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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정동영이 있어 얼마나 다행이야."

 

요즘 자주 듣는 말이다. 희망버스를 타고 김진숙을 응원하고 온 사람들이 다 그렇게 말하고, 복지후진국을 벗어나 보려고 동분서주하는 사람들이 다 그렇게 말한다. 5년 가까이 저 망국적인 한미FTA 막아 내고자 간난신고를 마다하지 않은 사람들도 다 그렇게 말한다.

 

정동영이 없었으면 김진숙이 얼마나 외로웠을까. 아직 말뿐이지만 복지는 과연 이만큼이라도 시대정신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을까. 정치권이 한미FTA를 이 정도라도 다루어 주었을까. 물음이 끊이질 않는다.

 

부산 영도다리앞 높은 곳에 사는 김진숙을 위로하고 온 사람들이 그런다. 처음 정동영이 왔을 때는 다들 욕했다. 그 다음에 왔을 때는 누가 왔나 데면데면 했다고 한다. 그 다음에 또 오니까 말문이 트였고, 그러고 나서 또 오니까 반갑게 인사를 하고, 그러고 나서 또 또 오니깐 믿음이 생겼고, 그러고 나서 또 또 또 오니까 찾기 시작하더라도. 해서 그렇게 정동영은 희망버스에 오른 사람들의 친구가 되었다.

 

"정동영 같은 정치인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진보화' 됐음 한다"

 

지난 대선 정동영이 대선 후보 시절, 나도 지인들의 '부탁반 요청반'식으로 한미FTA에 관한 정책제안을 그 쪽 선거캠프에 보낸 적이 있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그러고 나서 감감무소식이었다. 기분이 좋았을 리 없고, 또 안타깝기도 했다. 그런 그가 고향에서 출마해 국회로 되돌아 왔을 때 나도 세상 사람들이 보듯 그렇게 그를 보았다.

 

작년 한미FTA 재협상을 앞두고 정책자문 겸 제안을 위해 그를 만났을 때도 사실 크게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막상 장이 서고, 한미FTA가 치열한 쟁점이 되자 그는 어느 듯 노동자, 농민들과 중소상인들의 절규를 대신하고 있었다. 확실히 그의 운신은 대통령 후보 '급'이었다. 그러자 언론이 주목하고, 당내에서도 새로운 하나의 흐름이 만들어 졌다.

 

나이 사십이 넘으면 변하는 것보다 죽는 것이 더 빠르다고 한다. 그 만큼 사람이 변하기 쉽지가 않다. 그런데 환갑을 앞둔 남자가 변하기는 이보다 곱절은 어려울 것이다. 지난 정부 '황태자'노릇도 했고, 대통령후보를 지냈고, 집권당의 대표에다 통일부장관을 지낸 사람은 누가 봐도 우리 사회의 기득권층에 속한다.

 

바로 그런 정동영이 '민중의 호민관'을 자처한다면 이것은 분명 이변이다. 하나의 새로운 정치인 모델이 만들어진 것이다. 대개 진보라 하더라고 나이가 들면 모난 곳이 닳기도 하고, 적절히 타협도 하면서 '보수화'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정동영은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이를 놓고 무슨 '정치적 꼼수'가 있을 거라고도 한다. 하지만 나는 정동영같은 정치인이 이런 '꼼수'를 더 많이 부려,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진보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동영의 변신 두고 '종북'·'품격' 운운하는 보수언론들"

 

그런 정동영의 변신을 두고 보수언론에서 짜증과 히스테리가 이만 저만이 아니다. 단단히 골이 난 모양이다. 예의 저 '품격'을 들고 나왔고, 그를 가리켜 '종북'이라고 한다. 이미 잘 알려진 익숙한 화법이다. 심지어 "운동권 신입생이나 노동투사처럼 행동"하고 있다고 말한다. 말이 거칠고, 독하다.

 

하지만 이런 말들 중 그 무엇도, 어정쩡했던 정치인이 뚜렷한 진보가 되면 안되는 그 어떤 이유도 제시하지 못한다. 그저 과거에 이런 말을 했는데 지금은 아니다는 것이 비난의 줄거리다.

 

지금 한창 뜨거운 쟁점인 한미FTA를 보자. 그가 후보시절 한미FTA에 찬성한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정동영은 분명 인정했다. 과거 무엇이 진실인지 잘 몰랐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사과했고 공개적으로 '반성문'도 썼다. 한미FTA를 막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고, 실제 그렇게 실천하고 있다.

 

잘못을 인정하고, 잘못된 현실을 바로 잡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야 말로 정치인의 참된 '품격'에 해당된다고 나는 본다. 그런 의미에서 정동영은 대한민국에서 진정 '품격'있는 그런 정치인 가운데 한 명이다.

덧붙이는 글 | 이해영 기자는 현재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입니다.


태그:#정동영, #중앙일보, #희망버스, #한미F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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