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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증을 노력한' 1987과 역사 영화들

화려한 휴가, 남영동 1985, 1987이 남긴 여성 캐릭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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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생나무글(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영화 1987 포스터 ⓒ 구글

1987년 군부독재 시절, 잊을 수 없는 박종철 열사와 이한열 열사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영화. 김윤석, 하정우, 유해진, 김태리, 강동원, (특별출연인) 설경구, 여진구 등의 초호화 캐스팅으로 관심을 모으고, 1987년의 이야기를 담았다는 점에서 큰 기대를 모았다.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여 각 캐릭터의 모습도 잘 표현했다고 본다. 독재에 순응하는, 순응과 저항에서 갈등하는, 그리고 저항하는. 다양한 이야기를 담은 캐릭터들. 다만, '너무 고증을 열심히 해서 그런 것인지' 아쉬운 부분도 당연히 있었다. 오늘의 이야기는 그런 아쉬움에 대해 생각해 본다.

*[화려한 휴가], [남영동 1985] 그리고 [1987]
5월 18일 광주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화려한 휴가]_(2007년, 김지훈), 남영동 대공분실의 고문을 담은 영화 [남영동 1985]_(2012년, 정지영)과 - [택시운전사]는 아쉽게도 보지 못 했다. - [1987]에는 공통점이 있다. 민주화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는 것이 아닌, 영화 속 여성의 비중이 터무니 없이 적거나 한 명의 수동적인/도움을 주는/(어떤 것을) 잃는 등의 캐릭터로 그려진다는 점이다.

[화려한 휴가]의 배우 이요원은 간호사라는 역할로 사람들을 돕는 전형적인 캐릭터를 수행한다. 그녀는 군부독재에 저항하고 싶어도, 일선에 나가 맞서 싸우고 싶어도, 운동을 결정하는 - 남성 캐릭터(안성기 등) - 사람들은 이를 수행할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 결국 광주를 '떠나라.'라는 말을 듣고, 이요원은 자신의 가족(또는 함께 지낸 가까운 사람들)을 '잃은' 슬픔에 광주 사태를 알리기 위해 확성기를 들고 거리 선전을 진행한다. - 더불어, 확성기를 들고 거리 선전을 하는 마지막 모습이 이요원이 영화 중 가장 주체적으로 운동에 결합된 방식으로 그려졌다고 생각한다.

[남영동 1985]의 '그나마' 비중 있는 캐릭터는 주인공 배우 박원상의 아내로 나온 배우 우희진이다. 평범한 가정을 꾸리던 그녀는, 남편 박원상이 남영동에 끌려가 가정을 잃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자신의 일상을 잃는다. 여기서 우희진이 할 수 있는 것은 그 아픔을 더욱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것일 뿐이었다.

이렇게 역사 속의 여성은 획일화 된 특성으로 영화에서 계속 그려진다. 그렇다면, 영화 [1987]은?

*유일한 여성 캐릭터, 김태리의 영화 속 서사
배우 김태리는 민주화 운동을 하는 교도관 배우 유해진의 조카로, 아버지는 일전에 죽고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김태리는 영화 초반 등장할 때부터 "데모를 왜 하냐."의 대사로 시작한다. 그녀에게 (민주화)운동은 아버지를 죽게 한 하나의 원인이었고, 데모를 한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진 캐릭터로 등장한다.

그런데 배우 강동원(극 중 이한열 열사)을 만난 후에 (결론적으로는) 김태리는 변화한다. 버스 위에 올라가, 함께 '독재 타도'라는 구호를 외친다. 강동원이 데모를 하다가 최루탄을 맞아 숨진 것을 보고 분노하여!!! 특히, 이한열 열사의 한 개의 신발로 이어지는 강동원-김태리의 이상한 분위기 - 여기서 이상한 분위기라 함은 남성과 여성의 연애(?)를 암시하는 분위기이다. - 를 첫 만남부터 잡아내며 관객의 마음을 자꾸 김태리의 분노에 이입 시키려 든다.

이를 연결시키는 매개체는 '잃어버린 신발'로 표현되고, 1)강동원이 데모를 하던 중 김태리를 '구하던 중' 신발을 잃는 장면 2)김태리가 대공분실 앞에서 끌려가 어느 산골에 떨어져 신발을 잃는 장면 - 그리고 강동원이 신발을 들고 오는 장면 3)강동원이 최루탄을 맞고 신발을 잃는 장면 - 더해서, 강동원의 의식이 흐려지며 김태리가 사 준 벗겨진 신발 한 짝에 손을 뻗는 장면(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죽는 사람처럼 카메라 컷을 잡는 것은 분명히 의도 되었을 것이라 본다.)

이렇듯 역사를 그린 많은 영화에서 여성 캐릭터를 '비중이 있다.'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증에 노력하는 것은' 너무나 아쉬운 일이다. 근데, 과연 '고증에 노력한 것'일까?

*'고증을 노력한' 1987과 '최근의' 2017
'고증을 노력한' 영화 [1987]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성의 역할을 국한시키고, 잘라 내었다. 어쩌면 박종철 열사와 이한열 열사의 사건에 더욱 집중하기 위해 영화를 그렇게 만들었다는 변명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 속 등장한 민청련(민주화운동청년연합)에는 '여성부'가 존재했다. 또한,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 전 일어난 부천 성고문 사건도 배우 하정우의 대사 한 줄로 등장할 뿐이다. 이렇게 뻔히 보이는 여성 운동의 역사를 '고증을 노력했다.'는 이유로 담지 않은 것에 실망해야 할지, 아니면 '고증을 노력했기 때문에' - 더욱 박종철/이한열의 주위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 실망해야 할지. 어쨌든 양 쪽 다 실망을 안긴다는 것은 변치 않는다.

그리고 30년이 지난 2017년. 2017년에도 - 그리고 최근의 여성운동이 활발해진 2015~2016을 포함하여 - 여성들의 운동의 역사는 너무나 쉽게 흔적에서 지워지고 있다. 박근혜 탄핵의 과정을 다룬 한 기록집에는 2016년 탄핵 집회 당시 '집회 내 성차별/폭력', '평등한 집회 문화'를 외쳤던 '페미존'의 존재가 사라져있다고 한다. 이는 이후 집회의 평등한 분위기 확산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만약 앞으로 또 30년 후에 박근혜 탄핵에 대한 영화가 '고증을 노력'한다면, 페미존의 존재는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여성의 운동을 기록하고, 남기는 것은 중요하다. 그리고 이를 실천하는 여성운동단체들을 기억해야 한다. 앞으로 역사를 다룬 영화가, '고증을 노력했다.'는 말 뒤에 숨지 않았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블로그를 운영 중이며, 문화예술의 다방면에 관심을 가지고 글을 쓰고 있는 사람.
운영중인 블로그는 cultureforeveryone.tistory.com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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