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중심가서 군위안부 한일합의 반대시위지난 2016년 1월 10일 오후 일본 도쿄 중심가인 긴자(銀座) 거리에서 혐한 시위대 수백명이 '위안부 합의 규탄 국민 대행진'이라는 명목으로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그는 "'조선인 학살은 없었다'는 왜 엉터리일까?"라는 사이트를 만들었다. "조선인 학살은 없었다. 그것은 조선인이 진짜로 폭동을 일으켰거나 우물에 독을 탔기 때문에 일본인이 반격했을 뿐이다"와 같은 '학살 부정론'을 비판하는 사이트다(http://01sep1923.tokyo/). 또 그는 코로카라출판사에서 'NO hate(노 헤이트)'와 'TRICK(트릭)! 조선인 학살을 없던 걸로 하고 싶은 사람들'이란 책을 냈다.
"2013년까지 혐한 시위에는 300명 이상이 모였다. 그들은 시민에게 폭력까지 휘둘렀지만, 경찰은 그들을 규제하지 않았다. 하지만, "카운터스"를 중심으로 차별반대시민들의 반격이 시작되고 '혐오 발언 규제법'과 지역별 조례가 생겼다. 시민들의 항의까지 더해지면서 혐한시위의 현장 참가자는 많이 줄었다.
문제는 사람들의 내면에 스며든 차별의식이다. 인터넷에는 혐한 발언이 넘쳐난다. 2021년 2월 13일 후쿠오카에서 지진이 일어났을 때 트위터상에 '지진으로 조선인이 좋아한다'와 같은 유언비어가 돌았다. 서점에는 혐한 책들이 넘쳐나고 티비에서는 악착같이 한국을 부정하는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다. 집권 여당에, 매스 미디어에, 인터넷에, 보통 시민들에게 혐한 사상, 인종 차별주의 자체는 독버섯처럼 스며들어있다."
그가 책을 통해 내린 진단이다. 그는 내면에 스며들어 있는 보이지 않는 차별의식과 편견에 맞서기 위해 계속해서 쓰고 또 쓰면서 행동하겠다는 의지를 책과 사이트를 통해서 보여준 것이다.
카토 나오키는 1967년 도쿄에서 출생해 호세이(法政) 대학을 중퇴한 후 출판사를 다니며 작가가 되었다. 그는 손문과 연대하여 신해혁명에서 세계혁명을 꿈 꾼 '미야자키 도텐'의 삶을 쓴 바 있다. 앞으로 조선인 여성 비행사 '박경원' 그리고 태평양 전쟁에 끌려갔던 일본 청년들의 이야기도 써갈 생각이다.
돌아보면 가토 나오키는 한평생 반전 평화, 차별 반대, 그리고 한중일의 연대와 우정에 관해 글을 쓰고 행동해 왔다. 그의 글과 행동을 보며 우리 자신에게 던져야 하는 뼈아픈 질문이 있지 않을까?
왜 우리정부는 독립정부를 세운 지 70여 년이 넘었지만 일본 정부에게 '간토대학살'에 대해 진상규명을 단 한번도 요구하지 않았는지?
상해임시정부조차 위험을 무릅쓰고 특파원을 파견해 피해조사작업을 벌여 학살된 사람이 6661명임을 밝혀냈건만.
왜 우리는 한반도 어디에도 간토대학살 피해자를 기리는 단 한기의 추모비도 세우지 않았는지?
못다 한 이야기 |
① 간토는 일본의 관동지방을 말한다. 도쿄, 사이타마, 요코하마, 지바현들을 일컫는 말이다. 일본에서는 관동대진재라고 보통 표현한다. 1923년 9월 1일 11시 58분 진도 7.2의 강력한 지진으로 12만 가구의 집이 무너지고 이재민이 40만명에 달한 재난을 말한다. 제2차 야마모토 내각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사태수습에 나섰다. 그런데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자 민중의 불만을 돌리기 위해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 '조선인이 폭동을 준비한다'는 유언비어를 조직적으로 퍼트리며 정부,군대,경찰,자경단이 합세해 조선인 대학살을 자행했다. 여기서는 관동대진재를 '간토대지진'으로 썼다.
② 9월1일 요코아미초 공원에서 열린 추도식에 보낸 일본의 영화감독 야마다요지와 소설가 나카자와 케이의 메시지는 아래 기사에서 인용했다.
(https://news.yahoo.co.jp/articles/4f153bd4f68bcee81afcef6502bdc1717e423820)
③'재특회'는 대표적인 혐한 극우단체다. 정식 명칭은 '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모임'(대표 사투라이 마코토)으로 2007년 1월 20일에 발족해서 2009년 10월 22일 기준으로 회원수가 7,000명이 넘었다. 특별영주자격을 갖고 있는 재일코리안들의 권리를 폐지하자고 주장하며 혐한, 혐오시위를 주도하고 있다.
③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도 2015년 '갈무리출판사'에서 나왔다. 당시 가토나오키는 한국 내 출판을 반기면서도 자신의 책이 민족주의 정서에 활용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는 당부를 했다.
④ '거리에서' 76쪽의 학살장면은 나라시노 수용소와 관련이 있다. 조선인에 대한 자경단의 학살이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자행되자 일본 정부는 대내외에 알려질 것을 우려, 9월 4일을 기점으로 민간의 폭력을 통제하고 보호를 명분 삼아 조선인 3,000여명을 도쿄 동쪽에 있는 지바현 나라시노 수용소에서 가두기 시작한다.
이때 군은 조선인 중 사회주의자, 저항경력이 있는 자, 요시찰 인물들을 분류하여 이들 일부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 다카쓰, 오와다, 오와다신덴, 가야다 등 주변의 마을 사람들에게 죽이도록 했다.
이는 당시 후나바시 경찰서 순사부장 와타나베 요시오가 "하루에 두세 사람씩 수가 모자란다"는 증언, 그리고 재일사학자 강덕상이 수용인원과 출소인원 사이에 300명 차이가 난다는 점에 주목, 연구하면서 의문이 제기되었고 이후 학살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일기, 증언들이 나오면서 그 실체가 밝혀졌다.
⑤ 가토 나오키씨 인터뷰는 이메일로 진행했다. 여러 제약에도 야후재팬 칼럼니스트 서대교씨의 도움을 받아 많은 얘기들을 주고 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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