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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종이 땡 땡 땡…'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시골학교는 산골 마을공동체의 중심이었다. 봄, 가을 열린 운동회는 동네 전체의 잔치였고 자식아이 담임선생은 바로 부모의 스승이 되곤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정겹던 시골학교 종소리는 귓가에서 멀어져갔고, 재너머 마을까지 들리던 아이들의 재잘거림은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출산율 감소, 이농현상 등 급격히 변해가는 사회현상속에서 시골 학교들이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1982년 처음 통폐합이 실시된 이후 지금까지 사라진 학교는 1500여 곳이 넘는다. 그런데 최근 공허한 그 땅에 희망의 새싹이 돋기 시작했다. 공교육이 이뤄지던 예전의 그 학교는 아니지만, 폐교를 임대해 예술창작공간으로 활용하거나 다채로운 문화체험공간으로 사용하는 예가 늘고 있다.

폐교활용 문화공간<1>
화성 문화예술촌 쟁이골 - 구 함산초등학교


▲ 화성시 서신면 장외리, 문화예술촌 쟁이골
ⓒ 정수영
경기도 수원에서 연결되는 306번 지방도로를 타고 1시간을 내리 달렸을까, 보드라운 모랫바람이 코끝에 와 닿는다.‘모세의 기적’이라 불리는 해할현상, 바다가 갈라지고 길이 트이는 섬 ‘제부도’가 가까웠음이다.

아니나 다를까,제부도 1km 앞 이라는 이정표가 눈앞에 서 있다. 이정표를 뒤로하고 얼마 안가 '쟁이골 가는 길'을 알리는 팻말이 다가온다. 동네로 들어서니 야트막한 산 아래 구 함산초등학교가 터를 잡고 있다. 예전에는 함산국민학교 라는 간판이 걸렸을법한 학교 건물 중앙에 '문화예술촌 쟁이골'이란 큼직한 팻말이 눈인사를 한다.

화성시 서신면 장외리에 위치한 구 함산초등학교. 1932년 설립된 이 학교는 63회라는 긴 역사를 뒤로하고 1995년 2월 문을 닫았다. 출산율 저하, 이농현상 등 다른 폐교와 비슷한 이유에서다.

▲ 강연숙 원장
ⓒ 정수영
아이들이 떠나 버린 함산초등학교는 폐교 후 2년간 방치되다가 1997년 김명훈(촌장.55) 강연숙(원장.50) 부부에게 임대됐다. 이들은 학교를 새로운 형태의 문화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했다. 그 결과‘하늘, 땅, 바다, 예술.문화공동체’라는 테마 프로그램을 내건, 친환경적 현장체험공간 '쟁이골'이 탄생했다.

대지 4천여평에 이르는 쟁이골은 교실이 10개로 폐교 치고는 꽤 큰 규모이다. 중앙복도를 중심으로 교실은 둘로 나눠 왼편은 개인 작업실과 체험실 등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오른편은 숙소와 샤워장으로 쓰고 있다. 이곳에 내려온지 7년이 넘은 이들 부부는 이제 시골사람이 다 됐다. 동네 사람들도 처음엔 거리를 두는 듯 하더니 이내 마음을 열었다고 한다. “예전엔 우범지역으로 여겨져 접근도 하지 않던 이곳이 다시 되살아나자 너무들 좋아해요. 가끔은 고향을 떠난 사람들로부터 고맙다는 전화도 받을 정도예요.”

강원장은 마을이 다시 되살아나고 고향을 떠났던 사람들이 돌아올 수 있도록 쟁이골을 지역문화의 중심으로 세울 생각이다. 실제로 쟁이골에서 매년 열리는‘단봉(丹鳳) 예술제’는 작가와 지역주민이 하나되는 특별한 행사다.

단봉예술제는 쟁이골을 거쳐간 작가들을 중심으로 경기지역 작가 70여명이 참여해 사진전, 조각전, 음악회, 퍼포먼스 등 ‘미래 자연 우리’라는 주제로 여는 친환경적인 종합 예술제다. 올해는 7월초 단봉예술제를 열 계획이다.

쟁이골은 봄.가을이면 찾아오는 도시인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학교에서 단체로 오거나 기업, 동호회 등이 이곳에서 다양한 자연체험 프로그램을 즐기고 있으며 가족 단위로 찾는 이들도 많다. 한해 동안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어림잡아 1만5000명 정도.

그러나 문제는 지속적인 투자비용이다. 친환경체험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한데 사실 이곳을 찾는 인원이 많다고 하더라도 수익을 기대하는 어렵다. 화성시교육청에 내야 하는 1년 임대료 만해도 1500만원에 이르는 상황에서 장기적인 안목의 투자는 상상하기도 힘들다.

강 원장은 "이 곳이 지역문화의 구심적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행정기관의 협조가 절실하다"면서, "그리 큰 이익을 생각하고 이곳을 운영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처럼 도내 청소년들의 문화체험학습장으로 사용되는 공간은 제도적 뒷받침이 따라야 한다. 그래야 도시인들도 보다 좋은 학습 프로그램을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소중한 뒷 이야기
자연과 함께 자라는 서연이

▲ 쟁이골 서연이

네 살박이 서연이는 저보다 두배나 몸집이 큰 진돗개들을 ‘똘마니’로 둔 쟁이골 대장이다. 아직 말도 서툴지만 쟁이골 지킴이인 진돗개들의 대장으로 한치의 어색함도 없다. 서연이는 주변 야산 등 동네 어디라도 진돗개들을 데리고 사방팔달 쫓아 다닌다. 이런 서연이의 모습은 이제 이 동네에서는 명물이 다 됐다.

쟁이골에는 현재 강연숙 원장의 동생인 강윤정씨 부부가 내려와 강 원장내 일손을 돕고 있다. 서연이는 바로 강윤정씨의 딸이다. 이들 부부가 수원에 내려온 것은 약 두달 전. 회사가 묻을 닫아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있을 무렵 강 원장의 제의를 받고 부부는 이곳에 내려왔고 허브비누 만들기, 천연염색 체험 프로그램 등을 맡아 강의를 하고 있다.

이들은 도시에서 벗어나 쟁이골로 내려 온 것을 다행스럽게 여긴다. 이유는 서연이 때문이다. “우리보다 서연이가 훨씬 더 여기에 적응을 잘해요. 자연속에서 마음대로 뛰어노는 서연이 모습에 여기로 온 것을 잘했다 생각하게 되죠.”

서연이 엄마 강윤정씨의 이야기가 끝나기 무섭에 유치원을 다녀온 서연이가 들어서자마자 뒷곁으로 뛰어간다. 그곳에 있는 오리, 토끼들과 먼저 인사를 하고 맛있는 먹이를 준 다음 진돗개들과 함께 나들이를 떠난다. 얼마 뒤 진돗개들을 대동하고 쟁이골로 돌아온 서연이의 얼굴에는 여기저기 흙이 묻어 있다. 그리고 얼굴 가득 순수함이 묻어 있다. 어린시절 자연과 함께 한 서연이는 이 다음 도시에 나가서도 지금의 그 모습 그대로, 해맑겠지 싶다. / 정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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