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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와카야마(和歌山) 현 다이지초(太地町)는 인구가 3500명밖에 되지 않는 작은 어촌 마을이다. 아마 비슷한 크기의 마을 중 다이지초는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지역일 것이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돌고래 사냥' 때문이다.

다이지초에서는 매년 9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돌고래를 사냥한다. 지역 어민들은 '전통적 사냥'이라는 명분으로 매년 포획이 가능한 돌고래 수의 상한선, 쿼터(quota)를 와카나마 현으로부터 승인받는다.

포획 대상이 되는 돌고래는 수족관 전시용으로 가장 인기가 많은 큰돌고래를 포함해 총 7종이다. 쿼터는 매년 차이가 있는데, 대략 2천 마리 안팎이다. 전세계의 고래류 포획과 전시 상황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제공하는 웹사이트인 '세타-베이스(Ceta-base.com)' 자료를 보면, 2013년 9월부터 2014년 3월까지(돌고래 사냥철) 총 42번의 사냥이 이뤄졌다.

그 해 쿼터 2013마리 중 834마리가 식용으로 도살되었다. 158마리는 수족관 전시용으로 수출하기 위해 산 채로 포획되었다. 이 중 4마리는 해상 가두리에서 폐사했다. 돌고래 사냥은 크게 두 가지 작업으로 이뤄진다. 배를 타고 돌고래 떼를 발견하면 '코브'라는 만(灣)에 몰아넣는 것과 이 '코브'에 갇힌 돌고래를 도살하는 것이다.

돌고래 생포  전시용으로 쓸 돌고래를 포획하고 있다.
▲ 돌고래 생포 전시용으로 쓸 돌고래를 포획하고 있다.
ⓒ DolphinProjec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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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새벽 열두 척의 배가 출항해, 연안에서 30킬로미터 밖까지 나가 돌고래 떼를 찾는다. 돌고래를 발견하면, 배들은 일렬로 늘어서 엔진에서 검은 연기를 뿜으며 추격을 시작한다. 사냥배에는 쇠로 된 장대가 장착되어 있는데, 이 장대를 물에 담근 채로 윗부분을 망치로 쳐서 소음을 유발한다.

청각이 예민하고 음파를 탐지하는 능력이 있는 돌고래들은 소음 때문에 불안감에 휩싸여 배들이 모는 방향으로 헤엄치게 된다. '코브'에 돌고래 떼가 갇히면, 도살업자들이 소형 배를 타고 와서 도살을 시작한다. 전시용으로 쓰일 돌고래를 고르는 날에는 수족관에서 일하는 조련사들이 먼저 도착해 원하는 돌고래를 고른다.

나머지는 도살 대상이 된다. 매년 다이지초에서 SNS를 통해 다이지초의 상황을 전세계에 생중계하는 돌고래 보호단체 '돌핀 프로젝트'에 따르면, 어망에 갇힌 돌고래가 50마리 이상 되거나, 전시용 돌고래의 생포가 이루어지는 경우에는 돌고래들이 힘이 빠지도록 하루 이틀 정도 바다에 두었다가 도살한다고 한다.

돌고래를 도살할 때는 보통 꼬리 지느러미를 잡아 거꾸로 들어 올린 뒤 목 부분을 칼로 찌른다. 그러나 바닷물이 피로 시뻘겋게 물드는 사진이 언론에 노출되면서 국제적인 비난을 받았다. 그 후로는 칼로 찌른 부위를 코르크 마개로 막는 방법을 쓴단다. 죽은 돌고래는 해체장으로 옮겨져, 고기로 포장된 후 주로 지역 내에서 유통, 소비된다.

돌고래 포획을 직접 보기 위해 다이지초로

지난 10월 14일부터 18일까지 나는 일본 큰돌고래들이 어떻게 잡히고, 어떤 과정을 거쳐 우리나라 수족관으로 옮겨지는지 직접 취재하고,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오사카 행 비행기를 탔다. 기차로 오사카에서 다이지초에 도착하자마자 숨가쁘게 달려간 곳은 다이지초 항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절벽이었다.

 참돌고래가 들것으로 수족관으로 이송되는 장면.몸에는 화상을 막기 위해 흰색 색소를 칠했다.
 참돌고래가 들것으로 수족관으로 이송되는 장면.몸에는 화상을 막기 위해 흰색 색소를 칠했다.
ⓒ DolphinProjec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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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 전에 포획돼 해상 가두리에 잡혀있던 참돌고래 두 마리가 수족관으로 옮겨질 것이라는 정보에 현장에 있던 활동가들은 아침부터 비상이었다. 망원경으로 가두리 상황을 관찰했다. 배를 타고 도착한 조련사들은 가두리 안의 돌고래를 잡아 '슬링(Sling)'이라고 하는 걸개에 지느러미를 고정시켜서 옮길 준비를 시작했다.

돌고래는 숨을 쉬기 위해 분기공을 수면 밖으로 밀어 올리는 것도 힘에 부치는 듯 보였다. 돌고래 피부에는 화상 방지를 위해 흰 분필 같은 물질이 발라져 있었다. 태풍에 며칠 시달리기까지 한 돌고래 두 마리는 조련사의 손길에 저항할 힘조차 없어 보일 만큼 그저 물에 둥둥 떠 있다시피 했다. 돌고래를 양 옆에 매단 배는 '돌핀 리조트'라는 수족관 쪽으로 향했다.

이동하는 동안 조련사는 돌고래의 몸이 마르는 것을 막기 위해 쉬지 않고 물을 끼얹었다. 수족관 앞에는 대형 크레인이 준비되어 있었다. 걸개에 걸린 채 움직이지 않는 돌고래를 크레인은 하늘 높이 치켜들었고, 곧 돌고래는 천정이 뚫린 수족관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야생 돌고래'가 '수족관 돌고래'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아직 몸이 다 자라지도 않은 어린 돌고래였다.

바다에서 수족관으로, 하루 아침에 바뀐 참돌고래의 운명

 도살이 끝나면 '코브'는 붉게 물든다. 도살을 피했다 하더라도 무리의 죽음을 목격한 돌고래는 스트레스로 오래 살아남지 못한다.
 도살이 끝나면 '코브'는 붉게 물든다. 도살을 피했다 하더라도 무리의 죽음을 목격한 돌고래는 스트레스로 오래 살아남지 못한다.
ⓒ DolphinProjec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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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이지초에 도착하기 3주 전인 9월 26일, 이날 오전부터 '돌핀프로젝트'의 페이스북에는 그물에 잡힌 참돌고래 떼의 사진과 함께, 그들의 운명을 애도하는 글이 올라왔다. 일본에서 올해 9월 들어 다섯 번째 '배몰이(drive hunt) 사냥'이 있는 날이었다.

이날은 돌고래들을 도살하기에는 물살이 세고 날씨가 궂었다. '돌핀 리조트'의 조련사들이 먼저 도착해 성체인 돌고래 한 마리와 어린 돌고래 한 마리를 골라 해상 가두리로 옮겼다.

그리고 28일, 이틀 동안 어망에 걸린 채로 몸부림을 치다 지친 돌고래 중 열다섯 마리는 칼 끝에 목숨을 잃고 고깃덩어리가 되었다. 전시용으로 쓸 만큼 예쁘지 않고, 몸집이 작아 고기로 사용하기에도 적절하지 않은 돌고래들은 바다에 다시 내던져졌다. 이 모든 게 페이스북으로 실시간 보고 되었다.

그러나 운이 좋아 바다로 돌아갔다 하더라도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왜냐고? 돌고래는 사람처럼 평생을 가족으로 이루어진 무리 안에서 서로 끈끈한 유대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동물이다. 눈앞에서 가족과 동료들이 비명을 지르며 죽어가는 것을 목격했는데, 예전처럼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살아갈 순 없을 것이다. 죽은 돌고래와 마찬가지로 그들의 삶도 산산조각 나 버렸을지도 모른다.

다이지초 고래 박물관과 분홍 돌고래 전시용으로 생포된 돌고래는 포획업자 소유의 해상 가두리나 지역 수족관으로 옮겨져 야생성을 잃고 죽은 먹이를 받아먹도록 훈련하는 '순치' 과정을 거친다. 다이지초에는 정부에서 운영하는 '다이지초 고래 박물관'을 포함해 세 개의 수족관이 있다. 이 수족관들은 포획된 돌고래를 사들여 조련을 시킨 후 다른 수족관으로 팔거나 외국 수족관에 수출하는 일종의 중간 거래자 역할을 한다.

 지난 1월 포획돼 '다이지고래박물관' 수족관에서 전시되는 알비노 돌고래 '엔젤'. 잡힌지 10개월 만에 먹이를 받아먹으며 재주를 부리고 있었다.
 지난 1월 포획돼 '다이지고래박물관' 수족관에서 전시되는 알비노 돌고래 '엔젤'. 잡힌지 10개월 만에 먹이를 받아먹으며 재주를 부리고 있었다.
ⓒ 동물자유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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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6일, 다이지초 고래 박물관에는 서른다섯 마리의 돌고래가 재주를 배우는데 여념이 없었다. 여기엔 지난 1월에 포획된 분홍색 돌고래 '엔젤'이 있었다. 지난 돌고래 사냥철, 한 번에 250마리의 큰돌고래를 포획한 대규모 살상이 있었다.

이때 알비노현상(신체의 일부 또는 전체에 색소가 없는 현상)에 의한 돌연변이로 추정되는 분홍돌고래가 포획되는 장면이 SNS로 유포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했다. 잡힌 지 고작 10개월. 어망에 갇혀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던 돌고래는 이제 조련사의 손짓에 맞춰 점프를 하고 죽은 물고기를 받아먹으려 입을 벌리는 동물이 되어 있었다.

일본의 돌고래 수입 고객, 대한민국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는 일본에서 돌고래를 수입하는 '고객' 중 하나다. 서울대공원, 한화아쿠아플라넷을 포함해 전국 열 개의 수족관에는 일본에서 수입된 총 서른 한 마리의 큰돌고래가 전시되고 있다. 2013년에는 총 6마리를 수입해 러시아, 중국, 우크라이나 다음으로 많은 돌고래를 수입했다.

올해 초에는 거제씨월드에서 열여섯 마리를 무더기로 수입했으니, 2014년에는 어쩌면 2, 3위로 등극하는 영광을 안을지도 모르겠다. 돌고래는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 부속서II에 속하는 종으로, 현재 멸종위기에 처해 있지는 않지만 국제거래를 엄격하게 규제하지 않을 경우에는 멸종 위기에 처할 수 있는 종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환경부는 수족관이 수입허가신청서와 구비서류만 갖추고 수입을 신청하면 별 규제 없이 허가해 주고 있는 실정이다. 유럽연합과 브라질, 칠레, 코스타리카 등 남미 국가들은 대부분 CITES 조약 외에 자체적으로 법을 만들어 고래류를 전시용으로 수입하는 것을 규제하고 있다. 미국처럼 돌고래 수입이 법적으로 금지되지 않은 국가라 하더라도 국민의 비난과 국제여론 때문에 일본 다이지초에서 잡힌 돌고래 수입을 허가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

그러다 보니 일본은 우리나라나 중국처럼 상대적으로 환경이나 동물복지에 대한 의식이 낮은 나라를 주 수출국으로 겨냥한다. 돌고래에 대한 국내 수요가 일본 돌고래 포획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는 것을 감안할 때, 하루 빨리 무분별한 수입을 규제할 수 있는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

살아있기를, 죽었기를 바랄 수도 없었다

 거제씨월드 돌고래 수입을 반대하는 시민단체 기자회견. 거제씨월드는 올해 4월 다이지에서 돌고래 열 여섯 마리를 수입했다.
 거제씨월드 돌고래 수입을 반대하는 시민단체 기자회견. 거제씨월드는 올해 4월 다이지에서 돌고래 열 여섯 마리를 수입했다.
ⓒ 동물자유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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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돌고래의 이송 이후 다이지초에 머무르는 일주일 동안 배는 매일 빈 손으로 돌아왔다. 세계 각국에서 온 활동가들과 함께 새벽 다섯 시에 사냥배가 출항할 때부터 다시 항구로 들어올 때까지 사냥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했다. 반대로 일본 경찰들은 활동가들의 움직임을 하루 24시간 감시하고 채증하는, 웃지 못할 진풍경도 벌어졌다.

다이지초 방문 기간 동안 참돌고래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돌핀 리조트'에 들어가는 것을 시도했지만, 매표소에서는 '외국에서 온 방해꾼'에게 표를 파는 것을 거부했다. 죽음과 삶의 문턱을 넘나들던 참돌고래. 그들이 악몽과도 같았을 시간을 견디고 생존해, 남은 20년 동안 수족관에서 살기를 바라야 하는 건지, 아니면 자유롭게 헤엄치던 바다를 그리며 수족관 안에서 눈 감기를 바라야 하는 건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돌고래가 한때 가졌던 가족, 바다, 자유, 삶. 갖고 있었던 모든 것을 하루아침에 송두리째 빼앗아 버리는 돌고래 사냥. 이 과정을 현장에서 본다면, 과연 '전통'이라는 이유로, 혹은 아이들에게 보여주기에 예쁘고 재미있다는 이유로 돌고래 사냥이 정당하다고 주장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국에 돌아오니 제2롯데월드 아쿠아리움이 개장해 손님을 맞고 있었다. 그리고 며칠 되지 않아 다이지초에서 큰돌고래 다섯 마리가 또 생포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 돌고래들이 곧 바다를 건너와 우리나라 수족관에 갇히게 될지는 모를 일이다.


태그:##돌고래 , ##수족관 , ##아쿠아리움 , ##다이지 , ##거제씨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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