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3월 15일 10여 년을 다니던 직장서 정리해고 당했습니다. 살 길이 막막했어요. 어찌 살아야 할까. 고민고민했지만 딱히 기능도 능력도 학벌도 없는 제가 설 자리가 없었습니다.

'울산이 날 버리는구나. 이젠 울산을 떠날 때가 되었나 보다.'

그런 생각에 몇 날 며칠을 밤새 고민했습니다. 당장 가족의 생계가 걱정이었습니다. 다행히도 고용보험이란 제도가 있어 그것으로 생계를 꾸려 가면 될 거 같았습니다. 날 버린 울산에 더 이상 미련이 없었습니다.

또 단순 노무직의 공업계 일자리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습니다. 비정규직 일자리 구해봐야 또 언제 잘릴지 미래가 불안정하니까요. 더 늙어 오늘처럼 이런 비참한 현실과 맞닥뜨린다면 어쩌겠어요? 그래서 더 이상 울산에 미련을 두지 않기로 했습니다.

날 버린 울산, 제주는 날 받아줄까

제주도에서의 삶은 어떨까요? 아내는 제주도 여행 한번 해 보는 게 꿈이었습니다. 이참에 아예 제주도에 가서 살아버리면 어떨까요? 그거 괜찮은 생각 같네요. 그래서 제주도로 가서 한번 살아 보자고 생각했습니다. 회사 잘리기 한 달 전, 제주 귤농사 짓는 농부와 우연찮게 연락이 닿았고 하루 농장 체험 행사에 초대되었더랬습니다. 미련없이 가 보았습니다.

귤 쨈과 귤 껍질 썰기 작업에 쓰일 귤을 물에 씻고 있는 농부
▲ 귤 쨈 만들기 준비작업 귤 쨈과 귤 껍질 썰기 작업에 쓰일 귤을 물에 씻고 있는 농부
ⓒ 변창기

관련사진보기


까무잡잡한 얼굴에 베토벤처럼 치렁치렁한 머리에다 푹 눌러쓴 모자. 작은 키. 첫인상 솔직히 별로였지요. 하지만 그와 함께한 1박 2일 제주 귤농장 체험은 좋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우선 그는 참 맘씨가 좋았습니다. 자식에게 참 자상한 아빠였고 자상한 남편이었습니다. 게다가 얼마나 부지런하던지요. 그 작은 체구로 이리저리 바지런히 움직이는 모습이 참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제주 농부님께 제 사정을 이야기했습니다.

"사정이 참 딱하게 되었네요. 제가 부족하지만 힘껏 도와주겠으니 제주도에 귀농해서 한번 살아 보세요."

그 말 들으니 기분은 좋던데 한편으론 자신감이 없었습니다. 평생을 공업계 회사에서 단순노무직만 해온터라 농사 '농' 자도 잘 모르고 있습니다. 흙을 만지며 산다는 게 왠지 낯설어 보였습니다. "잘 할 수 있을까요?" 제주 농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 어디 있나요. 차차 배우면서 해나가면 됩니다. 중요한 건 기술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가짐입니다. 힘들 겁니다. 농촌생활은 도시생활과는 완전 다르니까요. 1년간만 잘 참고 견뎌 보시면 희망이 보일 겁니다. 제주도에서는 자신만 좀 부지런하면 먹고는 살아요."

제주 농부님이 참 고마웠습니다. 저에게 큰 용기를 주었고 다시 뭔가를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 주었지요. 그래서 제주도로 가기로 마음 먹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발 붙이고 살아오던 울산을 떠나 낯설고 물설은 땅 제주도 땅을 밟은 게 지난 2일 오후 7시 경.

"아니 이렇게 빨리 오시다니요?"

제주 농부님은 아마도 심사숙고하여 결정을 내리고 살 집도 알아 본 후에 내려올 줄 알았나 봅니다. 연락도 없이 갑자기 짐보따리 싸들고 내려온 저를 황당하다는 듯이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그러나 제주 농부님은 눈치가 빨랐습니다. 당장 눈 앞에 닥친 일부터 처리해야 했습니다.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 빈 방이 있는지 알아 보았습니다.

"우선 그곳에 가서 살아야겠네요. 좀 불편할 겁니다."

홀홀단신 제주 생활, 주말이 따로 없네요

저는 지금 더운밥 찬밥 따질 겨를이 없습니다. 비바람만 피하면 되었습니다. 함께 찾아간 집은 비어 놓은 지 꽤나 오래되어 보였습니다. 그야말로 비바람만 피할 수 있는 집이었습니다. 감산리라는 산골에 있는 빈 집이었습니다.

그것도 저에겐 대궐과 같았습니다. 제주 농부님은 제 주머니 사정을 감안하여 그런 집이라도 찾아 준 것이었습니다. 그 집을 집 주인의 허락을 받아 공짜로 쓰게 되었습니다. 한푼이라도 아쉬운 저에겐 정말 운좋은 일이었습니다. 울산서 제주로 올 때 비행기 표만 구해서 왔거든요.

"우선 이거라도 끓여 드세요."

당장에 내일 아침부터 민생고 채우는 일이 문제임을 알아 차렸는지 집에 남아 있던 라면 한 상자를 내주었습니다. 빈 집이지만 전기도 들어오고 물도 잘 나왔습니다. 외딴 집이라 밤에 멀리 떨어진 화장실 다녀 오는 게 좀 어렵지만 지내는데는 괜찮았습니다.

제주 농부 댁으로 아내가 붙여준 여러가지 상자가 왔습니다. 그 속엔 옷가지와 전기장판 전기로 물 라면 끓이는 것, 전기 밥솥과 여러가지 물품이 들어 있었습니다. 밤엔 전기 장판으로 잠을 잡니다. 전기 냄비로 라면을 끓여 먹습니다. 빨래도 손빨래 합니다. 아내가 없으니 여러가지 불편하지만 참고 견뎌야만 합니다. 1년 후 가족과 함께 살 날을 희망하면서요.

제주 온 날 밤을 벼락치기로 그렇게 보내고 다음날 오전 6시 깼습니다. 각오를 다지고 제주 농부님이 준 라면을 하나 끓여 먹고 이를 닦고 세수를 하고 귤농장서 일할 수 있도록 옷과 작업 신발을 신었습니다.

오전 7시 제주 농부님이 트럭 타고 왔습니다. 귤농장 가서 처음 만져보는 톱과 귤나무 가지 자르는 가위를 받았습니다. 두꺼운 가지는 톱으로 자르고 적당한 가지는 나무 자르는 가위로 잘라 냈습니다. 제주 농부님은 일을 아주 능란하게 잘 했지만 제가 하는 일은 엉성했습니다.

귤 나무 가지를 자르고 귤 나무를 파내서 다시 옮겨다 심고 삽질하고 발 뒤꿈치로 갓 묻은 귤나무 뿌리가 흔들리지 않게 꾹꾹 눌러 흙을 밟고 하는 작업을 하다보니 하루가 언제 가버린지 모르겠습니다.

직장인은 토요일과 일요일이 있었지만 농부에겐 토요일, 일요일이 없었습니다. 맑은 날과 비오는 날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더구나 이번에 제주 농부님이 귤농사 시범 사업자로 선정되어서 기존 귤농사 방식과 다르게 농사를 짓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당분간 참 바쁠 것 같습니다.

귤농사, 쉬운 일은 아니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겠죠?

제주 농부님을 따라 다니며 귤농사에 대해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제주 농부님은 흙이 살아야 농부도 살 수 있다며 친환경 농법을 고집합니다. 저도 그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저도 기회가 되면 귤 농지를 임대해 친환경 농법으로 귤농사를 지을 예정입니다. 제가 그동안 배워본 귤농사는 가지치기와 뿌리 자르기, 옮겨심기, 물주기, 접지 입니다.

모두 신기했지만 접지가 참 신기했습니다. 귤나무 종자는 뿌리가 약해서 제주도 땅에서는 살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탱자 나무 뿌리에다 귤나무를 접지시킵니다. 탱자나무는 척박한 흙에서도 잘 자라고 생명력이 아주 강하다고 합니다. 제주 농부님 만나서 이래저래 많이 신세도 지고 있고 귤농사에 대해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우선 6개월만 잘 참아 봐요. 힘들어도."

제주 농부님을 통해서 여러 사람이 귀농했다가 농촌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도시로 떠났을 때마다 아쉬움이 남았다고 합니다. 조금만 더 참아 보면 되었을 걸 하고 말이지요. 저보고 누누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귀농은 본인의 강한 의지에 달린 것이라구요. 제주 농부님의 그 말을 마음에 심고 그 분을 믿고 열심히 제주로의 귀농 모험을 해볼까 합니다.

"힘들지만 6개월만 잘 참고 견뎌 봅시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닙니다."


태그:#제주 귀농, #농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인간해방 사회는 불가능한가? 노동해방 사회는 불가능한가? 청소노동자도 노동귀족으로 사는 사회는 불가능한가?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