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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국교 정상화 50년을 맞이해서 박근혜 대통령은 22일 "과거사의 무거운 짐을 화해와 상생의 마음으로 내려놓을 수 있도록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베 일본 총리도 "50년간 우호 발전의 역사를 돌이켜보고 앞으로 50년을 내다보며 함께 손을 잡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자"고 밝혔다.

지금까지 박근혜 대통령은 대일외교에서 전략과 중심이 없는 강경책을 구사했다. 한일관계는 개선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번 박 대통령의 발언은 국민들에게 설명이 없는 갑작스런 정책 전환이다. 그래서 국민들은 당혹스럽다.

박 대통령의 갑작스런 정책 전환

박근혜 대통령이 22일 오후 서울 중구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 리셉션에서 누카가 일한의원연맹 회장이 대독한 아베 총리의 축사를 들은 뒤 박수를 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22일 오후 서울 중구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 리셉션에서 누카가 일한의원연맹 회장이 대독한 아베 총리의 축사를 들은 뒤 박수를 치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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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일본총리는 8.15를 계기로 담화를 발표하려 하고 있다. 아베담화는 2차대전 이후 아시아 질서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사건이다. 침략과 식민지 지배에 대한 분명한 반성과 사과 없이 일본이 국제사회의 평화에 기여하는 보통국가가 되는 것을 선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일협정 50년을 계기로 박근혜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대일정책을 전환한 것은 아베의 8.15 담화에 징검다리를 놓는 역할을 수행하게 되는 것에 불과하다. 동아시아 정세를 파악하지 못하는 박 대통령의 행보에 염려가 크다.

한일관계는 분명 개선되어야 한다. 하지만 '과거사'와 '종군위안부', '영토' 문제에 대해서는 원칙 있게 처리한다는 전략과 중심을 지녀야 한다. 이런 것이 바로 정치 지도자의 역할이다. 과거와 미래가 얽혀 있는 한일관계에서는 세 가지 영역에서 한국정부의 유능한 균형능력이 필요하다.

한일 사이에 경제문화 교류는 활성화하고, 과거사와 영토문제는 단호하게 하면서, 정치 군사문제는 유능하게 하는 3차원 병행 전략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그동안 박근혜 대통령의 대일강경책은 전략과 중심이 없는 단순한 강경책이었다. 그렇다보니 이번 박근혜 대통령의 대일정책 전환도 다소 뜬금없다.

경제와 문화교류, 정치와 군사, 과거사와 영토문제 이 세 가지는 각각 다른 차원에서 동시에 다뤄지는 것이 바람직한 전략이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영역에서 균형을 이뤄야할 대일정책이 한일협정 50년을 계기로 모호해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과거사와 영토문제에 대해서 지금까지의 강경정책과는 전혀 다르게 단순한 '립서비스' 차원에서만 언급하고 있다. 정치군사 문제에서는 일본과 협력하겠다고 이미 밝힌 거나 다름 없다. 한미일 세 나라가 군사정보를 공유하는 한미일 군사정보 보호 양해각서를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통과시킨 것이 그 근거이다.

게다가 일본이 미국과 방위협력지침을 개정해서 자위대가 한반도에 상륙할 수 있는데도 박근혜 정부는 모호한 태도로 이를 방관하고 있다. 일본이 한반도에 군대를 파견할 때는 한국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을 뿐이다. 일본은 당연히 국제법에 따라서 한국의 동의를 받는 것이라고 화답했다.

일본은 한국전쟁 당시부터 꾸준히 한반도에 군사력 파견을 구상해왔다. 그런데도 박근혜 정부는 일본의 해명 한마디에 일본의 역사적 야심이 한반도에 미칠 영향을 방기해버렸다. 미필적 고의로 일본군의 한반도 상륙을 용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반도에 자위대의 파병을 문의하고 일본의 답변을 구할 일이 아니다. 한국의 안보와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는 일본이 함부로 하지 못하도록 못을 박아야 했다. 한국정부의 애매모호한 태도는 자위대의 북한 상륙을 용인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자위대가 우리의 안보를 위협하는 행위를 해도 우리는 방관하는 처지가 되도록 스스로 만들어 버렸다.

종전 70주년, '졸'의 운명 자초한 한국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2일 오후 도쿄 도내 쉐라톤 미야코 호텔에서 주일 한국대사관 주최로 열린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 리셉션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2일 오후 도쿄 도내 쉐라톤 미야코 호텔에서 주일 한국대사관 주최로 열린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 리셉션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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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지금 미중일러가 벌이는 '2차대전 종전 70주년 외교'라는 장기판에서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상황이다. 한마디로 졸의 운명을 자초하고 있다.

2차대전 종전 70주년을 계기로 각국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일본의 아베 총리는 샌프란시스코 조약 발효일인 4월 28일에 맞춰 미국 방문을 했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은 한국을 배제하고 일본에게 관대하게 체결된 2차대전 강화조약이다. 그 결과 우리는 식민지 침략을 비롯하여 독도문제와 종군위안부 문제를 아직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아베는 성공적인 미국 방문을 연장해서 일본의 패전 70주년인 8.15에 아베담화를 발표할 예정이다. 과거사에 대한 사죄와 반성을 얼렁뚱땅 넘기면서 침략과 패전의 멍에에서 벗어나는 보통국가 선언을 할 것이다.

중국 시진핑 주석은 오는 9월 3일 종전 70주년 승전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9월 중으로 워싱턴을 방문할 예정이다. 아베의 4월 미국 방문 이후 워싱턴 DC에서 아시아 시즌 2를 준비하는 것이다. 중국은 미주리호에서 일본이 항복문서에 서명한 9월 3일을 전승기념일로 지정하고 있다. 이번 중국 전승기념일은 2차대전 외교 장기판의 정점이 될 것이다.

러시아의 푸틴은 지난 5월 9일 2차대전 승전 70주년 행사를 했다. 러시아는 유럽전선 승리에 맞춰서 5월 9일에 전승절 행사를 개최했다. 러시아는 이때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미국 MD를 무력화할 수 있는 다탄두 대륙간 탄도미사일인 'RS-24 야르스'를 공개했다. 북한도 북러 밀월관계를 위해서 5월 8일에 잠수함발사미사일 사출실험을 급조하고, 러시아의 전승절에 맞춰서 노동신문에 공개했다. 

미국은 아시아 회귀정책 추진을 위해 일본의 아베와 협력해 한일관계 개선에 압력을 넣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는 이미 지난 6월 2일자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막후교섭이 열리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과 미국정부는 아베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그간 말해온 '납치에 대한 유감 표명'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말하는 것을 희망한다는 것이다. 아베의 입장은 이를 수용하는 조건으로 앞으로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한국정부의 추가적인 문제제기가 없기를 희망한다는 것이 <워싱턴 포스트>가 전한 내용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잘 알려졌다시피 6월 12일자 <워싱턴 포스트> 인터뷰에서 위안부 문제에서 '상당한 진전'(considerable progress)이 있었고 '협상의 마지막 단계'(final stage)에 있다고 밝혔다. 지금 시점에서 볼 때 <워싱턴 포스트> 6월 2일자 보도는 상당히 사실에 가까운 보도다. 박근혜 대통령이 '상당한 진전과 마지막 단계'를 말한 것도 이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일본 관리들과 언론은 박근헤 대통령의 <워싱턴 포스트> 인터뷰 내용을 부정했다. 오히려 한국의 태도가 갑자기 부드러워져서 곤혹스럽다고까지 말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워싱턴이 6월 22일 한일수교 50년에 맞춰 한일관계에서 어떤 진전을 거두기를 바라고 압력을 넣어왔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워싱턴 포스트> 인터뷰에 대해 일본은 오리발을 내밀었다. 겉으로는 딱 잡아 떼고 있지만 속으로는 박 대통령이 정부 간 비밀협상을 공개한 것에 항의하는 것에 가깝다. 일본은 한국을 무시하기 시작했다. 이미 아베정권은 아시아 민주주의 G3는 일본, 인도, 호주라고 말해왔다.

세월호 사고 당일 박 대통령의 7시간을 일본언론이 천박하게 보도한 사건에 대해 한국정부는 국가권력의 힘으로 기소했다. 한국정부가 천박하고 폭력적인 정권이라는 것을 증명해준 것이나 다름없는 어리석은 행위였다. 일본 정부는 이것을 가지고 한국은 언론자유가 없는 나라라고 봤다.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는 것이다. 광주항쟁과 6월항쟁을 통해서 아래로부터 이룬 아시아적 민주주의의 모범을 만든 한국에게는 수치스러운 일이다.

그런데도 박근혜 대통령은 이를 감수했다. 더 나아가 8.15 아베 담화로 가는 길목에서 박 대통령은 자신이 일본에 대해 쓸 수 있는 칼날을 미리 무디게 만들었다. 한일협정 50년에 맞춰서 협상 카드를 일본에게 보여줬다.

이로써 8.15로 가는 아베의 일정은 쾌도난마가 되었다. 한국 외교는 갈팡지팡의 미로에 빠지고 있다. 외교무능은 정권의 운명이 아니라 나라의 운명을 파탄낸다. 국가전략을 다시 짜자.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는 것에 머물지 말고 적어도 2045년 광복100주년까지 흔들림 없이 계속 추진할 국가전력을 짜자. 시진핑도 궁극적으로 2049년을 목표로 한 '두 개의 백년'에 입각해서 '중국의 꿈'을 구상하고 있지 않는가?   

○ 편집ㅣ홍현진 기자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창수 기자는 코리아연구원(knsi.org)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한일협정, #아베, #박근혜, #종전7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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