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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연구원'과 <오마이뉴스>는 '2010 코리아, 전망과 과제'를 주제로 새해 특별기획을 6회에 걸쳐 공동 진행한다. 2010년은 보즈워스 미국 대북정책특별대표의 방북 이후 한반도 핵 문제 해결과 북미관계 개선노력이 병행될 가능성이 크다. 또 MB 정부는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 속에서 출범 3년 차를 맞는 매우 중요한 시점이다. '코리아연구원'은 2010년 새해를 맞아 통일외교안보-경제-사회분야에 대한 전망과 정책과제를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말]
북한 외무성이 1월 11일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기 위한 회담을 조속히 시작할 것을 정전협정 당사국들에 제의"하였다. 성명은 "조선반도와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는 데서 나서는 근본문제는 조미 사이의 적대관계를 종식시키는 것"이라는 신년사설의 입장을 구체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위임"에 따른 이 제의는 지난해 말 북미 대화와 경제 중시 및 남북·대외관계 개선을 천명한 신년사설 등을 감안할 때, 북의 6자회담 협상전략으로 국한해 보기에는 무게가 커 보인다.

불가피해진 6자회담 틀의 재구성

11일 성명은 "조선반도 비핵화 과정이 엄중한 도전에 부딪혀 기로에 놓인 가운데 해가 바뀌었다"면서 그 과정에서 "핵위협은 줄어든 것이 아니라 반대로 더 늘어났"다고 평가하였다. 그 때문에 "핵억제력까지 생겨나게 되었다"고 함으로써 북은 자신의 핵개발을 정당화 하였다. 동시에 "조선반도 비핵화는… 공화국 정부가 시종일관하게 견지해오고 있는 정책적 목표"라고 밝혀 6자회담 재개에 나설 의향이 있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했다.

이번 성명의 주요 특징을 두 가지로 요약한다면, 그 하나는 북이 비핵화와 관련해 6자회담을 넘나들겠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평화협정 체결이 비핵화보다 더 중요한 과제이므로 그런 인식 하에서 두 문제를 연계하겠다는 것이다. 좀 더 살펴보자.

북은 6자회담 재개 조건 및 방식과 관련해 모호하게 말하고 있다. 재개될 6자회담의 의제 및 논의방식을 둘러싸고 가볍지 않은 줄다리기가 예상된다. 이와 관련해 1·11 성명은 "제재라는 차별과 불신의 장벽이 제거되면 6자회담 자체도 곧 열리게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하고 있어, 6자회담 중단에 관한 책임공방이 일어날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북이 회담 재개에 응할 물질적 유인을 요구할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성명은 6자회담 재개 방식과 관련하여 의미심장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성명은 "1990년대부터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위한 대화들이 진행되였으며 그 과정에 '조미기본합의문'(1994년 10월 21일 제네바 기본합의를 말함)과 9·19 공동성명과 같은 중요한 쌍무적 및 다무적 합의들이 채택되었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는 북한이 6자회담에 나설 수도 있지만 6자회담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이중 메시지로 풀이되는데, 성명의 후반부 평화협정 논의 틀과 관련지어 살펴볼 때 그 의미는 더욱 뚜렷해진다.

성명은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회담은 9·19공동성명에 지적된 대로 별도로 진행될 수도 있고… 조미회담처럼 조선반도 비핵화를 위한 6자회담의 테두리 내에서 진행될 수도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필자가 위 인용문에 굵게 표기한 부분에 대해 2005년 9·19 공동성명은 "직접 관련 당사국들은 적절한 별도 포럼에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에 관한 협상을 가질 것이다"고 말한 바 있다. 북한이 거명한 제네바 합의와 9·19 공동성명은 북핵문제의 해결은 물론 북한과 미국의 정치적·경제적 관계 정상화와 미국의 대북 소극적 안전보장도 담고 있다. 북한은 핵문제를 비확산이 아니라 미국과의 적대관계 청산과 정전체제 해체의 일환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다.

금번 북측 성명의 핵심은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서는 비핵화보다는 평화협정이 더 중요함을 부각시키고 정전협정 체결 당사국간 회담을 제의한 것이다. 성명은 "조선반도에 일찍이 공고한 평화체제가 수립되었더라면 핵문제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9·19공동성명에도 평화협정을 체결할 데 대한 문제가 언급되어 있"다고 말하면서 북핵문제를 부차시하고 있다.

그리고 나서 북은 평화협정 회담 상대로 미국을 부각시키고 남한은 배제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물론 북한은 비핵화 문제를 무시하지 않고 있지만, 본격적인 비핵화 논의를 위해서는 "핵문제의 기본 당사자들인 조미 사이의 신뢰"를 언급하며 논의를 북미 구도로 끌어가고 있다. 북한이 1958년 중국군의 철수 이후 평화협정 체결 당사자로 중국을 배제한 점을 고려할 때 이번 북의 성명은 평화협정 문제를 거론해 북미 양자대화를 (6자회담의 틀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시도할 명분을 가지려는 것으로 보인다.

부상하는 평화협정 체결 문제

성명은 미국을 '조미'의 구도 속에서 다섯 번이나 언급한 반면 남한은 한번도 언급하지 않는 대조를 보임으로써 평화협정 논의 당사자에 일단 남한을 배제하는 입장을 드러냈다. 그러나 북이 평화협정 논의 당사자에 끝까지 남한을 배제할지, 나아가 체결 당사자로 남한을 부정할지는 속단하기 어렵다. 성명은 "당사자들이 서로 총부리를 겨눈 교전상태", 6자회담의 좌절을 언급하며 "당사자들 사이의 신뢰" 등을 언급하며 남한은 완전히 배제하지 않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정전·평화협정 체결 당사자와 관련하여 국제법리적으로나 실제 오랜 정전 상태인 경우, 둘의 체결 당사자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나아가 북은 남북기본합의서 및 불가침 부속합의서의 채택 자체를 통해 한반도 평화 수립의 실질 당사자로 남한을 인정한 바 있고, 2007년 노무현 대통령-김정일 총비서가 공동 서명한 10·4 남북정상선언을 통해 남북이 종전과 평화 수립의 당사자임을 공식 언급한 바 있다. 그리고 한미 동맹관계를 고려할 때 미국이 한국의 입장을 무시하고 북한과 평화협정 회담에 나설 가능성은 극히 낮다.

북은 평화협정 논의 방식과 관련해서 "9·19 공동성명에도 평화협정을 체결할 데 대한 문제가 언급되어 있는 조건에서 그 행동순서를… 실천적 요구에 맞게 앞당기면 될 것이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북이 평화협정 논의를 6자회담 재개의 조건으로 삼고 있음을 의미하는 동시에 비핵화, 평화협정, 북미 수교 등 관련 사안에 따라 6자회담 본회담, 한반도 평화포럼, 북미관계 정상화 실무그룹 등 다각적인 접근을 시도할 의사가 있음을 말해준다.

2009년 10월 리근 북한 외무성 미주국장의 방미와 12월 보즈워스 미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방북 및 그 직후 그의 6자회담 관련 4개국 순방으로 6자회담 재개 분위기는 무르익고 있다. 그러나 회담 의제와 진행방식은 변화가 불가피 해 6자회담이 본격화 되려면 적지 않은 막후 조정이 필요하다. 1·11 성명을 통해 북은 선 평화협정 체결 → 후 비핵화 실현의 입장을 재확인하면서 대미 중심 접근을 추구하겠다는 입장을 보여주고 있는데, 2009년 말 북미 대화 이후 그리고 새해 벽두 밝힌 북한의 입장은 남한정부의 외교안보정책에 도전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의 한반도 외교안보정책은 어떤가? 북핵문제와 평화협정 체결 문제를 동시에 다룰 복안을 갖고 있는가? 이 질문과 관하여 필자는 제17대 대통령 인수위원회가 발간한 백서 <성공 그리고 나눔>(2008. 3), '이명박 정부 외교안보의 비전과 전략'을 담은 <성숙한 세계국가>(2009. 3), 이명박 대통령의 2009년 광복절 경축사와 2010년 국정연설, 그리고 외교통상부의 2010년 업무보고 등을 살펴보았다.

우선, MB 정부는 출범하면서 한반도 평화와 관련해 '새로운 평화구조 창출'을 전략목표로 제시하고 그 아래 북핵 폐기의 우선적 해결, 비핵·개방·3000 구상 추진, 한미관계의 창조적 발전, 남북간 인도적 문제 해결 등 4개 핵심과제를 비롯해 3개 중점과제, 2개 일반과제를 제시하였다.

4개 핵심과제 중 북핵문제와 관련하여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백서는 "북한 핵문제는 북한의 진정한 변화와 개방, 그리고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및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고 밝히고 있다. 그 주요 방안 중 하나로 "6자회담 관련국 및 국제사회와의 긴밀한 공조"를 제시하였다. 이는 현재까지 MB 정부가 유지하고 있는 외교안보정책 기조로서 정책적 일관성의 측면에서 평가할만하다.

'실용주의'와 거리 먼 대북정책

그러나 전략적 우선순위를 유지하는 것과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전술상의 유연성은 구별된다. 이점은 MB 정부도 잘 인식하고 있다. MB 정부가 행동규범으로 제시한 '창조적 실용주의'의 구성요소에서는 "목표를 변화하는 현실의 맥락 속에서 계속해서 재조정하고 재설정하며, 목표에 이르는 수단의 객관성과 효율성을 항상 새롭게 모색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또 정부는 '창조적 실용주의'를 남북관계에 적용하여 확고한 원칙과 유연한 자세를 가진다고 밝혀왔다. 문제는 실제 그러하냐는 것이다.

MB 정부 출범 3년차에 접어든 작금의 현실에서 대북정책을 회고할 때 북핵문제 우선 해결 원칙은 교조적으로 적용되면서 2차 핵실험 등 북핵문제가 더욱 악화되었고 남한의 대북 영향력도 축소되었다.

이 같은 결과는 어느 정도 예견되었다. MB 정부는 출발부터 북핵 폐기 과정을 국제공조를 기초로 "'비핵·개방·3000' 구상과의 전략적 연계 하에 추진함으로써 북한의 결단을 유도해 나갈 것"이라고 밝히고, "남북관계 역시 북한 핵을 폐기하는 데 우선순위를 두고 운용해" 나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비핵·개방·3000' 구상이 희망적 사고에 바탕을 두고 비현실적인 대북정책이라는 비판은 처음부터 제기되었다. 설익은 이 구상은 결국 정부가 추구한 '상생과 공영의 남북관계'를 희생시킨 부메랑이 되어버렸다. 정부는 전략목표로 '상생과 공영의 남북관계'를 제시했지만, 그 중점과제로 제시한 ▲ 한반도 비핵평화구조의 공고화 ▲ 남북 경제공동체의 기반 조성 ▲ 남북 사회문화공동체의 기반 조성 ▲ 인도적 협력의 증진 중 어느 한 분야에서도 가시적인 진전을 발견하기 어렵다.

적어도 현재까지 MB 정부의 대북정책은 '창조적 실용주의'와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리고 "추진 중에 있는 정책이라 할지라도 문제점이 나타나면 지체 없이 수정·보완"한다고 밝힌 행동규범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MB 정부의 외교안보정책에서 한반도와 동북아 개념은 실종된 것 같다. "북한 핵문제는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고 통일을 가로막는 가장 근본적인 군사위협"이기 때문이다. 좁은 동북아 대신 신아시아로의 외교적 지평을 확장한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외교통상부가 밝히고 있는 6자회담 내 동북아평화안보체제 실무그룹과 동북아협력대화(NEACD) 참여와 국방부가 밝히고 있는 역내 포괄안보 협력이 동북아 외교안보정책의 전부이다.

'북핵을 넘어' 한반도를 거쳐 동북아를 지나, 세계와 호흡하는 서울발 글로벌 외교 비전이 없다. 대신 한반도와 동북아를 건너뛰고,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아시아로 세계로 '단번' 도약하는 접근이 제시되었다. 아직 조건이 무르익지 않은 탓일 수도 있지만 북한위협, 한미동맹에 기반한 안보 및 양자주의 중심의 접근이 역내 다자안보협력에 관한 비전을 스스로 축소한 것은 아닌지 살펴볼 일이다. 적어도 미래 한미동맹 발전 구상에 비례하는 정도의 역내 안보협력 비전은 구상할 자세와 능력은 있다고 보는 것이다.

시험대 오른 MB 정부의 한반도 평화외교

한반도 문제에 관한 북한의 기본입장이 선 북미 평화협정 체결이라고 한다면, 남한은 선 북한의 핵 폐기라 할 수 있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1월 6일 <연합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북의 평화체제 논의 주장을 "북한이 비핵화를 안 하겠다거나 지연시키겠다는 전술로 볼 수밖에 없다"고 논평했다.

이에 앞서 이명박 대통령도 신년 국정연설에서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촉구하며 한반도 비핵화를 촉구했을 뿐 평화체제 관련 언급은 하지 않았다. 이런 입장은 보즈워스의 방북과 그때 전달된 오바마 대통령의 친서에서 6자회담 재개 시 평화체제 논의도 개시한다고 한 북미 양측의 입장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러나 MB 정부는 출범하면서 '비핵·개방·3000' 구상을 통한 '북핵 폐기의 우선적 해결'과 "미·북, 일·북 관계 정상화와 동북아 다자안보 협력체 및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해 '한반도의 새로운 평화구조'를 창출하는 작업"을 병렬적으로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이제 이 대전략은 미래 구상이 아니라 당면 과제로 다가와 있다.

MB 정부의 '한반도의 새로운 평화구상'은 대통령이 직접 나서 발표한 2009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가장 잘 나타났다. 평화구상은 북한의 핵포기의 반대급부로서 북한 경제, 교육 등 5대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이 대목은 선 북핵문제 해결을 바탕으로 한 '비핵·개방·3000'의 변형이라 비판받기도 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이 연설에서 주목되는 바는 남북간 재래식 군축 제의인데, 이것은 MB 정부의 평화 구상이 실질적인 평화체제 논의로 발전할 여지를 열어 놓았다 할 수 있다.

유명환 장관이 언급한 것처럼 6자회담이 재개되면 북한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도 당연히 의제에 포함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선 평화협정 체결, 남한의 선 북핵 폐기라는 평행선 속에서 6자회담 재개가 지연되거나 재개되더라도 회담이 공전할 경우, 북한의 핵보유 능력이 강화될 가능성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정부의 대책이 남는다. '한반도의 새로운 평화구조'를 북핵문제 해결 이후에 모색한다는 발상은 한반도 정전체제의 불안정성과 현 정세의 역동성을 간과한 무책임한 처사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2010년 한반도는 비핵화, 평화협정, 남북관계가 맞물려 새로운 국면으로 전개될 것이다. 이들 사이의 선후를 둘러싼 논란에 휘말릴 경우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등 우리에게 실이 더 크다. 정부는 대북정책과 주변 4강 외교를 꿰는 중심 개념으로 '한반도 평화체제'를 제시하고 향후 3년간 이를 실천해갈 전략을 수립할 때에 이르렀다.

MB 정부는 ODA와 PKO를 앞세워 글로벌 외교를 강조하고 있지만 한반도가 생략된 '글로벌 코리아'는 자아가 상실된 세계화론으로 보일 수 있다. MB 정부는 한편으로 남북의 기싸움이 북의 핵무장을 기정사실화 할 위험성을 직시하고, 다른 한편으로 오바마 행정부의 '핵없는 세계' 구상을 활용해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 전략을 가동할 때이다. 지구촌 시대 행동규범은 여전히 "세계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가 아닐까 싶다.

덧붙이는 글 | 이글을 쓴 서보혁 박사는 국가인권위원회 전문위원,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객원연구위원을 역임했고, 현재 이화여대 평화학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중이며, 코리아연구원 기획위원이다. 주요 저서로는 <북한 정체성의 두 얼굴>(2003), <탈냉전기 북미관계사>(2004) 등이 있다.

'코리아연구원'은 통일외교안보·경제통상·사회통합 분야의 정책대안을 제시하는 네트워크형 민간 싱크탱크다. 이 글(특별기획29-2호)의 원문 및 관련 정책자료들은 코리아연구원 홈페이지(www.knsi.org)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태그:#북한 외무성 성명, #평화협정 체결, #6자회담, #MB 외교안보정책, #한반도 비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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