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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마을에서 건설되고 있던 A 골프장
 동양마을에서 건설되고 있던 A 골프장
ⓒ 황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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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헌법재판소는 골프장을 도시기반체육시설로 규정하여 개발사업자에게 토지 강제수용권을 주는 것은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결했다. 골프장의 공익성을 최종 부정한 것이다. 2008년 12월 헌법소원이 제출된 후 2년 6개월만이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골프장은 시설이용에 드는 비용이 사회경제적 수준에 비춰 과도하기 때문에 소수자에게만 접근이 용이한 시설로, 공익을 목적으로 한 체육시설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그동안 "골프장이 공익시설인가?"라고 반문했던 국민들에 대한 뒤늦은 답변인 셈이다.

이번 판결를 이끌어낸 이들이 누굴까? 헌법소원을 내고 결국 한 나라의 법을 바꾼 이들은 사회의 엘리트나 지도층이 아닌 안성시 보개면 동평리 동양마을의 주민들이다. 평균연령이 60세는 족히 될 어르신 40여 명이 그 주인공이다. 어르신들은 지난 2008년 마을 뒷산으로 골프장 공사가 진행되자 10만 원씩 내서 헌법소원에 드는 기금을 마련했다. 평생 땅과 가까웠던 어르신들은 없는 살림에도 주머니를 헐어 돈을 보탰다. 기금을 낸 주민들 중에는 독거노인들과 기초생활수급자도 있었다.

그렇게 모은 기금으로 어르신들 이름 하나하나를 올려 헌법소원을 내고 지금까지의 시위비용을 마련했다. 허리가 굽은 할머니들과 백발 성성한 할아버지들이 노년에 평생 안 하던 시위와 집회를 하느라 바쁘셨다. 인터뷰를 위해 마을회관에 모인 어르신들은 4년 동안 골프장과 싸우느라 안 가본 데가 없다며 웃으신다. 헌법재판소, 서대문경찰서, 수원법원, 평택지청, 서울시청까지. 대절한 관광버스가 이 고령의 시위대(?)를 날랐다. 안성경찰서나 안성시청은 드나든 횟수를 기억하기도 어렵다.

안갑승 동양마을 이장님과 이택순 주민대책위 총무님이 그 과정에서의 두 기둥이었다. 총무님은 타지에서 기업체를 경영하다 노년을 보내기 위해 동양마을에 왔다. 그는 마을에 '골프장 사태'가 벌어지고서야 동네분들과 교류를 시작했다. 총무님은 4년 동안의 싸움을 두 권의 노트에 꼼꼼히 기록했다. 그 기록은 이제 마을의 역사가 되었다. 누구도 이길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싸움을 끝내 지속시키고 기어이 법을 바꾼 이들의 승리의 기록이다. 마을 어르신은 그 노트를 두고두고 남겨 동네 후손에게 물려줄 거라 하셨다. 

초복인 14일, 주민들은 복날 겸 헌법불일치 판결을 축하하는 잔치를 했다. 닭을 여러 마리 주문했다. 겨우 체면치레나 할 저렴한 비용에도 주민들 법정대리인으로 기꺼이 나서주었던 최재홍 변호사도 방문한다. 자연을 아낄줄 알고 개발의 이면을 잘 아는 이 젊은 변호사는 인사를 많이 받았을 듯 하다.

조상 묘 사라지고, 살던 곳에서 쫓겨나고... 그 싸움의 기록

동양마을 할머니들
 동양마을 할머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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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동양마을 뒷산의 나무가 베어지던 2008년 2월부터 시작되었다. 그동안 골프장 측과 협의하고 돈을 받고 떠나간 사람들도 있었지만 지금의 동양마을의 어르신들은 끝까지 반대했다. 어떻게든 한번 이겨보려고 했다고 주민들은 그때를 회상한다.

A 골프장 건설 인해 강제수용을 당한 가구는 40가구가 넘는다. 논과 밭, 집이 넘어갔다. 자신의 보금자리가 속절없이 강제수용된 집도 10가구 정도 된다. 평생을 성실히 살다 고향마을로 돌아와 6억이 넘는 돈을 투자해 통나무집을 지었던 최병학 할아버지는 최후까지 버티다 강제로 쫓겨나야 했다. 그가 강제수용을 당하고 받은 돈은 집을 짓는데 투자한 돈의 반밖에 되지 않았다.

열여섯에 시집와 여든 한살이 되도록 동양마을에서만 살았던 정연순 할머니도 헌법소원 청구인이다. 정 할머니는 이곳에서 7남매를 낳고 길렀고 자식들은 이제 모두 타지로 나가 산다. 정 할머니의 시부모님 묘소도 골프장 공사로 사라졌다. 어느 날 묘소에 가보니 묘가 없어졌더라고 했다. 똑같이 강제수용을 당한 마을의 최아무개씨도 조상의 묘가 사라졌다고 했다. 묘를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고 할머니는 무덤덤하게 말씀하신다.

골프장 때문에 신경 쓰느라 그동안 아픈 데만 더 생겼다는 정 할머니는 기자의 질문에 자신은 뭘 잘 모른다고 대답하지만 남의 땅을 강제로 빼앗아 골프채나 휘두르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아신다. 또 그 아래 친환경 쌀농사를 하느라 허리 부러지는지는 농민들이 있는데 머리 꼭대기에 골프장이 들어서는 것도 아니라는 건 아신다.

동양마을에는 요즘 전국에서 걸려오는 문의전화가 많다. 골프장으로 인해 강제수용을 당하게 된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느냐고 전화를 걸어오는 것이다. 헌법불일치 판결이 난 것도 그들은 잘 모르고 있더라며 한 어르신은 왜 TV에서 그런 것을 보도하지 않느냐고 반문하셨다. 아직도 전국에는 골프장으로 인해 강제수용을 당할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동양마을의 싸움은 배워 가야할 교본이다.

10대처럼 활달한 장용순(75) 할머니가 재밌는 일화를 전한다. 언젠가 평택지청 앞에 주저앉아 할머니들이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는데 한 민원인이 돈 10만 원을 주고 가더란다. 양복을 입은 그 민원인이 돈을 건네며 한 말은 식사라도 하시라는 말이었다. 할머니들은 그날 그 돈으로 점심을 먹었다며 재미있다고 소녀들처럼 웃는다.

판결났지만 동양마을 싸움은 여전히 '현재진행중'

소장제출기록
 소장제출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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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골프장 공사현장은 지금 헐벗은 폐허다. 나무가 베어지고 누런 흙이 드러난 그곳에는 토사유출을 막기 위한 비닐차단막이 곳곳에 널려 있고 움푹한 곳마다 물이 가득 고여 위태로워 보인다. 골프장 부지를 머리꼭대기에 이고 사는 주민들은 이 장마철 언제 물 폭탄이 터질지, 어느 사이 산사태가 날지 몰라 매일 밤잠을 설치고 있다.

공사 내내 감내해야 했던 소음이나 먼지는 젖혀 놓더라도, 동양마을 대부분의 가구는 발파 등으로 인해 벽의 균열, 담장 무너짐, 건물의 뒤틀림 등을 겪었다. 또 산을 벗겨놓아 지하수가 나오는 것도 예전 같지 않다. 이런저런 항의를 했으나 관에서나 업체에서나 일언반구 어떻게 하겠다는 말이 없다. 한 어르신은 많은 비로 공사장 절개지가 무너지면 이제 그들은 천재지변이라고 발뺌할 거라며 목청을 높였다. 홍수피해가 나면 이제 그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지 주민들은 막막하다.

그동안 관과 골프장업체는 주민들에게 털끝만큼의 신뢰도 주지 못했다. 항의하면 겨우 입막음이나 할 만큼의 시늉만 했다고, 우리가 매일 속은 거라고 어르신들은 씁쓸해했다. "골프장이라고 하면 이제 진저리가 나." 정 할머니는 이렇게 말하며 몸살을 앓듯 몸을 떨었다.   

평생 동양마을에서 살았다는 김씨 어르신은 골프장이 들어선다는 걸 알았을 때 타지에 있는 친구들에게 전화를 해 울었다. 고향에 남은 자가 고향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 한밤 어르신을 수화기를 붙잡고 울게 만들었다. 그때를 회상하는 김씨 어르신의 심장은 아직도 벌렁거린다. 가슴에 울화가 돌덩이처럼 떡하니 버티고 앉아 내려가지 않는다고 어르신은 말한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좋은 소리 듣기 힘든 민원의 현장은 재주 좋게 피해가는 정치인들에 대한 신랄한 비난이 이어졌다. 지역의 국회의원과 시장은 초창기 딱 한 번 마을을 방문했을 뿐이다. 4년 동안의 싸움에 지친 주민들의 원망은 컸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당장의 해결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들의 편에서 마음을 보태고 함께 손을 잡아줄 정치인이었을 것이다. 

A 골프장을 보면 헐벗은 부지가 어마어마하다. 나무가 베어질 때 우리 가슴 속의 그 무엇도 함께 베어졌다. 동양마을은 그 아래 포박당한 작은 짐승처럼 위태롭다. 다 죽은 마을이라는 소리는 그래서 나온다. 시공사의 부도로, 또 헌법불일치 판결로 적은 침몰했지만 공사가 언제 재개될지, 피해를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을지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아직도 정오만 되면 마을회관 앞에서는 한바탕 풍물을 치는 난장이 펼쳐진다. 그것은 지난 4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해온 동양마을 어르신들의 시위이다. 주민들의 싸움은 끝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진행 중인 것이다.

동양마을 어르신들이 펼치는 풍물
 동양마을 어르신들이 펼치는 풍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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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찾은 지난 7일, 골프장 현장사무소는 인적이 없었다. 골프장 입구에는 유치권을 행사 중인 어느 업체의 팻말만 있었다. 마을 주민들은 다시 원래의 숲으로 원상복구 되는 것이 가장 좋지만 제발 뭐라도 끝을 보았으면 한다고 전했다.

골프장은 큰 변수가 없는 한 이달 안에 허가취소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결국 원점으로 돌아온 자리, 이제 남은 일은 산 채로 껍질이 벗겨진 동평리를 되돌리는 일이다. 그동안의 잘못된 행정으로 이 폐허를 만들었던 안성시는 원상복구를 목표에 두고 움직여야 한다. 오랜 시간이 걸릴지라도 그것만이 가장 최선의 반성이며, 우리가 등한시한 가치에 대한 고해성사일 수 있을 것이다.

개발과 성장이라는 미명 아래 자행된 그동안의 토건사업들은 일정부분 폭력을 동반했다. 개발을 위해 보금자리로부터 쫓겨나야 했던 수많은 이들의 상처는 이 나라의 그늘이다. 지난 용산참사가 그랬고 재정착률이 20%도 되지 않는 뉴타운, 재개발사업이 여전히 그렇다. 누군가의 호주머니를 채우기 위해 누군가를 삶터에서 쫓아내는 것은 정의롭다 할 수 없다. 더 이상의 비극이 없어야 하기에 오늘도 동양마을 마을회관에서는 꽹과리가 운다. 귀 있는 자들은 그 꽹과리의 울음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7월 13일 안성신문에 게재되었습니다.



태그:#골프장, #강제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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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강사, 전 안성신문 기자, 전 이규민 국회의원 보좌관, 현)안성시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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