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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오 국회의장님, 안녕하십니까. 지난 6일 국회기자간담회에서 김 의장님께서 헌재결정취지를 기자들에게 전하시면서, "야당은 헌재결정 승복 여부부터 밝히라"고 하셨다는 것과 야당의 국회의장 사퇴요구도 아주 불쾌해 하셨다는 것을 <오마이뉴스>와 <경향신문>을 통해서 보았습니다. 야당의 사퇴 압력에 대해서는 "어떤 협박에도 굴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신 것도 보았습니다.

 

헌법을 전공하는 한 사람으로서, 또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미디어법 헌재결정이 난 후, 헌재 결정의 취지에 따라 김형오 국회의장님께서 결자해지 차원에서 후속조치를 취하실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전혀 그러실 뜻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재판관 5인 취지는 '김형오 의장이 나서라'는 것

 

무엇보다 이렇게 편지를 띄우는 것은 미디어법 헌재결정에 대해 뭔가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입니다. 권한쟁의 심판의 청구인인 민주당마저도 헌재결정취지에 혼선이 있었을 정도이니, 피청구인인 김 의장님 잘못만은 아니겠지요. 그래서입니다. 다시 한 번 잘 판단해 보셨으면 하는 의미에서 기자간담회 등에서 말씀하신 내용들의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첫째, 헌재는 신문법과 방송법 처리 과정에서 일부 하자가 있었으나, 이것이 법 통과 자체를 무효화시킬 만큼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과연 그럴까요. 이렇게 판단한 것은 방송법 가결선포행위와 관련하여 재판관 3인(민형기, 이동흡, 목영준)의 소수의견에 불과합니다.

 

신문법 가결선포행위와 관련하여 재판관 3인(이강국, 이공현, 김종대)의 의견은 기능적 권력분립과 국회의 자율권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권한침해로 야기된 위헌위법상태의 시정은 (헌재가 아니라) 피청구인 김형오 국회의장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 하다거나, 국회에서 해결할 문제라고 하였습니다. 더 적극적으로 재판관 3인(조대현, 송두환, 김희옥)의 의견은 가결선포행위를 무효라고 확인하거나 취소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헌재 재판관 중 3인(소수의견)의 취지는 국회 내지 국회의장 스스로 시정여부를 판단하라는 것이지, 시정하라는 것이 아니다?

 

재판관 2인(이강국, 이공현)은 김형오 국회의장이 스스로 시정하라는 것입니다. 또 재판관 3인(조대현, 송두환, 김희옥)은 위법위헌인 국회의장의 가결선포행위에 대해서 무효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재판관 5인은 위법위헌인 가결선포행위로 의결된 미디어법을 김형오 국회의장이 시정할 '헌법적 의무'가 있다는 것입니다.

 

권한쟁의 심판의 무효 또는 취소의 인용 결정은 재판관 5인 이상이면 됩니다. 사실상 바로 5인 이상의 재판관이 김형오 의장이 시정해야 한다고 못 박고 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소추와 미디어법이 동급이라뇨

 

셋째, 과거 국회가 제소한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에서 '위법은 인정되나 대통령직을 박탈할 만큼은 아니다'고 한 것과 이번 헌재결정은 논리적으로 똑같다?

 

2004년 3월 12일 한나라당 등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서 통과시켰습니다. 주된 이유는 열린 우리당을 위해서 불법선거운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방송과 신문사 인터뷰에서 "열린 우리당이 선거에서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노 대통령이 했다는 것을 문제 삼았습니다.

 

말씀하신대로 헌법재판소는 이 점에 대하여 "대통령직을 박탈할 만큼 노무현 대통령이 법을 어긴 것은 아니다"고 하였습니다.

 

김형오 국회의장님, 정말로 탄핵소추 할 만큼 그것이 큰 위법행위였습니까. 탄핵역풍을 잊으셨습니까. 대다수 국민들 보기에도 탄핵소추는 치졸해 보였습니다. 국민들은 분노했습니다. 그리고 국민들은 국회의원선거로 한나라당을 심판하였습니다.

 

무엇보다 헌재는 이번 미디어법 가결선포 행위는 헌법상의 적법절차 원칙를 침해했다고 보았습니다. 일사부재의 원칙 등 위법도 지적하였습니다. 즉, 미디어법 가결선포행위는 법률뿐만 아니라 헌법도 위반했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김형오 의장님의 말씀을 문제 삼은 것이 아닙니다. 입법부 수장이 위헌위법한 가결선포행위로 국회의원들의 심의표결권을 침해했다는 것입니다.

 

국회에서 국회의장의 주 역할이 무엇입니까. 공정하게 사회를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헌재는 미디어법 가결선포행위시 "표결절차에서의 공정성에 흠결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헌재는 미디어법 유효결정을 한 게 아닙니다

 

넷째, 헌재는 일부 절차 위법만 지적했다? 권한쟁의심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야당이 절차적 문제를 본질인 양 호도하고 있다?

 

헌재는 일부 절차 위법만 지적하고 야당의 권한쟁위심판청구는 인용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가결선포행위에서 나타난 '질의토론절차를 거치지 않은 점, 표결절차에서의 공정성 흠결, 그리고 일사부재의 원칙을 위배한 점'을 들어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이 침해되었다며 민주당 국회의원 등의 권한쟁의심판청구를 받아들였습니다.

 

다만 민주당 등 야당이 부수적으로 청구한 가결선포행위의 무효확인에 대해서 재판관들의 의견이 갈려서 기각하였을 뿐입니다.

 

현재 야당 등이 절차적 문제가 본질인양 호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헌재는 분명히 미디어법 가결선포행위가 위헌위법했다고 결정했습니다. 가결선포행위의 위법위헌은 단순히 절차의 문제가 아니라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이 침해된 것으로 본질적 문제입니다.

 

다섯째, 가결선포행위의 무효확인은 기각했다. 따라서 미디어법은 유효라고 결정했다?

 

헌재는 미디어법은 유효라고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재판관 3인은 가결선포행위 자체가 위법하므로 무효를 확인한다고 했고, 재판관 3인은 위헌위법에 책임이 있는 국회의장 또는 국회가 시정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솔직하게 말해서, 재판관 3인은 위헌위법인 가결선포행위를 한 국회의장을 못 믿겠으니 헌법재판소가 무효를 확인하고 취소해야 한다는 것이고, 재판관 2인은 위헌위법이라고 헌재가 결정했으니, 위헌위법한 상태의 시정은 국회의장 김형오가 스스로 하라는 것입니다. 헌재가 위헌위법하다고 결정하면 그것을 시정할 정도의 수준은 김형오 국회의장이 된다고 본 것입니다.

 

국회의장의 '무당적' 의미를 돌아봐야

 

여섯째, 미디어법 재논의는 여야가 알아서 할 일이다?

 

헌재는 야당 국회의원들의 심의표결권 침해의 법적책임의 주체는 김형오 국회의장이라고 했습니다. 당시 사회를 본 한나라당 이윤성 의원은 국회의장의 대리로서 법적책임의 주체가 될 수 없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즉, 이윤성 의원의 위헌위법한 미디어법 가결선포행위의 책임은 국회의장의 책임입니다. 또 한나라당 의원들이 책임질 일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회권을 넘겨주고 위법하게 의사봉을 두드리게 한 책임은 전적으로 김형오 국회의장의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미디어법 재논의는 여야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김 의장님, 민주당 등 야당이 헌재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자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헌재에서 미디어법 가결선포 과정에서 위법이 있었다고 결정하면, 스스로 정치적 책임을 지겠다"고 했습니다. 국민들뿐만 아니라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에게도 약속한 것 아닙니까. 재판관 2인은 김형오 의장님의 이 말씀을 믿고 위헌위법을 국회의장이 스스로 시정하라고 결정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미디어법 가결선포행위에 대하여 신문법 7:2, 방송법 6:3의 압도적 의견으로 김형오 의장의 행위는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다는 것입니다. 단지 무효확인과 관련하여 재판관 3인이 국회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무효판단을 선언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 이유는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김형오 의장 스스로 시정할 의무가 있다고 말입니다.

 

김형오 의장님, 국회의장은 당적을 버리게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여야를 떠나서 공정하게 사회를 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했습니까. 미디어법을 직권상정하고, 한나라당 국회부의장에게 사회권을 넘기고 급기야 헌재가 가결선포행위는 위헌위법하다고 결정하는 상황까지 왔습니다.

 

지금이라도 헌재결정취지를 잘 살피시고 국회의장으로서 책임을 지셔야 합니다.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헌재의 위법하다는 결정이 나면 스스로 책임지겠다는 약속을 믿어 준 재판관들에게도 지금과 같은 김형오 의장님의 행동은 상처를 주는 것입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다시 한번 생각을 정리하고 결단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국민들은 지금 한나라당의 김형오 의원이 아니라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장 김형오를 보고 싶어 합니다. 어찌 되었든 스스로 의사봉을 두드리지는 않았지만, 의장님을 대리한 국회부의장의 책임도 고스란히 의장님의 책임인 것은 분명합니다.

 

역사는 모든 것을 기록합니다, 역사를 생각한다면

 

나라가 세종시 문제로 시끄럽습니다. 국회가 입법하고 통과되어 시행되고 있는 법률에 대하여 국무총리가 일방적으로 폐기선언을 하는데도 국회의장으로서 행정부를 향하여 경고의 한마디도 하지 않고 오히려 두둔하는 듯한 목소리를 내시는 것 같아 국민의 입장에서 서운한 것도 사실입니다.

 

국회가 정부의 법률안을 통과시켜주는 통법부 역할을 넘어 행정부를 감시하기는 커녕 입이 되어 주는 것 같아 심히 우려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개헌문제며 바쁘시다는 것 알고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 이렇게 쓴 소리만 해서 죄송하기도 합니다.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 말도 있습니다.

 

역사는 모든 것을 기록합니다. 역사를 생각하며 위헌위법한 미디어법 가결선포행위를 스스로 거두시길 바랍니다. 역사에 의미있는 국회의장 김형오로 기록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독일 속담에 "끝이 좋으면 모든 것이 좋다"는 말이 있습니다. 유종의 미를 거두었으면 합니다. 이 말씀으로 인사를 대신합니다.

덧붙이는 글 | 남경국 기자는 독일 쾰른대학교 '국가철학 및 법정책 연구소' 객원연구원 입니다. 


태그:#미디어법, #김형오, #국회의장의 시정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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