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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점점 더 더워지고 있다. 아직 5월인데, 한낮에 초여름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예전 같으면 바닷가를 찾기에 너무 이르다는 생각을 했을 텐데, 지금 같아선 바로 바닷물에 몸을 담가도 아무도 뭐랄 것 같지 않다. 날이 더우니, 자꾸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게 시원한 물가다. 이른 감이 없지 않지만, 바다를 찾아가 보고 싶은 마음을 떨칠 수 없다. 이맘 때 바다는 또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진다.

 

서울에서 자전거를 타고 찾아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해수욕장이 어딜까? 자전거만 타고 가다 보면, 한나절이 다 걸려 해질 무렵에나 겨우 도착할지도 모른다. 자전거와 대중교통을 함께 이용해서, 아침에 집을 떠나 점심 무렵에 당도할 수 있는 거리에 있는 해수욕장. 푸른 바다를 눈앞에 두고 맛있는 점심을 먹은 다음에, 해가 지기 직전(그 후라도 상관이 없지만)에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 거리에 있는 해수욕장이라면 좋겠다.

 

생각 끝에 떠올린 게 영종도다. 영종도는 한 나절 자전거로 다녀오기에 딱 적당한 거리에 있는 섬이다. 더군다나 그 섬에 아름다운 해변이 있다지 않나. 인천국제공항이 들어선 이후로 섬 아닌 도시가 돼 버린 섬. 배 아닌 자동차를 타고 찾아갈 수 있게 된 섬. 섬 이름보다는 공항 이름으로 더 익숙해진 섬. 그 섬 한쪽 모퉁이에 해수욕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 전까지는 해외로 여행이나 출장을 떠나지 않는 한 특별히 찾아갈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섬이 바로 영종도다.

 

그런데 그 섬에 자전거를 타고 찾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로, 그 섬이 무척 궁금해진 터다. 자전거 여행자들이 영종도를 찾아가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하나는 열차(코레일공항철도)에 언제든 자전거를 실을 수 있고, 둘째는 영종도 해안가를 따라 자전거를 탈만한 길이 시원하게 뻗어 있으며, 셋째는 영종도는 물론이고 영종도 주변에 자전거 타는 다양한 재미를 맛볼 수 있는 섬이 여럿 있다는 것이다. 그 섬 중에 무의도와 장봉도, 그리고 연륙교로 연결된 신도, 시도, 모도(이하 '삼형제섬') 같은 섬들이 있다.

 

그리고 넷째는 그 섬에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해수욕장이 있다는 것이다. 이 섬은 서울에서 가장 가까울 뿐만 아니라, 도시인을 충분히 만족시킬 만한 멋진 해변과 그 해변을 따라 음식점 등 다양한 위락 시설이 들어서 있다는 게 또 다른 매력이다. 영종도에는 왕산해수욕장과 을왕리해수욕장이 있다.

 

 

끝이 보이지 않게 쭉 뻗은 공항북로 자전거도로

 

햇볕이 무척 따갑다.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지 않으면 피부가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지도 모른다. 코레일공항철도 운서역, 역 앞 광장에 내려서자 한낮의 뙤약볕이 머리를 달군다. 역 앞은 '공항신도시'다. 여느 도시와 다를 것이 없다. 섬 속에 이런 도시가 있다는 게 조금 낯설다.

 

운서역에서 자전거를 타고 을왕리해수욕장을 찾아가려면, 우선 삼목선착장 가는 길을 따라가면 된다. 삼목선착장 가는 길은 운서역 오른쪽 길에서 좌회전한 다음 중앙로를 타고 가다 그 끝에서 다시 우회전하면 나온다. 4차선 길 옆에 갓길이 제법 넓은 편이다. 차량이 많지 않아 비교적 안전하다. 그 길에서 삼목선착장 가는 샛길로 접어들면, 장봉도와 삼형제 섬으로 들어가는 배를 탈 수 있다. 삼형제 섬은 나중에 배를 타고 들어가 보기로 하고 오늘은 그냥 지나친다.

 

길은 평지에 가깝다. 약간의 오르막이 있지만, 기어 조절만 잘 하면 쉽게 오를 수 있다. 언덕을 하나 오르고 나면, 그 끝이 어딘지 잘 보이지 않는 '공항북로'가 나온다. 바닷가를 따라 시원하게 쭉 뻗은 제방 길이다. 공항북로는 그 반대편에 있는 공항남로와 함께 인천시에서 지정한 자전거도로다. 자전거도로라는 표시는 없지만, 자전거를 타는 데 별다른 문제가 없다. 이 길을 갈 때 하나 주의해야 할 점은, 반대편에는 자전거가 지나갈 만한 갓길이 없다는 점이다.

 

그러니 영종도에서 자전거를 탈 때는 처음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도로를 따라 바닷가쪽으로 둑 위에 중간 중간 감시 초소가 있고 철책이 가로막혀 있다. 이 철책은 해가 진 후에는 접근 금지지만, 한낮에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 지칠 만하면, 중간에 한두 차례 쉬어갈 만하다. 공항북로는 별다른 휴식 시설 없이 약 8km 정도 이어진다. 이 길에 들어설 때는 줄곧 페달을 밟을 각오를 하는 게 좋겠다.

 

 

소박한 멋의 왕산해수욕장, 세련된 멋의 을왕리해수욕장

 

길은 먼저 '왕산해수욕장'으로 이어진다. 거기에서 언덕 하나를 더 넘으면 을왕리해수욕장이다. 두 해수욕장은 바닷가로 툭 튀어나온 갯바위를 사이에 두고 바로 곁에 붙어 있다. 크기면에서는 왕산해수욕장이 을왕리해수욕장보다 두 배 정도 더 크다. 하지만 모래 질은 을왕리쪽이 더 나아 보인다. 사람들은 왕산에서 보는 일몰이 아름답고, 을왕리는 바다를 품은 해안선이 더 아름답다고 말한다.

 

왕산과 을왕리 모두 해수욕장으로 손색이 없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숙박시설 대부분 을왕리쪽에 몰려 있다. 음식점 같은 유흥업소 역시 을왕리 쪽이 더 번화한 느낌이다. 해안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풍경은 엇비슷하지만 바다쪽에서 해안을 바라보는 풍경은 사뭇 다르다. 을왕리가 번잡한 탓에, 누구는 왕산이 소박한 멋이 있고, 덜 어수선해서 좋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곳은 원래 용유도라는 섬으로, 이전에는 영종도와 연륙교로 연결이 되어 있었다. 그러다 두 섬 사이를 매립하고 그곳에 인천공항을 건설하면서 하나의 섬이 되었다. 지금은 예전 섬의 흔적이 용유동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두 해수욕장 모두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5월에 이 정도면 한 여름에는 사람들이 해변에 발 디디기 힘들 정도로 붐빌 게 분명하다.

 

 

을왕리해수욕장을 나온 길에서 조금 더 가다 오른쪽으로 접어들면 '선녀바위'로 가는 길이다. 그곳에 조개껍질로 뒤덮인 바닷가가 있다. 그곳 해변 역시 앞선 두 해수욕장과 마찬가지로 단체 수련을 나온 학생들이 차지하고 있다. 해변 왼쪽 끝에 여인이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듯한 바위가 있다. 선녀바위다. 사람들은 이 바위가 기도하는 여인의 모습을 닮았다고도 말한다.

 

이등변 삼각형 모양으로 서 있는 바위 위에 작은 바위가 얹혀 있는 모습이 조금 특이하다. 이 바위에 사랑의 전설이 깃들어 있다. 그리고 선녀바위가 있는 해변에서 드라마 <꽃보다 남자>를 찍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가? 바위 아래 유독 젊은 연인들이 많다.

 

 

자전거에 친절한 인천공항철도의 또 다른 얼굴

 

돌아올 때 역시 코레일공항철도를 이용한다. 운서역으로 다시 돌아올 때는 선녀바위에서 '공항남로'를 타고 내려온다. 공항남로를 타고 내려오다 인천대교를 지난 뒤, 맨 처음에 나타나는 갈림길에서 좌회전한다. 4차선 오른쪽 갓길에서 갑자기 좌회전 하는 게 쉽지 않다. 신호등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므로 차량의 흐름을 잘 파악해 조심스럽게 길을 건넌다.

 

영종도는 인천국제공항을 제외한 나머지 거의 전 지역이 공사중이다. 해변이 아닌 내륙은 온통 공사판이다. 그런 까닭에 도로에 안내판이 제대로 걸려 있지 않다. 첫 번째 사거리에서 좌회전해 들어가는 길 역시 내내 공사판이다. 그 길에서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다 싶을 땐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봐야 한다. 마을을 완전히 벗어난 후 외곽길을 우회전해서 올라가다 보면 철도가 도로 위를 가로지나가는 것이 보인다. 그 도로 왼쪽에 코레일공항철도 서운역이 있다. 참고로 인천공항역은 자전거 이용 금지다.

 

코레일공항철도는 자전거여행객들에게 무척 친절하다. 철도 양쪽 끝 칸을 모두 자전거여행을 하는 사람들에게 내줬다. 평일과 주말 상관없이 자전거를 실을 수 있다. 자전거에 이렇게 신경을 쓴 열차도 없다. 계단마다 자전거를 끌고 올라갈 수 있는 미끄럼틀도 설치되어 있다. 경사가 급한 게 조금 아쉽다. 열차를 타고 가면서 창 밖으로 내다보는 바다와 갯벌 풍경도 장관이다. 이 철도는 현재 김포공항까지만 운행한다. 요금은 전철과는 별도로, 운서역과 김포공항역 사이 1800원이다. 자전거여행을 하는 사람에겐 꽤 유용한 교통 수단이다.

 

 
그런데 한 가지 걸리는 점이 있다. 다 좋은데, 이 공항철도가 지독한 골치덩어리, 부실덩어리라는 거다. 민간자본을 끌어 들여 건설을 하면서 철도 이용 수요를 잘못 예측해 2007년 3월 철도 개통 후 2년 동안에만 무려 2700억 원이라는 막대한 정부 보조금을 민간 사업자인 현대건설 등의 건설사에 고스란히 갖다 바쳤다. 당초 예측한 수요의 90%를 넘겨야 하는데, 철도 개통 결과 수요가 겨우 7%밖에 안 돼 그 부족분을 모두 혈세로 채워준 것이다.
 
90%를 예측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7%란다. 이게 말이 되나. 도대체 뭘 어떻게 예측했기에 그런 차이가 발생하느냔 말이다. 애초 수요 예측이 잘못됐다는 건데, 이게 무슨 애들 장난도 아니고 차이가 심해도 너무 심하다. 결국 수요 예측을 잘못하는 바람에 이익을 얻은 건 건설사다.
 
그런데 이런 일이 단순히 수요 예측을 잘못한 데서 비롯됐을까? 철도를 건설하는 데서 얻는 수익을 극대화할 목적으로 수요를 최대한으로 부풀려 잡았다는 의심을 품지 않을 수 없다. 기업으로서 시장 상황이 어떻게 되든 이익을 낼 수밖에 없는 이런 황금 사업이 우리나라 말고 또 있을까 싶다.

 

그러고 나서 2009년에는 이 적자투성이 철도를 코레일이 1조 2045억 원에 인수하면서 부실에 특혜 의혹까지 불러일으켰다. 정부와 현대건설 등이 합작해 만든 적자를 그대로 국민과 코레일이 떠안은 셈이다. 눈 뜨고 앉아 코를 베인 형국이다. 그런데 정작 코 베인 사람은 자기 코가 어떻게 됐는지 알지 못한다.

 

아참,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해수욕장은 왕산해수욕장이다. 차로 갔을 때, 을왕리해수욕장보다 2분여 더 빨리 도착할 수 있다고 한다.

 

덧붙이는 글 | 지난 5월 14일에 다녀왔습니다.


태그:#영종도, #왕산해수욕장, #을왕리해수욕장, #선녀바위, #인천공항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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