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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마산의 한 종합병원에 입원 중인 위안부 출신의 김경아 할머니.
ⓒ 오마이뉴스 윤성효

"내 일본이름은 '후지꼬 야마'였지. 일본놈들이 그렇게 불렀어. 죽으려고 변소 가서 약도 먹었다 아이가. 지금도 일본놈만 보면 죽여버리고 싶지. 그 놈들이 봉오리도 맺지 않은 나를 그렇게 만들었던 거 아니냐."

6일 저녁 경남 마산의 한 종합병원에서 만난 김경아(83. 가명) 할머니의 말이다. 통영에서 살다 지난 3월 넘어져 다리를 다쳐 석달째 입원 중이다. 피붙이도 없이 혼자 살다가 '위안부 할머니와 함께 하는 통영거제 시민모임'의 도움으로 겨우 병원으로 옮겨졌다.

김 할머니의 힘든 삶은 나이 15살 때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면서 시작됐다. 경남 통영시 사량면 출신이었던 그녀는 이모집에 있다가 끌려갔는데, 당시 부모들도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을 정도였다. 그녀는 해방되기 전까지 8년 동안 인도네시아와 중국 홍콩 등 동남아지역 8개국을 다니면서 위안부 생활을 해야 했다.

"한마디로 눈물로 밤을 지샌 거야"

"총을 들이대면서 따라가지 않으면 죽인다고 하대.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따라간 거지. 일본군인들이 줄을 서서 일본군이 하라는 대로 했지. 안하면 죽는데 어째. 한마디로 눈물로 밤을 지샌 거야."

당시 동남아지역에 있으면서 그곳 원주민들이 부르던 노래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한번 불러보라는 말에 김 할머니는 서성거리지 않고 '바뚜바 넴버 …'라며 불렀다. 무슨 노래냐는 물음에 "검둥이들이 부르던 노래"라며 계속 불렀다.

해방이 되어 통영에 다시 돌아온 그녀는 혼자서 살았다. 부모들이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떴다. 결혼을 하려고 했지만 할 수 없는 처지였다. 위안부로 있으면서 자궁을 통째로 드러냈기 때문에 아이를 가질 수 없었던 것.

병실에 누워 환자복을 아래로 내려 자궁 옆에 난 흉터를 기자한테 보여주었다. 지금도 새끼손가락 길이의 수술 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었다. 김경아 할머니는 "결혼하고 싶었지. 그런데 아이도 못 낳는데 어떻게 해. 평생 혼자 살았어"라고 말할 때는 목이 메였다.

김 할머니는 통영에서 혼자 생활해 왔다. 생계를 꾸려나가기조차 난감했던 그녀는 산에서 약초를 캐서 팔아 먹는 문제를 해결해 왔고, 한때는 절에서 지내기도 했다. 그녀한테는 오빠가 있었지만 징용으로 끌려가 생사조차 모른다. 여동생이 있지만 넉넉하지 못해 기댈 수도 없는 처지였다.

"병원에서 퇴원하라고 하니 안타까워"

통영지역에는 김 할머니 이외에 여러 명의 위안부 할머니들이 있다. '위안부와 함께 하는 통영거제 시민모임' 회원들이 이들 할머니를 돌보기도 한다. 시민모임을 이끌고 있는 송도자씨는 1997년부터 김 할머니와 인연을 맺었다. 송씨는 김 할머니를 어머니라 부르고, 시민모임 회원들도 그렇게 부른다.

김 할머니는 허벅지 뼈가 탈골돼 고관절 수술을 받았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며 부축을 받아야만 겨우 걸을 수 있을 정도다. 지금은 마산에 있는 시민모임 회원이 간병인으로 있으면서 김 할머니를 돕고 있다. 1급생활보호대상자지만, 그래도 간병인비를 포함해 약 500만원 정도인 병원비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그런데 최근 병원측에서 김 할머니의 퇴원을 종용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병원측은 더 이상 치료할 게 없다면서 종합병원에 있지 말고 통영의 다른 병원으로 옮길 것을 요구했다. 병원측에서 김 할머니의 가족으로 되어 있는 송도자씨한테 이같이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송씨는 "1급생활보호대상자라 병원에서 돈이 안된다고 생각했는지, 나가라고 하는데 지금 당장에 옮길 처지도 안되고, 돌볼 사람도 없는 처지인데 난감하다"고 말했다. 송씨는 6일 오후 병원 관계자한테 김 할머니가 위안부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리면서 조금 더 말미를 줄 것을 요구했다.

통영에서 꽃집을 운영하는 송씨는 "5월에 무슨 날이 많아 꽃집 문을 닫을 수도 없는 처지이며 스승의 날까지는 특히 더 그렇다"라고 말했다. 송씨는 "어머니를 정말 편안하게 모시고 싶은데 여러 사정이 허락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김 할머니의 15살부터 시작된 힘든 삶이 팔순을 넘어서까지 계속되고 있다. 열린사회희망연대 김영만 의장은 "피붙이도 없이 외로운 삶을 이어가고 있는 김 할머니를 생각하면 우리 사회 모두가 죄를 짓는 것 같다"면서 "병원 뿐만 아니라 관심 있는 사람들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송도자씨는 "어머니 같은 분들은 위안부라는 사실이 바깥에 알려지기를 꺼린다"면서 "지난 해 세상을 뜬 고 정서운 할머니 같은 분들은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렇지 않은 할머니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에 김 할머니의 신원을 다 밝히지 않고, 소개하기로 양해를 얻었다.

덧붙이는 글 | 문의 / 055-649-8150(위안부 할머니와 함께하는 통영거제 시민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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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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