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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이 파업했을 때, 배우 김여진을 비롯해 많은 시민과 단체들이 파업에 연대했다. 반면, 정작 홍대 학생들의 대표체인 총학생회는 파업에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 어쨌든 학습권을 침해받고 싶지 않다는 말과 함께.

 

이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반응은 '젊은 대학생들이 어찌 그렇게 이기적이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좀 다른 측면에서 볼 수도 있다. 홍대 학생들은 1년에 거의 천만 원을 내고 대학을 다니는'소비자'이고, 소비자는 자신이 낸 돈에 부합하는 서비스를 원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소비자의 관점에선 그것이 '정의(justice)'인 것이다. 즉 이런 식이다. '아주머니들의 사정도 딱하군. 하지만 내가 받을 서비스가 줄면 안 되지.'

 

우리는 언제부터 자신을 '합리적 소비자'로만 생각하게 되었을까? 동정하고 연민하는 인간으로, 또는 한 사회의 시민으로 자신을 규정하는 법을 언제부터 잊어버렸을까?

 

<보이지 않는 주인>의 저자 더글러스 러시코프에 의하면, 이러한 태도는 우리가 '코포라티즘(corporatism)'을 받아들이면서 비롯된 것이다. 코포라티즘은 기업이 정부를 포함해 전 사회 영역을 지배하는 체제와 이데올로기다(유럽 사민주의 국가들의 '협동조합주의'와는 구별된다).

 

어디 홍대 학생들만 그렇겠는가? 우리 대부분이 '기업'의 눈으로 세상을 보지 않는가? 투자 대비 최대의 이익을 끌어내야 한다는 원리에 감히 저항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애플이나 삼성, 스티브 잡스나 이건희를 창의적 혁신의 주체로 보는 정도를 넘어, 그 기업들의 비전과 가치를 자기 속에 내면화하고 있다.

 

"당신은 동네 이름을 공개하면 부동산 가격이 떨어진다는 것을 몰라? 안 그래도 부동산 시장이 어려운데 말이야! 브루클린 부동산 시장은 지금도 붕괴 직전이라고!" - 5p

 

저자 러시코프가 아파트 입구에서 강도에게 지갑을 털린 이야기를 인터넷에 올리자, 지역 주민들이 성난 메일을 보내 이렇게 야단을 쳤다. 그들은 "집값이 그 집에서 일어나는 일보다도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 작은 에피소드는 역설적으로 무척 '글로벌'하다. 용산참사를, 그리고 뉴타운 철거민들을 생각해보라. 그런데 저 성난 브루클린의 주민들이나 홍대 총학생회가 그저 남의 이야기일까? 진실은 이렇다. 직접 파업 노동자나 철거민이 되기 전에는, 우리 대부분이 "사람처럼 행동하지 않고 기업처럼 행동한다."

 

기업 지배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저자는 이러한 코포라티즘, 즉 기업의 지배가 어떻게 우리의 삶을 바꾸었는지 보여주면서 풍부한 사례를 곁들인다. 그런데 그 사례들이 다소 나열적이라 어찌 보면 논리적 흐름이 좀 약하다고도 생각된다. 그래서 모자이크식 독해가 필요한데, 책이 던지는 조각들을 잘 맞춰 큰 그림을 그려보면 크게 세 가지의 질문을 만나게 된다. 첫째, 기업의 지배는 역사적으로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둘째, 기업이 지배하는 세상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 셋째,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를 극복할 것인가? 

 

"영국의 머스코비(1553), 동인도회사(1600), 그리고 네덜란드 동인도회사(1602) 등 최초의 무역 독점 기업들이 생겨나자, 군주들에게는 굳이 돈을 들여 군사적 원정을 벌이거나 그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도 부를 쌓는 길이 열렸다. 상인들은 왕의 충성스런 신하가 되었다. 왕이 그들의 안전을 보장해 주고 면책 조항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 37p

 

흔히 우리는 기업이 봉건 군주와 싸우며 암흑시대를 '르네상스'란 혁신의 시대, 부흥의 시대로 바꾸었다고 생각한다. 기업 가문이면서 예술가를 후원했던 메디치가처럼 말이다. 하지만 사실은 그와 정반대다. 상인 계급들은 봉건 군주들과 긴밀히 동맹하였고, '독점 특허 기업'을 허가받아 이미 곳곳에서 진행 중이던 자유로운 상거래와 기술 혁신을 억눌렀다. 그 대표격인 동인도회사는 무력으로 인도의 면화를 독점한 후, 그 면화로 런던에서 옷을 만들어 다시 인도인들에게 비싸게 팔아치웠다. 이런 식으로 기업은 부를 늘리고 현지의 수공업 시장을 파괴했다.

 

코포라티즘의 형성에서 독점이 한 과정이라면 또 다른 과정은 지역 화폐의 추방이었다. "역사책은 군주들이 특정한 화폐를 만들면서 다른 화폐들을 추방해버린 과정을 통째로 생략하거나 적당히 미화해 놓았다." 그래서 우리는 중세를 흑사병과 기아가 만연한 부정적 이미지로 떠올리고, 그에 반해 상인 계급이 주도한 르네상스를 화려한 '재생'으로 상상한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그 부정적인 중세는 14세기의 모습이며, 11세기에서 13세기까지 유럽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번영했다. 특히 노동계급들이 그 번영의 열매를 누릴 수 있었다.

 

당시 지방들은 원거리 무역과 지역 경제에 각기 다른 화폐를 사용했는데, 특히 지역 화폐는 투기나 저장하는 목적에 쓰이지 않고 생산에 즉각 재투자되는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그 결과 풍차, 오븐, 와인 압착기가 발명되고 석탄 사용이 대중화되는 등 기술 혁신으로 생산력이 발전했다. 유럽에서 처음으로 고기가 부족하지 않았고, 사람들은 적게 일하고 많이 쉬었으며, 남녀의 체격은 지금만큼이나 커졌다. 그러나 희소성과 집중성이 특성인 중앙 화폐가 지역 화폐를 몰아내자 투자는 위축되고 생산력도 약화되었다.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들었고 도시의 위생 상태도 따라서 나빠졌다. 흑사병이 창궐할 조건이 갖춰졌던 것이다. 

 

"지역 화폐의 사용이 절정에 이르렀던 서기 1000년에서 1300년 사이에 유럽의 인구는 놀라운 속도로 늘어났다. 영국에서는 300년 동안 인구가 약 두 배로 증가했다. 그러나 1290년대에 영국의 중앙 권력이 단일하고 희소한 동전을 발행하고... 지역 화폐를 추방하면서...10년 동안 삶의 질이 떨어지면서 인구가 다시 줄기 시작했다. 30년 뒤인 1347년에 페스트가 발생했다." - 27p

 

기업 지배는 우리를 진짜 세상과 분리시킨다

 

"과거는 과거이고 어쨌든 지금은 기업 없이 살 수 없지 않은가?" 사실 기업을 빼놓고 우리의 생활을 상상할 수 없다는 점은 맞다. 그러나 그 과정을 과연 '발전'이라 할 수 있을까?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코포라티즘의 세계에서 기업이 성장할수록 우리는 진짜 세계, 진짜 가치, 진짜 사람들로부터 분리된다. 집은 보금자리에서 분리되어 돈 버는 수단이 되고, 상품은 실제 필요에서 분리되어 '브랜드'가 되며, 돈은 지역적 사용에서 분리되어 은행에 진 '빚'이 된다. 우리는 이웃들과 진짜 관계에서 분리되어 '소비자'로 남는다.

 

"대량 생산이 노동자를 개별적인 존재로 만들었다면, 대중 마케팅은 소비를 개별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인간적 결속을 기업적 결속으로 바꾸려면 브랜드를 통해 사람들을 서로 '분리시켜야' 했다." - 155p

 

이처럼 분리된 소비자가 된 우리는 이제 기업에 의해 철저히 '소비되는 자'로 전락했다. 그 결과 우리에게 남은 것은 동료와의 무한 경쟁이며 신용카드와 마이너스 통장을 총동원해가며 도무지 갚을 수 없는 부채를 지는 것이다. 하지만 소득 분배는 갈수록 불평등해지고, 안정된 일자리는 점점 더 줄어만 가고, 지역 공동체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더 줄어든다. 우리는 '바닥을 향한 경주'에 내몰린다.

 

"주택 대출 금리가 오르면서 자산 소유자들이 채무 불이행 상태로 빠지기 시작하고, 지역에 대한 투자 계획들은 휴지 조각이 된다. 집이 텅텅 비고 부랑자들이 그곳을 차지한다. 게다가 감세 정책은 이런 문제를 관리할 경찰과 기타 사회 서비스를 위축시킨다. 범죄와 등교 거부가 늘고 자산 가치는 급락한다. 주택 압류가 더 증가한다."- 116p

 

어떻게 기업 지배에서 벗어날 것인가

 

그럼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저자는 '아래로부터 진짜 사람, 진짜 가치, 진짜 관계를 되찾는 것'이라 말한다. 저자는 기업 지배에 맞서기 위해 기업과 똑같은 방식을 택하는 것은 별 효과가 없다고 한다. 중앙집중적인 정치활동이나 미디어활동은 순간적인 만족을 줄 수 있지만 우리 안의 코포라티즘을 여전히 부추기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기업이 만든 자선 재단들은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도리어 기업 지배를 강화하는 경향마저 있다.

 

"그러나 (빌 게이츠) 재단 보유액인 350억 달러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돈을 계속 투자해야 한다. 자선 사업에 쓰이지 않는 95%의 보유금은 때로 그 재단이 옹호하는 명분과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이 재단이 15억 달러의 주식을 보유한 어떤 제약 회사들은 약을 너무 높은 가격으로 팔고 있으며, 이는 재단의 사업인 아프리카 약 공급을 도리어 방해한다." - 363p

 

저자는 지역 화폐, 지역 농업, 생활협동조합 등 다양한 풀뿌리 활동에 연대하고 참여하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우리는 "영토를 재획득하고, 가치를 창출하며, 서로와 다시 연결되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업이나 기업화된 기관에 손을 벌리기보다,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자립하는 법"을 배워야만 하는 것이다.

 

뉴욕시의 빈민촌을 훌륭하게 재생시킨 마조라 카터의 사례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그녀는 전과자와 노인들을 참여시켜 '옥상 정원'을 만들었고 거기서 난 유기농 야채를 지역에 공급했으며, 사람들과 힘을 합쳐 대기업의 독극물 폐기물 투기를 막았다. '근본적 개혁'만 기다리며 손 놓고 있거나, 기업의 지배를 기정사실화하여 체념할 것이 아니라 풀뿌리 공동체를 바꾸는 작은 일부터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작은 일은 역설적으로 매우 큰일이 된다.

 

"우리는 이 인간적인 환경에 우리의 노력을 가하여 우리의 삶과 공동체를 변화시킬 수 있다. 그 변화가 모여 이 거대한 세계 속으로 스며든다면 이 세계의 작동법을 바꿀 수도 있을 것이다." - 394p

 

물론 저자의 결론에서 아쉬운 점도 있다. 풀뿌리 운동과 더불어 전국적 정치활동과 사회개혁 운동 역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래로부터 변화를 쌓아나가는 것과, 그 변화를 사회적으로 제도화하는 것은 상충되지 않으며 긴밀하게 보완적이다. 예를 들어 필자인 나는 내가 사는 동네에서 공동육아 공동체에도 참여하지만, 공공보육 제도의 개선을 위해 사회당과 같은 진보정당도 지지한다. 둘은 결코 다르지 않다. 물론 이 책이 지적하는 것처럼, 특정 기업이나 그 CEO를 매섭게 비판하는 진보운동이 자기 역시 '기업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는 있다.

 

하지만 이 책의 매력은 다른 데 있다. 저자는 주택시장, 자동차산업, 쇼핑몰, 미디어, 광고 산업, 인터넷과 소셜 네트워크 등 우리가 생활의 '필수품'으로 여기는 것들 속에 감춰진 코포라티즘의 전략을 찾아내고, 매우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경쾌하고 재미있게 풀어간다. 만약 스스로 '합리적 소비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면, 이 책을 읽다가 이런 의문이 들 것이다.

 

기업이라는 '보이지 않는 주인'이 어느새 내 머릿속에 들어와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누구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가? 소비자 아닌 '시민'이 되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덧붙이는 글 | <보이지 않는 주인> - 인간을 위한 경제는 어떻게 파괴되었는가 / 더글러스 러시코프(지은이) / 오준호(옮긴이) / 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 2011년 3월 / 1만8000원 

오준호 기자는 <보이지 않는 주인>의 번역자이며, 이 글은 최근 번역한 책의 소개이자 길잡이글입니다. 개인 블로그 http://blog.naver.com/interojh에도 올립니다.


태그:#보이지 않는 주인, #러시코프, #코포라티즘, #기업지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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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기본소득당 공동대표. 기본소득정책연구소장. <기본소득이 세상을 바꾼다><기본소득 쫌 아는 10대> <세월호를 기록하다> 등을 썼다. 20대 대선 기본소득당 후보로 출마했다. 국회 비서관으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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