 꽃길이 조성되어 있다.
ⓒ 장순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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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엄마를 얘기하는 것 같기도 했다. '여행을 가는 것도, 옷 한 벌 사는 것도 어색해진 사람', 늘 걱정을 달고 살며 '혼자서는 마음 편히 떠나는 게 전혀 안 되었는 사람', 정말 그랬던 엄마가 떠올랐다. '동네 담벼락 피어있는 꽃들을 보면, 걸음 멈추는 사람', '티브이를 켜고 잠이 들고 티브이 속 이야기에 울고 웃는 사람', 지금의 내 모습도 있었다. 

이 쓸쓸하고 무거운 인생이 엄마라면 마다하고 싶었다. 아직도 많이 남은 앞으로의 삶이 찬란하지는 않아도 매일 잠깐씩은 존재 자체로 눈부시고 싶다. 애잔하고 안쓰러운 그 나이 듦은 부정하고 싶다. 노랫말을 따로 뚝 떼어 놓으면 구구절절 맞는 말이라서 더 서글펐다. 가사 그대로인 나는 너무 속을 들킨 것 같아 짐짓 다르게 보이고 싶어졌다.

다시 꽃밭에 멈췄다. 꽃은 여전히 아름답고 꽃과 함께인 나는 여전히 어색하다. 만들어진 듯한 웃음은 그걸 너무 잘 알기 때문이지 싶다. 생생하고 화사한 꽃과 비교되는 시들한 피부, 주름진 얼굴, 그것이 부끄러워 주춤하는 몸짓이 유쾌하지 않다. 그런 모습이 싫으면서도 어느새 꽃과 나란하게 얼굴을 가져다 댄다.

노랫말의 마지막은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자신을 찾는 '별과 사랑을 했던' 젊은 시절, 그 추억이 그리워 꽃밭을 찾는 나이 든 엄마. 다시 꽃으로 피어날 수 없고 따라오던 별도 사라졌지만, 자식이 커가는 모습에 모든 사랑을 쏟은 엄마의 고백이 따라왔다.

엄마의 고백은 세상 어머니들의 고백이기도 했다. 초록빛 성성하던 시절을 지나 지금은 꽃밭에 쪼그려 앉아 꽃을 보는, 그 꽃을 닮은 자녀를 키워 낸 세상의 엄마들의 이야기, 그 노래를 조용히 들었다.
 
여행을 가는 게 옷 한 벌 사는 게 어색해진 사람.
바삐 지내는 게 걱정을 하는 게 당연해진 사람.
한 번이라도 마음 편히 떠나보는 게 어려운 일이 돼버린 사람.
동네 담벼락 피어있는 꽃들을 보면 아직도 걸음 멈추는 사람.
엄마의 사진엔 꽃밭이 있어 꽃밭 한가운데 엄마가 있어.
그녀의 주변엔 꽃밭이 있어 아름답게 자란 꽃밭이 있어.
티브이를 켜고 잠이 들어버리는 일이 어느새 익숙해진 한 사람.
티브이 속에서 나오는 수많은 얘기에 혼자서 울고 웃는 한 사람.
초록빛 머금은 꽃송이였지. 나를 찾던 별과 사랑을 했지.
그 추억 그리워 꽃밭에 있지.
나는 다시 피어날 수 없지만, 나를 찾던 별도 사라졌지만,
나의 사랑 너의 얼굴에 남아, 너를 안을 때 난 꽃밭에 있어. (김진호, '엄마의 프로필 사진은 왜 꽃밭일까')

아직 봄이다. 여전히 길가의 꽃들은 어떤 컬러 사진보다 더 선명한 빛을 내뿜는다. 카메라에 수선화를 담고 조팝꽃을 담는다. 수수하면 수수한 대로 정답고, 시들었으면 시든 대로 눈길이 멎는다. 꽃은 나의 나이듦을 전혀 배려하지 않지만, 쿨 하게 인정한다. 꽃을 보며 나의 눈부셨던 순간을 잠깐 떠올릴 수 있는 것으로, 적어도 오늘의 추억을 더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태그:#엄마의 프로필 사진은 왜 꽃밭일까, #봄꽃을 보며, #엄마의 인생, #봄꽃을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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