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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19일 출시된 기아차의 신개념 SUV 'X-트랙'(사진 위)과 지난해 12월 단종된 카렌스2
ⓒ 기아차
"뭐가 신차라는 거죠? X-TREK(트랙)의 출시 배경이나 상황이 기아차가 작년에 무리하게 카렌스 디젤을 내놓던 때와 너무 똑같아요. 결국 한 기업의 이윤을 위해 또다시 아무 것도 모르는 고객들만 피해를 입게 될 겁니다."

23일 오후, 얼마전에 새롭게 나왔다는 기아자동차의'X-트랙'에 대해 자동차 전문가 김아무개씨는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지난 19일 기아차가 신차라고 몰래(?) 내놓은 'X-트랙'을 놓고 자동차 전문가를 비롯, 시민환경단체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유는, 기아차가 지난해 12월 경유차 배출가스 규제기준에 따라 단종된 카렌스II 디젤의 모양을 약간 변형해 내놓고 마치 전혀 새로운 신차인 것처럼 고객들을 호도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ADTOP3@
LSD(차동제한장치)란?

좌우 구동축 회전속도의 차이를 제한함으로써 눈길, 빗길 등 미끄러운 길에서 주행이나 진흙길, 웅덩이에 빠졌을때 탈출을 용이하게 하는 장치
기아차는 지난 19일 보도자료를 통해 'SUV 스타일과 미니밴의 다목적 활용성을 조화시킨 신 개념 SUV, X-TREK(트랙)을 시판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별도의 신차 발표회를 하지 않았고 언론을 통한 신차 알리기인 런칭 광고도 전혀 하지 않았다. 그동안 신차가 출시됐을 때마다 기아차가 해오던 신차 홍보활동과는 전혀 다른 상황인 셈이다.

일부에서는 기아차가 지난해 8월 대기환경보전법에 따라 카렌스Ⅱ(승용1)가 판매중단 위기에 처하자, 기존 차량에 LSD(차동제한장치)를 설치하고 차량의 외관을 조금 바꿔, '승용2'로 다시 판정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현행 대기환경보전법상 '승용 2'의 대기 배출허용기준이 '승용 1'에 비해 훨씬 너그럽기 때문이다.

기아차의 이같은 변형에도 불구하고 업계 전문가들은 'X-트랙'이 과거 카렌스 II가 지녔던 태생적 한계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 승용1에 속했던 미니밴 카렌스2의 변종인 X-트랙은 승용2로 환경부 승인을 통과했다.
ⓒ 오마이뉴스 공희정

"현대차가 만들면 '기준'이 된다?"

지난 2000년 4월 환경부는 대기환경보전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당시 환경부가 마련한 개정안은 대기환경 개선을 위한 것이었지만 경유 승용차의 운명과 관련한 두 가지 중요한 사항을 담고 있었다.

하나는 경유 승용차의 배출가스 허용기준을 높이는 것이었다. 차종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질소산화물은 최고 47배, 미세먼지는 최고 11배로 허용기준을 기존보다 강화한 것이다. 경유차로 인한 대기오염 비중이 매우 높은 현실에서 승용차 분야까지 경유차가 진입하도록 쉽게 용인할 수 없었던 정부와 아직 기술 수준이 부족해 외제 경유 승용차와 경쟁할 수 없었던 국내 자동차업계가 세계 최고의 기준을 만들어 낸 것이다.

또 하나는 어떤차가 '경유 승용차'인가에 대한 분류를 '현실화'하는 것이었다. 그동안 승용차로 분류되지 않았던 8인승 이하 경유승합차와 지프형 경유차를 경유 승용차로 분류한 것이다.

따라서 그전에 다목적 승합차로 분류되던 기아의 카렌스, 현대의 싼타페와 트라제 같은 차는 승용차로 분류될 운명이었다. 그것은 이들 승합차들이 사실상 출퇴근용 승용차로 사용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었다.

개정안의 두 가지 골자는 서로 연결돼 있다. 즉 그동안 다목적 승합차로 분류되어 오던 경유차들은 '별도의 완화된 배출가스 기준'을 적용 받아왔는데 이제 승용차로 분류될 것이기 때문에 더욱 엄격해진 허용기준을 충당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따라서 이 기준을 맞추지 못한 경유 승용차는 생산을 중단해야 하는 상황이 예상됐다. 그리고 그 개정안은 2002년 7월까지의 입법예고기간을 거쳐서 시행될 예정이었다. 2년3개월간의 충분한 준비기간을 준 것이다.

그러나 2002년 들어 개정안 시행일 7월1일이 다가오는데도 현대·기아자동차는 느긋했다. 오히려 기아자동차는 개정안 시행일을 불과 3개월 남짓 남겨둔 2002 3월, 카렌스II 디젤까지 내놓았다.

당시 상황에 대해 환경정의시민연합 서왕진 처장은 "로비를 통해 언제든지 경유승용차 기준을 완화시킬 수 있다는 현대·기아차의 자신감이 그러한 일을 가능하게 했다"고 주장했다.

▲ 경유차문제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지난 4월 23일 인사동에서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시민을 재경부와 산자부가 경유차 배출가스로 괴롭히는 내용의 퍼포먼스를 시연해 보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공희정
"현대·기아자동차는 개정안 시행일을 불과 두 달 앞둔 5월초부터 개정안 무력화 작업에 나섰습니다. 산업자원부, 재경부, 외교통상부를 동원해 '수출전선'과 '내수경제' 그리고 '통상마찰' 등을 이유로 환경부가 마련한 개정안이 현실성이 없다는 논리를 펴기 시작한 거죠."

결국 이러한 압력에 밀린 환경부는 생산중단 위기에 처한 RV차량에 대한 기준 적용을 유예하고 경유 승용차 배출가스 기준을 조기에 완화하는 방향으로 방침을 정리했다. 그러나 환경단체들의 반발에 따라 정부, 자동차업계, 그리고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경유차 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 기업, 시민단체 공동위원회'가 구성된다.

그리고 2002년 6월 24일 합의문을 발표하게 되는데 일부 비인기 차종은 7월1일부터 생산을 중단하고, 가장 문제가 되었던 기아의 카렌스II 디젤 모델은 유럽연합 환경규제(EURO-3)에 맞출 수 있는 배출가스 저감장치를 장착할 경우, 2002년 말까지만 한시적으로 판매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또한 논란의 한 축이었던 싼타페는 환경부 장관의 고시에 의해 자동차의 세부기준(다목적형승용자동차=프레임형 or 4WD or LSD장착)을 변경하는 방법으로 차종을 경유 승용차(승용1)가 아닌 다목적 승용차(승용2)로 분류해 생산. 판매를 계속할 수 있게 했다. 그 대신 '경유차량 배기가스 총량제'를 도입, 유해배출가스가 많은 구형 경유차인 갤로퍼 등을 곧 생산중단하기로 했다.

그러나 기아차는 12월 카렌스Ⅱ를 단종할 예정인데도 불구하고 그 해 9월 '2003년형 카렌스Ⅱ'를 출시하고, 12월에는 '럭셔리 카렌스Ⅱ'를 시판했다. 그리고 2002년 11월 28일, 정부에는 카렌스Ⅱ 디젤의 생산기한을 6개월 연장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기아차는 일단 생산 공정을 만들어 판매를 시작하면 정부는 고용문제나 이미 투자한 비용의 손실 등 국가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이유로 중단시키기 힘들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카렌스Ⅱ 단종을 강행하자 아예 몇 개의 부품을 새로 넣고 이름만 바꿔 차를 다시 생산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X-트랙'인 셈이다.

▲ (위)단종된 '카렌스2'의 주요제원과 (아래)신차 'X-트랙'의 주요제원을 보면 두 자동차 사이에 별 차이점을 발견할 수 없다.
ⓒ 오마이뉴스 공희정
"X-트랙 출시는 현대·기아차의 도덕적 해이의 결과"

이에 대해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대·기아차는 현행 법규의 맹점을 이용해 LSD만 장착해 카렌스Ⅱ 변형모델(X-트랙)을 출시한 것"이라며 "법규를 무시하고 막강한 시장 장악력을 무기로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현대·기아차의 행태를 보고 업계에서는 '현대가 만들면 기준이 된다'는 말을 공공연히 하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왕진 환경정의시민연대 사무처장도 "카렌스Ⅱ의 생산중단 배경에는 현대·기아차의 심각한 도덕적 해이가 존재했다"면서 "카렌스Ⅱ에 몇 가지 부품만 장착해 소비자들의 눈을 속이고 X-트랙을 신차라고 속이면서 판매하고 있는 기아차는 응분의 책임을 져야한다"고 말했다.

서 처장은 이어 "실제로 자동차는 새로운 모델을 기획, 생산하기까지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지만 이번 X-트랙은 뜬금없이 갑자기 나온 것"이라며 "외형만 조금 바꾼 카렌스Ⅱ의 생산을 계속 허용하는 것은 환경행정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며 이는 '재벌 특혜'라는 악습을 반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기아차의 한 관계자는 <오마이뉴스> 기자에게 "솔직히 X-트랙이 완전한 신차는 아니다"면서 "지난해 문제가 많았던 카렌스Ⅱ라는 이름으로 계속 판매하면 문제가 되기 때문에 승용 기준도 바뀐 만큼 제품명을 바꿔 신차로 판매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그러다 보니 '신차'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신차발표회 등도 하지 않고 홍보에도 열을 올리지 않은 것 같다"며 "지금 소비자들도 카렌스Ⅱ로 알고 사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아차 홍보실의 김봉겸 이사는 지난 22일 <오마이뉴스>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X-트랙은 완전히 신차"라면서 "최저 지상고를 SUV 수준으로 설계하여 험로 주행기능을 대폭 향상시킨 다목적 자동차로 유로3 배출가스 기준치를 충족하는 환경 친화적인 커먼레일 엔진을 적용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동차 업계의 한 전문가는 "커먼레일 엔진은 카렌스Ⅱ 디젤에도 적용됐던 옛날 얘기"라고 전제한 뒤 "상식적으로 어떻게 신차가 아무 말도 없이 단 몇 개월 만에 나올 수 있냐"면서 "게다가 X-트랙은 신차테스트도 거치지 않아 품질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왜 경유차가 문제인가
차량 오염 50%이상 배출....일본에서는 'NO경유차 운동'

▲ 우리나라의 경유차는 전체 차량의 약 30%를 차지하지만 전체 차량 오염의 50%이상을 배출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공희정
지난 1998년 이후 수도권 특히 서울 지역의 대기오염은 계속 악화되고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전체 대기오염물질 배출량 가운데 자동차 배출가스가 차지하는 비중도 해마다 크게 늘어 서울시의 경우 이미 85% 수준을 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유차는 전체 차량의 약 30%를 차지하지만 전체 차량 오염의 50%이상을 배출하고 있다.

경유차의 배출가스는 크게 일산화탄소(CO), 탄화수소(HC), 질소산화물(NOx)의 입자상 물질인 매연 등으로 구성된다. 특히 매연과 질소산화물은 매우 유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매연의 경우 입자 크기가 사실상 일반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기 때문에 인체의 폐 등에 깊숙이 도달한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만성 호흡기 질환이나 폐기능의 저하, 폐암등의 유발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또 질소산화물은 기관지염, 폐렴 등을 일으키며, 대기중에서 탄화수소(HC)와 함께 광화학 반응을 일으켜 오존을 파괴, 대기의 질을 크게 떨어뜨리는 주요한 원인이 되기도 한다.

특히 가장 문제가 되는 미세먼지의 경우 서울시가 미국과 유럽 대도시보다 오염도가 두 배나 심하고, 작년에는 서울시 대기환경기준을 넘어섰다. 전문가들은 미세먼지 때문에 서울에서만 매년 1000명이 넘는 사람이 사망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서울의 경우 대표적인 대기오염물질인 이산화질소의 49%와 미세먼지의 90%가 경유차에서 배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우라나라에서는 2002년 5월부터 환경정의시민연대 등 환경단체들을 중심으로 '경유차 반대운동'이 본격적으로 벌이고 있다.

또 일본과 미국 등 일부 선진국사이에서는 이들 경유차를 반 환경적인 교통수단으로 인식, 사회에서 점차 퇴출시키고 있는 추세다. 특히 일본에서는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경유차는 사지도 팔지도 타지도 맙시다"라는 켐페인을 벌이고 있다. / 김종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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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같은 남자. 산소같은 미소가 아름답다. 공희정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기자단 단장을 맡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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