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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학대하는 '공장식 축산' 방식이 위헌일 뿐만 아니라 정부정책에 의해 조장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 4월 30일 녹색당,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아래 카라), 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변호사들(아래 동변)은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감금틀, 인공수정 장면 등이 담긴 영상을 공개했다. 이들은 한국 정부가 소위 경쟁력 강화를 빙자해 생명을 착취하는 방법으로 생산력을 높이는 공장식 축산을 지원해 왔음을 보여주는 근거를 제시하기도 했다.

공장식 축산의 상징, 감금틀

감금틀은 비용 대비 최대 산출을 노리는 대량생산 체제의 핵심적 상징이다. 비용 절감과 관리적 편의를 위해 고안된 감금틀에서 동물의 기본적 욕구나 습성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돼지를 한 마리씩 가둬두는 '스톨(Stall)', 그리고 대여섯 마리의 암탉을 가둬둔 케이지(Cage)를 가로로 길게 이어 층층이 쌓아올린 '배터리 케이지(Battery Cage)' 등 감금틀은 오늘날 동물이 농장이 아니라 공장에서 밀집식으로 대량사육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암퇘지는 생후 210일이 지나면 인공수정을 시작하는데 스톨에 갇혀 3개월3주3일의 임신기를 보낸 뒤 출산 후 20여 일간 새끼들에게 젖을 주다가 곧 다시 임신을 한다. 이러한 과정을 스톨에서 3~4년간 반복하다 도축되는 것이다. 폭 60cm, 길이 200cm의 스톨에서 돼지는 몸을 돌릴 수조차 없으며 기껏해야 앉고 일어서는 것만 가능하다.

한편 시중에서 유통되고 있는 달걀의 95~99%가 배터리 케이지에서 사육되고 있는 닭으로부터 나온다. 한 마리 닭이 차지하는 공간을 환산하면 A4 용지의 2/3 정도로 닭들은 날개를 펼치기도 어려운 좁은 곳에 갇혀 70주(약 1년6개월)를 알을 낳으며 보내다 도축되고 있다.

 지난 4월30일 녹색당, 카라, 동변이 주최한 '파탄에 이른 공장식 축산, 정부정책이 조장하는 동물학대의 실태 공개' 기자회견에서 감금틀에 갇힌 닭과 돼지의 고통을 상징하는 퍼포먼스가 진행되고 있다.
지난 4월30일 녹색당, 카라, 동변이 주최한 '파탄에 이른 공장식 축산, 정부정책이 조장하는 동물학대의 실태 공개' 기자회견에서 감금틀에 갇힌 닭과 돼지의 고통을 상징하는 퍼포먼스가 진행되고 있다. ⓒ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공장식 축산의 주류화는 한국 정부의 작품

정부는 농장동물 사육의 인도적 가이드라인을 잡지 않은 채 1990년대부터 전업농을 육성하고 계열화를 지원하는 등 축산의 대규모화를 맹목적으로 지향해 왔다. 현재 전업농 기준 사육두수는 육우 50두 이상, 양돈 1000두 이상, 육계 3만수 이상, 산란계 3만수 이상, 낙농 50두 이상 등이다. 개방에 따라 좁아진 국내 농업의 입지를 축산 경쟁력 강화에서 찾으려는 의도였지만 그 방식이 대량생산을 통한 생산비 절감에만 치우쳐 농장동물의 고통은 가중되었다.

가축 사육 수를 기준 삼아 규모가 큰 농가에 자동화 설비를 지원해 온 결과 오늘날 국내 축산업은 소수의 농가에서 많은 수의 가축을 키우는 형태가 되었다. 한편 정부는 한 경영주체가 종축, 사료, 도축, 가공, 판매 등 전 단계에 걸쳐 계열화 하는 것을 이상적 형태로 보고 예산을 지원했는데 양계의 계열화율은 2010년 85%, 2011년 94%까지 높아졌다. 사육 현장에서는 밀집식 대량생산이, 유통에서는 독과점적 유통이 정부의 지원을 받고 커지게 된 것이다.

 돼지를 사육하는 농가 수는 급감한 반면 총 돼지 수는 급증함
돼지를 사육하는 농가 수는 급감한 반면 총 돼지 수는 급증함 ⓒ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닭을 사육하는 농가 수는 급감한 반면 사육하는 닭의 총 수는 급증함
닭을 사육하는 농가 수는 급감한 반면 사육하는 닭의 총 수는 급증함 ⓒ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대규모 밀집사육에 돌아가는 축산 지원금

'축사시설 현대화 사업'은 축산 경쟁력 강화를 위해 많은 예산을 배정해 온 정부의 주력 사업 가운데 하나다. 정부는 축사시설 현대화 사업을 통해 2009년부터 전업농을 지원해 왔는데 2009년부터 2015년까지 축사시설 현대화 사업에 투입된 예산의 규모는 총 1조1971억3백만 원이다. 축사시설 현대화 사업에 올해 배정된 예산은 1543억8100만 원으로 2015년 축산 전체 예산인 1조4589억 원의 10.58%를 차지한다. 축산 경쟁력 강화를 위한 지원금이 여전히 대규모 농가 위주로 배정되고 있다는 얘기다.

공장식 축산 정책의 참담한 동물착취는 축사시설 현대화 사업의 성과지표에서 확인된다. 양돈의 성과지표는 '연간 모돈의 두당 출하두수'로 한 마리의 어미돼지가 더 많은 새끼를 낳아 더 많이 도축될수록 성과를 올리는 것이다. 돼지는 살을 찌우다 보통 생후 6개월 만에 도축된다. 한편 닭에서 축사시설 현대화 사업의 성과지표는 '일당증체량'이다. 일일 몇 g 체중을 늘렸는지가 닭고기 생산을 위한 육계 농가의 성과로 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닭의 자연 수명이 20년인 반면 육계는 생후 30일 만에 도축되고 있다.

농장동물이니 학대해도 괜찮다?

영국의 농장동물복지위원회(Farm Animal Welfare Council)는 1979년 배고픔, 영양불량, 갈증으로부터의 자유, 불편함으로부터의 자유, 통증, 부상, 질병으로부터의 자유, 두려움과 고통으로부터의 자유, 정상적인 행동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 등 농장동물의 5대 자유를 제시했다. 농장동물이더라도 생명으로서 동물의 기본적 습성을 존중해 주며 사육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물에게 극도의 스트레스를 주는 공장식 축산 방식은 동물의 면역력을 떨어뜨리는 한편 밀집식 사육 환경으로 인해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 등 가축전염병의 리스크를 증폭 시킨다. 한국 정부는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로 인한 살처분 보상금으로 2011년 1조6032억3300만 원, 2012년 993억9200만 원, 2013년 227억5700만 원, 2014년(8월말 기준) 1166억4500만 원 등 2011년부터 2014년 8월까지 총 1조8420억2700만 원에 이르는 비용을 국민 세금에서 지출한 바 있다.

 녹색당, 카라, 동변이 지난 4월30일 헌법재판소에 공장식 축산이 위헌이라는 '생명과 지구를 살리는 시민소송' 추가 의견서를 제출했다.
녹색당, 카라, 동변이 지난 4월30일 헌법재판소에 공장식 축산이 위헌이라는 '생명과 지구를 살리는 시민소송' 추가 의견서를 제출했다. ⓒ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공장식 축산, 더이상 축산 정책의 방향 되어선 안 돼

문제는 정책적으로 조장된 공장식 축산 방식이 여전히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규모화를 통한 단편적 생산비 절감에 매달릴수록 한국의 공장식 축산은 확대될 수밖에 없다. 공장식 축산에 제동을 걸기 위해서는 밀집식 대량생산에 대해 집행되고 있는 정부의 지원부터 멈춰야 한다. 또한 대규모 농가 위주로 돌아가는 각종 축산 지원금 체계도 바로잡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동물을 착취하는 일이 없도록 감금틀 등을 법적으로 금해야 옳다.

2013년 5월 30일 녹색당, 카라 그리고 동변은 '생명과 지구를 살리는 시민소송'이라는 이름으로 1129명의 시민 청구인이 참여한 가운데 '공장식 축산'을 허용하는 현행 축산법이 국민의 행복추구권, 건강권 등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한 데 이어 지난 4월30일 헌법재판소에 추가의견서를 제출했다. 이번에 추가의견서에는 '현행 축산법이 유럽연합, 캐나다 등지에서는 금지하고 있는 돼지의 스톨 사육과 닭의 케이지 사육을 허용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같은 사육방식으로 인해 가축전염병이 확산되고 있고, 항생제 남용 등으로 인간의 건강에도 큰 위협이 초래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한국 정부는 동물복지를 확대하고 있는 국제적 추세를 주목하고, 공장식 축산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거꾸로 질주해 온 국내 축산 정책을 전면 재검토 해야 한다. 개방으로 인한 경쟁력 강화의 부담을 축산 농가에 과도하게 전가해서는 안 되며, 경쟁력을 키우는 방법에 있어서도 단편적 생산비 절감에서 진일보한, 동물복지를 생각한 방법이 모색되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김현지 시민기자는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활동가입니다.



#공장식 축산#카라#헌법소원#배터리 케이지#스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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