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 밀리밴드 노동당 대표가 영국 맨체스터에서 열린 노동당 정책 발표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2015.4.13
연합뉴스
2020년 11월, 보수당 존슨 총리도 이상적 미래를 상상했다.
그린 산업 혁명이 영국 전역의 삶을 어떻게 전환시킬지 상상해 봐라. 수소 에너지를 이용해서 아침 식사를 만든다. 미들랜드 지역(산업 지대)에서 생산된 배터리로 밤새 충전된 차로 집을 나선다. 주변 공기는 깨끗하고, 트럭, 기차, 배, 비행기가 수소 에너지로 움직인다. 영국의 모든 마을은 그린 기술과 그린 산업이 만든 일자리로 채워질 것이다.
- 그린 산업 혁명을 위한 10가지 계획(The Ten Point Plan for Green Industrial Revolution)
둘 다 평범하다. 그러나 화석 연료를 포기하고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양쪽 상상이 거의 동일하다. 하지만 노동당과 보수당은 전환의 실현 방법 및 속도에서 대립한다. 윤리성 없는 시장을 불신하는 노동당은 공적 규제를 통해 "경제 정의와 기후 정의"가 작동하는 미래를 원한다. 반면, 공공 영역의 비효율을 비판, 시장을 선호하는 보수당은 정부가 자극제로만 기능하고 시장이 주도하기를 원한다.
노동당의 '사회주의 그린 뉴딜'
"아주 오랫동안, 나를 포함해서 진보주의자들은 기후 위기와 경제 정의를 분리시켜 논했다."
2019년 7월, 에드 밀리밴드는 사고 전환이 있었음을 시사했다. 영국 노동당은 2008년 금융 위기 당시 영국 진보 지식인 그룹이 제시한 그린 뉴딜을 놓쳤다. 하지만 2019년 2월 미국 민주당이 그린 뉴딜을 살리면서 분위기는 역전되었다. ([관련기사]
"우리가 민주당을 차지하자" 젊은이들의 의미 있는 도발 http://omn.kr/1vptm)
이후 노동당은 그린 뉴딜을 세 번에 걸쳐 다듬었다. 첫 번째가 2019년 총선 공약 "그린 산업 혁명"이고, 두 번째는 2020년 에드 밀리밴드가 작성한 "그린 회복(Green Recovery)" 보고서다. "사회주의 그린 뉴딜"이 최근 것으로 2021년 9월 노동당 전당 대회에서 채택되었다.
노동당의 목표는 "기후 정의와 경제 정의" 동시 실현으로, '정의'에 방점이 찍혀 있다. 기후 정의는 저탄소 경제 전환으로, 풍력과 수소 등 대체 에너지, 국립공원 조성, 전기 자동차, 주택의 난방 시설 개선이 포함되어 있다. 경제 정의는 경제 전환 과정에서 국가의 조정 능력을 확대, 경제적 격차로 벌어지는 사회 문제에 대한 인지 능력이 떨어지는 시장을 견제하고자 한다.
주목할 부분은 "공정한 전환(just transition)"이다. 에드 밀리밴드는 재교육 과정을 기획, 새롭게 일자리를 찾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고 저탄소 경제 전환 과정에서 밀려나는 탄소 산업 종사자들이 실업자로 되지 않도록 보호하고자 한다. 또, 가스보일러 교체나 주택 단열재 보강은 저소득층에게 경제적 부담이 되기 때문에 저소득층과 임대주택부터 보조할 것을 제시했다.
노동당안의 급진성은 소유권 전환에 있다. 영국의 1980년대는 민영화의 시대로, 대처 총리는 항공, 철강, 통신, 에너지 등 주요 국영 기업을 사적 영역으로 넘겼다. 노동당은 경제 전환 과정에서 교통과 에너지, 특히 에너지 산업은 "공공 소유권"의 이름으로 다시 국유화시키길 원한다. 모든 삶의 기본이 되는 자원만큼은 개인 소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이다.
소유권 전환은 젊은 세대의 지지를 받고 있다. 2021년 7월 보수 싱크탱크(Institute for Economic Affairs) 보고서에 의하면, 영국 젊은 세대(Millennial and Z)는 사회주의를 선호한다. 80%가 주택 문제의 원인으로 자본주의를 지목하고, 75%는 기후 문제를 자본주의 문제로 인식한다. 그리고 72%는 에너지와 철도의 국유화를 지지한다.
노동당의 고민은 총선이다. 젊은 세대의 지지가 총선 승리를 의미하지 않기 때문에 노동당 대표 키어 스타머는 6대 에너지 회사 국유화 여부에 신중함을 보이고 있다. 반면, 에드 밀리밴드는 재국유화로 가는 것이 맞는다는 입장이다. 그는 자신이 노동당 대표였던 40대 초반을 "충분히 용감하지 못했다"고 회고하며, 2020년대 노동당은 제국주의를 정리하고 복지 국가로 전환시켰던 1940년대 애틀리(Clement Attlee) 노동당 내각의 과감함을 지녀야 할 때라고 주장한다.
보리스 존슨의 '영국식 뉴딜'
2020년 6월, 보리스 존슨은 자신을 "영국식 뉴딜(British New Deal)" 설계자로 칭했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보리스 존슨에게 놀라운 이상형이 나타났다 : 루스벨트"란 타이틀로 충격을 표했다. 1936년 "조직화된 돈(월스트리트)은 나를 만장일치로 싫어한다. 나는 그들의 미움을 환영한다"고 했던 루스벨트는 현 영국 보수당의 기반, 신자유주의 대처주의와는 상극이다. 존슨의 루스벨트 수용이 진심이라면 전향에 가까운 발언인 셈이다.
존슨은 2020년 11월 "녹색 산업 혁명을 위한 10가지 계획"을 발표했다. 이 문건의 부제는 "더 나은 재건, 녹색 일자리 지지, 속도 내는 탄소 중립"이었다. 보수당 고유의 상상력이 아니다. "녹색 산업혁명"은 2019년 노동당의 총선 공약이고, "더 나은 재건(Build back better)"은 미국 민주당 바이든 정책이다. 재생 에너지 산업 투자와 관련 일자리 창출, 전기차, 국립공원 조성 등 노동당의 아이디어를 상당부분 수용했다.
노동당과의 차이는 정부의 개입 정도, 즉 공적 자금 투입 규모에서 나타난다. 존슨 안에 따르면 정부는 120억 파운드(약 19조)를 투자한다. 초기 촉진제 역할로 세 배 규모의 사적 영역 투자를 유도해 25만 개의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한다. 제한된 정부 역할로 인해 존슨 안은 노동 시장을 살필 여력이 없다. 불가피하게 내리막길로 들어설 산업의 노동자 재교육에 큰 비중을 둔 노동당 안과 대비되는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