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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가카의 빅엿'이라는 발언으로 SNS 이용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던 서기호 서울북부지원 판사가 재임용에서 탈락됐다는 보도는 '오보'였다. 서 판사도 1일 자신의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탈락이 확정된 게 아니라) 연임(재임용) 적격 여부의 심사 개시를 통보받은 것뿐"이라고 전했다.

그런데 서 판사가 재임용 심사를 통보받았다는 소식에 씁쓸함을 느낀 이가 있었다. 지난 1997년 재임용에서 탈락한 방희선 전 수원지법 판사였다. 그는 현재 동국대 법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동안 판사들은 무슨 법에 의해 재임용됐나?"

1997년 재임용에서 탈락한 방희선 전 판사(자료사진)
 1997년 재임용에서 탈락한 방희선 전 판사(자료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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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전 판사는 1일 오후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인터뷰에서 "저는 당시 재임용 심사를 통보받은 적도 없었는데 그나마 지금은 형식상(절차상) 진일보한 것 같다"면서도 "적법한 절차 없이 법률상 연임대상인 법관의 재임용을 심사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방 전 판사는 "법관은 임기가 10년이지만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연임할 수 있다"며 "그런데 현재 그 연임과 관련된 법이 존재하지 않아 '입법 부작위상태'에 있다"고 말했다. '입법'을 해야 하는데 하지 않고 있어 사실상 '위헌상태'라는 지적이다.

현행 헌법 제105조는 '대법원장과 대법관이 아닌 법관의 임기는 10년으로 하고,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연임할 수 있다'고, 법원조직법 제45조는 '판사의 임기는 10년으로 하며 연임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방 전 판사는 헌법이 규정한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연임할 수 있다"는 항목에 주목했다. 지난 1948년 헌법이 제정된 이후 법관 재임용의 근거가 될 수 있는 '법률'이 부재했다는 것이 그의 일관된 주장이다.

방 전 판사는 "(지금 진행되고 있는 재임용 심사 등은) 법적, 제도적 절차가 아니라 행정적 절차에 불과하다"며 "그렇다면 그동안 재임용받은 판사들은 '무슨 법'에 의해 재임용됐나?"라고 꼬집었다. "(판사 재임용을) 옛날 관행대로 하는 초법적 사법"이라고도 했다.

서 판사가 재임용 심사를 통보받은 배경으로 그의 'SNS 활동'이 거론되는 것과 관련, 방 전 판사는 "품위나 처신 등은 윤리적 문제와 관련된 것이지 그것이 판사라는 신분을 박탈할 만한 큰 문제는 아니다"라며 "윤리적 문제와 재임용은 차원이 다르다"고 주장했다. 이런 비유도 들었다.

"훈련을 잘 하는데 밖에서 사고 한 번 쳤다고 전투에서 그를 배제해서야 되겠느냐?"

서울고법의 한 현직 판사는 이날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재임용 신청을 하면 거의 다 재임용되는데 왜 서 판사만 문제가 되어서 재임용 심사를 받는지 모르겠다"며 "재임용 심사가 흔히 있는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만 방 전 판사는 "지난해 변호사회에서 서 판사가 판결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며 항의문을 법원에 보낸 걸로 안다"며 "판결문을 두 줄로 쓰는 등 판결 이유를 제대로 서술하지 않았다는 것인데 이것은 판사의 자질과 관련된 문제"라고 말했다. 

"대법원에서 구수회의로 재임용 여부 결정하면 안돼"

또한 방 전 판사는 "작년 국회 사법개혁특위에서도 제기했는데 법관의 신분은 (대법원이) 몰래 알아서 보장하는 게 아니다"라며 "연임의 조건, 절차, 심사주체와 기간, 구제방안 등이 들어 있는 법을 만들고 그에 따라 제대로 된 인사평가위원회를 설치해 근무상태와 판결실적 등을 근거로 재임용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방 전 판사는 "대법원장과 대법관이 구수회의를 통해 '누구는 재임용하고 누구는 탈락시키자'는 식으로 하면 객관적 승복이 안 된다"며 "대법원장이 어떤 성향이냐에 따라 재임용되거나 탈락하거나 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판사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연임하는 것이지 대법원장의 명에 따라서 재임용되는 게 아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위헌이다. 헌법을 보면 재임용권자가 대법원장이 아니다."

방 전 판사는 "적법한 기준과 절차에 의해 재임용을 해야 한다"며 "즉 법관 재임용을 (법적으로) 제도화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그렇지 않으면 법관의 지위는 10년짜리 계약직이나 마찬가지"라며 "특히 로스쿨 제도가 정착되면 법관 임용제도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방 전 판사는 판사로 재직하던 지난 1992년 구속영장이 기각된 대학생들을 불법구금한 경찰관 5명을 직접 고발했고, 이후 인사조치에서 불이익을 받자 헌법소원까지 냈다. 하지만 1997년 이례적으로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1980년대 이후 재임용에서 탈락한 경우는 방 전 판사와 신평 전 판사 등 3명으로 알려졌다.


태그:#방희선, #판사 재임용, #서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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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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