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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텍코리아 시급 노동자들은 휴대폰 측면에 들어가는 버튼 조립과 비닐 붙이는 작업을 했다고 한다(사진 속 휴대폰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
 하이텍코리아 시급 노동자들은 휴대폰 측면에 들어가는 버튼 조립과 비닐 붙이는 작업을 했다고 한다(사진 속 휴대폰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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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졸업반인 김아무개(23·여)씨는 지난 여름방학에 부천 하이텍코리아에서 '시급 노동자'로 일했다. 직원이라야 여성만 20명 남짓인 영세한 업체인데다 초과 근로가 다반사인 고된 노동이었지만 그래도 대기업 휴대폰 부품을 조립하는 일이어서 별다른 불안감 없이 일했다고 한다. 

김씨가 시간당 4000원씩 두 달 꼬박 일해서 번 돈은 176만 원. 일거리가 밀려 밤 10시, 12시까지 일한 덕에 초과근로수당이 절반을 차지할 정도였다. 그중 7월분의 일부인 81만 원이 지난 9월 초 늦게나마 입금되었을 때만 해도 학비에 작은 보탬이 되리란 기대가 컸다. 하지만 기대도 잠시, 사업주는 나머지 임금 95만 원 지급을 차일피일 미뤘고, 급기야 지난 11월 중순 사장과 실랑이 끝에 노동부에 진정을 넣었다. 그런데 노동부에는 이미 같은 회사 퇴직 여성 노동자 8명이 임금 체불 민원을 제기한 상태였다.

1천만 원대 '소액' 체불이 '불구속 입건'까지 간 까닭

"우리 같은 피해자가 더는 없어야 해요. 돈도 돈이지만 심적으로 너무 힘들어요."

지난 13일 만난 이 회사 퇴직자 이인숙(41·여)씨는 "밀린 임금 못 받아도 어쩔 수 없다. (감옥에) 들어가서 우리가 당한 고통만큼 느껴봤으면 좋겠다"고 서슴없이 말할 정도로 업체 대표를 철저히 불신하고 있었다.

이씨를 비롯한 다른 여성 노동자들 역시 김씨처럼 근로계약서도 없는 시급 4천 원짜리 '아르바이트' 처지였다. 이씨가 하던 일은 휴대폰 옆면에 버튼과 비닐을 부착하는 단순 작업이지만 물량이 많아 손톱이 바스러지고 울어가면서 일했다고 한다.

지난 5월부터 일해 3개월 만인 7월 25일 그만뒀는데 당시 6월분 급여도 못 받은 상태였다. "적자여서 못 준다, 8월에 준다, 9월에 준다, 하다가 10월에 마지못해 50만 원 입금해줬어요. 아직도 160만원 못 받았어요."

하이텍코리아 퇴직자인 이인숙씨가 갖고 있는 7월분 월급 명세서. 명세서에 적힌 돈은 아직 지급받지 못했다.
 하이텍코리아 퇴직자인 이인숙씨가 갖고 있는 7월분 월급 명세서. 명세서에 적힌 돈은 아직 지급받지 못했다.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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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적자는 아닌 것 같은데 한두 달씩 임금 지급을 미루다 퇴직자에겐 아예 안 줘버리는 식이었다고 한다. 이씨를 비롯한 퇴직자 10명의 피해 금액은 1000만 원 정도.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처지에 마땅히 하소연할 데도 없던 이씨에게 노동부는 마지막 희망이었다. 사업자와 합의하지 못 하면 밀린 임금을 돌려받지 못 할 수도 있다는 얘기까지 들었지만 더는 호소할 데가 없었다.

회사 대표 형사 고발돼도 임금 돌려받을 길 막막

노동부는 지난 10일까지 체불임금 전액지급지시를 내렸지만 이 회사 대표가 이행하지 않아 결국 '불구속 입건' 처리했다.

하이텍코리아 김아무개 대표는 "사업하다보면 적자가 누적돼서 임금을 못 줄 수도 있는 것 아니냐"면서 "액수도 1000만 원 정도로 소액이어서 분할해서 주기로 했는데 노동부에 진정해, 줄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김 대표는 이미 같은 공장 태국인 여성 노동자가 임금 체불로 고발해 '벌금형'을 받았지만 벌금도 못 낼 처지라고 한다.

노동부 경인지방노동청 부천지청 권경숙 근로감독관은 "업체 쪽에선 분할지급을 제시했지만 노동부에서 전액지급지시가 나간 상태여서 형사 고발한 것"이라면서 "임금 체불이 입증되면 최대 2000만 원 이하 벌금형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하이텍코리아는 한 대기업 2차 하도급 업체(벤더)인 P사에서 비공식적으로 재하청을 준 임가공업체라고 한다. P사 대표는 "우리는 임가공비를 제때 지급했는데 회사 대표의 개인적 사정으로 인건비 지급을 2~3개월씩 미룬 것 같다"면서 "근로자들이 사장을 못 믿는 상황이어서 그쪽 대표와 합의해서 최근 결제할 돈을 근로자에게 직접 지급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에 있는 하이텍코리아 공장. 건물 3층에 세들어 있어 확인할 수 있는 흔적은 계단 입구에 있는 조그만 표지 뿐이었다.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에 있는 하이텍코리아 공장. 건물 3층에 세들어 있어 확인할 수 있는 흔적은 계단 입구에 있는 조그만 표지 뿐이었다.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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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경숙 감독관은 "특별사법경찰관 권한도 사업자 재산 파악까지는 미치지 않아 상습 임금 체불 수사에 어려움이 많다"면서 "노동부 예산으로 민사 소송까지 지원하고 있지만 실 재산을 파악하지 못하면 돌려 받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국민권익위원회는 올해 들어 10월까지 110콜센터에 접수된 임금체불 관련 상담전화 3573건을 분석했다. 그 결과 여성(71%)이면서 100인 미만 중소업체(96%)일수록 임금 체불에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체불 금액 역시 200만 원 미만(76%) 소액이 대부분인 데다 발생 사유도 재정상 어려움, 회사 부도, 대표자 연락 두절 등 회사의 어려운 환경이 67%를 차지해 막상 민사 소송까지 가더라도 임금을 돌려받기 쉽지 않은 구조였다.

주로 여성 노동자를 시간급으로 쓰는 하이텍코리아 같은 영세업체가 '임금체불 사각지대'에 놓인 셈이다.

대학생 김씨의 아버지 김상훈(47)씨는 "해방 직후 혼란기도 아니고 회사 사장 개인적 문제 때문에 급여 지급을 미룬다는 게 말이 되느냐"면서 "사업주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사회 약자들에게 지급할 급여를 착복하는 사례가 더는 없도록 해달라"고 하소연했다.


태그:#임금체불, #하청업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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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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