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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견 '낭월이'가 최근 산중에 새끼를 낳아 돌보고 있다.
 유기견 "낭월이"가 최근 산중에 새끼를 낳아 돌보고 있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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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 동구 낭월동 골령골 유해 발굴지를 자유롭게 오가는 누렁개가 있습니다. 유기견입니다. 

이 누렁이의 이름은 '낭월이'입니다. 지난 6월 초부터 유해발굴을 하는 단원들이 지명을 따 지어준 이름입니다.

대전 골령골은 전쟁이 나던 1950년 6월 말부터 이듬해 초까지 대전 형무소 재소자 등과 대전 충남·북 일원의 보도연맹원 등 적게는 4천여 명에서 많게는 7천여 명의 민간인이 군인과 경찰에 의해 살해된 땅입니다.

행정안전부와 대전 동구청(구청장 황인호)주도로 한국선사문화연구원(원장 우종윤) 등이 지난 6월부터 유해를 발굴 중입니다. 두 달여 동안 이곳에서 발굴한 유해만 450여 구에 이릅니다.
 
유해발굴 단원들이 급히 강아지집을 구해 산 중으로 옮기고 있다.
 유해발굴 단원들이 급히 강아지집을 구해 산 중으로 옮기고 있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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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주민들 말에 따르면, 낭월이는 지금 유해발굴을 하는 이곳에서 예전부터 살았습니다. 한 사육자가 상업용으로 뜬장에 여러 마리의 개를 키웠습니다. 올 상반기 유해발굴로 행정안전부와 대전 동구청이 부지를 매입하면서 사육장은 철거됐습니다. 철거 당시 누렁이와 백구 두 마리가 탈출했는데, 그중 누렁이가 낭월이입니다. 백구도 골짜기를 오가는데 거의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반면 누렁이는 유해발굴을 하는 단원들을 먼발치에서 지켜보며 주변을 떠나지 않습니다. 떠돌이라 배가 고파 유해를 건들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절대 유해는 건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유해 매장지 부근에 앉아 유해를 지키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처음엔 경계하던 유족 회원들도 신통하다고 이뻐합니다.

발굴단원 중 한 명이 낭월이를 위해 사료도 챙겨주고 간식을 챙겨주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쉬이 곁을 내주지 않습니다. 뜬장에서 오래 생활했으니 사람에 대한 정보다 경계심이 큰 때문이겠죠.

지난 6월 중순께부터 낭월이의 배가 불룩해졌습니다. 새끼를 가진 겁니다. 새끼를 키우겠다는 생각 때문인지 사람들 근처에 다가오는 횟수가 늘어났습니다. 자기 배가 고플 때는 냉랭하던 낭월이가 새끼를 가진 뒤로 '간식을 달라'는 신호를 보내옵니다.

그럴수록 발굴단원들의 걱정도 커졌습니다. 유해발굴이 끝나가는데 누가 밥을 챙겨주고, 새끼를 낳게 되면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 하는 우려입니다.

그런데 9일 아침 발굴 현장을 찾은 단원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갓 태어난 새끼 강아지 두 마리가 유해발굴 현장에 죽은 채로 놓여 있었습니다. 낭월이가 낳은 새끼입니다.

낭월이가 다가왔습니다. 그러고는 천천히 산속으로 향했습니다. 마치 따라오라는 듯 간간이 뒤를 바라보면서요. 가파른 산속 작은 바위 아래 나머지 새끼가 보였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니 모두 3마리입니다. 낭월이가 젖을 먹입니다. 다행히 남은 세 마리는 건강해 보입니다.

모두 5마리가 태어났는데 그중 2마리가 죽자 30m 산 아래까지 물고 내려온 모양입니다. 단원들이 강아지 사체를 잘 묻어주었습니다.

비가 온다는 소식에 오후에는 급히 강아지집을 구해 산중으로 옮겨놓았습니다. 수척해진 낭월이에게 우유랑 먹을 것도 갖다 놓았습니다.
 
9일 오후에는 산 아래로 내려와 한 단원에게 꼬리를 치며 살갑게 다가왔다.
 9일 오후에는 산 아래로 내려와 한 단원에게 꼬리를 치며 살갑게 다가왔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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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내 골령골 유해발굴 현장
 산내 골령골 유해발굴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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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월이의 태도도 몰라보게 누그러졌습니다. 9일 오후에는 산 아래로 내려와 한 단원에게 꼬리를 치며 살갑게 다가섭니다. 새끼들이 살 집과 먹을 것을 갖다줘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듯합니다.   

그럴수록 걱정은 더 커집니다. 산중에서 새끼를 키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건상 낭월이를 데려갈 수 있는 단원들도 없습니다. 단원들은 개인 입양자가 없으면 동물보호센터로 보내려 합니다.

그 전에 낭월이 가족이 성장할 때까지 임시 보호를 하거나 입양할 분을 찾습니다.

태그:#유해발굴, #낭월이, #유기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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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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