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주지사에 당선한 글렌 영킨이 버지니아주 샹틸리에서 열린 당선 축하장에 도착했다. 2021.11.3
연합뉴스
공화당 후보로 나선 글렌 영킨(Glenn Youngkin)은 1966년 생으로 사모펀드 회사를 운영해 큰 재벌이 됐지만 정치 경험은 전무했다. 반면 민주당 후보 테리 매콜리프는 이미 한 차례 버지니아 주지사를 역임한 인물이다. 인지도에서도 민주당 후보가 앞선 선거였다.
이처럼 정치적 파장이 큰 만큼 이번 버지니아 선거는 세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더욱이 그 흐름이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도 결코 낮지 않다. 민주당 연방정부 입장에서는 아프가니스탄 철수 이후 수세적 국면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다 내부의 균열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의 공화당 승리를 일부 언론에서는 '트럼프의 귀환'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피상적이고 섣부른 해석이다. 공화당의 글렌 영킨 후보는 선거 기간 동안 철저히 트럼프 전 대통령과 거리를 유지하는 전략을 택했다. 심지어 유세 중 그의 입에서 '트럼프'라는 이름은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다.
공화당 승리가 트럼프 덕? 그 반대다
2016년 이후 공화당의 주요 행사에 등장하던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표어도 이번 선거에서 보이지 않았다. 트럼프 전 대통령 역시 영킨 후보에 대한 지지 의사와 메시지를 공개했지만 그와 같은 시간 또는 같은 공간에 함께 하는 일은 피했다.
버지니아 공화당 선거 캠프는 이처럼 '트럼프의 귀환'은커녕 트럼프와의 차별화, 트럼프를 배제한 공화당을 띄우는 데 주력했고 그 전략은 주효했다. 선동적 구호보다 민주당 정부의 실정을 부각시키면서 정책적 승부를 택한 공화당은 그렇게 이번 선거를 승리했다.
공화당 입장에서는 이 결과가 상당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지난해 대선 패배 이후 민주당에 이길 수 있는 효과적인 승리 공식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그림자 걷어내기와 정책 대결로의 전환이 그것이다. 경제, 외교 분야에서 분명하지 않은 양당의 노선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사회와 문화 분야 정책 차별화를 확인한 것은 공화당으로서는 큰 수확이다.
앞서 지난 7월 텍사스의 공화당 주정부는 임신 여성의 낙태를 사실상 금지시키는 '심장 박동법'을 발효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이를 저지할 마땅한 법적 근거를 아직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위헌 소지가 있는 이 법을 무력화하기 위해 민주당은 연방 정부 차원에서 소송을 예고했지만 쉽게 끝나지 않을 싸움인 것은 분명하다.
이번 선거에서도 공화당은 유사한 전략을 택했다. 주민들의 삶에 더 가까운 영역에서 이념 논쟁에 불을 지피는 것이다. 이런 전략은 공화당의 주요 지지층을 트럼프 대통령 당시의 '저학력 백인 남성'에서 '중산층 보통 가정'으로 돌려놓을 수 있는 성과를 얻게 했다.
민주당으로서는 싸움의 장을 쉽지 않은 곳으로 유인 당한 셈이 됐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와 같은 피상적 구호가 아닌 삶의 구체적 영역에서의 대결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미국 정치권은 바야흐로 '문화 전쟁'의 시대로 들어가고 있다.
공화당의 승리 공식... 문화전쟁, 이념적 반격
글렌 영킨 공화당 후보가 중점을 둔 이번 선거 주요 전략은 교육의 현장에 있었다. 소위 비판적 인종 이론(Critical Race Theory, CRT)라 불리는 교육철학에 대한 이념적 반격이 그것이다. '비판적 인종 이론'은 원래 1970년대부터 미국 사회의 불평등에 대한 원인을 놓고 법학계에서 시작된 이론이다.
멀리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비판이론'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이 이론은 사회의 불평등이 단지 개인의 일탈이나 잘못된 판단에서가 아닌 사회의 구조적, 제도적 모순에서 비롯된다고 보고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미국 사회는 건국 초기부터 백인 중심의 정복주의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인종적 불평등 가능성을 안고 있다.
건국 당시 영토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약탈과 정복의 역사를 신의 명령으로 합리화한 것이나 흑인 노예 운용을 제도화해 경제 성장의 근간으로 삼은 것 등도 역사 속의 제도적 인종 차별에 해당한다. 그렇게 일상화된 백인우월주의가 미국 사회에 구조적으로 뿌리 내리고, 그것이 개인의 모든 무의식적 행동반경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