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히틀러에 저항한 사람들
 히틀러에 저항한 사람들
ⓒ 바오

관련사진보기

 
선배님들과 함께 공부하는 모임에서 책 한 권을 소개받았다. <히틀러에 저항한 사람들>이다. 1970~1980년대에 대학에 입학한 사람들이라면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이라는 얇은 책자를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학우 여러분'하고 시작되는 숄 남매의 '삐라'에 마찬가지로 높은 곳에 올라가 '학우여'를 외치며 뿌린 선배들이 교차되었었다. 순수한 대학생들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저항을 그린 책은 이제 막 지식인의 전당 대학에 입학한 우리들을 저항의 물결에 첫발을 내딛도록 만드는 인도서가 되었다. 
 
"학우 여러분! 비열하기 이를 데 없는 한 정당의 패거리들 때문에 우리 독일의 모든 젊은이들이 희생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단호히 거부한다." (190쪽) 

배신자로 낙인찍힌 저항시민들 

우리에게는 순수한 열정의 인물이었던 저항의 시민들, 하지만 당대 그들의 처지는 지금과 달랐다. 1944년 12월 독일의 패전과 점령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나치즘에 저항하고 나아가 히틀러를 암살하려 했던 7월 20일 사건, 이 사건의 여파로 7천 명이 체포되고 200여 명이 처형되었다. 

톰 크루즈 주연의 2008년작 <발키리>로 만들어진 이 사건, 하지만 당시 독일 내에서는 이런 나치 체제에 대한 저항이 '국가를 배신하는 행위라 여겼다. 심지어 이들이 소련의 스파이라 의심받기도 했다.
 
"우리가 바라는 건 오직 일과 빵이었어요. 히틀러는 단번에 모든 걸 바꾸어 놓았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남편에게 일자리가 생겼어요. 그러니 국민 대중이 모두 히틀러 지지자가 될 수 밖에요." (26쪽)

바이마르 공화국 말기의 심각한 경제 위기, 대공황에 빠진 경제, 40%에 이르는 실업률, 600만 명이 넘는 실업자는 선거라는 정당한 과정을 통해 히틀러에게 정권을 쥐여 주었다. 정권을 잡은 히틀러는 '국가 재건과 경제 재생'을 앞세우는 한편, 이미 1차 대전을 통해 '국토 상실'을 겪은 국민들에게 '반유대 인종론'을 기반으로 한 '아리아인 민족주의' 민족 공동체론을 내세워 나치즘 안에 동화시켜나갔다. 그러는 한편 비밀 경찰 등을 만들어 자신에 반대하는 세력들을 철저하게 탄압했다. 

히틀러는 현실에서 대단히 인기있는 지도자였다. 독일 국민은 국내에 수백 개의 강제수용소가 건설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유대계 주민들에 대한 박해를 용인했다. 마침내는 집시 50만 명과 함께 유럽의 유대계 주민 600만 명을 말살한 홀로코스트로까지 발전했지만 히틀러에 대한 지지는 계속되었다.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문제에 천착해 온 일본의 교육학자이자 서양사학자인 쓰시마 다쓰오는 그 답을 히틀러에 저항한 사람들에게서 찾는다. 책은 평범한 삶을 살았던 양심적인 시민들을 비롯하여, 지식인 그룹, 군부의 암살 시도 등 다양한 분야 시민들의 저항을 체계적으로 다루고 있다.

히틀러를 뺀 다른 '또 하나의 독일'의 시작

이제는 독재의 상징이 된 히틀러지만 공공토목 사업으로 아우토반을 건설하고 당시 부유층만이 가지던 자동차를 '한 집에 한 대'라는 슬로건을 앞세워 국민차 폭스바겐을 노동자층에게까지 보급했다. 국민들이 그를 추앙하던 시절, 그럼에도 왜 사람들은 '저항 시민'이 되었을까? 

전국민적 저항은 언감생심이던 시절, 그래도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자각을 얻게 된 선각자들이 반나치 운동을 펼쳐나갔고 그런 흐름이 이어져 유대인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게 되었다고 책은 밝힌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의 숄 남매는 히틀러 유겐트에 열광했던 젊은이들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이 생각했던 것과 다른 나치 조직의 실체를 알고 난 뒤 반나치 활동에 자신을 헌신했다. 

특히 유대인 죽음에 대한 소식들이 의식 있는 독일인들을 나서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잡혀가지 않기 위해서 유대인들은 숨어야 했다. 그런데 한 사람의 유대인이 피신하기 위해서는 작게는 일곱 명에서 두 자릿 수의 사람들이 필요한 상황. 이 과정에서 살아남은 '콘라트 라테'는 50명이 넘는 이들이 자신을 도왔다고 책은 밝힌다. 

그러나 유대인을 구원하다 들켜 체포된 사람들에게는 엄격한 처벌이 기다리고 있었다. '안네 프랑크'의 일기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목숨을 건 조력자들의 헌신이 전제되어야 했다.

시간 감각과 기력을 잃게 만드는 번쩍거리는 투광기가 며칠 동안 틀어진 지하 독방에서 계속되는 고문이 체포된 저항 시민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본인은 물론 가족들에게까지 처벌의 여파가 이어졌고 대부분 '처형'을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죽음 앞에서도 그들은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도움이 필요하거나 무언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친절한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란다. 지금부터 열심히 하길 바란다. 안녕, 아빠가."

이 편지를 아들에게 남긴 아돌프 라이히바인은 성대를 잃을 정도로 고문을 당하고 사형 판결을 받은 당일 처형되었다. 그러나 히틀러 체제에 동원되고 협조하던 이들이 대부분이었던 사회에서 이들의 저항이 인정받기 위해서는 전후 또 한번의 '투쟁'이 필요했다. 

그들의 행동이 '국가에 대한 배반'이 아니라 '정의'가 되는 과정, 이는 곧 나치즘 독일을 새로운 정체성의 독일로 세워가는 과정이 되었다. 즉  이 책은 우리는 아는 현재, 히틀러의 독일을 지양한 '또 하나의 독일', 그 주춧돌을 놓은 이들의 연대기이다.
 
"7월 20일 행동에서 국가반역 조항을 적용할 근거는 찾을 수 없다.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조국애와 개인을 버린 자기희생 정신에 따라 국가와 국민을 구하려 했다는 것이다. 그들의 행동은 윤리적이었다. (중략) 따라서 7월 20일 저항자들의 행동은 정당하다."

1952년에서야 드디어 법원은 그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끊임없이 홀로코스트 희생자에 대한 사과를 거듭하고 있는 오늘의 독일은 그런 지난한 역사의 반성을 통해 도달한 것이다. 반성하지 않는 국가의 국민인 일본의 학자는 어떤 마음으로 이 책을 썼을까? 

그리고 여전히 '과거사'가 긴 그림자로 오늘에 남은 우리에게 이 책은 또 어떤 의미일까? 저항시민들의 역사를 넘어 지나온 역사, 그 시간을 살았던 이들에 대한 무거운 숙제를 오늘에 남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이정희 시민기자의 네이버 블로그(https://blog.naver.com/cucumberjh)에도 실립니다.


히틀러에 저항한 사람들 - 반나치 시민의 용기와 양심

쓰시마 다쓰오 (지은이), 이문수 (옮긴이), 바오(2022)


태그:#히틀러에 저항한 사람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