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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의료원 사태를 야기하고 있는 홍준표 경남도지사의 '몽니'가 길어지자 야당은 물론이고 정부 여당과 청와대까지 나서 신중론을 펴는 등 폐업불가론이 대세를 이루었다. 하지만 실제 해법을 놓고는 "진주의료원을 살리기 위해 직원들이 희생하라"는 상반된 주장이 솔솔 일고 있다.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노조를 표적으로 삼으면 한국사회 보수층의 박수를 받는' 사회현상을 꿰뚫어보고 있는 노련한 보수 정치인이다. 그래서 진주의료원 폐업 이유를 놓고 '적자누적, 부채누적'이라는 애초 표현에서 '강성 귀족 노조 때문'이라는 공격용어로 급선회했다.

그래서인가. 홍준표 지사와 노조의 대화를 강조하면서 이른바 양비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양측이 사태 해결을 위해 대화를 해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홍준표 지사도 문제이지만 노조도 이번 기회에 뼈를 깍는 마음으로 사태의 원인을 뒤돌아보라는 주문도 나온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우리는 근본문제에 대한 고찰과 개선방향 없이 종사원들에 대한 일방적인 희생만으로 진주의료원 사태가 치유될 것인가에 대해 많은 의문과 고민이 있다.

홍 지사는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500억 원의 정부지원을 요청했다. 그러면서 그는 9일 직원들에게 명예퇴직수당 지급규정에 준하는 위로금을 지급하겠다며 직원들에게 사직을 종용하고 나섰다. 그러는 한편 같은 도 소속 마산의료원과 진료수익을 비교하였다. 마산의료원은 대학병원에 위탁 중인 관계로 진주의료원보다 1환자당 수익이 5만 원 이상 많다. 이는 결국 의료원 운영상 어려움의 책임을 직원들과 지역주민들에게 전가하는 모양새 아닌가?

공공병원의 적자, 지역 주민에겐 그만큼의 '혜택'

지방의료원 운영에 있어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책임전가는 비단 홍준표 지사만이 아니다. 지난해 말 남원의료원 노사의 한 달간 파업으로 홍역을 치루었던 김완주 전북도지사도 직원들과 지역주민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남원의료원 정석구 원장은 2010년 취임사에서 "자신은 전북도지사의 구조조정 명령을 받고 부임했다"고 직원들에게 실토한 바 있다. 실제 정 원장은 취임하자마자 명예퇴직과 조기퇴직을 공고하기도 했다. 당시 아무도 지원하는 직원이 없자 그는 이후 "1년에 1000만 원만 줘도 남원의료원에 들어올 사람은 많다"고 겁박하며 호기를 부렸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수익을 높이라고 연일 직원들을 몰아붙였다.

결국 남원의료원 노사는 지난해 12월 충돌했고 의료원장은 노조가 파업을 돌입하기 일주일 전부터 입원환자 절반 이상을 강제로 퇴원시키는 이른바 사용자 파업을 벌이면서 극심한 파국을 연출했다. 이런 면에서 홍준표 지사와 정석구 원장은 닮은 꼴이다. 정석구 원장은 이에 그치지 않고 지난 3월 13일 노조에게 단체협약 해지통보를 해놓은 상태다. 이는 지난해 12월에 이어 두 번째다. 노조는 이에 대해 또 다른 투쟁을 준비 중이다.

경상남도 홍준표지사와 전라북도 김완주지사가 지방의료원을 바라보는 시각은 표면상 형태는 다르지만 내용은 같다. 두 지자체장들의 주장의 골자는 인건비를 낮추든지 진료비를 높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주장이 지방의료원에 그대로 관철될 경우를 살펴보자.

지방의료원은 민간병원들이 기피하거나 수행하기 곤란한 공익적 사업을 많이 수행한다. 응급센터, 중환자실, 분만실, 공공의료팀, 호스피스병동 운영 등이 대표적인 사업들이다. 이로 인해 남원의료원의 경우 보건복지부 추산 매년 37억 원씩이나 손해를 보고 있으며 진주의료원의 손해액도 남원의료원에 버금간다. 이는 곧 지역주민들에게 그만큼 혜택을 주고 있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지자체장들의 주장대로 지방의료원을 민간형으로 운영할 경우에도 지역주민들에 대한 혜택이 가능할까. 절대 그렇지 않다. 민간부문 어느 누가 수 십억 원씩이나 손해를 감수하면서 공공의료사업을 수행할 수 있을까. 기실 지자체장들의 의도대로 지방의료원이 민간병원 체계로 변신할 경우 지역주민들과 직원들의 피해가 극심해질 것은 자명한 일이다. 특히 의료비 폭등, 공익적 사업 폐쇄 등 지역주민들에게 돌아가는 피해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하다 할 것이다.

초임 월 140만 원... 경력자 많아야 양질의 의료서비스 가능

지자체장들이 문제로 삼는 지방의료원 인건비도 한번 살펴보자. 지방의료원에 의사를 채용할 때 웬만큼 공을 들이지 않고는 쉽지 않다는 것이 지방의료원 원장들의 대체적인 고민이다. 일이 많아 고되면서도 보람도 찾기 어려운 지방의료원에 의사들이 지원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게다. 그래서 인건비 예산이 많이 든다. 전체 지방의료원 인건비의 약 50%를 점한다.

대신 사용자들은 일반 직원들의 인건비를 줄여서 그 비용을 벌충하려 한다. 그래서 일반 직원들은 항상 불만이고 노사관계는 불안정하다. 일반 직원들의 급여는 그리 많지도 않다. 일반 직원들은 공무원 급여표를 적용받고 있으나 실제 지급받는 급여는 공무원들의 70%에 불과하다.

1직급 하향(공무원 10급 → 의료원 9급)된 직급을 부여받고 있으며 그나마 직급과 호봉에 따라 지급율이 다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진주의료원과 남원의료원의 경우 2008년 기본급표를 적용받고 있어 기본급표가 5년씩이나 동결된 상태이니 다른 의료원보다 처우가 더 열악하다.

그런데 지자체장들의 주장대로 일반 직원 인건비를 더 줄이고 고령자를 퇴출시키며, 근무인원을 줄여 운영해도 현재의 지방의료원이 제대로 돌아갈까? 결론부터 말하면 절대로 가능하지 않다.

이것저것 떼고 손에 쥔 초임 임금은 월 140만 원 정도에 불과하다. 민간 비슷한 규모의 병원들보다 일은 고되고 임금은 턱없이 낮은 것이다. 남원의료원의 경우 직원들은 한 달에 10일을 야간근무하고, 어떤 부서는 1회당 24시간씩 한 달에 10일 이상 당직을 서고 있다. 간호사 2~3명이 80~90명의 환자를 돌볼 정도로 인력부족이 심각하다. "얼굴이 떠 있다" "밥은 먹고 일하냐"며 환자들이 되레 간호사를 걱정할 정도로 장시간 노동, 인력부족 문제는 심각하다.

지자체장들이 구조조정해야 한다며 문제로 삼는 경력자들도 한번 살펴보자. 경력자들은 지방의료원 서비스에 있어 중간 허리에 해당한다. 사실 대형병원 인턴 레지던트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지방의료원은 의사들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렇게 운영할 수밖에 없다. 그들을 제외해 놓고 어떻게 의료원을 운영하겠다는 말인가?

다른 측면에서는 고숙련노동자가 많고,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다고 봐야 되지 않겠는가? 지방의료원에서 제공하는 서비스의 난이도의 경우 같은 규모 민간 병원급 평균보다는 높다는 사실이 그것을 잘 증명해준다.

공공병원은 '공익사업'... 공적부조 정신으로 문제 풀어야

상황이 이러한데도 지자체장들은 수익성만을 항상 강조해왔다. 급기야 진주의료원을 폐쇄하겠다고도 했다. 그들의 주장은 결국 국민건강권과 지방의료원 운영에 대한 기본 지식과 철학이 결여된 결과라고 우리는 본다. 그들의 주장대로 수익성만을 추구할 경우 종국에는 민간병원과 별반 다를 바 없으므로 그것 또한 폐업의 빌미가 되지 않겠는가?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은 비용의 문제인데 지방의료원의 공익적 사업을 누가 어떤 단위에서 책임지고 진행해야 하는가를 정리해야 한다. 지금까지 중앙정부는 지방자치단체에 그 책임을 전가하고 지방자치단체는 지방의료원에게 전가하는 구조였다. 그래서 지금 진주·남원의료원 같은 사태도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떠한 방법이 해법이 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남원의료원 운영을 위해 10억 원이 부족하다고 치자. 이를 환자수입 증대와 직원들의 희생에 의한 비용절감으로 마련하건, 아니면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의 재원으로 마련하건 전 사회적으로는 결국 동일하다. 다만, 그 재원을 환자와 직원의 개인적 부담으로 해결할 것인지, 아니면 국민들이 낸 세금이라는 공적 부담으로 해결할 것인지의 차이가 있을 따름이다.

그런데 이를 지방의료원을 이용하는 환자나 지방의료원 종사자인 직원들의 희생으로 해결하는 경우 수혜자 부담의 원칙에 맞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의료원은 운영에 있어 '수익성'을 추구하여야 하므로 의료서비스의 질이 저하되고, 의료비 부담능력이 취약한 저소득계층의 의료이용에 장애가 발생한다는 점에서 '공공성'을 훼손하게 된다.

당연히 사회적 안전망으로서의 의료원의 역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지방의료원의 지속성도 담보하기 어렵다. 그렇게 하는 것은 언제 또 다시 진주·남원의료원 사태가 재연될지 모르는 근시안적 처방이다.

그래서 국가 책임을 높여야 한다. 지방의료원을 육성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구조조정과 수익창출이 아니라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세금투입과 예산확보로 해결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지속될 수 있도록 법제화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바로 국민건강권 문제를 전 국민들이 함께 책임지는 공적부조 정신이며 사회 공동체 정신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정책위원이자 남원의료원지부 부지부장입니다.



#지방의료원#남원의료원#진주의료원#김완주#홍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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