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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이미 에버하드는 나에게 자신들이 다니는 교회를 보여주었다. 이곳은 규모면에서 작은 시골교회라 예배시간이 바뀐단다. 이유를 들어보니 작은 교회의 경우 정부에서 파견되는 한 목회자가 두세 곳을 돌며 예배를 집도하고 말씀을 전한다고 한다. 그래서 어떤 달엔 9시, 또 어떤 달은 10시가 된단다. 예배 시간을 깜빡하여 예배가 다 끝난 후 10시에 교회에 왔다면 얼른 옆 교회로 가야 한단다. 참 재미있는 시스템이다.

9시 예배 시간은 너무 빨라 아이들을 데리고 갈 수 없었다. 그래도 에버하드 소개로 함께 가는데 눈곱도 깨끗이 없애고 옷도 신경 써서 입는 것이 기본적인 예의임을 감안하면 아이들은 여러 모로 가지 않음이 나은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난 꼭 가보고 싶었고. 결국 나만 에버하드와 구드운과 가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아이들과 남편은 아직 눈곱을 달고 빵을 먹고 있었고 우리 셋은 일사불란하게 식사를 끝내고 차에 올라탔다. 올라타기 직전 물론 눈곱을 깨끗이 제거했을 리 만무한 쭈가 엄마를 따라 교회를 가겠단다. 그래서 넷이 되었다.

학습세례를 받기 전의 여자 아이 둘은 주보를 나눠주는 봉사를 하고 있었지만 그건 세례를 받을 때 필요한 의무를 수행하는 것 같았다. 한국교회와 마찬가지로 주로 여성층이 많았고 외모로 보나 사회적 지위로 보나 에버하드처럼 여러모로 넉넉해 보이는 남자는 없었다. 난 에버하드 친구이고. 어험.

목사님은 거의  시간을 맞춰 교회에 도착했다. 장로급으로 보이는 연로해 뵈는 한 분이 계셨으나 목회자와 함께 입장과 퇴장만 같이 했을 뿐 예배의 모든 순서는 목회자 혼자 담당했다. 사실 한국 교회의  문화와 예배의 모습은 유럽의 그것과는 상당히 다른 것이 당연하다. 유럽에서 종교개혁이 있었고 신구교가 나뉘었고 청교도가 새로운 정착지를 위해 미국으로 왔고 그 후 우리나라로 그것이 들어왔으니 우리의 것은 미국의 그것과 모든 면에서 가장 흡사하다.

목회자와 성도들 간에 서로 주고받는, 문답 형식이 몇 번 있었는데 이는 성당에서 하는 행위와 비슷해보였다. 중얼중얼 하기에 십계명을 외우는가 싶어 얼른 한국어로 십계명을 외우고 있는데 나보다 다 빨리 끝난다. '십계명 외우는 순서가 아니었구나!' 직감했다. 여하튼 나를 이날 십계명을 3번 외웠고 그중 한 번만 끝난 시간이 비스무리했다.

헌금을 안 하는 교회가 대부분이라 했지만 어떤 교회는 헌금을 내기도 한다 했다. 나는 가만히 넋 놓고 있는데 작은 헌금 바구니가 돌았다. 정말 동전만 들어갈 듯 작은 바구니였고 구드운은 내게 자신이 내려고 했던 2유로짜리 동전을 주었다. 저 정도의 돈이라면 누군가에게 밥을 먹으라고 주는 것이나 가능하지 한국처럼 몇 백 억짜리 성전을 짓는 건 불가능하겠다.

구드운이 내 앞에 앉은 여자 세 명은 교회 옆에 있는 병원에서 온 사람임을 알려주었다. 그 병원은 여성을 위한 전문 병원으로 알코올 중독, 청소년마약중독치료를 목적으로 한 국립병원이란다. 들어오기 전 동네를 돌아보며 본 하얀 건물이다. 그런 성격의 한국 병원에선 주로 격리, 수용, 폐쇄 등의 낱말이 떠올랐지만 그곳은 전혀 그런 느낌이 없었다. 현대적인 감각의 개방적이고 자연친화적인 느낌의 병원 건물은 그냥 유명 어느 병원이 고급스런 환자들의 눈높이를 맞추고자 외곽에 신경 써서 지은 그런 느낌이었다.

두 여자는 머리를 짧게 잘랐고 기름기가 도는 것으로 보아 머리를 감은 지 며칠 된 듯했다. 한 여자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살랑거리는 반팔 블라우스에 머플러를 둘렀는데 그 색감이 정말 화사해서 그녀의 고통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구드운이 공산체제에서 40년 인생을 보낸 사람이라 그런지 알코올과 약물 중독자에 대한 판단에 어떤 여지도 느껴지지 않는 단호함이 있었다. 그런 구드운에겐 미안하지만 난 곧장 알코올 중독, 마약중독자에 대한 이웃과 사회의 책임에 대해 언급했다.

난 알고 있다. 지금은 술에 절어 살고 있을 그녀지만 한때 그녀의 젊음이 얼마나 싱그럽고 아름다웠는지, 그녀의 사랑스러운 도도함에 여러 남자의 가슴이 설레었을 때가 있었음을, 혼자서 견뎌내기 힘든 외부적 압박과 괴로움을 술이 없인 견뎌내지 못할 만큼 독하지 못한 그녀였음을 알기에 구드운의 그 단호한 표정을 나 또한 지을 수 없었다.

목회자는 순한 인상이었다. 안경을 끼었고 혈색이 밝았고 머리는 짧았다. 정말 편한 인상이었지만 예배 중, 예배가 끝나고 나가며 인사를 할 때도 그로부터 사람에 대한 애착이나 정겨움이 찐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얼른 성도들과 인사를 마치고 옆 동네로 가서 똑같은 예배를 들여야 하기에 마음의 여유가 없어 보였다. 

교회의 좌석은 마치 오페라 극장처럼 층으로 나뉘어 있는데 구드운의 교회는 아주 작은 3층 규모였다. 구드운의 교회는 아니었고 투흐나우 동네에 있는 교회엔 2층에 박스석이 있었는데 그건 듀크 가문 사람들을 위한 좌석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좌석에서 나와 길 건너 성으로 곧장 걸어갈 수 있도록 도로를 가로지르는 '하늘 다리'가 있단다. 평등을 말하면서도 교묘하게 불평등을 조장하는 곳이 교회일 수 있는데 투흐나우 교회는 너무 노골적이었다. 마치 그것이 당연한 듯. 

 사진을 즐겨 찍지 않는 나이기에 혼자 갔던 독일 교회 사진은 없다. 이 사진은 전 날 동네를 둘러볼 때 찍었던 투흐나우 교회 사진이다. 바로 저 위 박스석이 부잣집 듀크 가문만 앉아 예배 볼 수 있는 곳이다.
 사진을 즐겨 찍지 않는 나이기에 혼자 갔던 독일 교회 사진은 없다. 이 사진은 전 날 동네를 둘러볼 때 찍었던 투흐나우 교회 사진이다. 바로 저 위 박스석이 부잣집 듀크 가문만 앉아 예배 볼 수 있는 곳이다.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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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목회자와 성도들 간의 애착 관계는 상당히 가깝다. 특히 내가 다니는 작은 교회는 더욱 그러하다.  가끔 성도들이 귀찮아하고 부담스러워할 정도의 것까지 알고 싶어 하고 함께 해결하고 싶어 한다. 바쁜 현대인의 일상 속에서 자발적으로 인간소외를 택하는 사람들에게 그와 같은 관심이 많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기쁨과 고통도 함께 나눌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은 독일의 교회도 그리 좋아 보이진 않는다.

나는 자유분방한 기독교인으로서 한국 여러 교회에서 성도들에게 자행되는 크고 작은 공갈협박은 다 무시한다 치더라도 딱 하나 신앙, 신념으로 평생 실천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그건 바로 '사랑'이다. 그런데 독일의 시골 평범한 작은 교회에선 성도 간에도 목회자와 성도 간에도 내가 받아온 사랑과 관심이란 것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곳이 사랑의 온기가 느껴져야 하는 교회가 맞나?" 하는 마음이 들어 안타까웠다.

구드운이 말해주었다. 오늘 설교의 핵심은 '겸손'이었단다. 이민자가 급증하는 독일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단 독일인에게 타문화를 존중하며 수용할 것을 강조하는 것 같다. 공무원과 비슷한 목회자의 직위 때문인가 정부 정책을 대변하는 느낌이 든다. 아마도 많은 목회자가 오늘 이 시간 다른 교회에서도 이와 같은 설교를 하지 않을까 싶다.

생활적인 안정을 보장받은 대신 각기 다른  영성을 기반으로 한 영감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전하지 못하는 독일 목회자가 그리 좋아보이진 않는다. 이렇게 말하면 그렇지만 우리나라로 따지면 여하튼 교회에서 똑같이 '4대강 사업'이란 국가 정책을 옹호하는 설교를 할 수도 있단 뜻인데 글쎄 이건 세뇌교육이랑 뭐가 다른지. 

부부도 나처럼 이런 생각을 수없이 했겠지. 그럼에도 그들이 더 나은 세상, 자유를 위해 동독을 떠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종교적인 힘이었고 그들은 그것을 잊지 않고 있다. 낯선 동양인에게까지 흔쾌히 자신들의 영역을 내어주며 관용과 겸손을 실천하고 있음에도 옛날을 기억하기에 오늘도 변함없이 이 자리에 앉아 관용과 겸손에 대한 말씀을 들으며 자신을 돌아보며 생활 속에서 이를 실천하고자 다짐하고 다짐할 것이다.

부단한 의식적 노력을 통해 초심을 잃지 않는 것. 참 숭고하고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진정한 영성이 아닐까 생각한다.


#리씨네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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