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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법원장으로서의 행위가 위법 사유에 해당한다고 해도 그 사유는 현직인 (신영철) 대법관의 직무 수행에서 배제할 만큼 중대한 사유라고는 볼 수 없다."

지난 13일 당5역회의에서 밝힌 '전직' 대법관 출신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의 말이다. 이 총재는 "전직에서 한 행동을 가지고 현직에서 탄핵 사유를 삼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찬반양론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전 글에서 지적했듯이 '전직 중 행위'는 탄핵사유가 될 수 있다. 헌법재판소가 출간한 <헌법재판실무제요(2008)>의 해당 부분을 적시하는 것으로 이회창 총재의 발언을 반박한다.

"탄핵대상자가 다른 공직을 거쳐 현 공직에 취임한 경우 전직 및 현직 공히 소추대상의 직이라면 전직 시의 위법행위는 탄핵사유에 포함된다."(356면)

또한 이 총재는 "탄핵 사유는 헌법과 법률의 위반이 현직에서 직무를 수행할 수 없다고 판단될 만큼 중대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 헌재가 이미 밝힌 판례"라면서 "지방 법원장으로 있을 당시의 행위가 위법하다 하더라도 그것이 현재 대법관의 직무 수행에서 배제할 만큼 중대한 사유라고는 볼 수 없다"고 했다. 결국 신영철 대법관의 '재판개입'은 탄핵사유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헌법재판소'에서 정한 탄핵사유로서의 중대성은 무엇을 의미할까?

헌재가 결정한 '중대한 탄핵사유'란?

헌재는 지난 노무현 대통령 탄핵사건에서 "직무행위로 인한 모든 사소한 법위반을 이유로 파면을 해야 한다면, 이는 피청구인의 책임에 상응하는 헌법적 징벌의 요청 즉, 법익형량의 원칙에 위반"되므로, "헌법재판소법 제53조 제1항의 '탄핵심판청구가 이유 있는 때'란, 모든 법 위반의 경우가 아니라, 단지 공직자의 파면을 정당화할 정도로 '중대한' 법위반의 경우를 말한다"고 했다. 이 총재의 말이 맞다.

하지만 이 총재의 말은 틀렸다. 당시 헌재는 "'법위반이 중대한지' 또는 '파면이 정당화되는지'의 여부는 그 자체로서 인식될 수 없는 것이므로, '법위반이 어느 정도로 헌법질서에 부정적 영향이나 해악을 미치는지의 관점'과 '피청구인을 파면하는 경우 초래되는 효과'를 서로 형량하여 탄핵심판청구가 이유 있는지의 여부 즉, 파면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저울의 한 축은 '헌법질서에의 부정적 영향'이요, 다른 한 축은 '파면으로 초래되는 효과'다.

신영철 대법관의 '재판개입'은 중대한 탄핵사유다

신영철 대법관과 노무현 전 대통령, 양 당사자의 위헌·위법행위를 비교해보자. 먼저 노무현 대통령은 '소극적 발언'인데 반해, 신영철 대법관은 '적극적 행위'다.

헌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능동성이나 계획성, 목적성이 없다고 했다. "기자회견에서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의 형식으로 수동적이고 비계획적으로 행해진 점을 감안한다면, 대통령의 발언에 선거운동을 향한 능동적 요소와 계획적 요소를 인정할 수 없고, 이에 따라 선거운동의 성격을 인정할 정도로 상당한 목적의사가 있다고 볼 수 없다.(2004헌나1)"(노 전 대통령은 총선을 앞두고 방송기자클럽 기자회견에서 열린우리당 지지발언을 했고, 이에 불법 선거운동이란 비판이 제기됨.)

신영철 대법관
 신영철 대법관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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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신영철 당시 서울지방법원장의 재판개입은 대단히 '적극적'이다. 형사사건의 진행 전반에 걸쳐 대단히 적극적으로 재판에 개입했다. 탄핵소추안에서 제시된 신 대법관의 재판개입사례 중 '일부를 보자.

▲ 2008년 7월 15일 형사단독판사에게 이메일을 보내 "대외적으로는 물론 대내적으로 비밀로" 하는 간담회 소집 ▲ 10월 9일 야간집회를 금지한 집시법 위헌법률심판이 제청되면서 촛불집회 관련 시국사건의 재판이 연기되고 피고인들이 보석으로 석방되자, 10월 13일 형사단독판사들에게 전화를 걸어 "보석을 신중히 결정하라"는 취지로 이야기하였으며, 14명의 판사를 불러 위헌제청에 구애받지 말고 재판을 진행하라고 독촉, ▲ 11월 6일 형사단독판사들에게 "내년 2월이 되면 형사단독재판부의 큰 변동이 예상된다"며 인사문제를 언급하면서 "야간집회 위헌여부의 심사는 연말전 선고를 목표로 진행되고 있다"는 "야간집회관련"이라는 제목의 전자우편 발송

둘째, 현실적 피해여부다. 노 대통령의 행위는 행위의 소극성으로 인해 헌정질서 침해가 없었던 반면, 신 대법관의 재판개입은 재판권 독립을 침해했다.

헌재 결정에 의하면 노 대통령의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발언은 '선거운동'이 아니다. 헌재는 "(2004년 2월) 후보자의 특정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발언을 한 것은 선거운동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헌재는 "대통령의 법위반이 헌법질서에 미치는 효과를 종합하여 볼 때 대통령의 구체적인 법위반행위에 있어서 헌법질서에 역행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의사를 인정할 수 없으므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위협으로 평가될 수 없다"고 했다.

반면 신 대법관은 헌법이 보장하는 사법권의 독립을 뿌리부터 뒤흔들었다. '촛불재판' 사건의 배당에서부터 선고일정에 이르기까지 전면적으로 재판에 개입했다. 인사평가권을 지닌 법원장의 이런 압박으로 인해 사법부의 독립성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대법원 진상조사단 조사결과 "재판 진행에 관여한 것으로 볼 소지가 있"으며,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는 "외관상 재판 관여로 인식되거나 오해될 수 있는 부적절한 행위"라고 했다. 역사상 가장 많은 판사들이 참여했다는 1988년 제2차 사법파동 때의 서명 판사 수 330여 명을 훌쩍 넘어 495명의 판사들이 "신영철 대법관의 당시 행위는 재판권 독립을 침해했다"고 결의했다.

2004년 탄핵정국에서 '3.20 탄핵무효를 위한 100만인 대회'가 열린 서울 광화문 거리의 모습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민주적 정당성'의 크기를 알 수 있다.
 2004년 탄핵정국에서 '3.20 탄핵무효를 위한 100만인 대회'가 열린 서울 광화문 거리의 모습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민주적 정당성'의 크기를 알 수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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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민주적 정당성'의 측면이다. 노 대통령은 국민투표를 거쳐 당선한 '큰' 민주적 정당성을 가졌다. 반면 신 대법관은 국회의원 재적 과반수의 동의라는 '작은' 정당성에 불과하다. 더구나 '작은 정당성'을 부여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조차 신 대법관은 촛불재판 개입행위와 관련하여 위증을 한 사실까지 추가로 밝혀졌다. 신 대법관의 '민주적 정당성'이 뿌리부터 흔들린 것이다.

넷째, 파면 처분으로 인한 영향 또한 대단히 다르다. 현직 대통령 파면의 경우 "국민이 선거를 통하여 대통령에게 부여한 '민주적 정당성'을 임기 중 다시 박탈하는 효과를 가지며, 직무수행의 단절로 인한 국가적 손실과 국정 공백은 물론이고, 국론의 분열현상 즉, 대통령을 지지하는 국민과 그렇지 않은 국민간의 분열과 반목으로 인한 정치적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 따라서 헌재는 '대통령을 파면할 정도로 중대한 법위반이 어떠한 것인지'에 관하여 "대통령의 직을 유지하는 것이 더 이상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거나 대통령이 국민의 신임을 배신하여 국정을 담당할 자격을 상실한 경우에 한하여" 대통령에 대한 파면결정은 정당화된다고 했다.

하지만 신 대법관 파면으로 인한 정치적 혼란은 거의 없다. 현재 법원은 원장을 포함하여 14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신 대법관 1인이 파면된다고 하더라도 큰 혼란은 발생하지 않는다. 도리어 국민의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재판 개입'으로 사법부의 독립을 해치고, 국민의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근본에서부터 뒤흔든 신영철 대법관의 행위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사건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신 대법관의 행위는 '중대한 탄핵사유'인 것이다.

사법부 독립을 지켜내기 위해 더욱 끈질기고 집요해져야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정치권이 너무 집요하게, 또 너무 이 문제를 가지고 논의하는 것은 권력 분립의 체제 하에서 사법부에 대해 입법부나 정치권이 취할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의 말이다. 탄핵제도의 존재 가치를 망각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탄핵제도는 제도의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경고와 예방의 기능을 하게 되며, 종국결정에 이르지 아니하더라도 탄핵소추의 발의와 의결과정 자체로도 대의적 통제기능을 발휘하게 된다. 탄핵제도는 이념적으로 국민주권의 원리를 구현하는 것이고 제도적으로는 국회의 행정부와 사법부에 대한 감독·견제기능과 헌법보장기능을 나타내는 것이다(국회법해설 555페이지).

신영철 대법관은 고위공직자로서 명백히 헌법과 법률이 정한 사법부의 독립을 침해했다. 신 대법관에 대한 탄핵소추안은 사법부의 독립이라는 헌법의 규범력을 확보하고자 하는 것이다. 결코 '정치공세'나 '정치적으로 지나친 것'일 수 없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도리어 정치적 고려를 통해 헌법의 규범력을 확보하는 탄핵소추안을 의사일정에 반영하지 않아 표결조차 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야 말로 '정치적으로 지나친 것'이다. 뿐만 아니라 헌법과 국회법상 재발의가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이쯤에서 됐다'라며 사법부의 독립 침해를 방조하는 것이 도리어 '정치적 무능'을 드러내는 것이다.

2009년 정치는 실종되고, 모든 사안은 사법부의 손에 달려있다. 사법부의 독립이 무엇보다 중요해진 것이다. 신영철 대법관이나 사법부는 이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스스로의 자정기능을 상실했다. 입법부마저 사법부 독립을 포기해선 안된다. '집요하게' 그리고 '끈질기게' 사법부의 독립을 지켜내기 위해 노력하는 민주당의 모습을 기대한다. 그것이 한 차례 욕과 사법부 독립 포기를 맞바꾼 한나라당에 제대로 맞서는 야당의 모습이다.


태그:#신영철, #이회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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