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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광석인 와 그리 일찍 죽었대니?"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북한군 중사 오경필(송강호 분)은 이렇게 읊조립니다. 그리곤 "야! 야! 광석일 위해 딱 한 잔만 하자우"라며 이내 반합에 채운 술을 비워냅니다. 일전에 어느 글에선가 '너무 이른 죽음이란 것은 없다'는 글귀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슬퍼하는 사람들에겐 모두의 죽음의 너무나도 빨리 찾아오는 이별이기 때문에 그렇답니다.

그런데 유독 너무 일찍 우리 곁을 떠난 것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가객 김광석입니다. 1996년 세상을 등졌으니 올해로 16년이 됩니다.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음은 분명하지만, 김광석을 추억하는 사람은 오히려 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해 10월 KBS <불후의 명곡>은 김광석 특집으로 이뤄졌죠. 가장 냉정하다는 시청률이 껑충 뛰어오른 것만 봐도 비단 저 혼자만의 생각은 아닌가 봅니다.

군대를 다녀온 남성이라면 갖고 있는 <이등병의 편지>에 대한 추억,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던 <서른 즈음에>, 너의 향기 가득한 빈방에서 듣는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이제 다시는 사랑으로 세상에 오지 말자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다시 못 올 먼 길로 사랑하는 이를 보내는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까지. 김광석은 그만이 묻혀낼 수 있는 진솔한 가사를 그만이 담아낼 수 있는 목소리로 우리의 삶을 풀어냅니다.

진짜 군통령은 김광석이 아닐까요?

김광석과 아이유
 김광석과 아이유
ⓒ SK텔레콤 광고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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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여동생 아이유가 '군인들의 대통령'이라는 군통령으로 등극했다지만 어쩌면 진정한 군통령은 김광석이 아닐까요? 아이유의 노래 <너랑 나>가 10년 뒤에도 군인들의 입에서 흘러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징집 제도가 유지되는 이상 <이등병의 편지>는 이 나라 젊은이들의 입에서 끊이지 않고 흘러나올 것입니다(물론 이것을 아이유에 대한 이른바 '디스'로 판단하시면 곤란합니다. 오빠는 널 사랑한단다).

세간에는 그가 특수부대 출신이었다는 '카더라 통신'도 있었지만 실상 김광석은 단기사병 출신이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동사무소 방위 출신이었던 거죠. 군대를 다녀오지 않아도 대통령도 할 수 있고, 국회의원도 하는데 군통령이라고 못하겠습니까.

저는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를 잊지 못합니다. 크리스마스이브 전날 입대한 훈련소, 나지막하게 내무실에 깔리던 그 노랫말. 그 노랫말에 '빠직'하고 반응하던 대뇌의 느낌과 나도 모르게 또르륵 뺨을 타고 흐르던 눈물. 덕분에 저는 훈련소 첫날을 잊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는 청춘을 한없이 약해지게 만들었던 아킬레스건이었습니다.

그의 노래를 듣다 보면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하나 있습니다. '만약 다른 이의 목소리로 이 노래를 들었어도 이렇게 반응할 수 있을까'라는 것이죠. 그만큼 그의 노래에는 절절함이 묻어 나옵니다. 어머니만 끓일 수 있는 엄마표 된장찌개 같이 그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들이 바로 김광석의 노래들입니다.

군대를 다녀오고, 예비군도 끝나가지만 아직도 <이등병의 편지>의 하모니카 전주를 들으면 가슴부터 먹먹해집니다. 군대를 한 번 갔다온 저도 그런데, 훈련소만 두 번 다녀온 가수 싸이는 어떤 심정일까요? 더 깊숙히 이 노래가 다가오지 않았을까요(이 역시 가수 싸이에 대한 '디스'로 판단하시면 곤란합니다).

참 나쁜 가수... 그의 이름은 '김광석'입니다

가객 김광석. 사진에세이집 <김광석, 그가 그리운 오후에> 중에서
 가객 김광석. 사진에세이집 <김광석, 그가 그리운 오후에> 중에서
ⓒ 랜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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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저는 미국에서 가장 낭만적이라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며칠을 묵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저녁이 되면 세계 각국에서 온 젊은 배낭여행객들이 값싼 위스키를 한 병씩 들고 모여 앉아 저마다의 이야기를 나누곤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밤은 유난히도 짧았습니다. 미국 가수 스티비 원더의 노래가 나오고 있을 때, 누군가가 제게 물었습니다. 음악을 좋아하던 미국 친구였지요.

"한국에서 가장 훌륭한 가수를 안다고 한국인에게 말하고 싶다면 누구를 이야기하면 되는거야?"

물론 아이유와 싸이도 훌륭하지만 저는 그 친구에게 '김광석'이라고 답해줬습니다. 자연스레 그 이름이 튀어나오더군요. 그 친구는 '김광석'이란 이름을 기억해 놓겠다며 손등에 이름을 받아적었습니다. 우리가 느끼는 '김광석'이 잘 전달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노래를 듣고나면 아마 비슷한 감정이 생길 것 같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하얗게 지샜던 지난 밤들에 듣던 <사랑이라는 이유로>의 그녀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있을까요? 그리고 그 노래를 불렀던 광석이형은 왜 그렇게 빨리 갔을까요? 정작 본인은 나이 서른둘에 요절했으면서 왜 다른 이들이 평생을 들을 노래를 남겨놓고 갔을까요?

8년 전, '이제 다시 시작이다'라며 <이등병의 편지>를 목놓아 부르던 제게 요즘은 <서른 즈음에>가 칼바람만큼이나 시리게 들려옵니다. 많이 두고 빨리 떠난 사람. 김광석은 참 나쁜 가수입니다.

그리고 1월 6일은 그 나쁜 가수, 가객 김광석의 기일입니다.


태그:#김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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