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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번주 휴일 때 놀러 가는데 느그는 어디 안 가나?"

지난 11월 첫째주 주말 특근이 잡혔다가 돌연 취소되었습니다. 전국노동자대회가 있다는 이유로 현대차 원청 노조에서 강제로 특근 거부 결정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간만에 토요일, 일요일 시간 나는 정규직 노동자는 신이 났습니다. 전국노동자대회는 노조 간부에게 맡기고 일반 정규직 노동자들은 나들이 계획 짜느라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위 질문 내용은 저보다 나이가 많은 정규직 노동자 형님이 던진 질문이었지요. 그 질문을 받고 난감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속으로 정규직이 참 부러웠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이상 회식은 기본이고, 1년에 서너 번은 여행과 산행을 다녀옵니다. 거기다 연말이면 송년회에 새해엔 또 신년회까지 정규직 노동자는 이래저래 스트레스 풀 수 있는 기회가 많습니다. 정년 역시 보장돼 있습니다.

월차도 맘대로 쓸 수 없는 비정규직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시급 뿐 아니라 근무조건이 차이가 난다. 사진은 현대차 울산공장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시급 뿐 아니라 근무조건이 차이가 난다. 사진은 현대차 울산공장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제 주변 정규직들은 휴가를 자주 씁니다. 하기야 근무 경력 순에 따라 연차만 해도 20개이상 나오고 매월 월차 1개씩 받으니 한 달에 두세 번 평일 휴가를 내도 1년간 다 못 쓰는 형편이지요. 이래저래 부러운 일들이 많은 게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비정규직인 제 현실은 어떨까요? 저는 현대차 울산공장 사내 하청에서 2000년 7월 초부터 일했습니다. 같은 작업장에서 같은 일 해온 지가 10년이 되었는데 업체가 3번이나 바뀌어, 새로 입사한 것으로 처리되면서 이제 겨우 1년이 지나서 연차가 10개 나왔습니다. 지난 10월까지 쓰지 않은 월차 10개를 합쳐 20개가 있습니다. 월차를 한 개도 쓰지 않았기 때문에 20개가 된 것이지요.

살다보면 집에 일이 있을 때도 있고, 몸이 좋지 않은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비정규직 형편에 보조 작업자가 없어 연차를 쓰지 못합니다. 보조 작업자가 2명인데 휴가 내려는 날 마침 보조 작업자가 모두 작업장에 투입되고 나면 여유 인원이 없어 휴가를 못 내는 것입니다.

정규직은 쉼터가 있어 쉬는 시간마다 편안히 앉거나 눕기도 하고 TV를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비정규직은 별도로 쉼터가 없는 관계로 쉬는 시간 또는 점심시간 때마다 몸 둘 곳이 없어 매우 불편합니다.

그보다 더 절박한 건 딸린 식구들의 생계비 확보가 더 급선무라 쉴 수가 없는 것입니다. 1년 후 연·월차 모아진 게 돈으로 환산되어 나오기 때문에 그걸 바라보고 어지간 하면 참는 것이지요.

비정규직과 정규직은 같은 지붕 아래 같은 공정에서 작업하고 점심 때면 같은 식당에 같이 앉아 밥을 먹지만 겉보기와 속은 하늘과 땅 차이가 납니다.

정규직은 1년간 받아가는 상여금만 800%입니다. 1년 두차례 큰 명절 때면 현금 80만원에 유류비까지 지급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는 1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상여금 600%에 명절날 각 15만원 정도 나오고 선물 사이버머니 15만 원 나오는게 전부입니다. 정규직은 선물 사이버머니도 30만 원인데 비정규직은 15만 원이니 딱 절반이네요. 또 해를 넘겨도 사용치 않을 경우 정규직은 상품권으로 발행되어 나오지만 비정규직은 기한 지나면 바로 소멸되어 추석과 설 합해서 30만 원 사이버머니가 0원으로 변해서 아무것도 구입할 수가 없게 됩니다.

"특근 수당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다르다"

 비정규직 차별철폐를 주장하는 퍼포먼스 행렬.
비정규직 차별철폐를 주장하는 퍼포먼스 행렬. ⓒ 오마이뉴스 권우성

"나는 특근 한대가리 하면 30만 원 넘는데 느그는 얼마나 되노?"

얼마 전 알고 지내는 정규직 형님이 질문을 해왔습니다. 제가 14만 원 정도 나온다니까 "그것밖에 안 되나?" 하고 놀란 표정을 지었습니다. 비정규직 특근은 그렇습니다. 토요일 또는 일요일 오후 5시까지 출근해서 밤새 일하고 다음날 오전 8시에 작업을 마치게 되지요. 보통 평일 야간 작업이 밤 9시 시작하여 다음날 오전 8시 끝나는 것에 비하면 특근은 4시간을 더 작업하는 셈이 됩니다. 그렇게 같이 고생하며 밤샘 작업하는데 절반 넘게 노임 격차가 벌어 지는 것입니다.

"월급 명세서 좀 보여주면 안 될까요?"

여러해 동안 정규직 노동자에게 월급 봉투를 좀 보여 달라고 했지만, 하나 같이 거절했습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급여 체계가 너무 궁금했었습니다. 실제로 원청과 하청의 월급 격차는 얼마나 될까? 그리고 왜 그렇게 차이가 나는 걸까?

그러다가 2년 전 우연히 쓰레기 통에서 정규직의 월급 봉투 하나를 발견하였습니다. 그냥 버려진 것이었죠. 버려져 찢어진 월급명세서를 휴지통에서 주워 모았습니다. 그리고 쉬는 시간에 짜맞추어 접착제로 붙여보았습니다. 놀라운 윤곽이 드러나더군요.

정규직과 비정규직 임금 차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시급과 수당 차이가 상당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임금 차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시급과 수당 차이가 상당하다. ⓒ 오마이뉴스

정규직 명세표는 2년이 지난 시점이니 시급은 물론 더 올랐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휴지통에서 주운 명세표 정규직인 몇 년차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물론 20~30년간 근무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시급은 같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난 2000년 7월 초에 입사한 저의 경우와 1시급 2시급 차이는 확연합니다. 정규직은 1120원 차이 나는데 반해 비정규직은 겨우 42원 차이가 납니다. 1시급은 정상근무일 때 적용되는 시급이고, 2시급은 잔업이나 특근 때 적용되는 시급입니다. 근속수당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10년 가까이 일해 왔지만, 회사가 세번 바뀌면서 1년차로 지급됩니다.

차이는 수당에서 확연하게 나타납니다. 정규직엔 15가지나 되는 각종 수당이 수두룩 한데 비정규직엔 근속수당 외엔 해당사항이 없습니다. 기본적인 가족수당 좀 달라고 몇 년 전부터 요구해오고 있지만, 원청 회사에서 계속 거절당합니다. 만근수당과 교통비 정도가 비정규직에 적용되는 수당의 전부입니다.

정규직엔 있는데 비정규직엔 없는 게 또 있습니다. 바로 자녀 학자금입니다. 정규직은 중·고등 학생 자녀가 있는 경우 학자금이 나옵니다. 또한 대학 입학금도 나옵니다. 하지만 비정규직엔 일체 주어지지 않는 기회입니다. 하다 못해 옆 회사인 현대중공업은 하청 노동자로 2년 넘게 일하면 자녀 학자금이 주지만, 현대차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만약에 회사를 쉬게 된다면

연말정산을 통해 확인한 지난해 제 연봉은 3200만원이었습니다. 총액만 보면 많다고 하실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중학교 1학년인 딸과 초등학교 2학년 아들, 그리고 아내 4명이 살아가기에는 빠듯한 금액입니다. 아이들 학원비를 비롯해 용돈 등등을 합치면 두 아이에게만 들어가는 돈이 월 100만 원 정도는 됩니다. 상여금이 없는 달에는 180만원 정도로 생활하고 카드로 살다가, 상여금 나오는 달 마이너스를 메우면서 살고 있습니다. 아내는 제가 가져오는 돈으로 부족한지 신문을 돌립니다. 처음에는 오후에만 신문을 돌리더니 이제 새벽에도 신문을 돌립니다.

2008년 도시근로자 월평균소득이 427만 6642원(4인 가족 기준) 이라고 합니다. 매월 400시간씩 일하지만(생산직의 경우 특근 오후 5시 출근해서 오전 8시 퇴근의 경우 하루 35시간 일한 것으로 계산됨... 한달 평균 4회 정도의 특근을 하면 140시간 근무한 것으로 계산됨, 일근 근무가 아닌 경우 일한 시간* 1.5로 계산됨)  제 월급은 도시근로자 월평균소득에도 한참 못 미치는 금액을 받고 살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내년이 다시 걱정입니다. 제가 일하는 곳이 어쩌면 공장 전체를 뜯어 버리고 새로운 차량 공정으로 기계를 다시 깔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이 흐를지도 모릅니다. 정규직은 유급휴가를 쓰면 되겠지만, 비정규직은 계약 해지되거나 아니면 무급 휴직자로 뜬구름 잡는 세월을 보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걱정입니다. 1년 후 다시 취업 될 보장도 없으니 근심걱정만 더해 가고 있습니다.

17일부터 원청노조에서 2009년 임단협 협상을 다시 시작했다고 합니다. 올해는 제발 임금 인상분, 인상시기, 각종 성과금, 수당 체계, 아이들 학자금 적용만이라도 동일적용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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