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뉴스에 나온, 메르스 병원 방문에서 한 발언도 번역해주세요. 궁금합니다."'한국인'이 '한국인'에게, '한국어'를 '한국어'로 번역해주는 페이스북 페이지가 요즘 인기다. 개설한 지 3일 만에 1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좋아요'를 누른 이곳에는 여러 누리꾼들의 번역 요청이 이어진다. 이 기이한 현상을 만든 대상은 박근혜 대통령의 공식 발언들이다.
지난 5일 처음 등장한 이 페이지의 이름은
'박근혜 번역기'다. "군생활이야말로 사회생활을 하거나 앞으로 군생활을 할 때 가장 큰 자산이라는…" 등 알아듣기 힘든 말로 듣는 이를 '멘붕'에 빠뜨리는 박 대통령 특유의 화법을 단번에 이해할 수 있도록 번역해주는 곳이다.
[관련기사][카드뉴스] "기자도 포기했다... 대통령 발언 통역해주세요"[이슈] 세월호 1주기 때 '간첩' 언급'박근혜 사투리'를 아십니까? 개설자는 페이지 상단을 박 대통령의 대선 로고였던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 대신 '내 말을 알아듣는 나라'로 바꿔 걸어뒀다. 페이지 정보란에는 "대한민국 최고 존엄 박근혜 대통령의 말씀을 번역해드리는 인공지능 소프트웨어"라는 소개문이 게시돼 있다. 박 대통령이 밝게 웃으며 한쪽 귀에 전화기를 갖다 댄 프로필 사진도 이 페이지 이름과 절묘하게 어울린다.
개설 3일 만에 1만 명이 '좋아요'... "아 이분 최소 국어 1등급""아 이분 최소 국어 1등급" (이**)"섭외 들어오겠는데요? 대변인 보좌관이나 회견록 작성하는 사람으로" (김**)"작성자 분을 청와대 홍보 담당으로" (박**)현재 이 페이지에는 개설자의 번역 실력에 감탄하는 누리꾼의 찬사가 쏟아지는 중이다. 이중 가장 큰 호응을 얻은 번역은 지난 5일 박 대통령이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의료진에게 건넨 질문이다. 메르스 발발 17일 만에 '첫' 현장 점검에 나선 박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망자 4명을 포함해 확진환자가 41명으로 늘어난 시점이었다.
"여기 계시다가 건강하게 다시 나간다는 것은 다른 환자분들도 우리가 정성을 다하면 된다는 얘기죠?"언론보도로 이 소식을 접한 누리꾼들은 '박근혜 번역기'에 즉각 번역을 요청했다. 번역본은 이렇다.
"환자들이 격리병상에 계시다가 다시 건강하게 나간다는 것은, 또 다른 환자가 생긴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뜻을 모아 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 한다면 우주가 나서서 도와주기 때문에 감염과 확산을 막을 수 있다는 말씀이시죠?"깔끔한 번역은 아니지만, 누리꾼들로부터 가장 많은 호응을 얻은 이유는 박 대통령이 즐겨 사용하는 표현까지 곁들인 개설자의 재치다. 개설자는 "뜻을 모아", "정말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나서서 돕는다" 등의 표현을 덧붙여 국민적 불안이 높게 치솟은 상황에서 의료진에게 '정성'을 주문한 박 대통령의 부적절한 태도를 꼬집었다.
"번역을 해도 못 알아듣겠다"... 문제는 문장이 아닌 '내용'
현재 '박근혜 번역기'에 대한 호평이 이어지고 있지만, 그 중에는 "번역을 해도 못 알아듣겠다"는 원성도 섞여 있다. 문제가 박 대통령의 화법이 아닌 내용에 있음을 지적하는 의견이다. 대표적 발언이 지난 3일 박 대통령이 메르스 대응 민관합동 긴급점검회의에서 한 말이다. 메르스 발발 14일째 날 그는 여러 차례 '알아보라'고 주문했다.
[원본]"그리고 메르스 환자들의 치료, 또 그 환자들이 있는 시설에 대해서 격리시설이 이런 식으로 가서 되느냐, 이 상황에 대해서도 한 번 확실하게 알아볼 필요가 있고, 치료 환자들과 접촉 가족 및 메르스 환자 가능성이 있는 그런 원인에 대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 그 방안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또 3차 감염 환자들에 대한 대책, 그리고 지금의 상황을 그리고 접촉 의료기관 상황과 의료진 접촉 환자 및 그 가족들의 상황에 대해서도 우리가 확실하게 이번에 알아봐야 되겠다."[번역본]"현재 메르스 환자들의 치료와 격리시설에 미흡한 점이 많이 보입니다. 이런 식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힘든 상황이지만 철저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습니다. 메르스 환자의 가족들과 3차 감염 환자들, 그리고 확진이 일어난 의료기관과 의료진에 대한 대책방안에 대해서 우리가 확실하게 알아봐야 합니다."댓글에는 누리꾼의 성토가 이어졌다. "알아만 보다 다 죽겠다"(김**)며 분노한 누리꾼도 있었고, "난이도는 낮은 문장인데 사태 발생 '14일 후'에야 '첫 긴급회의'에서 말씀하셨다는 게 함정"(한**)이라며 정부의 늑장 대응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보였다. 또다른 누리꾼은 "가끔 야당 대표하시던 시절과 헷갈리시는 듯"(한**)이라며 대통령의 '유체이탈 화법'을 비꼬기도 했다.
지난 7일 개설자가 "번역이 필요 없는 박근혜 대통령의 완벽한 워딩을 찾았다"면서 올린 사진 한 장도 큰 화제다. 사진에는 박 대통령이 지난 2004년 한나라당 대표 시절에 국회에서 교섭단체대표 연설을 하고 있는 모습이 담겼다. 당시 고 김선일씨가 이라크에서 피랍돼 목숨을 잃은 직후에 박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국가가 가장 기본적 임무인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지도 못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들은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에 분노하며 국가에 대한 근본적 회의를 갖게 됐다.""2004년 박근혜가 2015년 박근혜에게"라는 코멘트가 덧붙여진 이 글은 올린 지 18시간 만에 3500여 명이 '좋아요'를 눌렀다. 이 페이지에서 가장 빠른 시간에, 가장 큰 호응을 얻은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